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일본 제국주의 정부는 독일 나치 정부 못지 않게 잔인했고 무도했다. 일제는 1948년 우생보호법을 만들어서 ‘불량한 자손의 출생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유전성 질환자와 지적 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강제 불임을 시행했다. 무려 2만5000여명의 여성들이 불임 수술을 받았으며 9세 여자 아이에게도 칼을 들이댔다. 2024년 7월 일본 최고재판소는 이러한 야만 행위에 대해 뒤늦게 위헌 판결을 내렸다. 재판소는 일본 정부의 손해배상도 인정했으며, 일본 국회는 작년 10월 피해자 보상법을 통과시켰다. 광주장애인인권센터 김영일 이사장은 일본 정부의 만행에 대해 “인간의 존엄을 무시한 국가 폭력이며 장애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는 사회의 잔혹한 의지가 반영된 역사”라고 규정했다.

지난 5월16일 13시 광주 서구에 위치한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2025 세계인권도시포럼>이 개최됐다. 김 이사장은 ‘우생학과 강제 불임: 장애인의 존재를 부정하는 국가폭력’ 토론회에 참석해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수술과 조치를 강요받았고 삶의 통제권을 박탈당했다. 이제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침묵 속에 감춰졌던 국가의 장애인 강제 불임, 수술 피해 사례를 조명해야 한다. 우리는 물어야 한다. 누구의 목소리를 놓치고 있는지, 누구의 삶을 가리고 있는지. 우리는 응답해야 한다. 광주는 5.18을 통해 인권 도시를 표방해왔다. 장애인과 강제 불임은 광주가 여전히 어떤 존재들을 놓치고 있는지를 되묻는 성찰의 계기가 될 것이다. 국가 권력이 어떤 기준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고 그 경계 밖에 있는 이들을 말살하려 했던 12.3 계엄령을 막아낸 힘이 우리에겐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는 그 흔적과 편견에도 귀를 기울이고 더는 누구도 자기 몸의 결정권을 빼앗기지 않도록 모든 존재가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고 서로 힘이 되길 바란다.
소현숙 팀장(한국여성인권진흥원 학술연구팀장)도 “일본에서 우생보호법에 따른 강제 불임 수술이 있었던 그런 아픈 역사가 있었고 이것을 해결하는 여러 가지 노력 속에서 결국에는 위헌 판결을 받고 국가 배상까지 진행하는 그런 소식들이 전해졌다”며 “그것을 들으면서 우리가 이 잊혀져 있는 역사를 그대로 두면 안 되겠다. 그런 생각을 좀 하게 돼서 최근에 이 문제와 관련해 가지고 한국에서 있었던 장애인 강제 불임 수술의 역사를 좀 알리고 그것의 진상규명을 요청하는 그런 준비 모임을 만들었다”고 알렸다.
80년 전 일본에서만 있었던 일이 아니다. 소 팀장이 거론했듯이 한국에서도 장애인 강제 불임 조치가 있었다. 한국 정부는 모자보건법을 통해 장애인 강제 불임 수술의 근거를 뒀다. 이를테면 1999년까지만 하더라도 모자보건법에는 “의사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질환의 유전 또는 전염을 방지하기 위하여 불임수술을 행하는 것이 공익상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는 불임수술을 받도록 명령할 수 있다”는 전근대적인 조항이 있었다. 소 팀장은 “국가가 법령을 통해 장애인 불임시술을 강제해왔고 이에 따라 장애인에 대한 불임시술이 사회적 관행으로 자리잡았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인식의 이면엔 열등한 사람의 출산을 억제해야한다는 논리가 있다. 20세기 전반에 걸쳐 인류의 질 향상을 위해 열등한 사람으로 간주된 이들의 출산은 억제돼야 한다는 논리가 만들어졌고, 장애인 역시 열등한 자로 여겨졌다.
유전병이 아님에도 잘못 알려졌던 한센병의 경우에도 환자를 소록도에 가두고 생식 능력을 없애버렸던 사례도 있다. 1949년 한국 정부는 정관절제수술을 받는다는 조건 하에 한센인 부부의 동거를 허용했다. 이러한 국가 폭력은 1990년까지 지속됐으며 이런 야만 정책의 피해자들은 대법원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내서 승소했다. 대법원은 2017년 2월 이들의 손을 들어주며 아래와 같이 판시했다.
정부 소속 의사 등이 한센인들에게 시행한 정관절제수술과 임신중절수술은 신체에 대한 직접적인 침해행위로 그에 관한 동의 내지 승낙을 받지 않았다면 헌법상 신체를 훼손당하지 아니할 권리와 태아의 생명권 등을 침해하는 행위다. 한센인들의 임신과 출산을 사실상 금지함으로써 자손을 낳고 단란한 가정을 이뤄 행복을 추구할 권리 및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인격권 및 자기결정권, 내밀한 사생활의 비밀 등을 침해하거나 제한하는 행위다. 위와 같은 침해행위가 정부의 정책에 따른 정당한 공권력의 행사라고 인정받으려면 법률에 그에 관한 명시적인 근거가 있어야 하고,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아야 하며 침해행위의 상대방인 한센인들로부터 사전에 이루어진 설명에 기한 동의가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요건을 갖추지 아니한 채 한센인들을 상대로 정관절제수술이나 임신중절수술을 시행했다면 설령 이러한 조치가 정부의 보건정책이나 산아제한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서 민사상 불법행위가 성립한다.

소 팀장은 일본 우생호보법 사례를 토대로 한국의 강제 불임 역사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게 될 준비 모임과, 그 마중물 역할이 되어줄 이번 토론회 자리의 소중함을 피력했다.
한센인 뿐만 아니라 장애인 역시 같은 일을 겪어야 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까지 장애인 시설에서의 낙태나 불임시술은 공공연히 이뤄졌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준비 모임을 꾸리게 되었는데 그 준비 모임의 대표를 내가 지금 맡고 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가 정말 나한테도 그렇고 여기 있는 다른 선생님들한테도 마찬가지일텐데 굉장히 벅찬 감정으로 참석을 하게 됐다. 광주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줘서 정말 감사한 마음을 말씀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