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한연화] 와. 이것 총체적 난국이라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네. 내가 지금껏 스무 번이 넘게 고민 상담을 진행해왔지만 이번 사연처럼 어이없고 골이 아픈 사연은 또 처음이야. 아니 “여친이 임신했어요”도 아니고 “격주에 한두 번 잠만 자는 동생이 희미한 두 줄짜리 임테기 사진을 보내왔어요”라니 대체 뭐니, 이게.
격주에 한두 번 잠만 자는 동생이 있는데 갑자기 생리 안 하고 임테기 사진을 보여주는데 희미하게 두 줄이어도 임신인가요? <고민글 출처 : 전국대학생대나무숲 / 2022년 12월15일>
그래도 상담을 진행해야 하니 우선, 몇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격주에 한두 번 잠만 자는 동생’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개념이야. 세상에 동생과 섹스를 하는 사람은 없거든. 친동생이든, 의붓동생이든, 사촌동생이든, 친척동생이든, 아는 동생이든 동생과 섹스를 하는 오빠는 세상에 없어. 그러니까 섹스를 한다면 그건 동생이 아냐. 그냥 섹스 파트너인 거지.
그리고 두 번째로 여자에게 ‘안전한 날’이란 없어. 흔히 생리주기를 기준으로 생리 시작 14일 전부터 약 3일간을 ‘가임기’라고 부르지.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때가 임신이 가능한 가임기이니 이때만 피해서 섹스를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큰 오산이야. 그때는 그냥 임신 확률이 높아지는 기간인 것이지 그 기간을 피해서 섹스를 하면 임신 걱정이 없거나 하는 건 절대 아냐. 아무리 확률이 낮아도 임신할 가능성이 언제든 있는 것이, 심지어 월경 중에도 임신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 여성의 몸이야. 그런데 안전한 날에 피임하지 않고 그냥 했다고? 너 제정신이니?
세 번째로 네가 가장 궁금해 하는 것. 한 줄은 선명하고, 한 줄은 희미해도 임신은 맞아. 임신 중에 생성되는 HCG라는 호르몬이 소변 중에 존재하는데 임신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면 호르몬 수치가 낮기 때문에 희미한 두 줄로 나타나기도 하거든. 물론, 임신 초기에 자연유산 된 경우도 희미한 두 줄로 나타나지만 어쨌든 두 경우 모두 임신이라는 사실은 확실한 거지.
자, 이제 설명은 끝났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려줄게. 너 그 여자에게 “일단 병원 가보고 연락해”라고 했지? 야, 인간적으로 너무한 거 아니냐? 즐길 때는 같이 즐겼을 거 아냐. 그런데 막상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할 일이 다가오니까 벌써부터 꽁무늬 뺄 궁리나 하고 참 잘하는 짓이다. 지금 가장 답답하고, 불안하고, 막막하고, 무서울 사람이 누구겠냐? 너랑 잔 그 여자야. 걔는 지금쯤 정말 임신이면 어떻게 하나, 학교는, 내 인생 계획은, 우리 엄마 아빠는 이런 생각의 실타래에 빠져서 세상 모든 걱정을 다 하고 있을 건데 너는 고작 병원 같이 가주는 것도 못 하겠다? 하, 일단 너 스스로 뺨 때리면서 이 한심한 새끼라고 욕 좀 해라. 자기가 좋다고 즐기고 씨 뿌려놓고 여자 혼자만 불안하게 등 떠민 한심한 새끼라고.
그리고 그 동생한테 연락해서 이런 일 생기게 해서 미안하다고 제대로 사과하고 같이 병원 가. 진료실도 같이 들어가고, 의사 얘기도 같이 들어. 그러고 나서 그 애가 하고 싶다는 대로 해. 왜냐, 네 몸이 아니니까. 임신을 한 건 그 애지 네가 아니야. 그러니까 그 애한테 어떻게 하고 싶은지 진지하게 물어보고 하자는 대로 해. 낙태를 하고 싶다면 네가 병원도 알아봐주고, 낙태 비용도 마련해주고, 낙태도 애 낳는 거랑 똑같이 몸 상하는 거니까 한의원 데려가서 보약 한 재 지어주면서 최소한의 책임을 다해. 만약에 아이를 낳고 싶다면 임신 및 출산 기간 동안의 병원비, 출산 후 산후 조리비, 그리고 아이 양육비는 네가 다 대. 결혼을 하라는 얘기까지는 내가 차마 못 하겠는 게 그건 너희들 선택이니 하든 안 하든 어쩔 수 없지만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다면 그 아이는 너희 모두의 아이이고, 무엇보다 네 아이니까 아이가 자라서 성인이 될 때까지 그 최소한의 책임을 다하라는 거야. 만약에 병원에 갔는데 이미 유산한 상태면 사망한 태아를 제거하는 수술비는 네가 내고, 한의원 데려가서 보약 한 재 지어줘. 역시 그게 최소한의 책임이니까.
무엇보다 다시는 그 동생과 이런 관계로 지내지 마. 이미 이런 일로 한 번 상처를 줬는데 앞으로 또 상처 주면 그건 정말 아니잖아. 그러니 내 말대로 최소한의 책임을 지는 일 외에는 그 동생 인생에 나타나지 마.
하, 이번 상담에서 욕이나 하려고 했는데 내가 요즘 우울 삽화에 시달리는 중이라 욕도 잘 안 나오네. 아무튼 그 동생의 몸도, 마음도 모두 빨리 회복되길 바랄게. 그럼 나는 이만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