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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박 육아하는 아내에게 뭘 바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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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한연화의 뼈때리는 고민상담소] 40번째 사연입니다.

 

[평범한미디어 한연화] 우선 나는 본래 누군가를 상담할 그릇이 아니라는 걸 미리 알려주지. 본래 상담이라는 건 무조건적인 지지와 공감이 기반이 되어야 하는데 나는 그게 아예 안 되는 사람이거든. 누가 내 앞에서 힘들어서 죽어버릴 것 같다고 징징거려도 내가 생각했을 때 납득이 안 되거나 그 사람이 잘못한 일이면 그 자리에서 “그게 뭐? 네가 잘못한 거잖아”라는 소리가 나오는 인간이 나라서 말이야. 그 사람이 정말로 죽어버리겠다고 악다구니를 쓰며 대자로 드러눕든 너 같은 새끼는 사람도 아니라고 싸대기를 때리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 일단 내가 납득이 안 되는 걸 어쩌란말야. 무엇보다 나는 나한테 하소연하는 사람이 지가 잘못해놓고 오히려 다른 사람을 욕하고 있으면 그냥 패버리는 성격이야. 그런 거 일일이 들어주다가는 내가 화병이 나서 못 살거든. 아 그런데 이게 지금 고민 상담이랑 무슨 상관이냐고? 당연히 있지. 당신이 바로 나한테 뼈를 좀 맞아야 할 그런 놈이거든.

 

 

 

 

야 이놈아. 뭐? 네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주말에도 애기 보려고 노력한다고? 그런데 애기를 본다는 놈이 네 마누라가 애기 잘 때 많이 쉰다는 말을 지껄이냐? 너 솔직히 애기 본 적 없지? 애기를 한 번이라도 봤으면 절대 그런 말이 나올 수가 없어. 애기가 70일이랬지? 애기는 뭐 그냥 눕히면 자는줄 알아? 천만에. 애기들은 스스로 잠을 못 자. 그래서 울음을 그치고 잠들 때까지 안거나 업어서 재워줘야 해. 게다가 좀 성격이 유별난 애기들은 등센서라도 달렸는지 눕혀놓는 순간 잠이 깨서 자지러지게 울어댄다고. 하 진짜 그거 계속 듣고 있다보면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 말 그대로 미쳐. 애기가 안 울어도 그 앵앵거리는 울음소리가 계속 들리는 것 같은 환청에 시달릴 정도로 미친다고. 그걸 말야 애기들이 거의 2~3시간마다 깨서 그러는 거라고. 배고프다고 젖 달라고 우는 게 2~3시간마다고 기저귀 젖거나 똥 싸면 기저귀 갈아달라고 울고. 그 외에도 우는 이유는 다양하니 말을 말자. 아무튼 애기 잘 때도 절대 쉬는 게 아냐. 애기가 잠은 잘 자는지 자다가 아프거나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는지 지켜보는 게 쉬는 거냐? 그리고 네 마누라는 집안일 아예 안 하겠냐? 애기 잘 때 조금이라도 해놔야 할 거 아냐. 애기 빨래를 하든 아니면 유축기나 젖병 등을 씻고 소독을 하든 애기 물건을 정리하든 할 거 아냐. 그런데 그게 쉬는 거라고? 아오 진짜 어이가 없네.

 

자 백 번 봐줘서 네가 주말에 애기를 보려고 노력한다 쳐. 그래도 평일에 너 아침에 출근하니까 새벽에 잠 깨지 말라고 밤새 애기를 보고 있는 건 누구일까? 당연히 네 마누라겠지. 네 마누라는 그렇게 밤새 잠 한 숨 제대로 못 자고 네가 회사에 있는 동안 반찬 3가지에 국이 뭐야? 찬밥 한 술 제대로 떠먹지도 못 하고 샤워는커녕 대소변도 참아가면서 애 보고 있는 거라고. 아무리 친정 부모가 도와준다고 해도 마음놓고 애를 맡기고 천하태평하게 쉴 수 있겠냐? 나이 드신 부모한테 죄송해서라도 그렇게 못 하지. 그냥 잠시 도와주는 동안에 제대로 못 먹은 밥이나 한 술 뜨고 화장실이나 제대로 가고 샤워나 하면서 다시 애 볼 기력 만드는 건데 그걸 네 마누라의 온전한 휴식이라 생각하세요? 하 내가 진짜 할 말이 없다.

 

게다가 뭐? 하루에 한 끼라도 반찬 3가지에 국을 먹고 싶다고? 너 애 보는 동안에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말했다시피 갓난 애기 키우는 동안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어. 너 애기도 안 키우고 다른 가족과 같이 살지도 않는 1인 가구에게도 요리가 얼마나 큰일인지는 아냐? 요리가 취미인 나도 한 번에 2가지 이상 만드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야. 왜냐. 재료 사와야지, 소분해서 보관해야지, 씻어야지, 다듬어야지, 썰어야지 등등. 손이 너무 많이 가니까. 그래서 일하고 온 날이면 밖에서 사먹거나 전에 만들어둔 걸로 대충 때운다고. 그런데 갓난 애기 키우면서 반찬 3가지에 국까지? 가능한 소리를 좀 해라. 아오 진짜 내가 요새 너 같은 인간들 때문에 고민 상담에 회의가 느껴질 지경이야. 알아?

 

아무튼 너한테는 상담이 필요 없으니 어디 네가 하루만 날 잡아서 아침부터 밤새 애 좀 봐라. 그럼 그 소리가 쏙 들어갈테니까. 끝으로 너에게 이 말을 들려주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 중 하나인 <작약만가 : 불환곡>에서 덕빈이 자결하기 전에 순제에게 그러지. 자기 일이 아니니까 친자식이라도 그럴 수 있는 거라고. 여자들의 일은 자기 일이 아니니까 친딸에게도 그럴 수 있는 거라고. 사람을 계집으로만 보는 자들이 무엇을 알겠냐고. 폐하 당신이 롱희를 피워낸 꽃밭에서 우리 모녀는 생으로 썩어들어가고 있던 거라고. 그 말 내가 그대로 돌려줄게,

 

네 일이 아니니까 아내에게도 그럴 수 있는 거야. 애를 보고, 가사노동을 하는 건 네 일이 아니니까 아내에게 그 따위로 말을 할 수 있는 거다. 자기 일이 아니고, 자기 아내의 일이고, 여자들의 일이니까 너를 포함한 일부 남자들은 그럴 수 있는 거다. 하긴 아이를 보고 집안일을 하는 것을 여자들에게만 떠넘기며 집안일 하고 애 키우는 계집으로만 여자를 대해본 자들이 무얼 알까. 그러니 너희를 피워낸 그 꽃밭에서 우리는 평생을 밤을 새워 생으로 썩어들어간 거다.

 

그러니까 네 아내마저 그 꽃밭에서 썩어들어가게 하지 말라고. 알아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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