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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반 ‘친구’를 왜 목 졸라 죽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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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여고생이 친구를 목 졸라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대전 둔산경찰서에 따르면 12일 정오 즈음 대전 서구 월평동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고등학교 3학년 A양이 동급생 친구 B양을 목 졸라 숨지게 했다. 둘은 평소 친한 관계였는데 같은 학교 같은 반 친구였다. A양은 이날 할 말이 있어서 B양의 아파트로 갔는데 전해줄 물건도 있었다고 한다. 사실 A양과 B양은 고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여태까지 친하게 지냈었다. 그런데 A양에 따르면 B양이 최근 절교하자고 선언했고 마지막으로 물건을 전해줄 겸 해서 집으로 가서 대화를 하다가 말다툼으로 번졌다. A양은 B양을 구타하고 목 졸라 살해한 뒤에 자살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그 이후 경찰에 직접 신고해서 자수했다. 

 

경찰은 일단 A양을 긴급체포했으며 범행 경위를 좀 더 조사하고 13일 정식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며 다음날(14일) 대전지법은 A양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경찰은 유족의 동의를 얻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B양의 시신 부검을 의뢰해서 정확한 사인을 파악할 것이고, B양의 PC와 스마트폰을 디지털 포렌식해 자세한 사건 배경을 조사할 계획이다.

 

 

일단 지금으로선 계획적인 살인이 아닌 우발적으로 홧김에 그런 것으로 판단되는데 △다만 A양과 B양의 실질적인 관계가 어땠고 오랫동안 쌓였던 앙금이 있었던 건지 △또한 둘의 관계가 진짜 동등한 친구 관계였는지 아니면 겉으로만 그렇고 실제로는 수직적인 관계였는지 △무엇보다 B양이 절교하자고 한 배경은 무엇이었는지 등등을 밝혀내는 것이 매우 중요해졌다. 사실 A양은 작년 8월 B양에게 학교폭력을 가한 사실이 인정되어 학폭위(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 회부된 적이 있었다. 입시위주교육의 분위기 아래 문제가 생기면 덮으려고 하는 학교의 관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A양은 B양과의 분리를 위해 반을 강제로 옮기는 제재 조치를 받았다. 물론 복합적인 관계였는지 A양과 B양은 그 이후 SNS를 통해 연락을 이어가긴 했다. 학교와 대전교육청은 학폭위의 결정을 둘 다 받아들여서 행정심판까지 가지 않고 종결됐던 만큼 어느정도 관계가 개선됐던 것으로 파악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B양이 사망한 이후로 책임 회피를 위해 유리한 쪽으로 입장을 정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학교와 교육청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다. 유족들은 B양이 “이동수업 때마다 A양을 마주치는 것을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워했다”면서 둘의 관계가 회복되어 친한 사이라는 A양과 학교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영화 <파수꾼>과 <우리들>에는 청소년 시절 친구들과의 관계 문제가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 것인지, 나아가 단짝이라고 생각했던 친구로부터 실망했을 때 직면하게 될 절망감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절친이 학폭의 가해자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고, 날 왕따시키는 나쁜 친구로 변질되는 패턴도 흔하다. 학교도 그렇고 군대도 그렇고 사실상 반강제적으로 특정 공간에 놓여지는 환경에서 처음부터 싫었던 사람과 어쩔 수 없이 친한 척 해야 하는 메커니즘이 있기도 하다. 관계의 위계 속에서 날 함부로 대하는 친구와 감정 노동을 해가며 친밀감이 있는 척 코스프레를 해야 하는 경우가 은근히 많다. 그래서 외부에서 관망하는 학교와 가정은 청소년들의 관계 문제를 쉽사리 이해할 수 없고 피상적인 관계성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학폭의 고리를 보지 못 할 가능성이 높다.

 

과거에도 여성 청소년의 친구관계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으로 국한해봤을 때 유사한 사례들이 있었다.

