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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생’으로도 불가능한 청년들의 애티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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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분야별로 봤을 때 모든 걸 잘 하는 인물들이 있다. 축구계에서는 드리블, 스피드, 킥력, 패스 센스, 피지컬 등 모든 항목에서 우수한 능력치를 갖고 있는 축구선수가 있고. 한국 아이돌계에서는 외모, 노래, 댄스, 예능감, 인성 등 어느 하나 취약한 부분이 없는 멤버가 있다. 특정 분야를 넘어 일반적으로 나열해보면 외모, 학력, 자산, 직업, 집안, 성격, 취미와 특기 등등이 있을 것이다. 근데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면? 항목별 특징을 나타내는 육각형 그래프를 꽉 채워서 말 그대로 완벽한 육각형에 가깝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엄친아와 엄친딸로 불렸다. 그냥 단순히 잘 나가는 사람을 넘어 육각형 인간으로 불리려면 선천적인 배경이 탁월해야 한다. 금수저도 부족하다. 다이아몬드 수저나 로얄 수저쯤은 돼야 한다.

 

 

이수진 연구위원(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은 “육각형 인간이라는 말은 가치관에 대한 것”이라며 “여기서 핵심은 뭐냐면 내가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것들을 선망하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은 지난 11월22일 15시 광주 서구 광주관광기업지원센터에서 열린 멘토링 강연에 참석해서 최근 웹툰 인기 트렌드에 대해 거론했다.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많이 찾는 인기 웹툰의 내용이 과거와는 좀 달라졌다. ‘환생’과 ‘빙의’를 통해 아예 다른 삶을 사는 주인공이 등장해야만 한다.

 

사실 저희가 네이버 웹툰을 기획하는 사람과 인터뷰를 하면서 그 이유를 찾아냈다. 최근 몇 년 사이 굉장히 큰 변화가 있었다고 이야기해줬던 게 뭐냐면 원래 웹툰은 인기가 있는 서사, 스토리 라인 이런 게 있는 것이 인기가 많았다. <이태원 클라쓰> 같은 거 있지 않은가. 막 엄청 노력해서 부모의 적을 무찌르고 성공하는 이런 스토리를 훨씬 더 좋아했었다. 근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요즘 어떤 게 제일 인기가 많은지 아는가? 예를 들어 주인공이 잠을 자다가 눈을 떴다. 근데 아빠가 재벌 2세다. 그럼 난 재벌 3세? 실제로 내가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것들을 선발하고 있는 이런 경향성이 사회 곳곳에서 굉장히 많이 캐치가 되고 있다.

 

매년 발간되는 <트렌드 코리아> 2024년 버전에서 소개된 10가지 키워드(DRAGON EYES)는 아래와 같다. 이중 세 번째로 나오는 것이 바로 육각형 인간이다.

 

①분초 사회(Don’t Waste a Single Second: Time-Efficient Society)

②호모 프롬프트(Rise of ‘Homo Promptus)

③육각형 인간(Aspiring to Be a Hexagonal Human)

④버라이어티 가격 전략(Getting the Price Right: Variable Pricing)

⑤도파밍(On Dopamine Farming)

⑥요즘 남편 없던 아빠(Not Like Old Daddies, Millennial Hubbies)

⑦스핀오프 프로젝트(Expanding Your Horizons: Spin-off Projects)

⑧디토 소비(You Choose, I’ll Follow: Ditto Consumption)

⑨리퀴드폴리탄(ElastiCity. Liquidpolitan)

⑩돌봄 경제(Supporting One Another: ‘Care-based Economy’)

 

육각형 인간이 되고 싶지만 될 수 없는 청년들은 자기 계급에 맞는 소비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일례로 ‘자동차 계급도’가 있다.

 

신입사원이 승진해서 월급이 올랐으니 이제 첫 자동차를 사고 싶다고 가정해보면 그냥 뭐 자기가 좋아하는 차를 사면 된다. 그런데 요즘 청년들은 그렇지 않다. 굳이 또 온라인에 물어본다. 형 나 이번에 월급 얼마 올랐는데 K3 사도 돼? K5 사도 돼? 이렇게 글을 올린다. 그러면 회원들이 아니야 아직 걸어다녀! 약간 이런 식으로 서로 티키타카를 하고 있는 건데 그러니까 소득별 구매할 수 있는 합당한 자동차 계급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 자기 계급과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다. 타인들로부터 객관적으로 나는 지금 이쯤 되는구나. 이런 진단을 내리고 계급 상승을 위해 더 노력하거나 받아들이는 행동양태를 보이는 청년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 위원은 “이러한 분위기가 사회 전반적으로 많이 느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근데 95%의 평범한 청년들은 육각형 인간이 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올드머니 룩’ 패션이 유행하게 됐다. 어떤 행간이 있는 걸까?

