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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서’가 1.5톤 어망실뭉치에 깔릴 때까지 어른들은 뭘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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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초등학교가 있는 스쿨존 안에 각종 중장비와 대형 트럭들이 수시로 드나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어망제조업체들이 수두룩했고 기타 어업 관련 업체들도 많았다. 지게차가 오가며 작업할 수 있는 별도의 넓은 공간도 없었다. 처음부터 초등학교 인근에 확실한 안전 대책도 없이 제조업체들이 밀집해 있도록 방치한 당국(영도구)의 몰상식이 비극을 키웠다. 경찰(영도경찰서)도 사후 교통 안전관리에 소홀했고 둔감했다.

 

학교(청동초등학교)도 위험천만한 등하굣길 환경을 인지했음에도 관계당국에 적극적으로 요구해서 대책이 마련되도록 관철시키지 못 했고, 자체적인 안전 대책을 강구하지도 못 했다. 사고를 낸 해당 업체(남강산업사)의 안전불감증은 그야말로 끝판왕이었다. 누군가 다치거나 죽어도 상관없다는 안일한 마인드를 탑재한 채로 그저 비용 절감, 시간 절감만 생각하며 작업하다 어린이의 목숨을 짓밟았다.

 

 

지난 4월28일 아침 8시30분 즈음 부산시 영도구 청학동 청동초등학교 인근 스쿨존에서 갑자기 1.5톤짜리 어망실뭉치 원통(원사롤)이 굴러떨어졌다. 대략 200미터를 굴러가다, 등교하고 있던 10세 여자 어린이 故 황예서양을 그대로 덮쳤다. 당시 예서양 포함 총 4명(30대 여성 1명+다른 초등학생 2명)이 원통의 습격을 받았는데, 예서양은 장기 파열로 심폐소생술도 필요없는 심각한 상태로 사망했고, 나머지 3명은 부상을 입었다.

 

청동초에서 6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어망제조업체 ‘남강산업사’가 위치해 있다. 2005년부터 18년간 영업을 이어왔고 직원 수 10~20명 규모의 중소기업이다. 남강산업의 설립자 70대 박경희 대표는, 그날 8시부터 회사 바로 옆 도로가 스쿨존에 원통이 가득 실린 대형 트레일러를 불법 주차시켜놓고 직접 지게차를 몰았다. 트레일러에 있는 원통들을 내리는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이미 3개를 가로등 하나에 의지해서 차례차례 내려놓고 또 하나를 내려놓으려다가 문제가 발생했다. 해당 원통을 축소시킨다면 230ml 식혜 음료캔 모양처럼 생겼다. 그걸 지게차 두 포크에 세로로 올려서 든 다음 10미터를 직진해서 핸들을 왼쪽으로 90도 돌려서 가로등쪽에 기대어 가로로 놓는 것이다. 

 

근데 네 번째 원통을 든 상태에서, 다른 원통이 눕혀지지 않고 세워져 있자 그걸 지게차 포크로 쳐서 눕히려고 했던 것 같다. 그때 들려 있던 원통이 지게차에서 빠졌고 그렇게 내리막길을 따라 굴러간 것이다. 같이 일하고 있던 작업자 3명이 급하게 뛰어서 따라갔고 어떻게든 멈춰보려고 굴러가는 원통 아래쪽에 버팀대를 던져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가속도가 붙은 원통은 인도와 도로의 경계를 지키고 있던 안전 펜스 10여개를 아작내버리고, 예서양을 덮친 뒤에도, 계속 굴러가서 반대편 인도쪽으로 넘어갔고, 안전 펜스 5개를 더 파손하고 옹벽에 가로막히고서야 겨우 멈췄다.

 

 

 

 

예서양 등 4명은 내리막길을 내려가고 있는 도중 뒤에서 봉변을 당했던 만큼 반사적으로 피할 수도 없었다.

