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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 악마화 시대 ‘더 많은 노조’가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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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학당 강사들의 노조 이야기
최수근 연세대 한국어학당 노조 초대 지부장

[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바야흐로 노동조합이 악마 취급을 받는 시대다. 윤석열 정부는 연일 노동계를 때리고 있고 국민의힘 당직 선거에서는 민주노총을 해체하겠다는 구호까지 등장했다. 그런데 노조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윤지영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페이스북에서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나름대로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하기 위해 안 해본 것이 없다고 회고했는데 그 결과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고 밝혔다. 어떤 의미일까.

 

공감에 입사했을 때 노동조합 밖 노동자들, 불안정하고 소외된 노동자들을 위해 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그들을 대리해서 소송도 하고, 신고도 하고, 입법(운동)도 하고 할 수 있는 건 뭐든 다했다. 그런데 15년 그렇게 일해서 내린 결론이 뭔줄 아는가. 바로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수년 소송해서 이기면 뭐하나. 회사는 끄떡없다. 고소하고 진정해도 공무원들은 형식과 증거만 따진다. 법적 대응. 그건 노동자들에게 독배일 때가 많다. 노동조합만 있다면, 혼자는 약하지만 뭉쳐서 싸울 수만 있다면, 파업을 무기로 싸울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문제를 해결하고 착취와 억울함을 풀 수 있을텐데. 그래서 노조 밖 노동자들을 만나고 같이 싸울수록 노동조합에 목말랐다.

 

 

결론적으로 윤 변호사는 “힘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이 더 절실한 걸 알았다. 헌법에 노동 3권이 왜 있는지 온몸으로 깨달았다”면서 “노동자들한테는 변호사 말고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변호사는 노조의 파업 무력화를 방지하는 노란봉투법을 관철시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이 글을 썼지만 노조가 왜 그렇게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수 백번 강조해도 입만 아프다.

 

대학에서 한국어 강사로 오랫동안 일해온 최수근 지부장(민주노총 전국대학노조 연세대 한국어학당지부)은 “(강사 처우 문제로 학교와 싸우는데) 아무래도 노무사들을 많이 만났다. 노무사들이 왜 노조 안 만드냐고 얘기하더라. 그러니까 노조를 만들면 쉽게 해결될 수 있다는 말씀이었다”며 “노무사들이 노조 설립을 하면 훨씬 더 쉽다고 얘기했던 이유를 활동하면서 느끼게 됐다. 고소고발은 법적인 판단에 도달하는 시간을 견딜 수 있는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 지부장은 석달 전(2022년 10월28일 19시) 광주 동구 전일빌딩 4층 중회의실에서 개최된 특강의 연사로 초청되었다. 이 자리에서 최 지부장은 노조 설립 이후 어떤 성과를 냈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노조가 생겨서 협상을 하면 그 전에 해결이 된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결정권이 나에게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법의 판단을 기대하게 되면 저 사람(사측)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고 그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연대 한국어학당은 1959년 설립되어 한국어 교육업계에서 가장 앞서나가고 있는 조직인데 강사들의 처우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그동안 강사들은 연봉 1000만원 즉 월 급여로 100만원도 못 받았다. 연대는 강의 시수별로 시급을 책정했는데 그 권한을 무기삼아 강사들을 통제해왔다. 월급제가 아니기 때문인데 시급이 아무리 올라도 강의 시수를 충분히 배정 받지 못 하면 저임금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무엇보다 수업 준비 등 강의 외 노동시간은 전부 공짜였다.

 

신입 강사의 시급은 2만6800원. 한 달 100만원 안팎의 월급을 받아야 했고 30년 가까이 근무한 강사는 200만원이 안 되는 월급을 받았다. 어학당 강사들은 12단계의 호봉표를 적용받는데 최고 시급 3만6200원에 도달하면 일체 임금 인상은 없었다. 코로나19로 수업 시수마저 줄어 강사들은 도저히 수업만으로 먹고 살 수가 없어 카페나 쿠팡 등에서 다른 알바를 병행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공짜노동으로 취급되는 학생들 관리업무, 시험 문제 출제, 채점 관리, 수업 준비를 위한 회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참다 못 해 노조를 결성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2019년 어학당 노조가 최초로 만들어졌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연차 수당’이었다. 최 지부장은 “전체 강사가 3년씩 소급해서 6~700만원 정도 받은 것 같은데 그때부터 효능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연차를 안 주는 것은 당연히 불법인데 우리 한국어 강사들이 노동 현장에서 벌어지는 불법적인 문제들에 대해 다들 너무 잘 알고 있다. 근데 이 불법을 발견했을 때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인데 사실 가장 제일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노조 조직은 아니지 않은가. 일단 고소고발을 제일 먼저 생각한다.

