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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러봐”라는 말에 진짜 찌르는 미친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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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 30년 지기 친구 사이에 칼부림이 벌어졌다. 친구에게 칼을 휘두른 남성은 “피해자가 먼저 흉기를 가져와서 빼앗아 찔렀다”고 했는데 과연 사실일까?

 

지난 1월7일 새벽 4시15분 즈음 전남 여수시의 모 식당에서 41세 남성 A씨는 30년 지기 친구 B씨를 칼로 찔러 살해했다.

 

B씨가 운영하는 식당이었는데 둘은 술잔을 기울이다가 갑자기 언쟁을 벌였다. 여기까지는 으레 오래 만난 친구 사이가 그러하듯 그냥 넘길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점점 감정이 격해졌는지 갑자기 B씨가 주방에서 식칼을 가져와 식탁에 올린 다음 "술 적당히 마셔라. 찔러버린다"고 했고 A씨는 "찔러봐라"며 무모한 도발을 하며 실랑이를 벌였다.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졌는데 A씨가 B씨를 칼로 찔러버린 것이다. 복부 부위를 찔린 B씨는 병원으로 급히 이송되어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사망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여수경찰서)에서 "B씨가 주방에서 흉기를 가져오자 빼앗아 찔렀다"고 진술했고 검찰(광주지방검찰청 순천지청)도 사건을 넘겨 받아 "피고인의 살인 범의가 명확해 살인죄로 구속기소 했다"고 밝혔다.

 

 

A씨는 범행 직후 스스로 경찰에 신고를 했다. 자수했다고 볼 수 있는데 도대체 어떤 상황에서 칼을 휘두르게 된 것인지 진실은 알 수가 없다. 현장에 CCTV가 없었고 오직 A씨의 진술만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친구들끼리 술자리에서 시비가 붙어 우발적인 살인으로 이어지는 사건은 종종 일어난다. 2021년 5월23에도 20대 남성이 인천의 한 오피스텔에서 같이 술 마시던 친구를 흉기로 잔혹하게 살해했다. 작은 말다툼이 칼부림으로 번졌다. 지난 3월26일에는 충남 서산시 동문동에서 17세 고등학생이 술 마시고 친구를 살해하기도 했다. 술자리에서 말다툼을 했던 뒤끝이 남아 헤어진 뒤에 친구 집으로 찾아가 흉기로 찔렀다고 한다. 일간지 한겨레 선후배 기자들이 술자리에서 시비가 붙어 살인극(상해치사)으로 번진 사건도 있었다. 2017년 4월22일 새벽 2시반 서울의 모 식당에서 후배 기자가 과거 자신이 썼던 기사의 논조를 지적 받았다는 이유로 선배 기자를 잔인하게 폭행해서 죽음에 이르게 했다.

 

이런 유형의 사건들은 홧김에 충동적으로 저지른 살인이다. 술 마시다 감정이 극단적으로 격해진 것도 공통적인 특성이다. 아무래도 만취 상태가 되면 멀쩡할 때보다 훨씬 더 감정적이어지고 판단력도 흐려진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누구도 쉽게 술김에 사람을 죽이진 않는다. 술이 문제가 아니라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의 통제 능력과 소통 능력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술 마시고 다투는 모든 사람들이 살인을 저지르진 않는다. 또 하나 주목할 지점은 살인 직전 말다툼이 있었다는 부분이다. 아무리 사소한 말다툼이라도 언제든지 살인의 트리거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평소에는 그냥 던진 부정적인 말들이 누군가에겐 쌓이고 쌓여 한 번에 폭발할 수 있고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비극을 만들어낼 수 있다. 피해자가 폭언을 했다거나 살인의 동기를 제공했다는 것이 아니다. 가해자가 먼저 잘못을 했거나 상처주는 말을 해서 맞받아치다가 말다툼으로 이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사람들은 말다툼으로 인해 감정이 상했더라도 다시 마음을 다잡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해서 풀어야 하는데 그런 소통 능력 자체가 없는 것으로 봐야 한다.

 

다만 친한 친구관계일수록 아무래도 말을 좀 더 편하게 하는 경향이 분명 있다. 허물없이 말하다 보니 할 말, 못 할 말 구분하지 않고 내뱉다가 본의 아니게 서로 상처를 줄 수 있다. 서운함을 토로하면 “친구끼리 왜 이래”라는 두루뭉술한 변명으로 넘어가게 되는데 서운함을 토로하면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아무리 편해도 말의 수위가 레드라인을 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이번 사건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술 적당히 마셔라"에 기분이 나빴다면 다른 말로 맞받아치면 되는데 왜 갑자기 "찔러버린다"라는 말이 나왔던 걸까? 친구의 급발진에 왜 또 "그래 찔러봐"라고 반응한 걸까? 무엇보다 말에서 그치지 않고 칼을 직접 들고 와서 식탁에 두는 무모한 행위를 왜 한 걸까? A씨의 진술 밖에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이 의심스럽긴 한데 아무래도 방심을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설마 30년 지기 친구가 정말로 날 찌르겠어? 그런 생각이 들었을지 모르겠는데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듯이 확률이 0.001%라도 뭔가 위험 신호가 감지되면 멈춰야 한다.

 

 

상대가 해봐! 그렇게 도발을 해서 진짜 살인을 저질렀다면 법적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뭔가 정상참작이 있을 것 같지만 칼과 같은 흉기로 살인을 저질렀다면 상해치사나 폭행치사도 아니고 얄짤없이 살인죄로 감옥에 갈 수밖에 없다. 백기종 전 수서경찰서 강력팀장은 방송에 출연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일선에서 이런 경우가 있다. 친구끼리도 네가 나를 찌를 수 있어, 죽여봐. 이런 얘기를 흔히 한다. 당연히 정말로 나를 때리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욱하는 성격에 정말 찌르거나 때리는 경우가 있다.

 

진짜 쩔러도 돼! 그런 허락의 의미는 절대 아니다. 말 그대로 받아들여서 찌르는 가해자가 명백한 고의에 의한 살인을 저지른 것에 불과하다. 다만 백 전 팀장은 상처의 깊이, 칼을 쥔 방향 등에 따라 죄명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전했다.

 

이것은 고의가 다분히 함유되었기 때문에 처벌을 받는다. 다만 이런 건 있다. 복부를 찔렀는데 몇 cm 가량이 들어간 상태가 살인미수로 처벌을 하느냐 아니면 상해죄로 해야 되느냐. 이런 부분이 있다.

 

같은 방송에서 임방글 변호사도 “살인죄에 고의가 있다고 인정이 되려면 나는 저 사람을 원래부터 죽이고 싶었다 등 이런 게 있어야만 하는 게 아니다. 나의 행동으로 인해서 저 사람이 죽을 수 있겠구나라는 것을 인식하면 살인죄의 고의(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고 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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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욱

안녕하세요.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입니다. 권력을 바라보는 냉철함과 사회적 약자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겠습니다. 더불어 일상 속 불편함을 탐구하는 자세도 놓지치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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