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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요태 빽가 ‘포토그래퍼’로서 자기 자신을 칭찬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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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요태 멤버 빽가의 인생을 다루는 토크콘서트에 다녀왔습니다. 4개의 시리즈 기사로 전달해드리겠습니다.

 

①사진작가로 인정받다

②뇌종양에 걸리고 캠핑을 만나다

③캠핑 고깃집 창업과 동업자에게 당한 사기

④질의응답

 

[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코요태 빽가(백성현)는 가수, 사진가, 캠핑, 창업 모두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걸 그냥 지나치지 않고 실행에 옮겼을 뿐이라고 말했다. 실패와 고난이 없는 게 아니다. 하지만 해보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단 100배 낫다.

 

부모님 드리고 남는 돈이 좀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카메라 가게 앞에 와있더라. 이미 2006년에 디지털 카메라가 상용화되던 때였는데 내가 고등학교 때 쓰던 그 필름 카메라를 사러 고등학교 때 거래하던 남대문 사장님을 찾아갔다. 사장님께서 날 기억하고 있었다. 너 그때 카메라 팔러 와서 내 앞에서 엉엉 울던 그 친구 아니냐?

 

 

빽가는 지난 8월29일 광주 서구에 위치한 KBC 광주방송 스튜디오에서 토크콘서트를 진행했다. 빽가를 기억하는 사장님의 사연이 궁금한데 이런 거였다.

 

몰랐는데 내가 그때 사진을 아예 포기하게 되면서 사진 안 한다고 그 카메라들이나 그런 것들을 팔러 거래하던 곳에 가서 팔았는데 사실 사장님도 그 모습을 보고 막 울었다고 했다.그때 가슴이 아팠고 기억이 났는데 네가 이렇게 성공을 해서 카메라를 사러 온다는 게 되게 좋다고 말씀해주셨다. 나도 이야기를 듣고 뭉클해서 그래 다시 한 번 사진이라는 걸 해보자! 그렇게 필름 카메라 쓰던 걸 다시 사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빽가는 또 다른 코요태 멤버 김종민씨와 PC방에 갔다가 우연히 싸이월드에 사진을 올리고 글로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날부터 수백장을 찍어 올렸다.

 

포토 by 빽가라고 하면 사람들이 색안경을 끼고 볼까봐. 내가 백씨여서 백가. 그렇게 빽가가 됐는데 ‘포토 바이백’으로 써서 올렸다. 사진만 주구장창 올렸는데 좋아요랑 퍼가요 숫자가 많아지고 쪽지도 많이 왔다. 미니홈피 방문자도 하루 7~8천명에서 거의 1만명 정도까지 오고 댓글도 엄청 달리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 뒤에서 찍어주고 흐뭇했던 그때처럼 너무 흐뭇하고 좋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메시지 하나가 왔다.

 

싸이월드 쪽지를 보낸 사름은 미국의 패션 매거진 ‘보그’ 에디터였다.

 

일반인들 중에 사진을 잘 찍는 분들을 싣는 특집이 있는데 그 바이백의 사진을 저희가 싣고 싶어서 미팅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와! 사진가가 꿈이었던 사람한테 보그에서 연락이 왔는데 너무 설레었다. 코요태 할 때보다 더 좋았다. 그렇게 만났는데 에디터가 빽가인줄 모르고 놀라워했다. 그래서 부탁을 했는데 나의 존재를 알리지 말아달라고 했다.

 

빽가는 4장이 실린 해당 잡지 실물을 보고 또 봤다. 집안의 가보처럼 여겼다고 한다. 끝이 아니다. 이번엔 프랑스의 여성 라이프스타일 잡지 ‘엘르’에서 연락이 왔다.

 

저희 편집장께서 이번에 사진이 너무 느낌이 좋으니 정식으로 포토그래퍼로 화보 작업을 하면 어떨까라는 제안이었다. 드디어 올게 왔다! 내가? 화보 촬영하러 갔는데 나와 첫 작업을 하게 된 모델이 바로 에픽하이의 타블로였다. 하루 종일 이동을 하면서 촬영을 했는데 타블로와 친해졌다. 화보 결과물이 나왔는데 타블로가 에픽하이 앨범 자켓을 찍어줄 수 있냐고 제안을 했다.

