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문을 여는 첫 문장이다. 정지아 작가는 본인이 직접 겪은 이야기들을 이 소설에 녹여냈다.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와 남부군이었던 어머니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인생이 담겼다. 아직 완독하지는 않았는데 다 읽어본 사람들은 시트콤적인 요소가 있어서 실소를 머금게 한다고 평했다.
정 작가는 지난 14일 19시 광주 서구 서구문화회관에서 열린 북토크에 참석해서 “한쪽에는 아버지의 동지들이 계셨고 또 한쪽에는 아버지의 고향 친구들이 있었다”면서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쓰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아버지 장례식 때였는데 손님이 많아 제대로 울 시간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장례식이 정말 독특했던 것 같다. 제일 소설스럽다고 생각한 부분은 두 장면이었다. 몸이 불편한 분이 와서 빨갱이가 죽었으면 박수를 쳐야지라고 말하며 침을 뱉었다. 그러자 저 안쪽에서는 원래 좌파들이 말이 많고 시끄럽다. 목소리가 제일 크다고 말했다. 한쪽에서는 이런 말을 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민족, 통일 해방 이런 소리들이 계속 들렸다. 그래서 아 이거 소설로 쓰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빨갱이 타령과 동시에 민족 통일 타령이 동시에 나오는 장례식 풍경이 상상만 해도 기괴하고 비극적인 것 같다. 그놈의 이념이라는게 대체 뭘까? 정 작가는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케케묵은 이념 타령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고찰의 기록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아버지는 2008년에 돌아가셨는데 사실 소설을 한두 번 쓰다가 엎었다. 우리 아버지는 사회주의자였다. 어쨌든 사회주의는 실제 역사 속에서 막을 내린지 오래다. 이제 실제로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시도와 노력들은 당연히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옛날의 이데올로기 대립을 가져와서 소설을 쓰는 것이 현재에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주제의 무거움이 컸다. 빨치산을 소재로 쓰자니 너무 무겁고 낡은 느낌이라 요즘 사람들은 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마인드가 가벼워지고 이데올로기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니 소설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임종의 상태는 어떻게 묘사하더라도 지나치게 무겁고 엄중하다. 그렇다면 차라리 죽음 이후부터 시작해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무엇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극심한 이념 갈등으로 서로를 저주하던 시대의 사람들은 대부분 역사 속으로 퇴장했다. 그들이 사라지고 남은 후세대의 사람들이 되려 그들의 상처를 마주하게 된다.
(소설을 쓰려고 할 당시) 아버지가 2주 정도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소설을 혼수상태로 누워있는 장면에서 시작해 보기도 하고 다른 장면에서 시작해 보기도 했다. 별 시도를 다했다. 그러나 어떻게 해도 너무 너무 무거웠다. 사람의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보내놓고 시작해야겠다고 깨달았다. 두 가지가 있다. 소설을 가볍게 써야 한다는 전략이 있었다. 그것보다 더 근원적으로는 우리 사회에서 뿌리 깊은 이데올로기 갈등을 겪었던 세대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엄마는 남부군의 유일한 생존자다. 어떤 진영에서 누구를 가해자다. 피해자라고 이야기해도 그 주역인 세대가 이미 다 사라져서 어떻게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그분들이 가고 나야 비로소 우리가 해결이라는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연유로 이분들을 내 소설에서는 빨리 보내놓고 시작해야 되겠다는 마음이 들어 그렇게 썼다. 그래서 아버지가 죽었다는 문장을 떠올렸다.
시작이 반이다. 기사를 쓸 때도 첫 문장 리드가 중요하다. 정 작가는 첫 문장에 전봇대를 넣은 의도가 있었다.
이렇게 해도 그렇게 가벼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죽었다란 말이 주는 무게를 뒤엎는 방법이 뭘까 고민했다. 그때 전봇대가 떠올랐다. 전봇대는 전기를 공급해주는 전선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소통을 할 때도 중요하다. 전화든 SNS든 결국 전기가 있어야 하고 전선을 지지해주는 전봇대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다른 방식으로 어긋난 아버지의 소통의 방식을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라는 표현을 쓰면 굉장히 상징적으로 잘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두 문장을 쓰기까지 고민을 했다.
정 작가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너무나 달랐지만 빨치산의 딸로 살아갈 자신에 대한 걱정만큼은 같았다고 전했다.
내가 엄마한테 너무 춥다고 말하면 신문을 보던 아버지는 우리는 한겨울에 눈도 덮고 잤다고 말했다. 이럴 정도니 밥투정을 하면 큰일난다. 아버지는 열흘을 굶어도 사람은 살아진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우리 어머니는 그러지 않으셨다.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두 분 다 동일했던 것이 있다. 산에 내려와서의 삶은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아버지도 그렇게 별 의미가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고통스러워하지 않았다. 빨치산의 딸인 나의 삶만 괴로웠을 뿐이다. 부모님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이미 죽었을 몸이다. 아름다웠던 사람들은 산에서 다 죽었고 찌끄레기들만 남아서 어울려 살고 있다.
