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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노조 총파업 “간호 인력 언제 늘릴지 로드맵 세워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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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윤석열 정부는 여타 다른 정부들과 마찬가지로 “정치 파업은 불법”이라는 메시지를 첫 일성으로 냈다. 보건의료노조(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가 총파업을 예고하며 간호사 인력을 보강해달라고 촉구하고 있는데 보건복지부 박민수 제2차관은 “파업은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서 (헌법에서 보장하는 권리로서) 하는 것”이라며 “(파업의 정당성에 대한) 대법원 판례에서 보면 단체교섭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자와 교섭을 해야 된다고 돼 있다. 그러면 노사 문제이기 때문에 결국 노조는 사측과 협상을 하는 게 맞다”고 밝혔다. 사측과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교섭을 해서 결렬됐을 때 파업을 해야 하는데 대정부에 정책적으로 요구하는 파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정당한 파업인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보건의료노조가 13일 총파업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황에서 박 차관은 12일 저녁 방송된 jtbc <뉴스룸>에 직접 출연해서 “불법이냐 아니냐 이거를 딱 무 자르듯이 얘기하기는 좀 어렵지만 내가 보기에는 법에서 요건으로 하고 있는 것을 충족하기 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노조가 교섭해야 하는 각급 병원측에 근로조건 개선 요구를 했음에도 발아들여지지 않아야 합법 파업이라는 건데 보건의료노조 나순자 위원장은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 차원에서) 올해 7대 요구안을 내걸고 교섭을 진행해왔다”며 “사용자측은 제도 개선과 비용 지원 등 정부 핑계를 대고 노동조합의 절실한 요구를 수용하지 않은 채 눈치보기와 시간끌기 등 불성실 교섭으로 일관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의료 현장의 인력 대란과 필수의료, 공공의료 붕괴 위기를 수수방관하고 기존에 약속했던 코로나 전담병원 회복기 지원과 간호인력 지원 종합대책 등 각종 제도 개선 정책 추진 일정을 미루면서 노사 교섭에서 핵심 쟁점 타결에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고 있다.

 

노조 입장에서 보면 5월부터 전국에 있는 병원들과 협상을 해봤지만 매번 나오는 변명거리가 법과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아서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던 것이고, 그 법과 정책을 변화시켜줄 윤석열 정부는 간호 인력을 보강해주지 않고 대책 추진의 스케줄을 미루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노조는 △5월부터 각급 병원들에게 일제히 교섭을 요청해서 진행해왔고 △6월27일 중앙노동위원회와 지방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신청을 접수해서 △현재 조정이 진행되고 있고 △조합원 대상 파업 관련 찬반 투표도 실시하는 등 법적으로 지켜야 할 절차를 모두 준수했다는 입장이다.

 

일단 노조의 7대 요구안은 아래와 같다.

 

①고액의 간병비 해결을 위해 간호간병통합서비스병동 전면 확대

②근무조별 간호사 1명 대 환자수 5명으로 확대해서 환자 안전 보장

③적정 인력 기준 마련과 업무범위 명확화

④불법의료 근절을 위한 의사 인력 확충

⑤공공의료 확충과 코로나 전담병원 회복기 지원 확대

⑥코로나 영웅에게 정당한 보상

⑦노동개악 중단과 노동시간 특례업종 폐기

 

핵심은 ②이다.

 

나 위원장은 “한국 간호사들이 미국, 일본의 2~3배가 넘는 1대 12에서 많게는 (환자를) 20~30명까지 보느라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서 환자 곁을 떠나고 있는 극한직업을 바꿔야 한다”며 “우리도 다른 나라처럼 환자 안전과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위해 간호사 1명이 환자 5명을 보게 해달라는 게 정치 파업인가?”라고 항변했다.

