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3년만에 돌아온 <오징어게임2>의 공개 타이밍과 한국 정치의 상황이 묘하게 오버랩된다. 목숨 걸고 경쟁하는 결기, 공존과 협력보단 너 죽고 나 죽기, 모 아니면 도, 승자독식, 윈윈보단 제로섬게임, 생존 아니면 죽음, 편가르기와 진영논리 등등. 이 모든 것들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극단주의’다. 정말 극단적이다. 중간에서 타협하고 절충하는 법이 없다. 윤석열 대통령 입장에서는 국회 다수당을 인정하고 협조를 구하는 선택지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럴 바엔 죽는 게 낫고. 죽을 바엔 상대를 제거하는 게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그의 머릿 속을 지배했다.
그동안 정치 평론가들이 말로만 표현해왔던 “적대적 양당체제”의 저주성이 정치적 대결의 범위를 넘어 실제로 상대를 무력으로 제압하려는 ‘계엄 사태’로 현실화됐다. 단순히 윤석열이라는 개인이 이상한 사람이라 이런 짓을 벌였다고 여기면 속이 편하겠지만 한국 정치는 민주화 이후 35년 넘는 세월 동안 극단으로 치닫고 있었다. 거대 양당이 정권을 독과점하며 반복하고 있는 정치 보복과 저주의 굴레가 故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이후 도무지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수렁처럼 관성화된지 오래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 20년과, 이명박·박근혜·문재인·윤석열 정부 17년을 비교해보면 민주화 이후 적대적 양당체제의 적대성이 갈수록 악화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진짜로 ‘널 죽여야 내가 산다’는 문장이 실현되어 가는 과정으로 귀결됐다.
2012년 이후 도입된 국회 선진화법 체제로 인해 ‘동물 국회’가 재현되지는 않았지만 어떻게든 대선에서 이기기 위해 검증되지 않은 외부 인물을 무작위로 수혈해서 정치판을 아수라판으로 만들었다. 민심은 윤석열 정부에게 절반의 권력을 허용했다고 볼 수 있는 여소야대를 만들어줬고, 이는 마찬가지로 더불어민주당에게도 절반의 권력만 허용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정치의 메커니즘은 민주당과 윤석열 정부의 ‘치킨 게임’을 완성시켰다. 민주당은 정권을 갖고 있는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권한을 존중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윤 대통령은 국회 다수당의 지위를 갖고 있는 민주당을 뭉개기 위해 행정권을 동원할 생각만 했다. 그 결과 한국 정치사에서 관행적으로 매우 드물게 선택됐던 ‘거부권’과 ‘탄핵’ 카드가 빈번한 상수처럼 자리잡았다. 2020년 총선 결과보다 더욱더 한쪽으로 쏠린 국회 구성을 열어젖혔던 2024년 총선 이후, 윤석열 정부는 더 이상 거부권만으로는 민주당의 기세를 막을 수 없었다. 형세가 밀리면 현실을 받아들이고 숙이고 타협해야 하지만 윤 대통령의 캐릭터 자체가 워낙 독불장군이라 가능성이 없었다. 국회 권능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민주당은 원하는 법안과 탄핵소추안을 뭐든지 통과시켜 윤석열 정부를 압박할 수 있게 되었다.
어차피 인생은 한방인가?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인가? 모 아니면 도인가? 그렇지 않다. 인생은 모든 걸 걸고 배팅하는 도박장이 아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456억의 인생 역전을 바라고 오징어게임장으로 향한 참가자들처럼 계엄령을 선포했다. 하지만 오징어게임에서 최종 6단계까지 생존할 수 있는 확률은 0.2%에 불과하다. 그나마 개인적인 인생 역전이 목적이었던 참가자들에 비해 윤 대통령의 지위는 말 그대로 국가원수 대통령이다. 도박에 판돈 올인하듯 내던진 계엄이 성공했다면 단순히 민주당 정치인들만 피해를 보는 게 아니라 수천만 국민의 기본권이 짓밟힐 수 있었다. 위험천만한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직 나의 자존심인가? 마치 영화 <비열한 거리> 속 두목의 대사처럼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의 심정으로 그런 짓을 한 것인가?
오징어게임장 밖의 현실 세계에서 절망에 빠진 참가자들이라고 해도 막상 게임에서 탈락하면 죽음을 맞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공포감이 밀려올 수밖에 없다. 실수 한 번에 바로 총 맞아 죽을 수도 있다는 현실 앞에 어떻게 최종 승리의 기쁨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거액의 빚을 졌다고 해도 게임 중단에 표를 줘서 살육 게임을 멈추는 것이 합리적이다. 일반적인 사회인이라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값으로 받게 된 거액의 상금으로 정상적인 여생을 보내기 어렵다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고,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 있다는 것을 그려볼 수 있다. 하지만 성기훈(이정재 배우)이 피를 토하며 말했듯이 “사람들이 이곳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괴물처럼) 변하는 모습”을 목도하게 된다. 멀쩡한 사람들도 정치판에만 가면 합리적 사고를 멈추고 내로남불과 진영논리를 탑재하게 되는 것처럼 오징어게임에 발을 들인 참가자들 중 절반 이상은 비이성적 한탕주의에 탐닉하게 된다. 과반을 겨우 넘는 숫자가 주도하는 ‘광기’의 분위기는 오징어게임 참가자들 전체를 지배하는 대세로 작용한다.
