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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지역 수다회②] 아직도 ‘전원일기’ 수준의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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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 사전 토크들(탈지역 수다회 1편)이 충분히 오간 뒤에 본격적으로 “광주를 떠나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지? 그렇다면 왜 떠나고 싶은지? 혹은 떠나지 싶지만 못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들로 넘어갔다.

 

지난 7월15일 19시 광주 동구 지산동에 위치한 광주청년유니온 사무실에서 <탈지역 수다회>가 열렸다.

 

 

광주청년유니온에 소속된 참석자 B씨는 “내가 정말 광주가 좋아서 붙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아까 말했다시피 광주는 풍경이 다 똑같은 것 같다. 그리고 생활반경도 다 똑같다. 문화 도시 캐치프레이즈도 억지로 갖다 붙인 느낌”이라고 피력했다.

 

어떤 점에서 문화 도시라는 구호가 허울 뿐이라고 느꼈던 걸까? B씨는 뮤지컬 등 공연 문화의 측면에서 부족한 지점을 환기했다.

 

일단 수도권에서 너무 멀다. 그래서 누가 여기까지 공연하러 올 것 같지가 않다. 나는 문화예술 공연을 정말 좋아한다. 그러나 광주는 서울보다 뮤지컬 등 공연을 볼 기회가 너무 부족하다.

 

광주 북구 운암동과 동구 구도심에 마련된 문화예술 공간들이 약소하게나마 기능을 하겠지만 서울의 혜화 일대와 같은 지역에 비하면 너무 허술하다. 어찌됐든 지역 예술인들이나 문화예술 소비자들은 자신의 지역에서 공연이 열리기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거나 직접 큰 맘 먹고 수도권으로 원정을 가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그나마 광역시급 도시에는 예술회관도 있고 공연팀이 한 번씩 투어도 오지만 중소도시나 군 단위로 내려가보면 정말 가뭄에 콩나는 수준이다.

 

 

사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창작그룹 모이즈는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사전 질문 리스트'를 돌렸다. 질문들은 하나 같이 심상치 않다. 

 

①성적에 맞춰 대학에 입학했지만 다니는 것이 싫다.

②열등감으로 대학 생활 내내 허송세월을 보내기도 했다.

③열등감과 적응 사이에서 갈등하다, 타인들의 외적 지지를 통해 대학 생활을 적응해갔다.

④지역에서 관계 맺는 타인들은 적당하게 살면서 지방을 벗어나지 못 하게 만드는 요인이며 모방, 동일시, 자기 부인을 경험하게 하는 타인들이다.

⑤지방대생의 자아정체감은 지방대생 선배의 부정적 이미지에 의해 발현되고 반발과 부인, 수용과 절망의 자아비판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⑥개인의 실천적 노력만을 강조하며 삶을 낭비하지 않고 의미있게 보내려고 몸부림치거나 지역 내에서 진로를 찾으려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그것이 전부라 믿는다.

 

하나 같이 지방대 출신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문장들이다. “지방에 있으면 뒤처진 사람”이라는 전제를 깔고 가는 것 같다. 이러한 문장들은 ‘지방 청년’과 ‘지방대생’을 다룬 논문에 실린 문장들이라고 한다. 굉장히 씁쓸했다. 

 

 

진행을 맡은 모이즈의 크루 A씨는 이 문장들에 대해 “그냥 지방 청년들을 뭉뚱그려서 생각한 문장”이라고 비판했다.

 

많은 사람들이 ‘네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방을 떠나 수도권으로 가야만 해’라는 압박을 은연중에 많이 주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지방에 있겠다=현실에 안주하겠다’ 이렇게 보는 시각도 있다.

 

A씨가 소개한 논문들 중에는 정말 경악스러운 표현도 있었다.

 

지방 청년들은 가족주의적 성향을 띄고 경쟁에 대해 두려워하며 가족주의적 삶을 지향한다.

 

이런 황당한 주장이 담긴 논문이 KCI(한국학술지인용색인)에 등재되었다고 한다. 지방은 경쟁이 없는가? 지방에서의 삶도 엄청 치열하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살아가더라도 한가로운 삶과는 완전히 거리가 멀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사는 지방 사람들도 많다. 아니 그냥 성향 자체가 가족주의와는 거리가 먼 지방 시민들도 굉장히 많다.

 

 

해당 연구자가 생각하는 지방은, 딱 MBC 국민 드라마 ‘전원일기’에 나오는 정겨운 시골 농촌의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것 같다. 사실 이 문장 하나만 놓고 보면 논문이 아니라 온라인 커뮤니티에 쓰여진 글 같다.

 

그렇게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눈 이후 모이즈 크루들이 준비한 ‘서울로 떠나는 상상여행’을 했는데 굉장히 색다른 체험이었다. 이른바 관객 참여형 연극이었다. 참석자들이 기차 대형으로 줄줄이 앉았고 불이 꺼졌다. 스크린에는 마치 기차에 탄 것처럼 기차 밖 풍경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모이즈 크루들은 승무원으로 빙의해 참석자들에게 각종 안내사항을 전달했다. 다들 KTX를 타고 광주를 떠나는 모드로 진입했다.

 

 

크루들은 탑승권을 나눠줬다. 탑승권에는 “내가 생각하는 광주스러움을 3가지 골라달라”, “나의 광주 토박이 지수는?” 같은 질문들로 채워졌다.

 

참석자들은 간단하게 답변을 적어냈고 이내 “광주에 가면~~00도 있고”라는 게임을 하게 됐다. 그 다음 서울로 상경했을 때 각자 어떤 ‘서울 라이프’를 상상하게 되는지 떠올려봤다. 이미 서울에서 살아봤던 참석자들은 딱히 서울 라이프라고 해서 특별할 게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서울살이의 아쉬운 점들을 반영해서 답변을 했다.

 

사실 서울에 살았을 때 너무 바빠서 한강이라는 최고의 공공재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아침 저녁으로 한강공원에 가서 산책이나 운동을 해보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삼청동’에 가서 인상 깊었던 기억이 있어서 기회가 된다면 삼청동에 있는 한옥에서 살고 싶다는 상상을 해봤다. 다른 참석자들은 ‘한강에서 맥주 마시기’, ‘산책하기’, ‘서울 맛집과 명소 가기’, ‘강남과 종로 등 서울 중심지구에서 사원증 목에 걸고 일해보기’ 등등 흔히 떠올려볼 수 있는 서울 라이프의 전형을 이야기했다.

 

한 참석자는 수도권(서울+경기+인천 합계 2500만명)에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 있기 때문에 서울 인구 절반이 지방으로 내려갔으면 좋겠다는 독특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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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욱

안녕하세요.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입니다. 권력을 바라보는 냉철함과 사회적 약자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겠습니다. 더불어 일상 속 불편함을 탐구하는 자세도 놓지치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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