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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의 간섭 “형택 오빠와 기훈 오빠 안 만나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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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누굴 만나야 하고, 누굴 만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간섭까지 나아갔다.

 

형택 오빠와 기훈 오빠 계속 만나야 하는 거지?

 

지난 8월29일 방송된 KBS JOY <연애의 참견 NEW>에서는 남자친구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여하는 여자친구의 가스라이팅 문제가 다뤄졌다. 이 글을 읽기 전에 영상을 먼저 보는 것이 좋다. 보고 나서 깊이 생각해볼 부분이 떠오를 것 같다.

 

 

여자친구 민주는 연상의 남자친구 승민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매번 앞뒤로 그런 단서를 붙인다. 승민은 민주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의 요구들을 수용해줬으나 결국 “내 생각도 들어달라”며 한 마디하고 말았다. 순순히 따르던 승민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도 먹고 싶은 게 있고 하고 싶은 게 있어. 너무 바꾸려고만 하지 말고 내 생각도 들어주고 이해해줬으면 좋겠어. 그래줄 수 있지?

 

그동안 민주는 △승민이 동성 절친들과 올나잇 약속을 보내고 있는 도중에도 갑자기 연락해서 자기 집으로 불러들였으며 △고기와 커피를 좋아하는 승민의 식성을 무시하고 건강을 핑계로 채식과 노카페인을 강요했고 △한약 트라우마가 있음에도 한약 음용을 강권했다. 결정타가 터졌다. 승민이 생애 첫 월급으로 구입해서 애정이 가는 최애 반팔티를, 민주가 집어던졌다. 민주는 승민의 스토리에는 관심이 없다. 들리지 않고 들을 생각이 없다. 그저 목 늘어나고 후줄근한 낡은 검정 반발티에 불과하다. 그래서 승민이가 그 반팔티를 자주 입는 것 자체가 못마땅해서 끝내 셔츠로 갈아입혔다. 친구들과 함께 있는 술자리에서 그런 퍼포먼스를 아무렇지 않게 시전했다. 끝끝내 승민이의 옷차림을 교체시키고 쿨하게 퇴장하는 민주를 바라보는 친구들의 말이 심상치 않다.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올 수밖에 없다. 승민이는 “야! 선넘지 마라”고 발끈했지만 안 그래도 민주에 대한 답답함이 극에 달한 터라 갸웃거리게 된다.

 

부당한 요구에 타당한 이유로 거부했을 때 다 무시하면서 널 위한다고 말하면 그게 가스라이팅이야.

 

 

아끼는 상대를 위해 뭔가 준비해서 선물로 갖다주는 행위. 좋다. 나쁘지 않다. 그러나 하필 그것이 상대의 트라우마와 직결되는 것이라면? 승민이는 어렸을 때 한약을 잘못 먹어서 구토한 적이 있을 만큼 한약 알레르기를 갖고 있다. 그래서 민주가 승민이에게 한약 한 박스를 사다주고 바로 마시라고 요구했을 때, 도저히 마실 수 없었다. VCR을 보고 있던 고정 MC 주우재씨는 참다 못 해 “저런 거는 좀 물어보고 해야지”라고 한 마디 내뱉었다. 승민이가 못 마시는 이유를 애써 이야기했지만 민주는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모드가 됐다. 민주는 한약 봉지들을 꺼내서 가위로 잘라버렸다. 승민이의 사과와 복종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민주의 행위는 부모가 미성년자 자녀에게 대하는 것 이상의 수준이었다. 내가 낳은 자녀니까. 그래서 정당화되는 부모의 훈육 패턴과 닮았다. 일단 민주의 입장에서, 승민이의 모든 행동은 비합리적이며 미성숙하다. 승민이의 건강을 위해서, 미래를 위해서 가이드라인을 세워줘야 한다. 실천하고 있는지까지 점검해야 한다. 근데 둘은 연인관계다. 연애를 하고 있다. 곽정은씨는 “보통 가스라이팅은 간섭의 형식”으로 발전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간섭과 가스라이팅의 차이를 구별하기가 어렵다.

 

근데 가스라이팅이라는 것에 대해 많은 대중이 잘못 이해하고 있는 지점은 내가 듣기 싫으면 가스라이팅! 자기가 느꼈을 때 불쾌하면 가스라이팅이 아니고 그 사람이 어떤 의도를 갖고 나를 조종하거나 세뇌하기 위해서 일으키는 것이 가스라이팅이다.

 

사실 민주의 행태를 가스라이팅 프레임으로 보고 싶지 않다. 가스라이팅의 고의는 없었을 것 같다. 사실 민주는 거의 대부분의 인간관계를 비슷한 패턴으로 맺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판단이 너무나 옳기 때문에 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모두 나의 처방을 따라야 한다고 여길 것이다. 물론 진정성이 있다. 민주는 참지 못 하고 항의하는 승민에게 눈물로 호소한다.