 

상식적으로 지게차를 동원해서 무거운 물체를 옮기는 작업을 할 때는 유동 인구가 없는 넓은 공터 같은 곳에서 한다. 안전 의식이 별로 투철하지 않아도, 아무리 급해도, 그렇게 해야 한다. 지게차가 움직일 때는 3미터 범위 안에 사람이 접근하지 못 하도록 하는 것이 기본적인 안전 수칙이며 멜로디가 흘러나오기도 한다.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박씨는 과거에도 밥먹듯이 스쿨존에서 하역 작업을 했고 등하교 시간대를 개의치 않고 어린이들의 안전을 위협해왔다.

 

학교 근처에 이런 트레일러가 들어와도 되는지 의문이고, 아무 톤수 제한없이 다닐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렇게 큰 물건을 내리는 것 자체도 문제이고, 왜 하필 등교하고 출근하는 그 시간에 작업했는지.

 

심지어 박씨는 지게차 면허도 없었고 타인 명의로 무면허 운전을 감행하고 있었다. 남강산업에 원통을 공급하는 타업체 노동자도 박씨의 지게차 운전 실력이 형편없었다고 증언했다.

 

지게차를 한 10년 몰았는데 운전하는 걸 보면 참... 내가 옆에서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도 없고.

 

영도경찰서는 박씨를 업무상 과실치사, 건설기계관리법(무면허) 위반 혐의로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해당 작업에 관여한 작업자를 박씨 포함 5명으로 보고 책임 소재를 파악하고 있는데 안전 계획서나 신호수 배치 등에 대해서도 들여다보고 있다. 4일 오전에는 남강산업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산업안전보건기준 규칙 386조(경사면에서의 중량물 취급)에 따르면 “사업주는 경사면에서 드럼통 등의 중량물을 취급하는 경우 구름멈춤대, 쐐기 등을 이용하여 중량물의 동요나 이동을 조절할 것”이라고 돼 있다. 경찰은 박씨가 버팀대 외엔 여타 안전 장비들을 전혀 갖춰놓지 않고 작업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딱 1년 전 청동초는 영도구와 영도경찰서에 공문을 보냈다. 공문에는 학교 인근 ‘불법 주정차 차량’ 단속 등 등하굣길 안전 문제와 관련된 요청사항이 담겨 있었다. 예서양이 목숨을 잃은 ‘후문 통학로’가 급경사 구간인데다 과속 차량도 많고 불법 주정차된 차량도 많기 때문에 너무나 위험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공문을 접수한 영도구는 차량 속도 표시판과 안전 울타리는 설치했으나 불법 주정차 단속용 카메라를 설치하지 않았다. 단속 경고 표지판과 카메라가 있어야 운전자들이 스쿨존에 주정차를 하지 않게 되는데 가장 중요한 게 빠졌다. 영도구는 청동초가 불법 주정차 문제를 해결해달라고만 했지 카메라를 설치해달라고 직접적으로 요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설치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예산 핑계는 덤이다.

 

이해당사자가 요청한 것만 해주면 될 정도로 그렇게 청동초 통학로가 한가한 상황이었던 걸까? 그동안 청동초 어린이들은 후문 하굣길을 오가며 높이 2미터의 경사로를 안전 펜스도 없이 걸어야만 했다.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취재해왔던 국제신문의 임은정 사회부장은 “국회의원, 부산시교육청, 부산시, 영도구, 영도경찰서 등 너희들 안전을 책임져야 할 어른들이 손을 놓고 있었지”라고 비판했다. 학교와 학부모 외에도 인근 주민들도 줄기차게 민원을 넣었다. 그러나 별다른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 사이 위험한 사고들이 계속 발생했다. 2022년 7월 16톤급 정화조 차량이 내리막길을 내려오다 중앙선을 넘어 계속 미끄러져 질주한 끝에 전봇대와 가로등을 들이받았다. 그 결과 50대 운전자가 숨졌다. 올 4월에도 견인차에 견인되어 가던 택시가 갑자기 분리돼 내리막길을 쭉 미끄러져 내려오다 식당 외벽을 들이받는 사고가 있었다.