 

에픽하이 앨범 자켓 작업을 진행한 뒤로는 입소문을 타고 연예인들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코스모폴리탄, 에스콰이어, 더블유 등 패션잡지들과의 협업도 계속됐다. 빽가는 가로수길에 본인 스튜디오를 오픈하기도 했다. 그 당시 빽가는 “진짜 포토그래퍼가 됐다”고 회고했다. 스튜디오를 차리고 함께 일할 사람들을 모은 이후에 일이 더 많아졌다. 상업 광고 촬영 제안까지 받았다.

 

여러분들이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그 쫄깃쫄깃 오동통통 라면 앞에 표기 사진 있는데 그걸 내가 찍었다. 원래 모델이 라면을 먹고 있는 신을 촬영하는 것이었는데 맛깔나는 라면 실물 사진도 서비스로 찍어줄 수 있다는 부탁을 받았다. 사실 나도 너무 궁금했는데 아무리 맛있게 끓여도 사진처럼 안 나왔다. 알고 보니까 실제로 끓이는 건 아니고 푸드 스타일리스트가 형태를 만들고 국물도 물감을 잘 풀어가지고 세팅을 해서 그걸 찍는 것이었다.

 

아직 끝이 아니다. 빽가 스스로 “포토그래퍼로서 끝을 본” 중요한 이벤트가 하나 더 남았다. 사진 좀 안다는 사람들에게 꿈의 기업으로 불리는 독일 카메라 제조사 ‘라이카’로부터 연락을 받은 것이다.

 

2012년도인가 2013년도에 전화가 왔는데 라이카 코리아였다. 사진계에서는 거의 최상급에 있는 브랜드가 바로 라이카다. 원래 비 정치훈씨와 같이 니콘이라는 브랜드 광고 모델을 하고 있었는데 그 모델이 끝날 때쯤에 이제 라이카에서 연락이 왔다. 라이카에서 아시아인들한테 이번에 모델을 하라고 해서 나라별로 모델들을 뽑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리스트를 3명을 보냈는데 내 이름이 들어갔다는 것이다. 최종 모델이 되면 독일로 가서 라이카 회장(안드레아스 카우프만)과 만찬을 하고 공장 견학을 가고 신상 카메라를 받아서 그걸 가지고 촬영을 해서 전시까지 해야 된다고 한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꿈 같은 상황이 펼쳐지는 건데 나한테 왜 허락을 받는가? 그냥 해달라고 했다.

 

그렇게 빽가는 라이카 아시아 모델이 돼서 독일에 다녀왔다.

 

정신 차려 보니까 내가 라이카 회장과 만찬을 하고 있더라. 마이카에서 그때 내가 처음으로 공장도 보고 거기서 카메라를 받았는데 그곳에 바이백이라고 각인을 해줬다. 그건 이제 나의 가보다. 그래서 그렇게 카메라를 받고 촬영을 해가지고 실제로 라이카에 전시까지 하게 됐다. 포토그래퍼를 꿈꾸던 이태원 살던 9살짜리 백성현이 지금 라이카 회장과 식사하면서 내가 여기서 카메라 받고 전시를 한다? 일단 여기까지만 와도 포트그래퍼로서 모든 걸 이뤘다고 생각했다.

 

라이카 엠버서더로 활동하면서 일은 더욱더 잘 풀렸다. 스튜디오 촬영 문의가 쇄도했고 스케줄이 너무 많아서 전부 소화하기 버거울 정도가 됐다.

 

당시엔 이제 코요테보다 사실 더 많은 수익을 냈다.

 

 

빽가는 다시금 되새겼다.

 

말씀드리고 싶은 게 뭐냐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걸 했다. 1989년에 처음 카메라를 잡고 정말 그걸 안 놨다. 중학교 때 사진과로 입학하려고 공부한 것도 말씀을 드렸고 그리고 싸이월드 시절부터 연예인 신분 숨기고 진정성을 가지고 작업을 했고 지금까지도 사진 작업을 하는 가수이자 사진가가 되었다.

 

사실 몇 년 전부터 연예인이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는 사례들이 종종 있었다.

 

한때는 연예계에서 사진이 유행했었는데 사진집도 내고 그런 분들이 꽤 많았다. 근데 그분들 지금 아무도 사진을 안 한다. 나는 그냥 계속 하고 있고 그런 부분에서 스스로한테 칭찬을 좀 해준다. 그래도 진심으로 하고 싶은 거를 진짜 계속 하고 있으니까 그것 자체에 칭찬을 해준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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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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