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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는 어차피 폐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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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현재까지 헌법재판소는 형법 41조 1호에 규정되어 있는 사형에 대해 합헌 판정을 내렸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는 아직까지 사형제가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김동규씨는 사형제는 곧 폐지될 것이며 시간 문제에 불과하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낙태죄도 결국 헌재에서 여러 차례 심사를 거친 끝에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아서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처럼, 사형제 역시 헌재에서 여러 번 논의되다 보면 위헌 판정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그의 확신이 있다. 그런 흐름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헌재는 1996년(합헌 7 : 위헌 2)과 2010년(합헌 5 : 위헌4) 두 번에 걸쳐 사형제에 대한 심사 결과를 내놨다. 둘 다 합헌 판정이었지만 6명이 위헌표로 돌아서면 위헌으로 확정되는데 무려 4명의 헌법재판관이 위헌이라고 의견을 낸 만큼 세 번째 위헌 심사에서는 위헌으로 결론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김씨의 판단이다. 13년 전 조대현·김희옥·김종대·목영준 전 헌법재판관들은 아래와 같은 근거를 들어 사형제의 합법성을 부정했다.

 

①사형의 범죄예방 효과가 증명되지 않았다.

②집행하지 않는 사형제의 의미가 상실됐다.

③영화 <집행자>에서 자세히 묘사된 것처럼 판사가 직접 사형 선고를 내리더라도 법무부장관, 검사, 교도소장 등이 개인의 신념과는 아무 상관없이 한 사람의 목숨을 박탈하는 과정에 참여하게 되고 그 후유증을 떠안게 되는 문제가 있다.

 

 

지난 8월17일 19시반 광주 동구 ‘오월의숲’에서 개최된 평범한미디어 후원 프로젝트 <평범한 토크쇼>의 이야기손님으로 김씨가 초대됐다. 김씨는 광주에서 사회운동가이자 프리랜서 언론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씨는 “5대 4가 나왔다는 거는 사형제 자체에 거대한 흔들림이 있다는 것”이라며 “낙태죄가 헌법재판소에 갔을 때도 폐지 직전에 5대 4였다. 7대 2로 헌법 불합치 나기 전에 5대 4였다. 그러니까 사형제는 곧 폐지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2019년 2월 존속살해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을 구형받았지만 결과적으로 무기징역이 확정된 윤모씨가 사형제에 대해 헌법소원을 청구한 이후로 4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까지 결론을 내지 않고 있다. 한국에는 총 59명의 미집행 사형수가 있다. 이중 2010년대 이후 사형 선고를 받은 사형수는 4명에 불과하다. 사형 선고 날짜를 기준으로 보면 △보성 어부 살인사건을 일으킨 오종근 △4명의 목숨을 앗아간 해병대 총격 사건의 범인 김민찬 상병 △대구에서 중년부부를 살해하고 전 여자친구를 강간한 장재진 △22보병사단 총격 사건으로 5명의 목숨을 앗아간 임도빈 병장 등이다. 이들 4명 외에는 판사들이 ②에 따라 사형 선고 자체를 하지 않고 있다. 이들 못지 않게 흉악하고 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살인범들에 대해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이 선고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무엇보다 사형수 중 군인 2명은 군형법 53조 1항에 따라 “상관을 살해한 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만 규정하고 있는 법률에 따라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김씨는 “군형법 말고 민간인들에게 적용되는 일반 형법에는 다이렉트로 사형만 있는 것이 하나 밖에 없다. 바로 여적죄”라면서 “적과 내통해서 대한민국을 반역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 나머지 전부는 사형만 규정된 경우가 없다. 그래서 김민찬 상병과 임도빈 병장이 사형을 선고받은 이유는 사형 말고 선고할 수 있는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무기징역이 있지만 살해 대상 중에 상관이 있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상관을 죽이면 사형에 안 처할 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비교적 최근에 오종근과 장재진처럼 끔찍했던 살인사건을 저지른 김태현 사례(2021년 3월)만 보더라도 판사들은 사형 선고를 꺼리고 있다. 세모녀를 살해한 김태현에 대해 2심 재판부는 “현실적으로 사형이 집행되지 않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을 선고했으며 범행의 잔혹성을 고려해서 “가석방 없는 절대적 종신형”을 판결문에 적시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무기징역형을 최종 확정하면서 형평성 차원에서 가석방 없는 절대적 종신형이라는 문구를 포함하지 않았다.

 

김태현이 3명을 죽였음에도 사형 선고를 받지 않았는데, 근래 들어 무차별 살인극이 연달아 벌어지며 엄벌주의적 여론이 높아진다고 해서 흉악범들에게 사형을 선고할 수 없다는 것이 김씨의 생각이다.

 

만약 내가 2명을 죽여서 사형을 받는다면 억울하지 않겠는가? 어떤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나만 사형이야 말도 안 돼! 이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형이라는 것은 인간의 생명을 국가의 이름으로 뺏고 없애버리는, 영원히 사회에서 배제시켜버리는 궁극의 형벌이지 않은가. 궁극의 형벌인데 어떤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서 형평성이 고려되지 않고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은 간단치 않은 문제다.

