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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이라 쉽게 밝힐 수 있는 비엔나에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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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조은비의 비엔나 라이프] 1번째 글입니다. 조은비씨는 작은 주얼리 공방 ‘디라이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우울증 자조 모임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현재는 “모든 걸 잠시 멈추고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게으르게 쉬는 중”이며 스스로를 “경험주의자”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평범한미디어 조은비 칼럼니스트] 근데 진주는 동물성 제품이잖아? 자신을 비건(Vegan)이라고 소개한 오스트리아인 친구가 내 목에 걸린 진주가 진짜 진주냐고 물어봤다. 나는 진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정확히 알고 있기도 하고, 남들에게 가르치는 주얼리 공방 선생님인 만큼, 나 자신이 동물을 착취하는 것에 일조하고 있다고 미처 생각해보지 못 했다. 진주 주얼리 제품을 광고할 때마다 조개가 직접 만든 ‘천연’이라는 점을 강조했으면서도, 진주 양식업의 이면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 했다. 조개가 죽을 때까지 스트레스를 받으며 진주를 만들다가 생을 마치거나 고기로 팔리는 것임에도 이러한 진주 양식업의 어두운 면에 대해선 왜 알지 못 했을까?

 

 

7년 전 영화 <옥자>를 보고 충격에 빠져 한 동안 고기를 먹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내가 즐겁게 소비한 고기가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돼지들의 교배로, 즉 강간으로 만들어졌던 것들이라니. 그때부터 어디에나 가득 쌓인 저렴한 고기들이 조금 불편해졌다. 그 고기들은 인간이 기계로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다.

 

고기를 먹지 말자고 말하는 게 아니다. 한국에서 비건으로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 만약 직장인이 점심 시간에 “저는 비건이라서 따로 도시락을 챙겨 왔어요. 저는 비건이라 혹시 비건 레스토랑이나 비건 음식이 있는 레스토랑에 갈 수 있을까요?”라고 채식주의 커밍아웃을 한다면 까다롭게 군다고 눈총을 받을 것이다. 심하면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 한다는 이유로 인사고과에 영향을 받아 밥벌이가 위협받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힙한 동네에 있을 법한 비건 전문 레스토랑에 찾아 가지 않는 한, 비건이 남과 어울리며 먹을 수 있는 바깥 음식은 거의 없다. 엄청난 결심과 용기 없이는 한국에서 비건으로 사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여기 비엔나도 역시 주류는 육식을 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어느 식료품점이든, 레스토랑이든, 카페든 베지테리언 혹은 비건 제품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리고 채식 하면 ‘풀떼기’ 가득한 샐러드로만 알고 있었는데 튀긴 두부, 대체육, 버섯들을 사용하여 다양하고 깊은 맛을 지닌 비건 음식들이 이렇게나 다양할 수 있단 사실을 알게 됐다. 게다가 고기가 들어간 음식보다 가격도 저렴하니, 비엔나에선 정말 고기를 반드시 먹어야 하는 이유를 찾기 힘들다.

 

그러니까 비엔나의 비건 문화를 소개하며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다름’에 대한 태도다. 어떤 이유든 주류에서 벗어나 육류 소비를 멀리하는 사람들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줄 사람들이 한국엔 별로 없는 것 같다. 주류적 통념과 다르게 대학을 가지 않거나, 결혼하지 않거나, 결혼하더라도 애를 낳지 않고 살면 안 될 것만 같다. 진심으로 이해할 생각이 눈꼽 만큼도 없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사냐며 걱정하는 척하고,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오지랖과 충고를 쏟아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엔나 마트의 한 공간을 가득 채운 비건 제품들을 볼 때마다 나는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그리 많지 않은 사람들과도 같이 어울려 살기 위해 이렇게나 다양한 시도를 하는 비엔나가 참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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