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 사람들이 줄서있던 곳에 갑자기 트럭이 돌진했다. 4명이 사망했고 16명이 부상을 당했다. 마약? 음주?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살인운전을 감행한 74세 할아버지 이모씨는 브레이크와 액셀 페달을 혼동했다고 한다.
이씨는 지난 3월8일 오전 10시30분 전남 순창군 구림면 구림농협에서 조합장 선거 투표를 마치고, 타고 갔던 1톤 트럭에 올라 귀가하려고 하던 찰나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때 액셀을 밟았다. 트럭은 조합원들이 줄서있던 곳을 향해 무서운 질주했다. 차량이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돌진할 것이라고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고 상상할 수조차 없다. 그래서 미처 피하지도 못 하고 20명이 변을 당했다. 7~80대 할머니 2명과 할아버지 2명이 숨졌고, 16명이 중경상을 입고 넉달이 지난 지금까지 치료를 받고 있다.
시골 농협 조합장을 뽑는 선거라서 대부분 고령의 노인들이 피해자였다. 이씨는 그 자리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 처음에는 차량 결함이나, 조합장 선거에서 정파적인 목적으로 보복하려는 것 아닌가라는 가설도 제기됐으나 그런 게 아니었다. 순창경찰서 수사관들은 이씨를 상대로 마약 검사와 음주 측정을 해봤지만 아무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 이씨는 “브레이크로 알고 액셀 밟았다”고 직접 진술했다.
당시 이씨는 가축 사료도 구입하고 조합장 투표도 할겸 현장으로 간 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액셀과 브레이크를 일시적으로만 혼동하지 않고 꽤 긴 시간 밟아서 20명의 사람을 깔아뭉갤 수가 있는 걸까? 사실 이런 사례는 전체 교통사고 대비 드물겠지만 종종 일어나고 있다. 심지어 운전업을 영위하고 있는 택시기사도 아주 가끔 이런 사고를 내기도 한다. 정경일의 교통 렌즈 5번째 시간에는 액셀과 브레이크를 혼동해서 발생하는 교통사고에 대해 다뤄본다.
교통사고 전문 정경일 변호사(법무법인 엘엔엘)는 19일 오후 평범한미디어와의 통화에서 가장 먼저 노인의 운전 패턴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악셀과 브레이크를 혼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실제로 그럴 수 있다. 이번 사건의 경우 운전자가 70대 고령이었다. 운전 경력이 많지만 나이가 들수록 젊은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인지 능력이나 순간 대처 능력이 떨어진다. 노인이나 상대적으로 심약한 사람들은 평소에는 운전을 잘 한다. 그러나 급박한 상황이 닥쳤을 때의 대처 능력은 떨어진다. 기사를 보니 운전자는 다른 데를 보다가 앞을 보니 갑자기 사람들이 많이 보여 당황해서 급브레이크를 밟을려고 했지만 액셀을 잘못 밟아 이와 같은 사고가 났다.
사실 운전의 ABC이자 기초 중의 기초가 액셀과 브레이크다. 이동과 멈춤. 당황하게 되거나 급박한 순간 브레이크와 액셀을 혼동할 수도 있지만 머리가 아닌 오른발이 액셀과 브레이크를 밟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씨처럼 사람은 누구나 어이없는 과실을 범할 수 있다. 젊은 사람들도 컨디션이 안 좋은 날,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거나, 초보운전일 경우 액셀과 브레이크를 혼동하기도 한다.
정 변호사는 “운전에 익숙하더라도 액셀과 브레이크의 위치를 항상 생각하고 인식하고 있어야 사고가 나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이씨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치사상)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가, 3월14일 구속됐다. 7월20일 1심(전주지법 남원지원) 판결이 나왔는데 이씨는 금고 4년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전방 주시 태만’을 지적했다. 알고 보니 이씨는 그때만 음주운전을 하지 않았었지 음주운전에 무면허 운전 전력까지 있었다. 이런 점들이 양형에서 불리하게 적용했다.