 

요즘 올드머니 룩이 대세다. 그러니까 올드머니라는 게 뭐냐면 뉴머니에 대치되는 개념이다. 뉴머니는 신흥 부자고, 올드머니는 유서 깊은 집안이 대대로 부를 일궈낸 그런 부유층이다. 그런 올드머니가 입을 법한 패션이 유행하고 있는 것은 사실 아까 웹툰 경향성과 마찬가지다.

 

어떻게 보면 슬픈 일이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정해진 자기 계급의 범위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웹툰으로라도, 패션으로라도 로얄 수저를 선망해보는 것이다. 또는 그렇게 될 수 없는 자기 처지에 대한 자조의 의미도 있을 것이다. 물론 스펙과 커리어를 잘 관리해서 조금이라도 위로 올라가려는 움직임도 병존하고 있다. 미국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것 중에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라는 게 있다. 술에 취하면 실수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아예 술을 멀리 해서 항상 맨정신을 유지하려는 것이고, 다음날에도 숙취로 고생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는 함의가 있다.

 

미국 10대~20대 사이에서 소버 큐리어스라는 챌린지가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소버라는 게 무슨 뜻이냐면 맨정신이라는 뜻이다. 술 안 취함이다. 미국 애들도 이제 대학에 들어가면 막 술 많이 마시는 문화가 분명히 있는데 그런 문화가 좀 많이 얕아지고 있다. 그래서 소버 큐리어스 같은 챌린지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요즘 미국의 10대, 20대들도 인터뷰를 들어보면 이런 거다. 인스타그램에 내가 흥청망청 취해 있는 사진이 올라와서 나의 미래 커리어에 뭔가 허들을 만들고 싶지 않다. 이런 말을 대놓고 하더라.

 

한국 청년들도 미국과 다르지 않다. jtbc 드라마 <청춘시대>에서 윤진명(한예리 배우) 캐릭터를 떠올려보면 이해가 쉽다. 윤진명은 아래와 같은 캐릭터다.

 

명문대 졸업반으로 28살이다. 과외, 이삿짐 나르기, 편의점, 레스토랑 알바를 뛰며 식물인간 남동생과 빚쟁이 어머니를 책임지느라 휴학을 여러 번해서 졸업이 매우 늦다. 학교를 다니면서 알바하고 취업 준비까지 하느라 너무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팍팍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 캐릭터의 모든 면에서 드러난다. 말투도 굉장히 차분하고 정갈하며 어떻게 보면 딱딱하게 느껴진다. 워낙 정신줄을 꽉 잡고 사는 캐릭터라 말투에서도 이런 면이 드러난다.

 

윤진명 만큼 극단적인 상황에 놓여 있진 않더라도, 한국 청년들은 걱정없이 오랫동안 줄창 놀 수 있을 만큼 녹록치 않다. 생존을 위해 또는 레이스에서 탈락하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눈에 보이기 때문에 하고 싶은 것과 놀고 싶은 욕망을 적당히 자제할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갓생’을 실천해야 한다. 젊은 친구들은 열심히 살자고 스스로 다짐할 때 “갓생 할 거야”라고 표현한다. 아래는 네이트판에서 유명해진 갓생의 표본이다.

 

1. 일단 아침 6~7시에 일어나서 간단하게 외출 준비하고 산책한다.

2. 산책하면서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아침 먹고 9시까지 산책한다.

3. 돌아와서 샤워한 다음에 1시간 정도 공부한다.

4. 점심먹고 또 2시간 공부한다.

5. 전자기기 사용하지 않고 20분 휴식 후 또 3시간 공부한다.

6. 욕조에 물 받고 목욕 후 꼭 과일로 저녁을 먹으며 영화 한 편 본다.

7. 이후 2~3시간 공부하고 잔다.

 

 

육각형 인간으로 설명해볼 수 있는 요즘 젊은이들의 풍경에 대해 이 위원은 2가지 해석을 내렸다. 첫 번째는 한국 사회의 성장 동력이었던 일종의 모험심 추구 성향이 줄어들고 있다. 두 번째는 확실히 자신의 사회적 계층 사다리를 바꾸기 어려울 것 같다고 자조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그 어느 때보다 인스타그램과 틱톡 등으로 타인과의 비교 관찰이 일상이 된 시대다. 오르지 못 할 나무는 쳐다도 보지 말라고 했지만 쳐다보며 자조하는 한 숨만 늘어난다. 동시에 틈새를 비집고 가진 자가 된 것처럼 코스프레를 해보고, 나의 삶을 열심히 살아간다.

 

나 오늘부터 갓생 살거야! 육각형 인간 트렌드는 완벽을 지향하는 사회적 압박을 견뎌야 하는 젊은이들의 활력이자 절망이면서 일종의 놀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현대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계층 고착화라는 사회적 문제를 보여주는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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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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