 

지난 2019년 12월 당시 초등학교 5학년 여자 어린이 C양은 경기도 구리시 모 아파트에서 가족에 대한 뒷담화를 했다는 이유로 동급생 D양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가해자 C양은 조부모와 같이 살고 있는 집에 D양을 불러서 같이 있었는데 잠깐 조부모가 집을 비운 찰나에 살인을 저질렀다. 구리경찰서는 C양을 긴급체포했으나 형사 책임이 면제되는 촉법소년(만 10세~14세)이라서 가족에게 인계할 수밖에 없었다. C양은 형사처벌이 아닌 보호처분을 받게 됐는데 경찰 조사에서 가족을 험담해서 화가 나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2012년 1월에는 대구에서 살다가 돈을 벌기 위해 대전으로 함께 올라왔던 고등학교 3학년 동급생 E양이, F양을 구타해서 살해했다. 둘은 모텔 객실에서 술을 마시다가 경제적인 문제로 말다툼을 심하게 했다. 결국 E양은 F양을 잔인하게 마구 때렸고 발로 밟아 숨지게 했다. 그동안 대전에서 여관방에 장기 투숙하며 함께 살았던 둘은 알바하며 돈을 모았다고 한다. E양은 범행 직후 다른 지인에게 전화해서 자백했고, 지인이 경찰에 신고해서 이내 검거됐다. E양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로 구속됐다.

 

두 사례 모두 홧김에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청소년 범죄의 일반론으로 살펴봤을 때 인간관계가 지나치게 협소하고, 소수의 사람에게 과의존하거나, 별것 아닌 사소한 계기로 분노를 표출하는 청소년들은 ‘고립감’을 지속적으로 겪었을 가능성이 높다.

 

 

 

프로파일러 출신 권일용 겸임교수(동국대 경찰행정학과)는 “범죄를 저지르는 청소년들 중에는 굉장히 예민한 시기에 약간의 고립감을 느끼면서 범죄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며 “학대도 그렇고, 가정에서의 고립이나 어떤 사회적 관계에서의 고립 이런 것들을 경험하면서 범죄에 빠져들게 된다”고 강조했다.

 

(게임 중독 등 한 가지 요인을 청소년 범죄의 요인으로 단정하는 것 자체가 섣부르고 위험하지만) 이 아이가 처한 환경적 요인이 뭐가 있었는지 들여다보는 노력을 해야 한다. (2001년 3월 벌어진 ‘친동생 도끼 살인사건’의 가해자 남중생 청소년은) 결국 무관심으로 방치된 건데 이 아이의 행동들은 부모 옆에 가고 싶은 생존적 행동이었다. 나를 좀 봐달라는 생존의 시그널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부모의) 고의적인 방임은 아닌데 국가가 좀 더 고립된 환경에 있는 아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을 할 필요가 있다.

 

32년 경력의 강력계 형사 출신 김복준 교수(중앙경찰학교 수사학과 외래교수)도 청소년 범죄에 대해 “부모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 아래와 같이 역설했다.

 

이런 말씀 드리면 욕먹을지 모르겠지만 통계적으로 그렇다. 솔직히 청소년 아이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데 있어서 부모들의 역할이 제대로 된 집은 내가 실무하면서 몇 명 못 봤다. 거의 청소년들의 범죄는 부모들의 방치 속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내가 적어도 경험한 것으로는 90% 이상이었다. 

 

표창원 소장(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은 “한 아이를 키울 때 온마을이 필요하다고 말은 맨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면서 아래와 같이 설파했다.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언제나 이 사람은 날 생각하고 있다는, 누군가 한 사람과의 애착의 끈만 있어도 그런 범죄는 안 생긴다. 그런데 (친동생 도끼 살인사건) 이번 사례는 없다. 부모는 마음은 있지만 애착을 형성할 수 있는 정신적, 체력적 여력이 전혀 없다. 학교도 오직 진학과 성공에만 초점을 맞추지 이 아이 한 명이 제대로 된 인격체로서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사회화가 잘 되고 있느냐. 우리 교육체계가 제대로 담아내지 못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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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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