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차현송 기자] 인천 층간소음 흉기 난동 사건 이후로 또 다시 '여경 무용론'이 일부 안티페미 진영에서 일고 있는 가운데, 현장에 출동했던 인천 논현경찰서 소속 시보 여성 경찰관(경력 7개월차 순경) 뿐만이 아니라 정규 남성 경찰관(경력 19년차 경위)까지 현장을 이탈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즉 출동한 경찰관 2명 모두 칼부림 사건이 있었음에도 현장을 벗어났던 것이다.
앞서 지난 15일 17시 즈음 인천시 남동구에 위차한 모 빌라 4층에 살고 있는 40대 남성 A씨는 층간소음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던 아랫집으로 찾아가 흉기를 휘둘렀다. 사건 당시 아랫집에는 60대 부부(아내 B씨+남편 E씨)와 20대 딸 F씨까지 총 3명이 있었다.
A씨는 B씨와 F씨가 함께 있는 상황에서 B씨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B씨는 목 부위를 흉기에 찔려 의식을 찾지 못 하고 있는 상태인데 뇌경색이 와서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F씨도 얼굴과 손 등에 부상을 입었다.
여경 C순경은 3층 복도에서 모녀 및 가해자와 같이 있었는데, A씨를 등지고 B씨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A씨는 갑자기 C순경을 밀치고 B씨의 목에 칼을 휘둘렀다. C순경은 B씨가 칼 맞은 것을 목격했음에도 지원 요청을 한다는 이유로 현장을 이탈했고, 빌라 밖 1층에서 E씨와 대화를 하고 있던 남경 D경위는 비명소리를 듣고 빌라 내부로 올라가려고 했으나 도망쳐 나오는 C순경을 보고 다시 빌라에서 나왔다. 그 이후 공동 현관문이 잠기는 바람에 이들은 사건 현장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 했고 이웃주민이 문을 열어준 뒤에야 진입했다. 당시 C순경과 D경위는 테이저건과 권총을 소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두 경찰관이 도망쳐 빌라를 빠져나온 사이에 F씨는 피를 흘린 채로 A씨의 손을 부여잡으며 겨우 대치하고 있었고 급하게 현장으로 온 E씨는 손목 인대가 끊어지는 몸싸움 끝에 A씨를 제압했다. D경위는 C순경과 마찬가지로 지원 요청을 하기 위해 현장을 이탈했다고 해명했다.
사건 당일 낮 A씨는 이미 한 차례 아랫집에 찾아가 소란을 피워서 경찰 신고를 당했고 경범죄처벌법상 불안감 조성 혐의로 출석 통보를 받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몇시간 뒤 A씨는 B씨가 3층에서 C순경에게 피해 진술을 하고 있는 것을 자신의 집에서 엿듣다가 흉기를 가지고 3층 복도로 내려왔다.
만약 C순경과 D경위가 자리를 비웠던 그 짧은 순간 E씨가 좀이라도 늦게 와서 A씨가 그대로 B씨를 살해했다면?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A씨는 살인미수, 특수상해, 스토킹 혐의 등으로 검찰에 구속 송치됐다. 경찰은 A씨가 지난 9월 이사를 와서 아랫집에 수차례 찾아가 지속적으로 괴롭혔다고 보고 스토킹 혐의를 적용했다.
이 사건이 알려지게 되면서 C순경이 여경이라는 점이 동시에 부각되어 비난을 받았고 '젠더 갈등'을 촉발시켰다. 이미 유튜브를 비롯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안티페미 유저들이 “여경은 하는 일이라곤 없다”며 지나친 일반화를 일삼고 있다.
이번 사건은 사실 젠더 갈등의 문제로 비화될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남경과 여경의 문제가 아니라 경찰로서 직업정신과 자질을 갖추지 못 한 문제가 있던 것이다.
국가가 제공하는 제1의 공공재는 '치안'인데 이를 책임지고 있는 조직이 경찰이다. 경찰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공공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생명을 위협받고 있는 피해자를 눈앞에 두고도 그냥 자리를 뜬 것은 경찰로서의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 한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기본 무술을 체득하게 되어 있는 경찰이 피해자가 칼에 맞았는데 그 자리를 이탈했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무전기 등 특수 통신장비를 사용하거나 정 없으면 본인의 스마트폰으로 지원 요청을 할 수도 있었을텐데 왜 굳이 현장을 이탈했는지 알 길이 없다.
관련해서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비공개 참모회의에서 “경찰의 최우선적 의무는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을 도모하는 것인데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훈련을 강화하고 시스템을 정비해달라고 지시했다.
특히 B씨의 여동생 G씨는 21일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 글을 올리고 "이번 사건은 단순 층간소음 문제가 아니"라며 "인천 논현경찰서를 고발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G씨는 논현경찰서의 잘못을 7가지로 정리해서 나열햇다.
①살해협박, 성희롱, 반복적인 스토킹 등 사건 발생 이전 4차례나 신고를 했음에도 단순 층간소음으로 여겨 피해자 안전을 보장해주지 않은 점
②사고 당일 1차 신고 때 혼자 있던 F씨가 성희롱 신고까지 했음에도 피해자를 방치한 점
③사고 당일 2차 신고 후 출동한 D경위가 범인이 내려오고 있는 걸 보고서도 저지하지 않고 E씨와 1층으로 내려가고 남은 C순경이 단순히 구두로만 A씨에게 올라가라고 했던 점
④B씨가 칼에 찔리자마자 C순경이 현장을 이탈해서 2차, 3차 피해가 있었던 점
⑤1층 현관에서 E씨와 같이 있던 D경위는, 비명소리를 듣고 뛰어 올라가던 E씨가 수차례 빨리 오라고 했음에도 공동현관이 닫힐 때까지 기다렸던 점
⑥사건이 알려지고 경찰 대응이 문제되자 피해 가족들을 쫒아다니며 회유하려 한 점
⑦현장 이탈한 두 경찰을 만나기로 한 날 휴가를 쓰게 했다는 지구대의 대처
이와 관련 김창룡 경찰청장은 직접 사과문을 발표했고 24일 전국 경찰서에 긴급 서한문을 보내 "오늘부터 비상대응 체제로 전환하고 권총이나 테이저건 같은 무기가 필요할 경우 과감히 행사하라"고 지시했다. 또한 신입 경찰 교육 기간을 6개월에서 8개월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장에 출동한 두 경찰관에 대해서는 직위해제가 이뤄졌고 징계 절차에 들어갔다.
이번 사건에 대해 차상곤 주거문화개선연구소장은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환경부가 운영중인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나 각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민원센터는 아파트 민원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며 "빌라, 원룸 등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아파트는 관리사무소라도 있지만 빌라 등은 이런 완충지대가 없는 편이다. 그러니 사건이 커지고 경찰을 부르게 된 것이다. 사각지대에 있는 공동주택에 관심을 더욱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