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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 야구장이 ‘타이거즈 팬’으로 가득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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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극장가는 사람의 발길이 끊겨 울상이지만 야구장은 웃음꽃이 피었다. 티빙이 2024년 시즌 프로야구 미디어 중계권을 가져간 뒤로 1000만 관중의 시대가 열렸다. 네이버와 달리 티빙은 네티즌들의 야구 영상 활용권을 40초까지 인정해줬고 저작권 문제를 어느정도 풀어줬는데 이것이 결정적이었다. 원래부터 그랬지만 야구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프로 스포츠 지위를 더욱더 견고히 했다. 사실 프로 야구는 수도권으로 이주해온 지방 출신 시민들의 ‘도시 문화’와 직결돼 있다.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일종의 문화적 귀속감을 안겨다줬다. 정윤수 교수(성공회대 문화대학원)는 “야구와 축구처럼 아주 많은 대중들이 집합적으로 참여하는 프로 스포츠는 항상 도시의 발달과 연관되어 있다”며 “농촌은 인구가 단지 적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를테면 현대적인 삶 즉 5~6일 일하고 일요일에 쉰다. 쉴 때 뭐할까? 야구 보러 가자. 이런 게 농촌에는 매우 드물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모든 스포츠는 다 도시화와 산업화가 전개되면서 함께 동반 발달하게 되는데 우리 사회의 특성상 서울로 또 구로동으로 인천으로 부평, 부천, 안산 이런 데로 호남시민들이 많이 올라왔다. 사람들이 서울 수도권으로 이주를 하게 되고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이중 감정을 가지게 된다.

 

 

정 교수는 지난 2일 15시 광주 남구 빛고을아트스페이스 소공연장에서 강연을 했다. 주제는 <광주와 타이거즈>였다. 정 교수는 서울에 살고 있는 지방 사람들이 “자기의 뿌리”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정서가 열광적인 야구 사랑으로 발현됐다고 설명했다.

 

내가 이 험한 곳에 와서 그래도 먹고 산다. 자동차 공장 다니고 또 봉제 공장 다니고 이렇게 공장 다니면서 애 낳고 작은 아파트라도 장만해서 내가 그런 대로 이 거친 대도시에 와서 아직 어엿한 중산층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잘 산다. 내가 애들 건사하고 학교 보내면서 나는 비록 덜 배웠지만 우리 애들은 고등학교도 가고 대학교도 가고 앞으로도 더욱더 애들이 사는 세상은 다를 것이라는 그런 도시인이 되었다라는 만족감을 어디서 느끼고 싶냐 하면 애들 데리고 야구장 가는 것이었다.

 

도시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중산층 귀속감” 같은 게 있다. 중산층 귀속감과 함께 고향에 대한 향수도 작용했다.

 

고향에 부모님 두고 서울에 와서 경기도에 와서 막 사는데 자기의 뿌리를 이제 확인하고 싶은 게 있다. 추석에 정읍에도 가고 목포에도 가고 이런 귀성 행렬에 거기에 자기 뿌리가 있고 이렇게 내려오다 보면 벌써 기차가 소백산을 넘어가거나 지리산 가까이로 가면 눈물부터 난다. 이 도시에 대한 감각과 고향에 대한 감각이 동시에 만나가지고 이걸 일상적으로 느끼고 싶어 내가 도시에서 어느 정도 어엿하게 살고 있다. 근데 명절이 아니라 평소에도 내가 광주 사람이다. 내가 부산 사람이다. 내가 군산 사람이다. 그걸 어디서 느끼겠는가?

 

그래서 잠실 구장이 제2의 타이거즈 홈구장으로 불릴 만큼 타이거즈 팬으로 가득하다. 롯데 자이언츠와 한화 이글스도 마찬가지다. 어쩌다보니 해당 지역과 별 관련이 없는 대기업 상호를 계속 연호하게 됐는데 정 교수는 “시작할 때 팀 이름을 광주 타이거즈나 부산 자이언츠로 했었어야 되는데 시작할 때 기업 이름이 있어야만 됐던 조건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며 “우리는 응원할 때 엄청난 대기업 이름을 계속 부르는 셈이 됐지만 사실 그 대기업이 진짜 좋아서가 아니라 롯데가 부산이고 해태가 광주전남이고 하니까 그걸 부르는 속에서 자기 고향을 외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90년대 초반까지 고속도로 많이 없을 때는 톨게이트 2km 전부터 너무 막혀가지고 차에서 내려서 밥솥에 불판에다가 일단 애들 먹이면서 좀 풀리고 그렇게 톨게이트 지나가고 진짜 그런 적도 있었다. 열망들이 있었다. 이렇게 고향 가고 싶은 마음들, 기차표 사려는 이런 마음들이 1년에 서너번씩 부모님 생일, 제사, 명절 등 고향 갈 때마다 내가 어떤 뿌리를 가지고 있다고 되새기곤 하는데 그것이 해태 타이거즈를 응원하면서 고향 친구들 만나고 광주 얘기하고 소식도 서로 주고받는 그런 식으로 발전해왔다.

