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12.3 계엄 사태 이후 탄핵 심판과 수사 현황, 차기 집권을 노리는 정치 전술이 언론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지지율을 어느정도 회복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로는 완전히 방탄 모드로 돌입했다. 정치권이 더욱더 혼탁해졌다. 2~3주 전 개헌을 해서 권력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왔지만 다 묻히는 분위기다. 그렇지만 계엄 이후의 정치는 달라야 한다. 그래서 개헌과 권력구조 변화는 필수적이다.
박원석 전 의원은 12월16일 방송된 kbc 광주방송 <박영환의 시사1번지>에 출연해서 “나는 사실 지금 조기 대선보다 더 중요한 게 우리 시스템에 드리워진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며 “개헌 문제를 이제는 외면할 수 없다. 정면으로 논의해야 한다. 어떤 특정인의 인격과 개성과 이성과 나라의 국민의 운명을 맡기는 체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걸 넘어서서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어떻게 분산할 것인가. 지금과 같은 검찰 국가를 넘어서기 위해서 검찰의 수사 기소권을 분리하고 검찰청을 없애고 기소청과 중수청의 제도적 개혁을 어떻게 할 것인가. 국회의원 선거제도에서 비례성을 어떻게 높일 건가. 그에 따른 정부조직법을 어떻게 정비할 건가. 이런 문제들이 대선 전에 선행돼서 개헌 논의가 되어야 한다. 그게 아닌 대선 이후로 개헌 논의를 미루자고 하면 도돌이표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그랬는데 그게 안 됐다. 민주당이나 이재명 대표도 잘 생각해야 하는데 본인이 대통령 되는 게 시대정신이 아니다. 오히려 결함을 드러낸 87년 체제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그 대안을 제시하면서 다음 정권을 맡겨달라고 해야 국민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
1표만 더 받아도 모든 권력을 독점하는 대통령과, 야당의 무조건적인 발목잡기가 평행선을 달리는 한국식 대통령제로는 더 이상 안 된다. 거부권과 탄핵이 남발되다가 계엄까지 등장한 한국 정치는 평시에도 난장판이 되기 일쑤다. 핵심은 거대 양당이 강제로라도 협치하고 공존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다. 당장 제시되고 있는 모델은 ‘이원집정부제’인데 프랑스 정치체제를 참고했다. 한국에서는 ‘분권형 대통령제’ 또는 ‘책임총리제’로 불리고 있다. 한 마디로 국무총리가 대통령에게 귀속되는 현 체제와 달리, 국회 다수 세력의 추천 또는 선출로 국무총리가 결정되는 것이 골자다. 국회가 국무총리를 추천하거나 선출하면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는 형태다. 국회의장·국무총리·당대표 출신으로 구성된 ‘나라를 걱정하는 원로 모임’은 작년 5월 새로운 권력구조 모델을 묻는 내부 설문조사를 진행해서 이러한 이원집정부제 모델로 개헌 방향을 정했고 정치권에 제안하고 있다. 나아가 원로 모임은 양원제로의 개편도 주장하고 있는데 상원이 몇몇 장관 임명권을 갖는 것이다.
정리하면 대통령이 포함된 여당과 야당이 상호 견제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한국식 대통령제에서, 여야 상호 협력을 추구하는 의원내각제에 준하게 대통령제를 고쳐보자는 것이다. 여야 극단적인 갈등관계가 반복되는 현 체제를 넘기 위해서는 야당도 어느정도 국정에 참여해서 공동 책임을 지도록 제도화시키는 것이다.
사실 일찌감치 우원식 국회의장이 판을 깔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다. 계엄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여야 합의로 개헌을 해보자고 화두를 던졌다. 우 의장은 작년 7.17 제헌절 경축사를 통해 2026년 지방선거에서 국민투표를 해서 개헌을 완성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22대 국회는 개헌을 성사시키는 국회가 돼야 한다. 2026년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하는 것을 목표로 개헌을 추진하자. 앞으로 2년 동안은 큰 선거가 없어 충분히 논의할 시간이 있다. 개헌을 안 할 작정이 아니라면 본격적인 대선 국면으로 들어가기 전에 마무리하는 것이 옳다. 원포인트 개헌, 부분 개헌, 전면 개헌, 또 즉각 적용이나 차기 적용, 총선과 대선이 일치하는 2032년 적용, 다 열어놓고 유연하게 할 수 있는 만큼, 합의하는 만큼만 하자. 이를 위해 헌법개정특별위원회부터 구성하자.
