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 천하람 변호사(국민의힘 순천광양곡성구례 갑 당협위원장)는 2019년 조국 사태 이후 '젊은 보수'라는 단체를 만들어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이듬해 2020년 총선 당시 같이오름, 브랜드뉴파티 등과 함께 지금의 국민의힘으로 합류했는데 천 변호사가 겪은 정치판은 한 마디로 진입장벽이 높은 고비용 구조였다.
천 변호사는 10월28일 저녁 광주 동구에 위치한 YMCA 무진관에서 개최된 <청년의 정치 참여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가?> 토론회에 참석했다.
공진성 교수(조선대 정치외교학과)의 발제를 듣고 토론을 하게 된 천 변호사는 지금의 정치판과 선거에 대해 "예측 불가능하고 너무 고비용 구조"라고 강조했다. 빽 없이 정치에 도전하려면 시간도 많이 써야 하고 돈도 많아야 한다. 오죽하면 교수, 법조인 등 전문직만 정치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평범한미디어는 실제 호남권에 있는 기초단체에서 군수로 출마를 준비했던 모 인사의 사례를 접하게 됐는데 그는 공기업 간부 출신으로 절대 가난한 사람이 아니었다. 꽤 돈이 있는 중상류층이라고 볼 수 있었는데 공천을 받기 위한 온갖 활동에 들어가는 비용과, 선거를 준비하는 각종 비용이 너무 커서 결국 포기했다. 그는 "반드시 군수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돈만 있었다면 출마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60대 초반 중장년이다. 하물며 경제 기반이 취약한 청년세대의 정치 도전은 얼마나 벽에 부딪쳤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물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치를 지망하는 나 자신이 대외적으로 엄청 유명해지면 된다. 지나가는 시민 아무나 붙잡고 물어봤을 때 알만한 정도이면 된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그 급이라면 각종 방송과 라디오 출연으로 생활비를 벌 수 있고, 인맥도 쌓고, 내공도 기르면서 출마 경험을 쌓을 수 있다. 매번 출마할 때마다 여러 경로로 거액의 후원금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인지도를 쌓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차라리 연예계로 진출하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이준석 사례는 0.001%의 극히 드문 경우다.
천 변호사는 "청년이 정치에 관심이 있고 없고, 자리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일단 청년은 사회적 지위와 돈이 없다"며 "그런데 고비용 정치판에 뛰어들 수 있겠는가? 차마 엄두가 나질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전문직, 정치인 출신 부모를 둔 자식, 사업으로 어느정도 재산을 모아둔 성공한 기업인 등 엘리트들만 정치판으로 뛰어든다.
특히 정치권에는 전문직 출신들 중에서도 유독 판사, 검사, 변호사 등 법조인들이 즐비하다. 2020년 총선에서 117명의 법조인 후보가 출마했고 이중 46명이나 당선됐다. 300명 중 15.3%에 달한다. 전국민의 15%가 법조인일리가 없을텐데 유독 출세의 끝판대장으로 불리는 국회에는 법조인들이 많다. 법조인은 △우선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지위라고 할 수 있고 △국회 자체가 법률을 다루는 입법기관이다 보니 정치 도전에 메리트가 있고 △낙선해도 바로 변호사 영업을 하면 되니 돌아갈 곳이 있다는 점 등 엄청난 비교우위들을 갖고 있다.
석박사학위 이상을 취득한 교수도 비교적 텀을 두더라도 바로 현업 복귀가 가능한 만큼 법조인과 같이 정치권 진출에 용이한 편이다.
반면 비전문직 출신 평범한 청년들은 정치권에 뛰어들었다가 빚만 잔뜩 지고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 정치는 시간과 노력이 너무 많이 든다. 유력 정당의 대변인이나 최고위원이 됐다면? 매일 같이 국회와 당사로 출근해야 한다. 월급은 없고 소정의 법인카드 활동비가 지급될 뿐이다. 돈을 벌어야 생활을 할텐데 그럴 시간이 없다. 그저 최고위원으로서, 대변인으로서 언론 조명을 받을 수 있는 기회 또는 정치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는 명분으로 열정페이를 강요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전문직, 정치인 출신 부모를 둔 정치인, 부잣집 자제, 잘 나가는 사업가 등이 장악한 국회가 비정규직 노동자와 기초수급자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을까? 다양한 민의를 반영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사실 청년 정치인 뿐만이 아니라 농민, 노동자, 장애인, 고졸, 다문화, 성소수자 등등 더 다양한 보통 시민들이 정치권으로 진입할 수 있어야 한다.
천 변호사는 이런 문제를 바로잡고자 △투명한 공천시스템 구축 △생존 확률 예측 △오디션 △원외 정치인에게 비용 지원 등의 대안이 도입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천 변호사는 본인이 당협위원장임에도 "지금처럼 당협위원장이 지방의원 공천을 할 수 있으면 유능한 젊은 인재 보다는 지역위원장을 위해 돈과 시간을 넉넉히 쓰는 사람을 뽑게 된다"고 지적했다.