 

인력이 부족해서 환자들이 아프다고 해도, 궁금해해도 눈도 못 마주치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못 한다. 어떤 때는 의료사고로 환자한테 피해를 입히는 경우도 있다. 신입 간호사 때는 이러다 나로 인해 환자가 어떻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다 사직을 선택한다. 경력 간호사도 환자가 나빠지기라도 하면 더 잘 해주지 못 한 내 탓인 것 같아 늘 죄책감에 시달린다. 정신적 스트레스 뿐만 아니라 인력이 부족해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극한상황을 더 이상 견디지 못 해 병원에 들어오는 간호사들은 절반 이상이 1년 이내에 사직한다.

 

 

2023년부터 탈코로나 시대를 맞이한 만큼 노조는 그동안 참아왔던 간호 인력 확충 문제를 더 이상 뭉개고 갈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있다. 나 위원장은 “간호사들도 조금은 숨도 좀 쉬면서 환자들 눈도 좀 마주치면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이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심각한 문제라고 호소했다.

 

사실 박 차관도 정부 정책이 노조 조합원들의 근로조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박 차관은 “보건의료 환경이라는 것이 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자신들의 근로조건에 정부 정책이 절대적으로 영향이 있다고 주장을 할 수 있다”면서 노조가 요구하는 취지에 걸맞는 종합대책을 발표해서 진행하고 있다는 점을 환기했다. 다만 노조는 너무나 오랫동안 연기돼왔던 숙원사업이라 데드라인을 설정해달라고 촉구하고 있는데 박 차관은 “당장 시행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저희가 4월에 간호인력 지원 종합대책을 발표를 한 바 있다. 그래서 지금 노조에서 요구하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의 확대라든지 간호등급제 개편이라든지 이런 것들은 이미 하겠다고 발표했고 또 구체적인 안을 마련할 때 노조도 참여해서 의견을 개진하고 저희가 초안도 다 공유를 한 상태다. 그렇게 해서 진행이 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노조가 요구하는 거는 어느 시점을 딱 박아서 그때까지 해달라. 이런 요구를 하는데 예를 들면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간호 인력 보강으로 간호와 간병 인력이 통합) 하나만 하더라도 전면 시행을 하게 되면 그게 재정도 2조7000억원이 들어가는 사업이다. 그래서 정부가 이걸 당장 시행하기도 어렵고 그 다음에 또 돈의 문제라기 보다는 이걸 전면 시행하다 보면 지방 의료가 붕괴할 수가 있다. 그래서 정부는 여러 가지 상황을 면밀히 봐가면서 그러한 부작용이 없는 범위 내에서 시행을 해야 된다.

 

노조에는 전국 200여개 의료기관과 복지시설에 소속되어 일하는 보건의료노동자 8만 5000여명이 가입되어 있고 간호사, 의료기사,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약사, 행정사무연구직, 시설관리, 영양사, 조리, 청소, 정신보건전문요원, 기술기능직 등 60여개 다양한 직종 노동자들이 포함돼 있다. 의사 빼고 병원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가 속해 있는 셈이다. 이번 총파업은 19년만인데 145개 사업장 총 조합원 6만4257명(파업권 보유 조합원) 중 5만3380명(83.07%)이 투표해서 91.63%(4만8911명)의 압도적인 찬성 의사로 가결된 만큼 조합원들의 절대 다수 여론이 반영되어 있다. 파업 종료 조건은 병원들과 정부의 태도 변화에 달려 있다.

 

나 위원장은 “(병원들과 정부가 7대 요구를 끝내 외면한다면) 무기한 총파업 투쟁도 불사할 것이며 절박한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 국민과 함께 하는 범국민투쟁을 전개해나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총파업에 나서게 될 상급종합병원지부는 20곳 안팎인데 전국적으로 140여곳의 병원지부들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노조는 파업에 돌입하더라도 응급실, 수술실, 중환자실, 분만실, 신생아실 등 환자 생명과 직결된 업무에 필수 인력을 투입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아가 병원에서 발생하는 응급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응급대기반(CPR팀)을 구성한다는 계획이다. “의료 대란”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조치인데 각급 병원에서 진료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점쳐진다.

