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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에서 오월을 보는 우리, 남일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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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아시아여성네트워크 황정아 대표

[평범한미디어 김우리 기자] “미얀마를 통해서 5·18을 보기 때문이에요. 미얀마는 41년 전 5월의 광주와 똑 닮아 있습니다.”

 

5·18민주광장에서 매주 ‘딴뽕띠 집회’를 열고 미얀마의 아픔을 소리쳐 알리고 있는 광주아시아여성네트워크 황정아 대표.

 

그는 미얀마가 군부의 탄압과 살상으로 불구덩이가 되자 두 팔 걷어붙였다. 5·18세대이자 여성인권운동가로서 현재 미얀마가 처한 폭력적 상황에 눈 감을 수 없었던 것이다.

 

 

움직인 이는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광주에선 재빠르게 시민사회 연대기구가 만들어지고, 점점 많은 시민들이 관심과 지지를 보냈다. 지난 두 달 간 미얀마의 민주화투쟁과 참상을 알리는 사진전, 집회, 성금 모금 등 미얀마를 향한 연대의 물결이 이어졌다. 그 물결과 함께 해 온 그에겐 “이곳이 광주”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

 

“군부독재에 맞선 민간인들이 처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에서 광주의 오월을 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남의 일이 아니라는 마음으로 함께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어요. 우리가 좀 더 일찍 경험하고 아팠던 만큼 미얀마에 공감하고 연대를 보내는 마음의 크기가 남다른 것 같습니다.”

 

 

매주 5·18민주광장 ‘딴뽕띠 집회’ 사회자로

 

지난 3월8일부터 토요일마다 5·18민중항쟁의 최후 격전지,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에서 딴뽕띠 집회가 열리고 있다. 냄비와 꽹과리 등을 두드려 악귀를 쫓는 미얀마의 전통 ‘딴뽕띠’를 따와서 미얀마 군부에 저항하는 투쟁을 향한 연대의 뜻을 모으는 집회다. 황 대표는 딴뽕띠 집회에서 고정 사회자로 마이크를 잡았다.

 

“미얀마 현지 상황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싶어서 여러 시민단체, 개인들과 연대해 집회를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한 달 정도만 진행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냄비랑 꽹과리를 두드리면서 미얀마를 응원하는 영상을 보고 많은 미얀마 국민들이 응답을 해오는 거예요. ‘큰 힘이 되어주어 고맙다’고요. 그 말에 차마 그만둘 수가 없었어요.”

 

 

두 달 간 이어온 딴뽕띠 집회는 5월1일(9차 집회) 이후 잠시 휴지기에 들어간다. 대신 시민단체 연대기구는 다양한 방식으로 미얀마 연대를 지속할 방침이고, 황 대표 역시 몸담고 있는 단체 차원에서 실질적인 지원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

 

그는 이번 쿠테타 사태가 벌어지기 전부터 미얀마와 각별한 인연을 이어왔다. 미얀마 난민 여성들을 지원하고 현지 활동가들과 연대를 지속해 온 것. 2016년 한 해 동안 미얀마 바간으로 난민 여성 지원 해외 봉사를 다녀온 것이 계기였다.

 

“미얀마는 빈번한 내전과 불안정한 정치상황 탓에 국민들의 삶이 녹록치 않았어요. 특히 ‘IDP(Internally displaced person)’라고 불리는 실향민 여성들은 캠프에서 지내며 각종 폭력에 노출되었고, 지역 원주민으로부터 학대와 차별을 받고 있었습니다. 저는 1년 간 현지 NGO단체들과 교류하며 실향민 여성들을 보호하고 자립을 돕는 지원활동에 참여했어요. 그리고 그 경험은 제게 커다란 숙제 하나를 던져 주었습니다. 국가 폭력에 의해 생존권을 위협 받는 3세계 여성들을 위해서 한국인인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었습니다.”

 

 

그는 귀국한 뒤 민을 실현하기 위해 지역을 기반으로 광주아시아여성네트워크를 2017년 출범했다. 뜻을 같이하는 5명의 소모임에서 출발해 지금은 100명의 회원이 함께 하는 비영리 단체로 거듭났다. 그 동안 실향민 여성들의 치유와 자립을 위한 ‘룰루랄라 치치킹킹(미얀마어로 자유롭게 평화롭게) 프로젝트’, 재봉틀을 제공하고 기술교육과 강사비를 지원하는 ‘재봉틀 프로젝트’ 등을 진행했다.

 

올해는 미얀마 국내 상황 때문에 사업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 그와는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황 대표를 절망하게 하는 건 시위 한 복판에서 무차별적으로 벌어지는 폭력과 살상이다.

 

“오랫동안 교류해 온 그곳의 여성활동가들이 시위에 참여하거나 시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수시로 미얀마 친구들의 SNS에 들어가서 안부를 확인하는 게 일과가 되었어요. 여성의 인권 수준이 굉장히 낮은 미얀마에서 활동가와 여성들이 언제 폭력에 희생될지 모르기 때문이에요. 혼란스러운 정국일수록 국가폭력에 가장 취약한 이들이 소수민족, 여성들이니까요. 실제로 불법 체포된 여성들이 군경에 의해 성폭행 당하고 유린당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고요.”

 

 

지난 4년 동안 그가 만나고 지원한 미얀마 여성들이 수백 명이고, 교류하고 있는 미얀마 활동가들 수도 적지 않다. 이들의 안전이 걱정되어 “살얼음 위를 걷는 듯 조마조마 하다”고.

 

그러나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로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5·18이 그랬듯 미얀마도 거친 풍파를 이겨내고, 끝끝내 민주주의를 꽃피워낼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5·18이 그러했듯 미얀마도 끝내 이겨내리라고

 

“시위에서 사망자가 속출하던 날 걱정하고 있는 제게 미얀마 활동가들이 메시지를 보냈어요. ‘너무 걱정하지마. 대신 한국 정부를 설득해줘. 미얀마 시민들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줘.’ 그 때 정신이 번뜩 들었어요. 군경의 총구에 맨몸으로 맞서고 있는 그들이 오히려 저를 위로하면서 부탁을 하는 거예요. 그 결연함 앞에서 저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41년 전 광주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민주와 자유를 외치며 많은 피를 흘렸던 그 때, 광주도 그런 결연함과 굳건함으로 싸우고 버텨낸 것이죠. 미얀마도 언젠가는 민주주의를 꽃 피우고 웃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5·18을 겪은 광주가 살아있는 증인이고, 그 증인이 미얀마를 향해 ‘함께한다’ ‘힘내라’며 응원을 보내고 있으니까요.”

 

 

광주아시아여성네트워크는 미얀마 시위자들을 지원하고 투쟁 현장의 참상을 알리는 데 모든 노력을 쏟고 있다. 지난 3월 미얀마 국민들을 응원하는 특별사진전 ‘#Save Myanmar’를 광주 ‘메이홀’에서 열어 미얀마의 참상을 알렸고, 현재는 미얀마 현지에 의약품과 구호물품을 지원하고 있다. 또 군경에 의해 폭력을 당한 여성들의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들을 위한 긴급 치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이 기사는 월간지 전라도닷컴 5월호(229호)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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