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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호법으로 ‘공소장 변경’ 불발됐으나 2심 결과는? 더 무겁게 ‘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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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징역 1년 6개월에서 2년 5개월로 선고 형량이 더 높아졌다. 그러나 안승희씨는 언니 안선희씨를 중증장애인이 되도록 만든 음주운전 가해자를 윤창호법으로 처벌되도록 만들지 못 해서 씁쓸하다.

 

11일 오후 수원지방법원 제1-2형사부 소속 권기만 부장판사는 선희씨에게 음주운전 상해를 입힌 20대 남성 손모씨에 대해 징역 2년 5개월을 선고했다.

 

권 판사는 “음주운전의 위험성과 사회적 해악을 고려했을 때 엄단할 필요성이 있고 음주 상태로 운전을 하다가 피해를 발생시키는 등 그 위험성과 사회적 폐해가 크다”고 판시했다.

 

 

헬스트레이너로 일하고 있던 손씨는 지난 2020년 11월10일 새벽 5시20분경 술에 취한채로 오토바이를 몰다 경기도 용인 수지구 죽전패션타운 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던 선희씨를 들이받았다. 선희씨는 다행히도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사건 이후 1년 3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사지마비, 인지저하, 언어장애, 연하곤란(음식물을 삼키기 어려운 증상)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24시간 간병인의 보호 아래 살고 있다.

 

손씨는 혈중알콜농도는 0.083%(면허취소 수준 이상)로 거의 만취상태였다. 더구나 무면허였다. 음주운전 전력으로 면허가 취소된 것이 아니라 애초에 원동기면허와 자동차면허 그 어떤 것도 없었다. 무모한 ‘살인운전’ 그 자체였다. 손씨는 2021년 6월 1심 결과 교특법상(교통사고처리특례법) 치상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권 판사가 1심보다 엄히 선고한 양형 이유는 크게 △음주운전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강화 △피해자측과 합의를 이루지 못 하는 등 피해 회복 노력이 불충분 △피해자측이 엄한 처벌을 지속적으로 요청 등인데 무엇보다 승희씨의 노력이 컸다.

 

승희씨는 작년 7월 손씨가 윤창호법이 아닌 교특법을 적용받아 상대적으로 가볍게 처벌받았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여러 언론사들에 제보 메일을 보냈다. 그 과정에서 평범한미디어와 만나 윤창호법 보완 및 처벌 강화를 피력하기 위한 1인 피켓시위, 윤창호법 개정안 입법, 음주운전 피해자들과의 연대 등 여러 활동을 이어나갔다.

 

선희씨 변호를 맡은 문아라 변호사(법무법인 대율)는 11일 저녁 평범한미디어와의 통화에서 “이례적으로 더 엄하게 선고하긴 했지만 승희씨도 단톡방(음주운전 피해 시민모임)에 미리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으신 게 아무래도 공소장 변경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저희가 좌절한 적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라며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늘어나봤자 거의 1~2개월 수준일 거라고 봤다. 거의 그대로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일정이나 절차를 적극적으로 말씀을 못 하셨던 것 같다. 근데 예상치 못 하게 1년 가까이 더 무겁게 선고됐다”고 말했다.

 

 

재판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검사와 재판부에 공소장 변경을 요청한 문 변호사와 승희씨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손씨는 소위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에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판정됐고 당시 현장으로 출동한 수사관 A씨(용인서부경찰서 경비교통과)도 평범한미디어와의 통화에서 그때 손씨의 상태에 대해 “진술서를 작성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밝혔다.

 

A씨는 검사의 증인 요청으로 2심 법정에 출석했는데 그 자리에서도 이러한 입장을 유지했다.

 

당시 수사했던 경찰관을 증인으로 불러서 검사가 공소장 변경을 위해 추가 증거 확보 차원에서 증인 신문 절차를 진행했다. 경찰관은 피고인의 정신이 또렷또렷 멀쩡했다면서 편향되게 진술하셨다. 구체적인 것은 기억이 안 나는데 또렷또렷 했던 것 같다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하셨는데 저희는 되게 비통하고 슬플 수밖에 없었다.

 

문 변호사는 선희씨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는 A씨에 대해 순간적으로 반대 신문을 하려고 했지만 “판사에게 제지를 당했다”고 한다.

 

 

통상 변호사는, 재판 과정에서 유리한 태도를 보여준 판사가 불리하게 판결을 해서 “뒷통수”를 치거나 완고한 태도를 보여준 판사가 유리하게 판결을 해서 “반전”을 보여주는 경우를 겪곤 하는데 문 변호사에게 권 판사는 후자였다.

 

문 변호사는 “아무래도 판사께서 여러 절차들 속에서 인간적 동정심이 생기지 않았나 싶다. 저희가 계속 수세에 몰리는 상황이었기도 해서”라고 묘사했다.

 

또한 문 변호사는 막연하게 표현되는 피해자의 고통을 구체적인 일지로 정리해서 검사를 통해 재판부에 제출했다. 손씨측의 무례한 태도와 무성의한 합의 시도를 담아내기도 했다.

 

사실 이렇게 언론 대응을 적극적으로 모색한 일부의 사례에서만 음주운전 가해자에 대한 엄한 처벌이 겨우 이뤄지고 있다. 故 윤창호씨와 쩡이린씨의 친구들이 나서지 않았다면 음주운전 살인마들에 대한 처벌(징역 6년과 8년)이 지금보다 훨씬 더 가벼웠을 것이다. 무엇보다 판사들이 언론 보도 여부와는 무관하게 음주운전 사건에 대한 엄중한 인식을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윤창호씨 친구들은, 윤창호법 제정 운동 당시 모든 음주운전 피해자들이 사건 직후 막막해 할 때 쉽게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음주운전 피해 재단’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작년 11월 윤창호법 보완 관련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국회를 방문했을 때 음주운전 피해자들은 연대의 중요성에 공감했다.

 

 

윤창호씨 친구 이영광씨는 “피해자 입장에서는 언론 대응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저희도 할 수 있었던 게 인터뷰 많이 하고 여기 저기 찾아다니고 그리고 무슨 생각을 했냐면 진짜 가족이나 가까운 사이에 발벗고 나설 사람이 없으면 어디에 기대야 하느냐”고 풀어냈다.

 

‘햄버거집 낮술 운전 사건’으로 어린 아들을 떠나 보낸 젊은 아빠 주영씨(가명)는 아래와 같이 발언했다.

 

그래서 저희가 이렇게라도 해야(단톡방 개설 등) 피해자들끼리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정말 이런 게 있었으면 했다. 영광씨나 선규씨나 변호사님(음주운전 피해자들을 위해 큰 도움을 주고 있는 정경일 변호사), 기자님 정말로 감사한 일이다. 가족들은 겁이 난다. 알지도 못 하고 그래서 이렇게 뭉쳐주면 힘이 난다. 오늘 부산에서 올라오시고 다들 시간을 내서 와주셨는데 나는 조그맣게 꼭 재단까지 아니더라도 사이트나 카페 같은 것을 통해서 시간 됐을 때 법원에 같이 가주고 (또 다른 음주운전 피해자들을 위해) 우리는 이렇게 대응했다고 안심을 시켜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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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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