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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공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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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30일 광주에서 <팬덤 정치,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개최된 박상훈 박사의 강연과 대담을 정리한 기획 기사 시리즈 마지막 6편입니다.

 

[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일하는 국회”라는 담론이 있다. 국회의원들이 일을 안 한다는 거다. 그래서 일할 수 있는 국회의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건데, 여야가 툭하면 서로 공세를 취하면서 상습적으로 국회를 올스톱시키는 문제에 대한 고찰이라면 환영이다. 하지만 단순히 입법 숫자 또는 상임위 출석을 산술적으로 체크해서 더 많이 일해야 한다는 식이라면 곤란하다.

 

정치학자 박상훈 연구위원(국회미래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은 아래와 같이 주장했다.

 

국회는 맨날 싸움만 하는 것 같으니까 지난 10년 동안 일하는 국회를 만들자는 주장이 강했다. 근데 이 국회는 일을 많이 하는 곳이 아니어야 된다는 생각을, 우리 시민사회나 특히 언론인들이 해야 된다. 국회는 정치를 하는 곳이지 기업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공장이 아니고 다양한 생각들 사이에서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고 뭔가 성과를 많이 내야 되는 곳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

 

 

박 위원은 지난 10월30일 19시 광주 서구 서구문화센터에서 개최된 ‘열린 대담’(정의당 강은미 의원실 주최)에 강연자로 초대됐다. 이 자리에서 박 위원은 “전세계에서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최고 많이 일한다”며 “국회의원들은 새벽부터 배드민턴장이나 새벽 기도를 가지 않게 해줘야 되고, 저녁 시간에는 가족들이나 가까운 사람들하고 정말 중요한 문제를 깊이 상의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을 안 하는 것 아니냐는 편견과는 달리 아침 일찍부터 너무 정신없이 일하다보니 “사회에 필요한 곳곳을 살필 수가 없다는 것”이 박 위원의 문제의식이다. 중요한 것은 “깊은 사고와 논의를 할 여유가 없다”는 점이다.

 

특히 박 위원은 법안 발의 남발 현상에 대해 “정당의 기능이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받아들였다. 정당이란 게 정견을 공유하는 집단이고 “그 정견에 맞는 좋은 법안, 좋은 예산, 좋은 사회활동을 하는지”에 따라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날 행사를 주최한 정의당 강은미 의원은 박 위원에게 국회의원들이 법안 발의수 등 따위로 경쟁을 안 할 수가 없는 현실이라고 전했다. 박 위원은 그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정당은 공장이 아니”라며 “사회 구석진 곳에 정치가 있기 위해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합의하는 것이 국회의 사명이다. 정부가 잘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도 필수적이다. 단순히 산술적으로 일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담론이 지배적일수록 이런 본질적인 정치인의 역할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개인의 능력으로만 따지면 전세계에서 가장 학력 높고 전문적인 자격증을 많이 갖고 있는 게 한국의 정치인들이다. 단 이들을 묶어줄 정당의 발전이 아직 과제로 남아 있다. 정치인들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공직 활동에 전념할 수 있을 만큼의 조건이 안 갖춰져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과로하는 정치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

 

국회의원들이 과로하지 않고 국가적 의제에 깊이 고민할 수 있는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좋은 정당이 필요하다. 박 위원은 좋은 정당이라면 “영입보다는 젊은 나이 때부터 정치에 관심을 갖도록 해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치에 관심을 일찍 갖는 아이들이 훨씬 공적인 인간이 된다. 권력을 탐하지 않는다? 그렇게 비정치적인 것을 좋게 보는 걸 거꾸로 생각해야 된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지지받으려면 다른 사람들의 삶을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정치적 훈련이 필요한데) 영입은 정치의 규범이 될 수 없다. 오랫동안 정치 경험을 축적한 사람들이 선출직의 단계를 밟아가도록 해야 한다.

