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간호대 정원'은 늘고 있지만 '간호사'는 맨날 부족하다?

배너
배너

간호사 한명이 환자 12명이 돌봐야…간호사 개인의 문제보단 과도한 업무 부담이 '태움' 문화 원인

[평범한미디어 김지영 기자] 우리의 삶에서 뗄래야 뗄 수 없는 병원. 그 안에서 누구보다 땀 흘리며 환자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간호사들 사이에서는 ‘악습’으로 불릴 정도의 태움 문화가 존재한다. 태움은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으로 선배 간호사가 후배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직장 내 괴롭힘이다. 꽤 많은 간호사들이 태움을 견디다 못 해 퇴사하기도 하고, 심지어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

 

얼마나 심각하면 영혼을 태운다고 표현할 만큼의 괴롭힘이 유독 특정 직종 안에서만 생기게 됐는지 의문이 든다. 위계서열 끝판왕 군대는 그나마 한시적이지만 간호사는 자기 직업이기 때문에 오랜 기간 고통을 감내해야만 한다. 

 

 

일종의 사이클을 짚어보자.

 

신입 간호사가 새로 들어오면 선배 간호사는 ‘프리셉터’라는 이름으로 신입을 교육하고 이미 자신에게 부여된 환자들의 간호를 담당한다. 프리셉터는 자신의 환자를 돌봐야 할 시간을 쪼개어 신입에게 교육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과정들 위주로 빠르게 압축적으로 교육을 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신입은 한 번에 알아먹지 못 하거나, 한 번 교육한 내용을 다시 물어보는 등 조금이라도 지체되면 프리셉터는 시간에 쫓겨 어쩔 수 없이 가시 돋힌 말이 나온다. 간호사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직군이므로 실수를 용납하기 어렵다. 늘 긴장해야 한다. 그래서 태움 문화가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것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

 

 

하지만 다음의 사례를 한 번 살펴보자.

 

A씨는 과거 자신을 태운 선배 간호사 B씨가 대학 교수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이 겪은 일들을 모두 온라인에 올렸다. A씨는 온라인을 통해 “(B씨가) 감염병 환자의 가래가 담긴 통을 자신의 머리에 뒤집어 씌웠다”며 “네가 만지면 환자가 죽는다”거나 만성 신부전증을 앓는 A씨 어머니에 대해 “네가 재수가 없어서 엄마가 아프다”는 등 폭언을 듣고 온갖 괴롭힘에 시달렸다고 고백했다.

 

또 “무릎 뒤를 팍 차서 넘어뜨리고 늘 그랬다. 지나가다가 겨드랑이에 손 넣어서 꼬집었다”고도 증언했다.

 

비단 A씨만의 사연은 아니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조금만 뒤져봐도 태움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신입 간호사에게 일을 가르치는 교육 및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인신공격성 폭언 및 괴롭힘은 철저히 구분돼야 한다.

 

닷페이스가 기획한 아래 영상은 태움 문화라는 것이 결코 간호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환기하고 있다. 병원 자체의 인력 부족 문제로 인해 업무 과중이 일상화되고 여기에서 태움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우리나라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환자는 12명이나 된다. 미국 5.3명, 영국 8.6명에 비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간호사 1명이 12명의 환자를 돌보게 되면 환자 개개인의 상황을 꼼꼼하게 들여다 보기 어렵다. 너무 많은 환자를 관리하고 약물이나 수술 등 모든 과정을 책임지다보니 환자 중심의 질 높은 간호 서비스를 제공하기가 어렵다. 결국 돈 문제다. 병원에서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간호사를 덜 채용하게 되고 항상 인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저출생 여파로 학령 인구 자체가 부족해서 많은 대학이 사라지고 있는 요즘에도 간호대 학생 수는 줄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왜? 큰 병원들은 맨날 간호사 수급 부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간호대와 간호학원에서는 매년 꾸준히 각각 간호사(국가고시 합격)와 간호조무사(간호학원 수료)를 배출하고 있음에도 왜 항상 간호 인력이 부족한 걸까? 그 이유는 퇴사가 너무 빈번하기 때문이다. 꽤 많은 간호사들이 강도 높은 노동환경을 견뎌내지 못 하고 퇴사를 결심하고 있다. 단순히 간호대 정원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더 많은 간호사를 양성한다고 해도 병원 자체의 구조적 환경이 개선되지 않으면 간호사의 퇴사율은 계속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노동환경이 열악해서 많이 퇴사하기 때문에 인력이 부족한 것인지, 인력이 부족해서 노동환경이 열악하게 되는 것인지 둘 다 옳은 진단이겠지만 선후관계와 관계없이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서울대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최원영 간호사는(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는 이렇게 설명했다.