 

 

김씨는 EU 등 외교적인 문제, 오판가능성 등을 언급하며 사형제 폐지론에 힘을 실었지만 사실상 외교적인 문제는 관건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일단 오판가능성에 대해 김씨는 “18세기 영국의 법학자 윌리엄 블랙스톤이 1명의 억울한 피고인을 만들지 않는 것이 10명의 범죄자를 놓치는 것보다 낫다고 했다”면서 “1948년 8월15일 건국 이래 대한민국 정부가 국가의 이름으로 920명을 사형에 처했다. 근데 놀라운 사실이 이중 253명은 좌파였다”고 역설했다. 오판가능성을 넘어 고의적인 정적 제거용 또는 공포정치 용도로 무고한 사람의 목숨을 박탈한 한국적 역사가 멀지 않은 과거에 무수히 존재했다.

 

좌익 사상범들을 죽인 것이다. 여기에서 사형이 얼마나 무서운지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여순 사건에 가담했다. 그러면 피고인은 국헌을 문란하게 하고 대한민국의 통치 질서를 교란케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켰다. 따라서 사형에 처한다. 가담 배경과 구체적인 정황을 비롯 개인의 성장배경까지 모든 것들을 감안해서 내려야 하는 게 사형인데 그냥 사건에 가담했다는 이유만으로 바로 사형을 때리는 것이다. (2010년대 들어) 대법원에서 이런 사형 판결들에 대해서 다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말이 안 된다는 거다.

 

혁명의용군 사건, 진보당 사건, 유럽 간첩단 조작 사건, 인민혁명당 사건, 진도 가족 간첩단 사건 등 역사적으로 알려진 대표 사법 살인 사례들이 있지만 이밖에도 알려지지 않은 좌익 사상가 사법 살인 사례들이 아주 많다. 김씨는 시대적 한계의 측면에서도 조명했다.

 

어떤 시기에 어떤 범죄자는 시대의 한계가 있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서 만약 지금 누군가 폭동을 일으키고 공산주의 통치를 주장한다고 가정해보자. 이들이 다 잡혔다. 과연 사형을 받을까? 절대 안 나온다. (내란죄 미수범이라고 해도) 솔직히 징역 7년 정도 나올 것 같다. 근데 어떤 시대에는 그걸로 사형을 받을 수 있다. 이게 정말 무서운 것이다. 왜냐면 2023년이 아니라 1980년에 저질렀으면 무죄인데 지금 저질렀으면 사형이고, 그때는 사형인데 지금은 무죄이고. 이런 거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인간의 생명을 박탈하는 궁극의 형벌인데 그 형벌이 균형없이 내려지면 안 된다.

 

김씨는 그런 시대의 한계를 보여주는 수용자가 바로 김진태씨 사례라고 상정했다.

 

김진태씨는 1992년에 사람을 죽였다. 아버지를 죽였다. 근데 여기까지 들으면 어떻게 사람이 아버지를 죽이고 아버지의 시신을 훼손하고 한강에 유기할 수 있느냐? 그런 생각이 든다. 무려 존속살인범이다. 존속살인은 사형이나 무기 또는 7년 이상이다. 그러니까 당시에는 판사가 이걸 보고 이놈은 사람이 아니구나. 감히 아버지를 살해해! 너는 사형이다. 근데 이 사람의 정황을 봐보자. 김진태씨는 어릴 때부터 23살까지 아버지를 죽였던 그 순간까지 가정폭력을 당했다. 심지어 어머니도 같이 당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그 사건 당일에도 아버지에게 맞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어머니를 계속 때리니까 순간 분개해서 우발적으로 아버지를 살해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 이후에 유기와 훼손까지 하게 됐다.

 

김진태씨가 1992년 가부장적인 판사들이 아닌 2023년의 판사들에게 재판을 받았다고 가정해본다면 사형 선고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김진태씨의 변호사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피고인은 어린 시절부터 끔찍한 가정폭력 피해를 당해왔으며 어머니마저 폭력을 당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목격하면서 정말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이러한 축적된 분노 속에서 김진태씨는 우발적으로 아버지를 살해했다. 이런 점들이 판결에 반영돼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만약 김진태씨가 최근이었다면 심지어 무기징역도 안 나올 것이다. 존속살인을 했더라도 너무 끔찍한 가정폭력을 당했던 피해자였다면 그런 요소들이 반영돼서 징역 10년이나 7년 이렇게 나올 것이다.

 

 

상징적인 사례가 있다. 2011년 지모씨(당시 19세 고3)는 홀로 자신을 양육하던 어머니를 살해했는데, 그의 모친은 아들의 서울대 진학에 집착해서 조금만 성적이 떨어지면 굶기고, 10시간 동안 얼차려를 시키고, 야구방망이와 골프채로 구타하는 등 심각한 가정폭력을 수년간 저질렀다. 지씨는 모친을 잔인하게 살해했지만 당시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아동학대에 따른 정당방위를 정상참작으로 인정받아 징역 3년 6개월로 선처를 받았다.