우 의장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발목 잡혀서 시간만 끌다가 마는 일을 되풀이”하면 안 된다고 밝혔는데 이 대목이 중요하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정치권에서 개헌 논의가 한 두 번 나온 게 아니다. 매번 좌초됐지만 다들 개헌이 필요하다는 것 자체에는 동감하고 있다. 문제는 거대 양당의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합의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는 점이다. 가장 가까운 개헌 담론은 2017년 조기 대선 이후 2018년 내내 열려있었다.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여당 민주당과, 다시 집권할 수 없을 것 같은 최악의 암흑기에 있던 야당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은 각각의 이해관계로 인해 합의를 이루지 못 했다. 민주당은 전성기였던 만큼 대통령제를 유지하는 쪽이었고, 자유한국당은 국회로 대폭 권력을 갖고 오려는 분권형 개헌을 밀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국민의힘 내에서 개헌 주장이 나오는 것도 탄핵으로 인한 조기 대선에서 정권 연장이 희박할 것이라는 판단이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주호영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1987년 체제(대통령 직선제 개헌)가 만든 제왕적 대통령제는 유통기한이 지난 것으로 판명됐다”며 “국민 여론 과반수가 개헌에 찬성하고 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자신의 정치 스케줄이나 이익에 사로잡혀 개헌을 거부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 누가 나쁜 사람인가.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 역시 “지금이 헌법을 개정할 적기”라며 자체 개헌특위 발족을 준비하고 있다고 알렸다. 이에 따라 국민의힘은 국정협의회(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우원식 국회의장/국민의힘 권영세 비대위원장/민주당 이재명 대표) 첫 실무회의에서 국회 개헌특위 구성을 제안하기도 했다.
민주당은 일단 4년 중임제 개헌 외에는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그동안 민주당은 주요 대권 주자들을 비롯 당 공식 입장을 통해 지속적으로 4년 중임제를 내세웠다. 일각에서는 분권형 대통령제라는 커다란 합의에 이르기 전에 4년 중임제부터 처리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평범한미디어 크루로 활동하고 있는 박성준 센터장(다소니자립생활센터)은 “불완전하지만 가장 현실적으로 합의에 이를 수 있는 4년 중임제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탄핵과 조기 대선에서 승리 가능성이 높다고 점치는 만큼 4년 중임제 개헌 외에 권력구조 개헌 문제에 대해서는 매우 소극적인 모양새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12.3 이전과 이후는 질적으로 다르다. 지금 나오는 개헌론은 윤석열의 임기를 연장하고 보수세력이 책임을 피해가려는 음모”라고 주장했다.
결국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타협하지 않으면 개헌은 불가능하다. 원로들과 학계에서 백날 개헌을 외쳐봐야 공염불이다. 조기 대선이 열리면 다시 대권 싸움으로 모든 것이 휩쓸려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 시점에서 더욱더 많은 시민들이 개헌론을 이야기해야 한다. 계엄 사태는 윤석열 개인의 성향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한국 정치의 구조에서 벌어졌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끝으로 박명림 교수(연세대 지역학협동과정)의 제언을 발췌해보고자 한다. 박 교수는 “선 대선 후 개헌을 지킨 사람은 단 1명도 없다”면서 대선 전 개헌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헌법 정치의 순간을 계속 놓쳐 왔다. 권력 장악과 상실의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분권, 민주주의, 헌법 개혁 같은 불확실성보다는 집권이라는 눈앞에 있는 떡이 훨씬 커 보인 것이다. 집권이라는 정치적 현찰이 바로 내 눈앞에 있는데, 아무리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미래의 어음을 절대 사지 않는다. 그래서 모두 겉으로 말하는 것과 달리 실제로는 개헌에 소극적이다. 그렇다 보니 헌법 개혁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거나 너무 무겁게 생각한다. 우선 너무 가볍게 막 개헌을 제안한다. 그리고는 막상 하려고 보면 권력을 나누는 게 너무 무겁다는 걸 깨닫는다. 저는 이번 기회를 놓치면 상당히 어렵다고 본다. 탄핵에 더해 내란 상태까지 겪고 나서도 이 헌법을 고치지 않고 집권을 하면 얼마든지 우리 쪽은 유능하게 국정을 운영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건 독선이거나 환상 둘 중 하나다. 지금은 선출직 국가 지도자들이 계속 작아지고 있다. 정치 경험도 아주 적다. 앞의 큰 지도자들도 넘어서지 못 했던 것을 나는 넘어설 수 있다고 믿으면 오만이고 위험한 생각이다. 대화를 통한 헌법 정치의 복원이 필요하다. 절대적으로 화급하다. 이런 헌정 위기가 다시는 오지 않도록 의회가 서둘러 나서야 한다. 국민의 대표들이 여기서 유불리를 따지면 안 된다. 헌법 개혁을 통해서 불확실성을 제도화하고 누가 집권하든지 똑같은 조건에서 출발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권력은 나누라고 있는 것이다. 0.73% 이기고도 73% 이긴 것처럼 승자독식하는 상황은 반드시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