 

“태움을 선배간호사가 후배간호사를 괴롭히는 것만 생각하는데, 사실 간호사들이 생각하는 태움의 범위는 좀 더 광범위하다. 간호사가 간호사를 닦달하기도 하고, 보호자들이 간호사를 위협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무도 피해갈 수 없는 게 환자에게 타는 것이다. 환자 생명이 달려있기 때문에 병원에서 간호사들이 바빠서 실수를 하더라도 이해해주지 않는다. 문제는 환자가 나빠지거나 응급상황이 너무 자주 발생한다는 점이다. 결국 절대적인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선의 간호사들은 식사나 화장실에 가는 것같은 기본적인 것들도 포기하고 일할 때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실수에 대해 관대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되지 않는다.”

 

게다가 앞으로는 연차가 쌓인 숙련된 간호사들 보다, 저연차 미숙련 간호사들이 더 많아질 것이므로 문제가 더 심각하다.

 

무엇보다 최근 코로나 시국 속 간호사들의 고강도 업무가 지속되면서 간호법 제정이 국회에서 논의되는 상황이 펼쳐졌는데 어떻게 진행되는지 살펴봐야 할 것 같다.

 

 

구조적 해결책은 그것대로 신경써서 개선해가야 겠지만, 당장 간호사 개인으로서도 자신의 간호 업무와 동료 간호사와의 팀워크를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현직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박민숙 부위원장(전국보건의료노동조합)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신규 간호사는 업무가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신규 간호사를 교육하는 프리셉터라고 하는 선배 간호사도 자신이 돌봐야 할 환자가 많이 있는 상황에서 교육까지 해야 하니까 엄청난 업무적인 스트레스와 고민을 갖게 된다”며 “이런 상황에서 서로 스트레스로 인해 태움 문화로 나타나는 거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태움이나 이런 집단 괴롭힘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절대로 안 되는 일이다. 간호사들의 태움 문화가 악습이기도 하고 잘못된 관행인데 간호사의 인성에 관련한 문제가 아니라 인력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정리했다.

 

이어 “(병원이)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치료하는 곳이기 때문에 굉장히 긴장해야 되고 실제적으로 교육이나 훈련들이 굉장히 엄격한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간호사에 대한 인권 유린의 형태로 집단 괴롭힘의 형태로 나타나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렇게 태우고 하면 잘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긴장을 해서 실수를 연발하게 되고 스스로 간호사의 소명의식과 자부심을 떨어뜨린다”고 설파했다.

 

“신규 간호사를 인력으로 투입하지 말고 적어도 6개월~1년 정도는 교육기간으로 둬 충분하게 선배 간호사한테 일을 다 배운 다음에 숙련된 상태로 환자들에게 간호 서비스를 제공해야 환자의 생명과 안전과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배우면서 1명의 간호 인력으로 투입되어 한 사람의 간호 인력으로 도저히 신규 간호사가 일을 할 수 없는 구조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태움도 일어나고 의료서비스의 질 저하도 일어난다.”

프로필 사진
김지영

안녕하세요. 평범한미디어 김지영 기자입니다. 일상 속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일들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기 위해 늘 노력하겠습니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