 

시대를 잘못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법원에서 같은 사건 다른 판결을 받으면 문제가 있다. 우리들의 도덕은, 우리가 믿고 있는 윤리는 언제나 시대적 한계 속에 있다. 우리의 도덕은 그런 것이다. 사형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사형제가 있어서 선고되고 혹시라도 집행되면 돌이킬 수가 없다. 김진태씨는 지금이라면 징역 몇 년이면 나올 일인데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31년째 복역하고 있다.

 

얼마 전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사형 집행 시설 점검을 지시하는 방식으로 사형을 집행할 수 있다는 시그널을 줬다.

 

사형의 집행은 형사정책적인 기능이나 국민의 법감정, 국내외의 상황들을 고려해서 정해야 하는 중요한 문제다. 대한민국에서 사형은 법에 있고 정부는 사형제 존치를 주장하고 있지 않는가. 물론 외교적 문제가 있을 순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주권적 결정이다. 그 부분도 고려해야 될 부분 중 하나다.

 

당초 한 장관은 무차별 살인 정국 초반에 EU와의 문제를 거론하며 사형 집행에 대해 신중한 스탠스였는데 윤석열 대통령의 컨펌을 받았는지 강경한 어조로 바뀌었다. 김씨도 EU와의 무역 문제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EU와의 무역 문제도 있다. EU는 사형을 집행하는 국가들에 대해서는 관세 등 무역 제재를 한다. 근데 사실 나는 관세는 문제라고 생각 안 한다. 미국이랑 일본도 그냥 그 돈 다 내고 사형을 집행하고 있다. 솔직히 그 돈 얼마나 한다고 대한민국 국력 정도 되면 그 돈은 그리 큰돈이 아니다.

 

그러나 EU 국가들과의 ‘범죄인 인도’ 문제가 있다. 이렇게 가정해볼 수 있다. 한국에서 사형당할만한 흉악 범죄를 저지른 범인이 발각되기 전에 유럽으로 도망가서 잡혔다면 어떻게 될까?

 

2007년도에 대한민국과 유럽연합이, 유럽연합 내에서 체포된 한국인 범죄자를 한국으로 인도할 때는 조건을 붙여야 된다는 조약을 맺었다. 뭐냐면 그 범죄자는 사형될 수 없다. 그러면 대한민국의 사형 제도는 무너진다.

 

 

만약 윤석열 정부가 모든 걸 감수하고 과감하게 사형을 집행하기로 방침을 세우게 된다면, 그 이후 사형감 흉악범들은 사전에 유럽 출국을 준비해놓고 범행을 저지를 수도 있고 범행 직후 수사기관의 레이더에 들어오기 전 유럽으로 도망갈 수도 있다. 김씨는 “만약 대한민국이 사형을 부활시키면 다들 이렇게 도망칠 거 아닌가”라며 “어떤 사람은 한국에서 잡혔으니까 사형시키고 어떤 사람은 유럽에서 잡혔으니까 사형 안 시킨다? 형평성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역설했다.

 

2007년 (노무현 정부가) EU와 이런 조약을 맺었던 거는 국회에서 이미 사형제가 폐지될 것으로 보고 결심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사실 김씨도 7월말부터 지금까지 대국민 여론이 엄벌주의로 기울고 있고 사형제를 폐지하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인식하고 있다. 김씨는 “어쨌든 나도 엄벌주의적 목소리가 더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긴 한다”고 밝혔다. 김씨는 사형제 존폐 여부를 놓고 정치권, 언론, 학계, 시민사회, 일반 국민 등등 모두가 깊은 숙의의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형은 단순하게 보면 형벌이기도 하지만 인간에 대한 철학의 문제가 개입된다. 사형에 찬성하고 반대하는 각자의 철학이 있다. 인간과 사회와 삶에 대한 철학이 있고 종교적인 것도 있다 보니까 그런 문제가 더 크다고 생각을 한다. 이제는 사형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합의할 수 있는 부분을 찾고 결론을 낼 필요가 있다. 양쪽 다 공통적으로 범죄 예방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김씨는 “한국이 (집행이 전제된) 사형제를 부활시키기 어렵고 폐지될 수밖에 없다”며 “이미 김태현 같은 흉악범에게 사형을 선고하지 않는 만큼 사형제는 의미가 없다. 이런 걸 다 감안해봤을 때 도저히 반전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냥 이대로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결론을 냈다.

 

한편, 유남석 헌재소장이 11월10일 퇴임을 앞두고 사형제가 위헌인지 합헌인지 세 번째 결론을 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미 2022년 7월 공개 변론까지 개최한 바 있는데 1년 넘게 판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 과연 유 소장이 김씨의 예측대로 사형제를 폐지하는 쪽으로 결자해지를 완료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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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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