생존 확률이라는 것은 예측 불가능성을 줄여보자는 취지다. 청년들이 기약없이 인생을 낭비하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해야 한다. 천 변호사는 당내 지역 및 청년 조직에서 어느정도의 평가를 받으면 기초·광역·국회의원 공천을 받을 수 있는지, 나아가 재선·상급으로 점프 등을 할 수 있는지 예측가능한 시스템과 관행을 구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관련해서 이 대표는 최근 당규를 개정해서 당초 공약했던대로 지방의원들에 대한 자격시험을 실시하기로 했다. 정당 사상 최초다. 국민의힘은 내년 지방선거에 한해 출마자들을 대상으로 정당법·지방자치법·정치자금법·당헌·당규, 경제·외교·국방 등 시사 현안을 주제로 시험을 실시한다. 진중권 전 교수 등은 이런 이 대표의 조치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지만 그동안 빽이 없어 구의원 공천을 받지 못 한 일부 청년 정치인들은 환영 의사를 밝혔다.
천 변호사는 오랫동안 일관적으로 굳어져온 공천 시스템을 강조했고 '인재양성위원회'의 독립적인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천 변호사는 "원외 정치인 후원회 개설 허용"을 위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다른 토론자로 말을 이어간 문정은 정책위원장(정의당 광주시당)은 "청년 정치 담론이 단순히 세대 교체의 의미로 좁혀서 볼 게 아니라 좀 더 정치의 다양성을 가지고 가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런 측면에서) 청년세대가 정치판에서 너무 과소 대표되는 경향이 있다"며 "다양한 세대가 공존할 수 있는 정치 구조를 만들 방안을 고민해야 된다"고 밝혔다.
문 위원장은 최근 두 차례의 총선(2016년과 2020년)에서 전체 투표율에 비해 청년들의 투표율이 낮았다는 점을 환기했고 지금 국회 구성을 봤을 때 20~30대 의원이 여전히 4.3%에 불과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초의회와 광역의회도 마찬가지다. 한 마디로 한국의 40세 미만 청년 유권자가 전체 유권자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국회나 지방의회에서 과소대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타국과 비교해봐도 한국의 청년 정치 현황은 처참한 수준이다. 서구권 국가들의 청년 정치 참여율(40세 이후 청년 의원 비율)은 최소 10% 이상에서 30%까지 간다. 그러나 한국은? 5%에도 미치지 못 한다.
문 위원장은 "이처럼 청년 정치 대표성이 낮은 이유는 기성 정치인들에게 유리한 선거제도, 청년들의 활동이 제한되고 있는 현행 정당 구조 등에서 찾을 수 있다"며 "청년은 정치적 기반이나 경제 여건 등 선거 경쟁력이 낮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보다 많은 청년들이 의회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이를 보완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유럽 민주주의 선진국들에서 일반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비례대표제 100%(한국은 전체 300석 중 고작 47석 15%) △낮은 피선거권 연령 △청년할당제 등을 거론했다.
그리고 문 위원장은 "경제 기반이 취약한 청년층의 선거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선거 기탁금 기준을 낮추고 청년 후보를 추천하는 정당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대책도 필요하다. 청년 후보의 경우 기탁금을 낮추거나 선거 후 기탁금을 반환받을 수 있는 득표 기준을 낮춤으로써 청년 후보의 부담을 줄여주는 내용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청년 후보의 절대 숫자가 늘어나야 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청년들이 정치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더 다양한 목소리가 대표되어야 한다"고 마무리했다.
마지막 토론자로 나선 김설 위원장(광주청년유니온)은 "한국 정치가 이념 또는 방향의 차이를 찾을 수 없는 양당 중심의 갈등적 정치 구조를 60년 이상 유지하고 있다"면서 이런 양당체제 자체를 문제시했다.
이어 "여운형의 좌우합작 운동, 조봉암의 진보당, 민노당, 정의당 등 거대 양당체계를 부수기 위해 부던히 노력했지만 끝내 이를 넘어서지 못 하고 있다”며 "최근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로의 정치 개혁이 부족한 수준에서나마 이루어졌지만 비례위성 정당이라는 거대양당의 반헌법적 행위에 의해 좌절되었다"고 읊었다.
거대 양당체제에 균열을 내지 못 하는 상황에서 김 위원장은 독일의 ‘게마인데’ 모델에 주목했다. 게마인데는 한국의 '동' 또는 '리'와 같은 기초 행정단위로 주민들의 투표로 선출되는 시청이 있고 의회가 있다.
김 위원장은 게마인데의 자치 모델에 대해 대부분 시민 참여를 기반으로 한 마을 조직, 이익단체, 동호회 등을 통해 마을 자원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 의회 토론 과정을 통해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지역을 중심으로 풀뿌리 정치의 경험들이 쌓이면 중앙 정치의 담론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파했다. 그야말로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다. '사회적 자본' 이론을 설파한 로버트 퍼트남 교수의 저서 '나홀로 볼링'과도 같다.
풀뿌리 자치 모델에서 청년 정치의 미래를 발견한 김 위원장은 "각 정당 안에서의 노력이 필수적으로 담보되어야 한다. 정당의 문턱을 더 낮고 너르게 만들 필요가 있다"며 "다양한 현안을 다루는 작은 단위에서의 논의를 통해 갈등을 조정하고 자원을 분배하는 결정의 경험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고 시민들과의 접점을 현장에서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