정 작가는 빨치산이었던 아버지가 “현실 정치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박정희 정부의 공화당 의원에게 표를 주더라도 더 괜찮은 사람을 고르기 위해 노력했고 선거운동을 도와주기도 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국회의원의 사무실로 직접 찾아가서 대판 싸우기도 했다. 요즘 말로 하면 전형적인 정치 고관여층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단순히 이념에 경도된 인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정 작가는 아버지의 정치 행위에 대해 “본인이 젊은 날 가졌던 신념을 현실화하는 길이라고 생각하셨다”고 해석했다.
정 작가는 서울권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현재는 고향 전남 구례로 내려와서 어머니와 같이 살고 있다.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구례로 내려온 것이다. 서울에서 오래 살며 전형적인 “시티걸”이 됐던 정 작가는 시골살이에 대해 “바운더리가 없다”면서 유쾌하게 말했다.
아버지, 어머니 지인들은 그냥 문을 열고 들어온다. 나는 먹지도 않는 장아찌도 준다. 여러 음식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오신다. 그분들이 엄마를 대하는 진심이 느껴져서 너무 감사하다. 어머니는 날 자랑하는 걸 무척 좋아하신다. 우리 집에 오는 손님들은 어머니로부터 나에 대한 자랑은 2시간씩 들어야 한다. 지겨울 법도 한데 그분들은 먹을거리를 들고 오면서 그 이야기를 듣는다. 이런 조건없는 애정이 시티걸을 더 이상 시티걸로 만들 수 없게 만들었다. 그것 때문에 이 책을 더 쓸 수 있게 된 것 같다.
피는 못 속이는 걸까. 정 작가는 스스로 반골 기질이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서울에서의 인맥과 시골에서의 인맥, 소통의 방식 등이 아예 달라졌는데 중요한 것은 거대 담론을 논하는 지적 허영이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들과 일상의 이야기로 마음을 나누는 행위다.
너무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이 싫다.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애들도 왠지 바보 같아 싫었다. 권력자에게 아첨하는 사람도 싫고 권력있다고 갑질하는 놈들도 싫다. (책에 출연하는) 떡집 언니가 중졸이다. 예전에 어울렸던 사람들은 서울대 수석 입학하고 이런 사람들이었다. 막 하이데거가 어쩌니, 마르크스가 어쩌니, 엥겔스가 어쩌니 등등 이런 종류의 말을 이해하고 답할줄 알아야 말이 통하는 사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들은 전부 다른 진영으로 갔다. 진짜 말이 통하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떡집 언니와는 말이 통하는 정도가 아니다. 그냥 내 마음의 스승이다. 그 언니가 마음 쓰는 것을 보고 있으면 계속 반성을 하게 된다.
정 작가의 아버지는 젊었을 적 가슴이 뜨거웠을 땐 누구보다 강렬한 사회주의자였을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 사회주의는 실패했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정 작가는 그런 아버지를 사회주의자가 아닌 평등주의자였다고 받아들였다.
나한테 어떤 사람이 아버지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뭐라고 말하고 싶은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렇게 고민하지 않았던 주제였다. 우리 아버지는 막판에 사회주의는 실패한 이론이라고 인정을 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는 날까지 사회주의자는 아니었을 것 같다. 엄밀히 말하자면 아버지는 편견없는 평등주의자였다. 예쁜 아이, 못생긴 아이 모두 예뻐하셨고 아이를 안아도 부잣집 예쁜 아이보다 코를 찔찔 흘리고 다니는 가난한 아이를 먼저 안아주셨다. 아버지는 재산보다 더 중요한 정신을 남겨주었다.
한편, 정 작가는 질의응답 시간에 본인이 생각하는 문학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 시골 어르신들의 말에는 삶의 무게가 녹아 있다. 그런데 본인들이 얼마나 표현을 잘 하는지 모른다. 어떤 어르신에게 벚꽃이 예쁘지 않냐고 물으니 이런 말씀을 하셨다. 걔는 정 없어. 왜냐면 벚꽃은 대체적으로 빨리 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르신에게 산수유꽃을 보러 가자 했다. 왜냐하면 산수유꽃은 한 달 내내 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르신이 이런 말씀을 했다. 걔는 속 없어.
가난한 집에 손님이 오면 눈치가 보인다.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손님이 도통 가지 않으면 결국 예의상 손님 식사도 준비해야 하는데 없는 형편에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손님은 눈치없이 가지 않고 앉아 있다. 어르신은 이 손님에 산수유꽃을 비유한 것이다.
그래서 문학이라는 것은 삶의 무게가 담겨 있는 언어를 골라내고 수집하는 작업이다. 그리고 작가는 그 언어에 이야기를 부여하는 자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