 

 

실제 사례 연구가 진행되기도 했는데 정 교수는 “해태 타이거즈와 기아 타이거즈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장소 인식에 대한 연구를 보면 정말 그 어떤 팬들보다 서울에서 태어나서 서울팀을 응원하는 사람들보다 광주에서 태어났지만 서울에서 직장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기아 타이거즈를 응원하는 그 밀도가 훨씬 더 높다”고 환기했다.

 

프로 야구 원정팬들의 직관은 어떤 의미냐 하면 가령 광주 출신인데 인천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SSG 랜더스가 자기 동네 지역의 팀이지만 자기는 광주 출신이다. 그러면 SSG 응원 못 하겠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프로 스포츠의 창설은 군사정부에 의해 이뤄졌다. 시작만 그랬을 뿐 프로 스포츠의 가치를 군사정부의 어두운 그림자와 연관지어 사고할 필요는 없다. 정 교수는 “우리가 프로야구라는 이 아름다운 의미를 전두환이 선물한 것처럼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다”며 “전두환이 그 시점에 우리한테 던져준 건 있지만 이미 야구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은 여러 가지 감정을 투영한지 오래”라고 말했다. 프로 야구 출범 이전에는 고교 야구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사람들이 고교 야구를 보기 위해 줄을 선 화면을 가리키며) 고교 야구 대회인데 고등학생 하나도 없다. 고교 야구대회 보러 가려고 뭐 어른들이 이렇게 밀고 들어가나? 야구 그 자체의 재미를 통해서 도시의 감각을 발현하는 것도 있고 내 고향 팀들이란 의식도 있었다. 경북고와 광주 제일고가 붙으면 영호남의 대결이니까 이게 오늘날의 프로야구 전신이라고 할 수가 있다. 부산상고 천안 북일고, 인천 동산고, 무엇보다도 광주 일고와 군산상고 등 우리는 이런 역사를 다 기억하고 있다. 그때 일상적으로는 자기 지역의 고등학교 팀이 우승하는 게 그 지역의 큰 행사였기 때문에 카퍼레이드도 했다. 그랬었는데 지역의 이런 즐거움들이 있었다.

 

그래서 호남인들에게 타이거즈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 다른 지역 연고 야구팬들보다 각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정 교수는 “응원가들이 역사적으로 봐도 계속 바뀌고 있는데 지금 유튜브에서 기아 타이거즈 떼창을 보면 나는 남행열차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목포의 눈물은 슬프다”면서 “이겼는데 왜 노래는 이렇게 슬플까. 그게 바로 노래의 아름다움, 노래의 역사성 그리고 80년대 광주 등등과 연관되어서 참 역사적 의미가 깊다”고 설명했다.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응원가에 슬픔이 깊게 배어 있는 광주전남 사람들의 집단적인 기억이 무엇인가? 여러분들 알고 있는 대로 바로 광주의 80년과 연결이 된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가 힘겹게 건너온 한 시대의 자화상이고 어둡고 고단한 세월을 견딘 역사의 질곡이었다. 특히 우리 모두가 전쟁과 가난을 힘겹게 이겨냈지만 특히 1980년대 호남인들의 기억과 야구 그리고 응원가 목포의 눈물은 다 연관된 의미와 가치가 있다. 야구 이겼다고 모든 현대사의 아픔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그런 것이 80~90년대 정치적 좌절감 또 지역의 패배감들이 야구와 타이거즈에 대한 열망으로 분출됐다.

 

 

한편, 정 교수는 야구라는 스포츠 자체의 가치에 주목했다. 야구에는 ‘홈(Home)’이 들어가는 용어가 많다. 홈런, 홈인, 홈 베이스 등등.

 

야구라는 스포츠의 굉장한 가치는 Home. 이 단어에 있다. 야구는 19세기 중엽 미국에서 시작돼서 규칙이 만들어졌는데 왜 야구가 미국에서 처음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용어로 홈이라는 단어를 썼을까? 우리 모두는 집에 산다. 물리적인 공간 구조의 집은 하우스라고 한다. 홈은 가족이라든가 가정을 뜻한다. 그냥 태어나서 인연이 돼서 함께 사는 가족과 가정을 얘기할 때는 홈이라고 하는데 집을 나가 고생해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바로 홈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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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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