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김지영 기자] 코로나 3년차로 진입하는 요즘 간호사들은 매주 수요일 차디찬 거리로 나와 릴레이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존재하지 않았던 간호법이 제정되도록 국회를 압박하기 위해서다. 법정단체 대한간호협회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만큼 전국 간호사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집회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간호법은 간호사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전체 의료인 64만명(의사 16만명+한의사 2만명) 중 간호사는 71%(46만명)를 차지할 정도로 가장 비중이 높은데 이들의 노동권과 지위를 규정하는 법률은 의료법으로 뭉뚱그려져 있는 상황이다. 의료인 10명 중 7명이 간호사임에도 간호 수요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만큼 간호사들의 업무범위와 처우를 간호 정책 하나로 전문화해서 관리 및 규정할 필요가 있다.
한 마디로 간호법이 제정되어 현직 간호사들의 업무 폭증이 감소되고 적절한 수급 관리가 이뤄진다면 환자가 받을 간호 서비스의 질이 향상된다고 볼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건강권과 직결되는 문제다.
지난 15일 서울 국회 인근 여의도 곳곳에서 간호법 제정을 위한 2차 수요집회(간호법 제정과 불법 진료 및 불법 의료기관 퇴출을 위한 수요집회)가 개최됐다. 100여명의 간호인들이 각각 국회의사당 정문 앞, 현대캐피탈 빌딩, 금산빌딩, 더불어민주당 당사, 국민의힘 당사 등 5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집회를 열었는데 이전부터 해당 장소에서 1인 시위도 이뤄지고 있었다.
이들의 요구사항은 아래와 같은 구호들로 집약된다.
여야 3당은 간호법 제정하라.
불법진료 주범 의사 부족 해결하라.
법정 간호인력 위반 병원 퇴출하라.
대한간호협회 신경림 회장은 "간호법 제정은 초고령사회 및 신종감염병 대유행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국민에게 반드시 필요한 민생 법안"이라며 "간호법은 간호사 등 인력이 진료와 치료를 지원하고 노인 및 장애인 등에게 절실하게 요구되는 간호와 돌봄 제공 체계를 구축하는데 필요한 사항을 법제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불법 진료 근절을 위해 의대 정원을 확대해야 한다"며 "간호사에게 살인적인 노동 강도를 강요하고 법적 간호인력 기준을 위반하는 불법의료기관을 퇴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 회장이 밝혔듯이 코로나 이전부터 간호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었다. 과거와 달리 시간이 흐를수록 의료 서비스의 내용은 '병원에서의 단순 치료' 중심을 넘어 '치매 등 만성질환 관리 및 질병 예방'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미 그렇게 정착된지 오래다. 보편적인 건강권 차원에서 간호 업무는 거의 모든 기관에서 필수 인력으로 자리잡았다.
이를테면 건강지원센터, 보건소, 회사, 방문간호센터, 산후조리원, 요양원, 요양병원, 노인복지시설, 아동보호기관, 학교, 특수학교, 어린이집과 유치원 등에 간호 인력이 배치되어 있다.
그러나 1951년 제정된 "의료법은 의사 중심으로 짜여진 의사법"에 불과하다는 것이 간호업계의 주장이다. 그래서 "70년 숙원사업"이란 표현이 나오고 있다. 의료법 안에서 일반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조산사, 간호사 등 모든 의료인을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고 이들에 대한 관할 공조직은 10개 이상의 정부부처에 흩어져 있다.
그래서 국회에서도 2005년부터 꾸준히 간호법 제정안이 발의돼왔다. 그러나 중요도에서 밀렸는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차원에서 단 한 번도 제대로 논의되지 못 하고 매번 법안 폐기로 귀결됐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코로나 3년차의 길목에서 의료인들의 피로도는 극단적인 수준에 이르렀고 정치권이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간호사 1인 담당 환자수만 봐도 자명하다.
지난 10월22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게시한 간호사 A씨는 "대학병원의 경우 간호사 1명당 12~20명, 요양병원의 경우 40명까지도 담당하고 있다"며 "간호사들은 식사와 화장실을 포기해야 하고 바쁘게 뛰어다니느라 위장병, 방광염에 시달리고 있고 불규칙한 교대제 생활로 인해 수면장애에 시달린다"고 묘사했다.
간호사 수의 절대 부족이 문제라기 보다는 간호사 1인이 담당해야 할 환자수가 법적 강제 조항으로 규정돼 있지 않아 오직 비용만 생각하는 병원 조직이 최소한의 간호사만 고용하고 있는 것이 본질적인 문제다. 물론 의료법에는 간호사 1인당 환자 12명까지만 돌봐야 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이를 위반할 경우 제재할 방법이 전혀 없다. 그래서 간호협회 차원에서 간호사 부족을 방치하고 있는 민간 병원들에 대해 "불법 의료기관"으로 보고 "퇴출돼야 한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A씨는 "이런 병원 환경은 간호사들이 병원을 떠나게 만들었고 결국 면허 소지 간호사 중 절반만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간호사들이 건강하게 일할 수 있어야 환자들의 건강 또한 지켜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많은 연구에 따르면 간호사 1인당 환자수가 줄어들수록 환자들의 사망률, 재원률, 재입원률, 낙상, 투약 오류 등이 감소한다고 밝혀졌다"고 환기했다.
사실 이러한 이야기들은 꽤 알려져 있다. 그러나 코로나 시국 이전까지는 애써 무시돼왔다.
간호업계는 코로나 장기 국면, 초고령 사회 진입 등 갈수록 간호 업무의 중요성이 높아지는 만큼 조속히 간호법이 제정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김민석 의원(민주당), 서정숙 의원(국민의힘), 최연숙 의원(국민의당) 등이 발의한 간호법들이 보건복지위 법안소위에 상정돼 있는 만큼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개별 법안들의 내용은 차이가 있겠지만 큰틀에서 보면 아래와 같다.
①간호사 업무 범위 명확하게 지정
②간호종합계획 5년마다 수립 및 3년마다 실태조사
③환자의 안전 위해 적정 간호사 확보와 배치
④처우 개선 기본지침 제정 및 이를 위한 재원 마련
⑤간호사 인권침해 방지 조사와 교육의무 부과
법안 통과의 시작점은 소관 상임위원회 법안소위에 상정되는 것이다. 간호업계는 이후 '법안소위 의결 →보건복지위 전체회의 의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의결 →본회의 최종 표결' 등의 절차가 완료될 때까지 수요집회를 지속할 계획이다.
약사 출신 민주당 서영석 의원은 집회에 참석해서 "간호법은 낡은 의료법 체계에서 벗어나 의료 패러다임을 바꾸고 시대가 요구하는 돌봄의 징검다리"라며 "간호사들의 목소리는 간호사들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미래 사회로 가기 위한 투쟁"이라고 발언했다.
김상희 국회부의장도 "고령화 시대 국민들을 케어하기 위해 개혁이 필요한데 간호법을 반대하는 세력들이 걸림돌"이라며 "세상이 많이 변한 만큼 의료 현장에서 의사와 간호사의 역할도 재정립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