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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의 ‘서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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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오랜 친구 사이로 알려진 표창원 소장(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과 권일용 교수(동국대 경찰행정학과)는 “과연 악인은 태어나는 것인지 만들어지는 것인지”란 질문에 정반대의 답변을 했다. 권 교수는 “반반인 것 같다”고 했는데 표 소장은 “전적으로 100%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고 운을 뗐다.

 

지난 22일 방송된 jtbc <뭐털도사>에서 표 소장은 범죄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털어놓으면서 학창시절 동창생 2명이 모두 사형수가 된 이야기를 꺼냈다. 중학교 동창과 고등학교 동창이 각각 강간살인과 유괴살인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는 것이다. 표 소장은 “내가 봤던 모습에는 전혀 그런 모습이 없었는데 나중에 찾아봤더니 결국 직면한 상황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나쁜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그걸 발견하고 중단하게 할 사회적 규제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 결과 그들이 악마가 되고 괴물이 되고 결국 무고한 피해자들을 처참하게 살해하게 됐다.

 

 

사실 본래부터 흉악범의 DNA를 갖고 태어났다고 말하면 참 간편하고 쉽다. 원래 나쁜놈이기 때문에 공동체가 바뀌어야 할 부분은 없다. 그러나 그들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면 악마가 되기 전에 막을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을 모색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진보진영에서 흔히 통용되는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는 주장이 요즘 들어 강력한 반론에 직면하고 있다. 범죄자들의 서사에 주목하면 결국 합리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고 그 자체로 피해자와 유족에게 2차 가해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취지인데, 2018년 이후 더불어민주당 고위직 인사들이 성범죄 미투를 당하면서 그들의 지지자들이 가해자를 옹호했을 때 “성범죄 가해자의 서사에 주목하지 말아야 한다”는 명제가 힘을 얻었다. 실제로 안희정과 박원순 등이 불명예 퇴장을 한 이후 그들에 대한 방어를 목적으로 책과 영화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런 맥락 말고 사회적으로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는 일반 흉악범들에 대한 서사를 들여다보는 것은 2차 가해와는 별개로 의미가 있다.

 

악인들은 우주 공간에서 생겨난 게 아니라 분명 우리가 두 발 딛고 서있는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졌다.

 

장강명 작가는 조선일보 칼럼에서 “서사 없이 어떤 인간이 악인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며 “어떤 사람을 악인이라고 규정할 때 우리는 그에 대해 이미 서사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는 요구는 어떤 인간에 대한 이해를 어느 지점에서 멈추겠다. 그에 대한 도덕적 판단은 끝났다는 선언”이라고 강조했다.

 

인류사에는 한 개인의 광증이나 직업 범죄자의 탐욕에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거대한 악행이 있어 왔다. ‘성전’이라고 하는 끔찍한 집단 학살을 저지른 자들은 예외 없이 자신들이 정의를 수행한다고 여겼다. 상대를 악인으로 묘사하는 얄팍한 서사를 굳게 믿었기에, 그 이상의 서사를 들으려 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악인을 처단하기 위해 악행을 반복하는 지독한 아이러니는 작은 규모로도 흔히 일어난다.

 

굳이 서구 사회에서 자행됐던 마녀사냥이나 홀로코스트 등과 같은 거대한 역사적 사례들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요즘 벌어지고 있는 무차별 살인 사건들의 악인에게만 모든 책임을 덮어씌우고 제대로 된 정책적 변화를 모색하지 않는 국가 공동체의 행태가 바로 “악인을 처단하기 위해 악행을 반복하는 지독한 아이러니”가 아닐까 싶다. 악인에 대한 악마화만 실컷 해놓고 정작 기초적으로 개선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는 손을 놓고 있다. 배상훈 교수(우석대 경찰행정학과)는 “공공장소에서 벌어지는 다중을 상대로 하는 범죄에 대한 대비 수칙을 수립해야 한다”면서 △기마 경찰과 같은 ‘공간 치안’ 개념 도입 △법무부와 행정안전부, 경찰청이 범죄 재발이 우려되는 인물들에 대한 관리 부실 등을 거론했다.

 

물론 수사당국이나 관계부처 나아가 연구자들이 흉악범에 대한 서사를 들여다보고 대책을 모색하는 것과는 다른 패턴으로, 말초적인 언론 보도들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이상민 연구위원(나라살림연구소)은 페이스북을 통해 “예전 숭례문 방화 사건 때 방화범의 목적이 언제 성공했을까? 자신의 방화 목적이 전국에 알려졌을 때였다. 그래서 사회적 이슈를 노린 범죄자에겐 마이크를 들이대면 안 된다. 이건 알권리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클릭 장사의 이익과 방화 목적을 알리고 싶은 범죄자의 이익 카르텔일 뿐이다. 안타깝게도 당시 방화범의 목적이 전국에 지겹게 알려졌다. 최근 묻지마 칼부림이 많이 보도된다. 우리나라는 치안이 꽤 좋은 나라다. 범죄 검거율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검거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에겐 우리나라 치안 상황이 무용지물이다. 이들은 평온한 사회를 혐오하는 것 같다. 자기만 지옥에 사는데 자기 주변이 너무 평화로운 것을 억울해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자신과 헤어진 전 여친 동네에서 묻지마 칼부림을 한다고 한다. 이 칼부림 음모자의 목적이 성공할 때는 언제일까? 전 여친이 자기 때문에 폐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챌 만큼 사회적 이슈가 될 때다.

 

악인의 서사를 탐구해야 한다는 주장과, 악인의 범행 목적이 떠들썩하게 알려지게 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 공존할 수는 없을까? 사실 끔찍한 살인사건이 벌어졌을 때 한국 언론의 보도 문법이 달라져야 할 필요가 있겠지만 가해자의 워딩을 싣지 않는 것을 기대하는 건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악인의 워딩과 성장배경이 알려질 수밖에 없고 그것이 알려졌을 때 그런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해야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을지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

 

광주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회활동가 김동규씨는 얼룩소에 올린 글을 통해 “가해자는 대체 왜 그같은 범행에 이르렀나? 이런 질문은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질문이다. 가해자의 서사를 검토하지 않고 그들이 등장할 때마다 배제하는 식의 처벌 일변도 정책을 펼치는 건 범죄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모든 범죄에는 사회적 측면이 있다. 인구 10만명당 500명을 감옥에 가둔 미국의 엄벌주의는 실패했다. 사람들을 그저 가둬두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고 설파했다.

 

흉악범의 공통적 습성을 살펴보면 어린 시절의 폭행 범죄가 절도와 강도로 이어진 후 성범죄와 살인으로 강화되는 특성이 있다. 가해자의 이와 같은 습성을 파악하지 않고 어떻게 그들을 교화시키고 강도 단계에서 범행을 멈추게 할 수 있을까?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해자의 서사를 면밀히 분석하지 않을 수 없다. 가해자의 서사 즉 나이, 직업과 경력, 성행, 지능, 교육 정도, 성장 과정, 가족관계, 전과의 유무, 피해자와의 관계, 범행의 동기 등은 늘 그랬든 면밀히 분석되고 검토되고 양형에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를 더 나은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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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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