 

오빠가 그렇게 느꼈다면 내가 잘못한 거지. 그럴려고 그런 거 아닌데.... 난 오빠가 너무 좋으니까 오빠 생각만 해서 그런거야.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고 남들한테 잘 보였으면 좋겠고. 이게 다 오빠를 위해서 그런 거야. 오빠를 위한 내 진심을 오해하지 말아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흔히 부모가 중학생 자녀에게 나쁜 친구와 어울리지 말라고 다그치는 패턴이 그대로 재현됐다. 민주가 “형택 오빠와 기훈 오빠 계속 만나야 하는 거지?”라고 말해버렸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승민이가 <연애의 참견>에 사연을 보낼 정도로 이별에 대해 깊게 고민하게 된 것이다. 민주는, 건강 문제로 라면 등 인스턴트 음식을 금하고 있는 승민이의 사정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보란 듯이 라면을 끓여먹은 형택과 기훈을 도무지 용납할 수 없다.

 

솔직히 오빠한테 도움되는 사람인지 잘 모르겠어서. 오빠 건강 때문에 식단 관리하는 것 뻔히 알면서 옆에서 라면 먹는 거 좀 아니지 않아? 그리고 요즘 그 친구들 만나면서 오빠가 좀 변한 것 같기도 하고. 전엔 내가 무슨 말하면 다 맞춰주려고 했었잖아. 근데 요즘엔 자꾸 반대로만 하려고 하고. 혹시 그 친구들이 뭐라고 한 거야?

 

가스라이팅을 당해 고분고분하던 승민이의 태도가 그리웠던 걸까? 민주는 다른 동성 친구 2명을 동원해서 승민이를 다시 고분고분하게 만들려고 자리를 마련했다. 이 대목은 영상으로 확인해보면 그야말로 가관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무슨 말을 뱉을지 사전에 짜고 나온 것 같은 친구들이 승민이에게 “친구가 중요한가요? 친구보다 애인이지. 민주가 똑똑해서 틀린 말은 안 하잖아. 나도 민주 같은 사람이랑 연애하고 싶다”와 같은 메시지를 피력했다.

 

너무 노골적이었다. 승민이는 단 번에 민주의 어이없는 의도를 알아차렸다. 민주는 승민이를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할 맘이 전혀 없다. 인격체의 핵심은 자기결정권이다. 인생 속 수많은 선택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유시민 작가는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연애도 인간관계 중에 하나잖아요. 모든 인간관계의 보편적인 원칙 같은 것이 있다고 봐요. 모든 인간관계에서 기본 원칙이 되어야 하는 것이 있죠. 타인을 독립적이고 인격적 주체로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그 출발이라고 봐요. 의존하거나, 지배하는 것은 정말 좋지 않은 인간관계라고 생각하죠. 우리나라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의존적인 경향이 있어요. 부모와 자식 관계도 그렇고 연인이나 부부 관계도 그렇고, 선생님과 학생들 관계도 마찬가지에요. 대학에서 심지어 교수와 학생들 사이의 관계도 그렇고요. 정치권에서도 보스와 조직원 사이의 관계도 그렇죠. 모든 것을 함께해야 한다는 상호의존적인 방식의 관계가 많아요. 이렇게 의존적이니까, 지배 관계로 가는 거예요. 누군가에게 의존하게 되면 존엄을 지키기가 어려운 상황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또 의존하기 때문에 지배할 수 있는 것이거든요. 모든 관계의 대원칙은 타인이 독립적인 인격의 주체라는 것. 모든 문제에서 최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 이 점을 염두에 두고 관계를 맺어간다면 연인관계도 다 똑같다고 봐요.

 

 

폭발한 승민이는 민주에게 “먹는 거 입는 거 거기다 내 친구까지 다 니가 원하는대로 하길 바라잖아. 다 날 위한 거라고 하지만 사실 널 위해서 그런 거잖아”라며 자신이 당하고 있는 폭력을 직시했다. 유튜브에 보니 이런 댓글이 달렸다. 길지만 거를 내용이 없다.

 

여자가 진짜 너무 무서운데 한편으론 좀 안쓰럽네요. 여자친구는 남자친구 정말 좋아하는 거 느껴지지만 교묘하게 친구들 불러서 남자친구 바보 만들고. 남자친구 입장은 전혀 생각 안 하고 먹고 싶은 거 입고 싶은 거 다 자기 입맛대로 바꾸려고만 하면 남자친구를 위한다는 그 진심이 위선과 가식처럼 보여요. 어떻게 남자친구가 아끼는 옷을 본인도 알고 있었으면서 쓰레기통에 던지고 애초에 남자친구에 대한 존중이 없는데 뭘 자꾸 위한다는 건가요? 제발 사람을 위한다는 말을 함부로 지껄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위해준다는 것은 말로 주입시키는 게 아니라 그 마음을 상대방이 온전히 따스하게 느끼는 거에요. 남자친구가 맞춰주는 것처럼 여자친구도 같이 노력을 하셔야죠. 무슨 엄마가 아들 훈육하는 것도 아니고. 남자친구를 정말 위해주는 일은 사상과 신념을 주입시키고 바꾸려고 하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남자친구가 원하고 행복을 느끼는 동시에 건강이든 뭐든 같이 상생해나가는 게 정말 위하는 일이 아닐까요? 남자친구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부엌에 가서 따뜻한 물 한 잔 마시고 앉아서 왜 갑자기 내 입맛대로 안 움직여지지? 친구들 때문인가? 이딴 쓰레기 같은 생각하지 마시고. 남친이 정말 좋아하는게 뭘까? 어떻게 하면 행복해할까? 이런 정상적이고 건강한 생각을 하시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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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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