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한연화] 우리 할머니가 생전에 자주 쓰던 표현이 하나 있어. 우리 할머니는 자기 남편이나 자기 부인 욕하는 사람들을 두고 항상 그러셨거든. “결국은 다 지 얼굴에 침 뱉는 거여.” 당장은 다른 사람들이 맞장구를 쳐주고, 같이 욕해줄지 모르지만 그 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지면 저 사람은 왜 고작 그런 걸로 남편을 욕하냐, 부인을 욕하냐, 그렇게 같이 살기 싫으면 갈라서면 되지. 왜 굳이 같이 살면서 항상 욕하느라 바쁘냐. 이렇게 그 사람에 대한 입방아를 찧어대기 마련이라고 말이야. 솔직히 말해서 지금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 고민 상담을 해준다더니 왜 자기 할머니 얘기나 하나 싶고 말이야. 그런데 우리 할머니의 그 말에 이번 상담에 대한 내용이 다 들어있어서 말야. 당신 지금 당신 얼굴에 침 뱉고 있다고. 알아?
며칠 전 남친 부모님 안 계신 틈에 남친 집에 놀러갔다. 남친이 가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싶었는지는 몰라도 빨래를 돌려놨더라. 빨래 꺼내는데 여동생, 엄마 속옷도 있는데 그걸 아무렇지 않게 손으로 집는 모습을 보고 좀 충격이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당연하게 오빠나 아빠가 언니, 엄마, 내 속옷 못 만지게 하는 게 당연하다고 배워왔고 보통 집들도 다 그러는줄 알았는데 다른 분들은 어떤지 궁금하다. <고민글 출처 : 전국대학생대나무숲 / 2021년 3월20일>
뭐, 굳이 당신이 문제라고 하고 싶지는 않아. 나도 오은영쌤 흉내를 하나 내보자면 아무리 가족이라 해도 여자가 남자 속옷을 만지거나, 남자가 여자 속옷을 만지는 건 이상한 거라고 가르친 당신 부모가 문제겠지. 원래 자식의 문제는 결국 그 자식을 키운 부모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니까. 하지만 성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부모에게 어떻게 배웠든, 부모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았든 성인인 이상 당신은 당신이고, 그 말은 당신은 이제 부모에게서 배운 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신만의 관점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줄 알아야 한다는 거니까. 그럼에도 당신은 여전히 부모에게서 이성의 속옷을 만지는 것은 이상한 것이라고 배우던 어린이 그 자체야. 그러니까 집안마다 그리고 사람마다 속옷에 대한 관점이 다르다는 걸 이해하지 못 하고 무조건 남자친구만 이상하다고 몰아가면서 굳이 남자친구를 욕먹게 만들려고 하지. 아무리 가족의 속옷이라 해도 남자친구를 여자 속옷이나 만지는 이상한 새끼로 만들어서 욕먹게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고 애써 변명하지마. 그게 아니면 굳이 이런 걸 고민이라고 올려서 남자친구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 사람 입에 오르내리게 할 리가 없으니까.
나도 본가에 가면 빨래 널 때나 걷을 때, 세탁기에서 옷 꺼낼 때, 세탁기에 빨래 넣을 때 큰아버지 속옷, 아버지 속옷, 삼촌 속옷 만져. 반대로 우리 큰아버지나 아버지, 삼촌도 내 속옷 만지고. 우리 본가는 여자가 할머니랑 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거의 다 남자 속옷이었고, 빨래를 걷든지 개든지 하려면 항상 남자 속옷을 만져야 했어. 뭐, 우리 큰아버지나 아버지나 삼촌이 빨래를 걷거나 갤 때도 할머니 속옷이랑 내 속옷을 만져야 했고 말야. 그런데 딱히 아무 느낌은 없어. 아니, 있는 게 이상하지. 속옷도 그냥 옷인데 어떤 느낌이 들 리가 없잖아. 속옷을 만진다고 해서 성적으로 흥분하거나 하면 그게 미친놈이고, 변태새끼인 거지. 어느 정도로 느낌이 없냐면 내가 지금도 브래지어를 널 때면 마치 올무를 설치하듯이 매듭을 지어서 널어놓는데 그 방법을 처음 가르쳐준 사람이 우리 큰아빠야. 가족이 여섯 명이나 되다 보니 최대한 공간을 활용해서 빨래를 널어야 했고 브래지어를 널 때는 올무처럼 매듭을 만들어 너는 것이 공간도 적게 차지하고 또 바람에 날아갈 걱정 없이 고정이 잘 된다는 걸 나도 그렇게 해보니까 알게 돼서 지금도 그렇게 널고 있는 거지.
이런 거야. 진짜 성인이 된다는 건. 어렸을 때 배워왔던 것들을 무작정 그대로 다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해보니까 괜찮은 건 그대로 하고, 내가 해보니까 그렇게 안 해도 되는 거, 그게 아닌 게 있으면 과감히 그걸 버리고 나만의 관점으로 또 다른 방법이나 사고방식을 찾아보는 거. 그리고 다른 사람의 관점이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무조건 그 사람을 같이 욕해달라고 고민 같지 않은 고민을 가지고 글을 올려서 그 사람이 남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는 경솔한 짓을 하지 않는 거.
생각해봐. 이런 걸로 남자친구 욕먹게 하면 결국 그 욕이 누구한테 돌아올 거 같아? 다 당신 자신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어. 결국 자기 얼굴에 자기가 침 뱉는 것밖에 안 되는 거지. 그러니까 어린애처럼 고민 같지 않은 것도 고민이라고 가져와서 남들 앞에서 징징거리는 건 이제 그만둬. 그리고 집에 가서 빨래 널거나 개면서 아빠나 남자 형제 속옷도 만져봐. 정말 그게 이상한지, 이상한 느낌이 드는지, 성적으로 흥분이 되는지 안 되는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백 번 말로 가타부타 하는 것보다 직접 한 번 보고 체험을 하는 게 나으니까 한 번 체험해보고 정말 가족이라 해도 이성의 속옷을 만지면 안 되는 건지, 단순히 빨래 때문에 만지는 건데도 안 되는 건지, 빨래 때문에 만져도 성적 흥분이 드는지, 이상한 생각이 드는지 스스로 고민하고 판단해보도록 해.
자, 내가 할 말은 여기까지. 나 역시 진짜 어른이 되려면 아직 먼 것 같지만 그래도 조금씩 힘내보려 하니 당신도 한 걸음이라도 디뎌볼 수 있기를. 그럼 이만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