 

 

박 차관이 하는 말들을 들어보면 복지부와 노조가 만나지 않은 것은 아닌 듯 하다. 하지만 노조는 윤석열 정부도 공감하고 있는 요구안들 중 “말로만 하겠다”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구체적인 로드맵을 세워달라는 입장이다. 이를테면 간호간병통합서비스만 하더라도 2021년 당시 문재인 정부와 노조가 도입 로드맵을 수립하기로 약속했으나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노조는 정권교체 전후로도 지속적으로 협의해서 로드맵을 마련해보자고 촉구했으나 윤석열 정부 들어서 이 부분에 대한 진척이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 차관은 “대화가 없었다는 거는 너무 과도한 것”이라며 “정부는 협상의 당사자가 아니라서 공식적인 협상 채널과 테이블에는 나가 있지 않지만 사실 저희가 지금 추진하고 있는 정책의 상황은 계속 (노조에) 설명을 했다”고 반론했다. 특히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사실 (비공개로) 계속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고 덧붙였다.

 

<뉴스룸> 진행자 박성태 앵커는 “어떤 형식으로 만나고 대화하는 것이냐”고 물었는데 박 차관은 “사실 위원장하고도 직접 대면해서 1시간 이상 토의를 한 바가 있고 그 다음에 국장급 공무원과 간부들이 만나서 자료도 다 준비를 해가서 제공하고 여러 설명을 좀 해줬다”고 강조했다. 박 차관은 거듭해서 “분명하게 말씀드리는 것은 이것은 노사 협상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고 전제했다. 즉 좁히고 좁혀서 월급과 각종 수당 인상만 주장해야 근로조건 개선 사항으로 인정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럴 때만 합법 파업이고,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정책 변화를 주문하는 것은 불법 정치파업이라는 취지다. 허나 정책 변경의 키는 정부가 쥐고 있기 때문에 “정부는 협상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발언을 할 게 아니라 정책 도입의 로드맵을 만들기 위해 노조와 접촉을 하겠다고 약속하면 좀 더 해결이 빠를 수 있다.

 

 

그러나 박 차관의 행간을 보면 파업 이전 여러 차례 만났듯이 앞으로도 만날 수는 있지만, 로드맵이나 정책 시행 시점을 설정하는 걸 목표로 노조와 소통하고 싶진 않고 그러기가 부담스럽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돈이 많이 들고, 각종 부작용들이 많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건보 재정도 부담이 되고 사실은 지금 1년에 3만명 정도 간호대생이 졸업을 한다. 그런데 아까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전면 시행하려면 1만8000명의 간호사가 추가로 필요하다. 내년에 당장 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간호대 학생을 그렇게 늘릴 수가 있는지 각급 학교에서 그것들이 수용 가능한지, 교수들은 구할 수 있는지 이런 것들이 다 점검이 돼야 되기 때문에 일도양단적으로 말씀드리기가 좀 어렵다. 그런 여러 가지 저간의 사정은 노조 집행부가 사실은 잘 알고 계신다. 그런데 이걸 명확하게 해달라고 하는 요구인데 나는 그렇다. 내가 파업을 막기 위해서 언제까지 하겠다고 이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국민 부담이 들어가는 것이고 여러 밟아야 될 절차들이 있다.

 

사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노조도 모르는 게 아니다. 노조는 예상되는 부작용을 어떻게 최소화하고, 투입될 총 예산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종합적인 로드맵을 수립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기다릴 만큼 기다렸고 더 이상 참고 넘어가기 어려운 임계점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공공의료 확충과 의료 인력 처우 개선책이 담긴 2021년 9.2 노정 합의와 2023년 4.25 간호인력 지원 종합대책에 제시했던 정책 과제에 대한 구체적 실행 계획과 일정을 내놓아야 한다.

 

어찌됐든 박 차관은 인터뷰 내내 정부가 노조와 협상할 계제는 아니라는 점을 인트로에 깔면서도 파업 이후에도 “정부 정책의 가장 중요한 상대방, 거기 대부분이 간호사이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 정책을 설명하는 그런 설명회 자리는 얼마든지 할 수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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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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