<오징어게임2> 1단계 게임이 끝나고 남은 생존자는 총 365명이다. 이중 게임 속행 여부 투표에서 중단표는 182표, 속행표는 183표였다. 그렇게 게임은 속행되었는데 단 1표가 더 많았다는 이유로 182명의 의사는 깡그리 무시되었다. 다수결이니까 어쩔 수 없는 것이 맞을까? 친구들 몇몇이 밥 먹고 후식 메뉴로 무엇을 먹을지 결정하는 것이라면 그래도 된다. 하지만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오징어게임 속행 여부라면 1표라도 더 많은 쪽으로 결정을 해버리는 단순다수대표제 즉 승자독식의 방식이 매우 불합리하며 폭력적이다. 속행 투표에서 중단표를 행사한 참가자에게는 개별적인 퇴소를 허용해주는 것이 그나마 합리적이다. 오징어게임이라는 틀 자체가 위법과 무법, 야만으로 가득차있긴 하지만 잘못된 선택을 번복할 최소한의 장치도 없다는 것이 절망적이다. 결국 “너네가 자발적으로 선택해서 들어왔고 매 게임마다 중단 여부를 묻는 투표까지 했으니 할 말이 없는 것 아니냐”고 스스로를 탓하게 만든다. 다수 국민의 살림살이 정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치인을 뽑는 한국의 선거제도 역시 똑같다. 1표라도 더 많은 표를 받는 쪽이 모든 걸 독식하는 구조인데 국회의원이든 대통령이든 마찬가지다. 그런데 정말로 죽을 사(死) 사표방지심리에 따른 1등 몰아주기 밴드왜건 투표라는 것이 나의 자발적 투표행위가 맞는 걸까? 진짜 나의 선택 맞는가?
나쁜놈 싫어서 울며 겨자먹기로 미운놈에 표를 줘야 나쁜놈의 뜻을 꺾을 수 있다고 끊임없이 겁박하는 ‘1등당선제’와, 오징어게임 중간 투표는 많이 닮았다. 어차피 A 아니면 B가 당선되는 적대적 양자택일이기 때문에 C와 D라는 다른 선택지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민주당도 싫고, 국민의힘도 싫은 유권자는 어떻게 하란 말인가? 윤석열의 계엄에 화가 나지만 도저히 이재명에게 표를 줄 수 없는 중도보수 시민은? 선택지가 없다. 급진적인 진보좌파 활동가는 매번 당선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사표만 행사해야 할까? 선거 막판에 더 싫은 쪽을 떨어트리기 위한 혐오 투표 말고, 온전히 내가 좋아하는 정당과 후보에게 지지를 보내는 선호 투표가 가능해야 한다. 오징어게임으로 대입하자면 코너에 몰려 게임에 참가했더라도 중간 투표의 선택지가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해볼 수 있다. 이를테면 △액수가 적은 상금을 차지하는 대신 탈락해도 죽지 않는 C게임 △나의 강점을 살려서 대결 카테고리를 선택할 수 있는 D옵션 △다음 게임의 내용을 보고 중단 여부를 결정하는 E옵션 △한 번 탈락했을 때 죽지 않고 기회를 부여 받는 우대권이 주어지는 대신 최종 상금 액수의 절반만 차지하는 F옵션 등등이 있을 수 있다.
1등당선제는 필히 상대를 깎아내리는 네거티브 전략을 취하게 만든다. 저기 쓰레기를 뽑을 거냐고 끊임없이 협박하는 네거티브 선거운동이 횡행할 수밖에 없다. 무조건 정권을 공격하고 저주해야 하며, 여당은 그런 야당에 맞서 정권을 옹호하는 데 혈안이 된다. 오징어게임을 계속 지속하길 바라는 찬성파들도 반대파들을 향해 “쫄보”로 힐난하고, 반대파들은 찬성파들을 “미치광이” 취급한다. 1표만 더 끌어들이면 되기 때문에 당연하다. 아무튼 이번 선거에서 패했더라도 네거티브에 올인해서 상대를 망하게 하면 다음에 내가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에 괜찮다. 그래서 타협과 협력은 공염불이며 누가 더 공세적으로 몰아붙여서 대중으로 하여금 상대를 나쁜놈으로 각인시키느냐가 관건이 되는 것이다.
황동혁 감독이 이러한 함의를 의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감상하는 내내 오징어게임은 한국 정치와 닮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한국 정치를 넘어 한국 사회와 닮았다. <오징어게임2>가 <오징어게임1>에 비해 작품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오히려 과몰입해서 보게 된 것도 이런 배경이 작용했다. 오징어게임을 단순히 컨텐츠로 소비하기 어려웠다. 계엄과 탄핵, 내란 수괴, 현직 대통령 체포 등등 무시무시한 키워드가 난무하는 요즘 한국 정치의 풍경과 유사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