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연화의 뼈때리는 고민상담소⑱] ‘외제차 긁은 사연’에 SNS 태그 거는 여친이 불만이라고?

  • 등록 2023.03.01 22:51:15
크게보기

[평범한미디어 한연화] 상담에 앞서, 재밌는 이야기를 하나 들려줄게. 상담을 한다더니 진지하게 물어보는 거 없이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다고 하는지 싶겠지만 일단 한 번 들어봐. 매우 재미있을 테니까 말이야. 당신 말야, 혹시 가방이나 액세서리로 사람을 죽여본 적 있어? 물론, 없을 거야. 그게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을 거고. 하지만 정답은 ‘가능하다’야. 이론적으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가능하고 말이지. 아, 여기서 말하는 액세서리는 비녀나 뒤꽂이 같이 일정 길이 이상의, 끝이 뾰족한, 목에 꽂을 수 있는 것만 말하는 게 아냐. 자그마한 귀걸이나 목걸이, 심지어 구슬팔찌 같이 그냥 보기에 예쁘기만 한 것 같은 액세서리로도 충분히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걸 말하는 거야.

 

여성분들 인터넷 메스컴 기사에 '남친 차로 람보르기니 박은 아내' ,'주차하다가 벤틀리 긁은 여자친구' 등. 이런 기사 뜨면 댓글로 본인 남친&남편 태그하거나 게시물 보여주며 내가 만약 이러면 어떡할거야? 여보 내가 저 차 운전했으면 어떡할거야? 이런 걸 왜 묻는 거예요? 무슨 답을 받길 원하는 거예요? 님들은 님들이 영끌해서 모은 샤넬백이나 에르메스 팔찌 남친이 들어주다 모르고 넘어져서 떨어뜨려서 기스 나고 끊어지고 해지면 남친한테 괜찮아~ 너만 안 다치면 그걸로 됐어라고 다정하게 말하고 쿨하게 웃어 넘길 자신이 있어서 그런 거예요? 뭐 화장품이나 가방이나 하고 각종 장신구는 끽 해야 몇 백만원대인데 슈퍼카는 몇 억짜리고 그 문짝이든 본넷이든 갈려면 님들 장기라도 팔아야 겨우 갚을 수(값을 수) 있는 건 아시고 말씀하시는 거세요? 진심으로 궁금해서요. <고민글 출처 : 전국대학생대나무숲 / 2022년 11월>

 

 

아, 물론 전제조건은 있어. 그건 바로 ‘고도의 훈련을 받고 실전 경험이 있는 전현직 암살자나 군인일 것’ 그러니 기초 군사 훈련조차 받은 적이 없는 대부분의 여성은 물론이고, 3년 이하의 군사훈련만 받은 많은 성인 남성들은 절대 가방이나 액세서리로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소리지. 아, 재미없다고? 재미없어도 끝까지 들어. 이제부터가 진짜니까.

 

나는 지금 당신이 포인트를 잘못 짚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이 이야기를 시작한 거야. 그래, 운전도 잘 못 하는 주제에 굳이 자동차를 몰고 나가서 사고를 낸 여자의 영상에 남친이나 남편을 태그해서 “내가 이러면 우리 자기는 어떻게 할 거야?”라고 물어봄으로써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하는 걸 꼴불견이라고 여기는 거, 충분히 그럴 수 있어. 사랑한다면서 굳이 그렇게 상대를 테스트하는 걸 이해 못 할 수도 있고.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차는 흉기야. 어느정도 훈련을 받고 실전 경험이 있는 전문가가 아니면 사람을 죽일 수 없는 가방이나 액세서리와는 달리, 차는 훈련 한 번 안 받은 사람도 몰고 나가서 들이받기만 하면 그게 자기 자신이든 타인이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흉기라는 거지. 

 

내 말이 언뜻 이해되지 않을 거야. 그럼 쉽게 예를 들어줄게. 부모들은 미성년자 자식이 면허도 없이 차를 몰고 나갔을 때 어떻게 하지? 정상적인 부모라면 우선 자식이 다친 곳은 없는지, 사고를 낸 것은 없는지 확인한 다음에 내 자식도, 다른 사람도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면 최선을 다해서 등짝이며 볼기짝이며 종아리를 두들길 거야. 회초리든 몽둥이든 집어들고 “으이그, 이놈아! 부모 속 좀 그만 썩여라! 너 다쳤으면 어쩔 뻔했어! 잘못됐으면 어쩔 뻔했냐고! 너 잘못되면 엄마 아빠는 어떻게 살아!”라고 최선을 다해 두들겨패겠지. 다시는 그런 짓 못 할 때까지 맞을줄 알라고 말이야. 왜 그럴까? 그건 바로 차가 그만큼 위험하기 때문이야. 몰고 나가서 뭐 잘못 밟기라도 하면 그대로 뭐든 들이받아 자기 자신이든 타인이든 죽일 수 있는 손쉬운 흉기라는 것을, 차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평소에 의식을 하든 못 하든 상관없이 은연중에 알고 있기 때문이지.