 

박 위원은 정세균 전 총리가 쌍용의 상무이사 출신이었다가 국회로 들어와서 예산 보는 데 8년이 걸렸다는 점을 환기했다. 그만큼 정치인들이 어린 나이에 좀 더 빨리 입문해야 하며, 정치인이 된 이후에도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와 여유가 주어져야 한다. 독일만 보더라도 국회의원 총 730명 중 초선의원이 273명이다. 이들의 평균 당적 보유 기간은 18년이다. 한국 정치 신인들에 비해 매우 길다. 우리 21대 국회 초선의원의 당적 보유 경력은 통상 2년 이내로 독일에 비하면 턱없이 짧다. 정당 경험을 통해 정치의 숙성 기간을 거치지 않고 외부 수혈을 통해 급하게 들어오는 것이다. 독일은 국회의원들의 지방의원 경험이 80% 가량이다. 한국은 초선의원 평균이 50대 이상인데 독일은 42세로 비교적 젊다. 박 위원은 “초선의원의 나이가 젊고 이들이 자주 안 바뀌는 나라일수록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초선의원들의 수준 걱정이 많아서 방송 너무 많이 못 나오게 결의도 했었다. 정치의 숙성 기간을 인정해야 한다. 흔히 국회의원들을 많이 교체하는 것이 개혁인 것처럼 호도하는데 이렇게 많이 교체하는 것은 정당들이 좋아지지 않는 것의 알리바이다.

 

재차 거론하지만 오랫동안 정치적 훈련을 시킬 수 있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 박 위원은 “정당은 선출직 공직 후보자를 양성하는 기관이지 프로야구 구단도 아니다. 성공하는 인물을 영입하는 곳이 아니”라고 설파했다.

 

 

질의응답 시간에, 여성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 A씨는 같이 일하고 있는 페미니스트 여성 직원 2명이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해서 “개딸”이 됐다는 점을 거론했다. 정의당이 아닌 민주당에 가입하게 된 것도 대선 정국 당시 반페미에 가까운 윤석열 정부의 출범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었기 때문인데, ‘팬덤 정치’ 현상을 비판적으로 고찰한 박 위원에게 이들을 바라볼 때 좀 더 입체적인 관점으로 조명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박 위원은 ‘대의제 민주주의자’로서 정치적으로 좋은 대표를 잘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시민들이 무조건 정당과 정치인을 욕하고 정치 팬덤화되어 지나치게 참여하는 것을 부정적인 관점으로 보는 편이다. 그런 점에서 직접민주주의의 위험성에 주목한다. 다만 박 위원은 “시민들의 결사의 권리”가 굉장히 중요하며 “비슷한 뜻을 가진 사람들이 결사해서 활동해보는 이 결사의 경험이 너무 부족하다”고 단서를 달았다. 단순히 “개개인들의 판단으로 정치권에 압력 행사만 하지 결사의 경험으로 의견을 조율하는 것들을 경험해보지 못 했다는 것”이다. 덧붙여서 “결사의 참여가 발전한 나라들에서는 시민들이 대표를 선출하고 참을성과 지속성을 갖고 지켜봐준다”며 “결국 쉽게 화를 내는 정치가 팬덤 정치”라고 풀어냈다. 페미니스트로서 반페미 정치인이 최고 권력을 갖게 되는 걸 우려해서 민주당에 입당하고, 이재명을 지키기 위해 개딸이 되어 “수박”을 색출하는 식의 강경한 활동을 하는 것보단 여성 인권과 관련된 다양한 결사단체에서 경험을 쌓으면서 의견을 조율해보는 것이 더 낫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지금 소속된 여성단체 활동에 좀 더 집중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끝으로 박 위원은 인류사가 2000년 넘게 고민해서 현대 대의제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왔다는 점을 환기하며 “오히려 직접민주주의 아래에선 여성이 정치적 권리를 누릴 수 없고, 미국의 흑인들도 대의제 민주주의라서 가능했고, 프랑스가 사형제를 폐지한 건 직접민주주의에선 불가능했다”고 밝혔다.

 

스위스에서 이슬람의 권리 문제를 다룰 수 있었던 것도 그렇고, 난민 문제도 마찬가지다. 대의제 민주주의가 양심적 정치의 여지를 넓힌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다 개인으로서만 투표하라고 하면 눈앞의 나약함과 두려움이 부추겨져서 브렉시트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영국에서도 대의제 민주주의, 정당 정치가 약화되는 배경 속에서 브렉시트가 결정됐다. 다만 대의제 민주주의 하에서는 정당과 국회의 기능이 잘 수행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과도한 확신 보다는 좋은 정당 하나를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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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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