 

 

이처럼 경사가 심한 구간이라 사고가 빈번한데 그에 걸맞는 안전시설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차선규제봉’만 하더라도 원래 700만원을 들여 500미터 가량 중앙선에 설치될 계획이었지만, 영도구는 어린이들의 안전 보단 불법 주정차를 하려는 주민들의 민원에 더 민감해서 철회했다. 운전자들은 대한민국 도로 환경에서 불법 주정차된 차량들이 양쪽에 있더라도 요리조리 피해갈 수 있는데 아무래도 중앙선에 차선규제봉이 설치돼 있으면 사실상 불법 주정차가 불가능해진다. 주차 공간이 부족하다면 다른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가장 손쉽게 어린이들의 안전을 희생시킨 셈이다. 그나마 정화조 차량 사고 이후 안전 펜스를 대폭 확대 설치하긴 했는데 문제는 펜스 자체가 너무 부실했다. 성인이 손으로 잡고 흔들면 흔들릴 정도였다.

 

펜스가 완전 종잇장처럼 다 그냥 흩어졌다. 그럼 솔직히 이 펜스가 뭘 지켜주는지.

 

사고 이후 ‘소 잃고 외양간 고치겠다’는 요란한 말잔치만 넘쳐난다. 부산시는 스쿨존 안전 실태를 전수조사하고 등하굣길 안전관리 인력 배치 및 교통봉사 체계를 확실히 갖추겠다고 밝혔다. 나아가 스쿨존 내 불법 주정차 과태료를 기존의 3~5배 가량 올리겠다고 공언했다. 영도구는 사고 현장 중심으로 차선규제봉과 단속 카메라를 설치하고 안전 펜스를 보강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영도경찰서와 부산경찰청은 스쿨존 안에서 업체들이 위험한 하역 작업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전수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아예 청동초 인근 스쿨존에 화물 트럭들이 출입하지 못 하도록 통행 금지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생업이 바쁘지만 이번 일로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교통지도에 나갔다. 등굣길 지도를 하고 있으면 아이를 바래다주던 다른 학부모들이 나도 하겠다고 말한다.

 

4월28일 예서양이 세상을 떠난 이후, 학부모들은 직접 자녀의 손을 잡고 등하교를 시키고 있다. 청동초 학부모회 차원에서 원래부터 하고 있던 교통지도 봉사의 경우 참여 의사(270명)가 빗발치고 있다고 한다. 월요일에만 4명이 하던 것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6명이 주 5일 내내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30일 예서양의 아버지 A씨는 한 커뮤니티에 을 올리고 예서양에 대한 추억을 곱씹었다.

 

다음달이 우리 막내 생일이어서 미리 생일 선물을 준비해서 회사에 보관했는데 이제 전해줄 수가 없다.

 

일주일 용돈이 정말 적은 액수인데 쓰지 않고 모으고 모아 그 돈 어디 쓸려고 모으는데? 물어보면 엄마, 아빠 생일 선물 사줄 거야라고 말했던 그런 아이다.

 

사고 다음날 우리 강아지, 1품 태권도 심사가 있는 날이었다. 빈소에 관장님이 도복과 품띠를 가져와서 많이도 울었다.

 

내일(5월1일)이 사랑했던 우리 장모님 기일인데 그 장모님과 같은 묘에 묻혔다. 막내 낳기도 전에 돌아가셨으니 하늘나라에서 서로 만났으면 좋겠다.

 

사고 당일 모르는 작은 아이와 손을 잡고 등교하더라. 우리 아이답게 다른 사람 챙기는 걸 너무 좋아한다. 나는 모르지만 기사를 보니 같은 아파트에 사는 같은 학교 동생이라고 하더라. 그 아이는 경상이라 다행이다.

 

항상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걱정하고 본인의 몸이 좀 힘들어도 다른 사람이 기뻐하면 자기 희생을 하는 아이라 그게 본인을 힘들게 하진 않을까 늘 걱정했다.

 

우리 아이가 얼마나 아팠을까. 가슴이 찢어진다는 표현이 글로 담을 때와 또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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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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