 

그러니까 가방이나 액세서리를 떨어뜨려 망가지거나 흠집이 생긴 것과 차를 몰고 나가서 망가뜨린 건 서로 비교할 수가 없는 문제야. 가방이나 액세서리가 망가졌다고 사람이 죽고 다치지는 않지만 차가 망가졌다는 건 그 안에 탄 사람이나 다른 사람이 죽고 다칠 수 있는 문제거든. 그러니 누군가가 가방이나 액세서리를 망가뜨린 일에 여친이나 아내를 태그하는 남자는 없어도 누군가가 차를 망가뜨린 일에 남친이나 남편을 태그하는 여자들이 있는 건데 그걸 서로 비교한 것부터가 포인트를 잘못 짚은 거지. 포인트는 ‘사람이 죽고 사는 일에서 차를 먼저 챙긴다면 너는 나보다 차가 더 중요한 거고, 그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거야’라는 것이었는데 말이야.

 

이쯤 했으면 당신이 도대체 무슨 포인트를 잘못 짚었는지 알아들었으려나? 당신이 사람이 죽고 사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비교하는 우를 범했고, 만약에 사고가 났다면 비싼 차 수리비를 갚을 수 있을까 없을까보다 사람이 죽고 사는 일을 먼저 챙기는 게 당연하니까 만약에 저런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나를 먼저 챙겼으면 하는 다른 이들의 마음을 두고 “여자들은 왜 저래” 하는 식으로만 치부했다는 걸 이제 좀 알려나 모르겠어. 그걸 굳이 남친이나 남편을 태그해서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걸 꼴불견이라고 생각하고 이해 못 하는 건 개인의 자유니까 그럴 수 있는데 당신이야말로 그걸 굳이 티를 내야 하나 싶기도 하네. 

 

그러니까 이제 그만 컴퓨터 모니터나 폰 화면에서 눈 좀 떼고 현생을 살아. 내가 보기에는 어떤 사안의 포인트도 잘 짚지 못 하는 사람이 커뮤니티에서만 오래 살다보니 과몰입이 너무 심해져서 “내가 이렇게 포인트도 잘 짚을 줄 모르는 사람이요. 이 사안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 사안에 대한 내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례를 들고 와야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요”라고 광고하는 글까지 올리게 된 것 같아서, 그게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니까. 너무 고깝게 듣지 말고 이제 그만 현생을 살아.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는 거 알려져서 좋을 거 하나 없으니 말이야. 

 

아, 끝으로 하나만 더 알려줄게. 이왕 친절하게 굴기 시작한 거, 끝까지 친절하게 굴자고 하고 한 번만 알려주는 거니 잘 들어. ‘값을 수’가 아니라 ‘갚을 수’야. 애초에 ‘값다’라는 단어는 없거든. 거봐. 이렇게 커뮤니티에만 빠져 살면 스스로의 밑바닥을 드러내게 된다니까.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답 나왔지? 내가 이야기한대로 커뮤니티 좀 그만 뛰고 현생을 살아. 당신 덕에 내가 오랜만에 친절해졌으니 이것 고맙다고 해야 하려나. 어쨌든 나는 나의 또 다른 현생을 살러 이만 총총. 

한연화 pyeongbummedia@gmail.com
Copyright @평범한미디어 Corp. All rights reserved.



55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반룡로 5번길 59 로얄오피스텔 205호 | 등록번호: 광주 아00365 | 등록연월일: 2021년 3월24일 | 사업자 등록번호: 704-06-02077 | 발행인: 박효영 | 편집인&총무국장: 윤동욱 | 대표 번호: 070-8098-9673 | 대표 메일: pyeongbummedia@gmail.com | 공식 계좌: IBK 기업은행 189 139 353 01015(평범한미디어 박효영) Copyright @평범한미디어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