 

 

노조 차원에서 쉽게 해결했던 사례가 또 하나 있다. 연대는 한국어 강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연간 ‘인사 평가’ 기준에서 연구 점수 비중을 급격하게 높였다. 이에 대항해서 노조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금지 원칙을 근거로 총장실에 내용증명을 보냈다.

 

학교는 노동조건을 개선하지 않고 (연구 점수를 높일 수 있는) 프로젝트 참여를 강제하는 거였다. 그래서 (연간 평가에 반영되는) 연구 점수의 비중을 확 높였다. 프로젝트를 안 하면 안 되도록. 그래서 그것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으로 총장실에 내용증명 하나 보냈더니 그 다음주에 바로 풀렸다. 이렇게 쉽게 풀렸다.

 

이런 성과들이 축적되면서 조합원들은 “내 삶과 (노조활동이) 관련이 있구나. 그동안 화만 내고 짜증만 내고 그 다음날엔 어쩔 수가 없지라고 말았는데. 그게 아닐 수 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노조는 지금까지 연대측과 두 차례의 교섭을 진행했다. 교섭의 결과 얻게 된 것들이 적지 않은데 △노조활동 보장 △노조 사무실 제공 △유급 노조 전임자에 대한 강의 미배정 △노조 교섭 시간 강의시간으로 인정 △매년 시급 1000원씩 인상 △모든 강사가 코로나 위로금 100만원 수령 △기존 신입 강사에게 적용되던 시급 2만6800원 즉 12호봉제를 폐지하고 바로 최고 시급 3만6200원부터 적용 등이 있다.

 

의미있는 성과들인데 최 지부장은 그 과정에서 “당연히 파업도 했다”면서 “학생들 얘기가 나오면 좀 착잡하다”고 털어놨다. 뻔한 수순으로 “강사들의 무리한 요구로 학생들에게 피해가 갔다”는 레토릭이 구사되곤 하는데 최 지부장은 “학교가 교육적인 부분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며 “학생들을 끝까지 생각하는 것은 강사들이다. 근데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학교가) 학생들을 볼모로 삼는다고 한다. 이런 일들을 통해서 학교의 민낯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최 지부장은 “사실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찾는 게 교육의 질을 높이고 학생을 보호하는 데에 더 좋은 일이라는 걸 느끼고 있다”고 역설했다.

 

 

최 지부장은 “아직 갈 길이 아주 멀다”고 했는데 “전국단위로 한국어강사 노조”가 없는 현실을 환기했다.

 

한국에서는 강사들이 스스로 노동자로 인지하지 못 하게 하는 여러 요소들이 있다. 교육은 성직이라는 생각이 있고,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은 국위선양을 위한 봉사직? 보람 있지 않느냐라는 거고, 또 한 가지는 여성 노동에 대한 인식이 부재하다는 점이 있다. 한국의 노동 조직이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한국어 강사들이 현장에서 유령처럼 겪고 있는 고생들이 좀 더 공론화됐으면 좋겠다. 작년(2021년) 국감에는 한국어 교육의 문제점이 올라왔는데 올해에는 안 올라와서 안타깝다.

 

끝으로 최 지부장은 청중들에게 연대라는 큰 조직에 대항하는 노조였기 때문에 이만큼의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갖지 않길 바란다며 “연대는 큰 집단이니까 저런 일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우린 작은 조직이기 때문에 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할 수 있는 찾아봤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친한 지인도 연대 정도면? 그랬다. 어떤 배경에서 그런 말씀을 하는지 알겠다. 그런데 연대보다 다른 학교가 오히려 더 투쟁하기 좋은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고 연대니까 못 하는 부분도 있다. 그냥 우리는 규모가 작으니까 못 하겠지라고 행위없음을 정당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싸웠던 것의 장점과 단점을 분석해서 더 잘 싸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게 내가 가장 명료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부분이고 다들 권리 뺏기지 말고 잘 싸워서 이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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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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