경찰이 수사를 마치고 검찰에 넘겼을 때의 결론으로 보면, 아무리 봐도 이씨에게 고의성이 없었다는 점이다. 결과적 가중 요소가 컸다. 1심 판결 이전 정 변호사가 보는 예상 형량에 대해 물었다.
교특법 같은 경우에는 1명이 사망하든 다수가 사망하든 일률적으로 3조에 따라 5년 이하의금고형 또는 2000만원의 벌금형이다. 바꿔 말하면 5년 넘게는 선고할 수 없다. 검사도 5년 금고를 구형했는데 법정형을 최대한 구형한 것이다. 대법원 양형 기준을 보면 교통사고 사망 사건 같은 경우에 가중 사유에 해당되어도 1년에서 3년형에 불과하다. 양형 기준에 따른다면 3년 이상을 넘을 수 없다. 대법원 양형 기준에 따라서 현실적인 선고형을 이야기해드린다면 3년형 정도가 선고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무래도 한문철 변호사가 캠페인으로 밀고 있는 “잘못한 만큼 처벌하자” 차원에서 교특법의 문제점이 있을 것이다. 교특법은 결과적 중대성에 비해 경하게 처벌하기 위해 설계된 법률이다. 그래서 사람이 사망한 결과가 동일한 살인죄에 비해 교특법상 치사 혐의는 처벌 수위가 현저히 낮다.
똑같이 생명이 침해당한 살인죄와 비교한다면 많은 차이가 있다. 살인죄 같은 경우에는 기본 유형이 10년에서 16년형이다. 살인죄는 가중 사유에 해당되면 유기징역형이 없다. 무기징역이다. 같은 생명이 무려 4명이나 침해당했는데 법정형이 5년 이하의 금고형이고 양형 기준은 1년에서 3년 밖에 안 된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적어도 교통사고 사망 사건에 대한 형량을 높일 필요성이 있는 것 같다. 아까 말했던 것처럼 현실적인 형량을 이야기하자면 3년형이 선고될 것 같다.
정 변호사는 고의성 여부와는 무관하게 결과적 가중 요소가 작용할 것이라고 예상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어 금고 4년이 선고됐다.
영향을 미친다. 일단 범죄 자체는 과실범을 전제로 한다. 사상자가 20명이나 되는 것은 분명 양형에 있어서 상당히 불리한 요소로 작용한다.
한편, 이씨가 일으킨 어처구니없는 참사 이후 고령 운전자의 면허 반납제도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졌다. 이씨는 최근 1년 안에 운전면허를 갱신했고 사고를 내기 직전까지 큰 사고를 야기한 적이 없었다. 큰 사고 한 번 안 냈더라도 언제든지 대형 참사를 일으킬 수 있는 확률이 높은 것이 고령 운전이다. 2022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는 전국에 438만명에 달한다. 그러나 서울과 대도시가 아닌 이상 교통체계가 발전하지 않은 농어촌 시골 지역에 고령 운전자들이 몰려 있다 보니 현실적으로 이들의 운전을 막기가 너무 어렵다. 20kg 비료를 나르는 일이 흔하고, 논과 밭을 수시로 오가야 하며, 무거운 중장비를 옮길 일이 아주 많다. 그래서 트럭이 필요하고, 운전 능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시골 노인들을 위한 지자체의 교통 정책은 매우 부실하고 한계가 분명하다. 관내 버스 배차도 매우 드물고 중량있는 물건을 옮겨줄 전용 이동수단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런 현실적인 부분들을 고려해서 고령 운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어찌됐든 국토교통부와 경찰청이 면허 자진 반납을 홍보하고 노력했지만 반납율은 2.6%에 불과한 게 현실이. 이씨 사건 이후로도 모 70대 운전자가 경부고속도로를 7km 가량 역주행한 적도 있었다. 박무혁 교수(도로교통공단 교육본부)는 “고령 운전자는 인지, 판단, 조작이라는 세 운전 능력이 모두 저하된 경우가 적지 않다. 정책적 노력을 통해 70세 전후 운전자의 면허 반납을 독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