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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강 “윤석열 대통령의 노동 인식? 생각 자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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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노동’이라는 단어 혐오 만연
하종강 교수 "나는 웹툰 ‘송곳’의 모델이 아니다"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 네이버 인기 웹툰 <송곳>을 아주 재밌게 읽었고 동명의 jtbc 드라마도 정주행을 했다. 노동조합 내부의 이야기는 물론 대한민국의 노동 현실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외국계 대형마트가 직원들에 대한 부당해고를 시도하는 것에 맞서는 내용인데 그 과정에서 노동상담소 소장 구고신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구고신 소장의 모델로 알려진 인물이 하종강 교수(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다. 

 

하 교수는 <송곳> 모델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해명하기 바쁘다”며 구고신 캐릭터에 영향을 준 것은 맞지만 다른 인물들도 많이 참고해서 창작한 복합적인 캐릭터라고 손사레를 쳤다. 

 

 

지난 6월20일 저녁 7시 광주 서구에 있는 5.18 기념문화센터에서 열린 하 교수의 강연에 참석했다.

 

시작하자마자 하 교수는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연설을 보여주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내 가족의 생계를 보장할 좋은 직업을 원하는가. 누군가 내 뒤를 든든하게 봐주기를 바라는가. 나라면 노조에 가입하겠다”고 발언했다. 자본주의의 끝판왕으로 알려져있는 미국에서도 노동조합 나아가 노동에 대한 혐오가 한국 만큼 심하지 않다는 것을, 하 교수는 보여주고 싶었다.

 

하 교수는 “한국은 노동이라는 단어 자체에 혐오가 만연해 있다”며 과거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손발 노동으로 해가지고 되는 건 하나도 없다. 그건 인도도 안 한다. 아프리카에서 하는 것”이라는 몰상식한 발언을 한 것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생각이 틀린 게 아니다. 그냥 이것은 생각이 없는 것이다. 근로자의 날도 노동자의 날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노동자의 날이라고 부르지 않는 국가는 전세계에서 대한민국 밖에 없다. 심지어 30년 전 국회에서는 노동부 장관을 근로부 장관이라고 부른 적도 있다. 근로자의 날 명칭을 바꾸기 위해 지속적으로 캠페인을 벌였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 했다.

 

왜 이렇게 노동 혐오가 심한 걸까? 하 교수는 과거 출연했던 방송에서 걸그룹 나인뮤지스 출신 세라씨를 만난 적이 있는데 세라씨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노동 혐오의 근원을 짚어냈다.

 

(세라씨는) 거의 아이돌 노무사다. 아시다시피 아이돌 연습생들이야말로 노동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져 있는 사람들이다. 세라씨도 노동 인권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상처 받은 연습생들의 상담을 도맡아서 해주고 있다. 아마도 한국은 노동을 천시하는 것보다 두려워하는 게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70년 동안 분단 상태에 놓여져 있는 국가다. 그런데 북한 정당의 명칭이 노동당이고 발행하는 신문도 노동당이다. 한국은 ‘레드 콤플렉스’가 극심한 국가고 전 세계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그 콤플렉스를 앓고 있는 국가다. 작은 결론은 노동이나 노동자라는 단어가 불순해보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일부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노동이라는 단어가 익숙해지지 않을 것이다.

 

 

하 교수는 현행 교육제도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제대로 된 노동 교육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최근에서야 교과서에 살짝 실리는 수준이다. 그러나 유럽은 다르다. 하 교수는 독일 학교에서의 노동 교육 사례를 소개했다. 학생들끼리 조를 짜서 노동자와 경영자의 입장이 되어 직접 단체교섭을 해보는 것이다. 독일 학생들은 경영자 역할보다 노동자 역할을 더 하고 싶어 한다. 프랑스에서도 노동 교육을 초등학교 때부터 주요 과목으로 정해 가르치고 있다. 이런 노동 교육을 실질적으로 받고 성장한 시민들이 있기 때문에 유럽 주요 국가들에서는 집회시위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혹시 시민법과 사회법의 개념을 구분할 수 있겠는가? 시민법은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발전하기 시작한 시민들의 보편적 권리를 담은 법 체계이지만 현대로 넘어오면서 실질적인 평등의 부분에서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탄생하게 된 것이 사회법이다.

 

사람들은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말이 진리라고 생각한다. 그 신념이 중세의 전통적 신분사회를 바꾸는 원동력이 되었다. 신분제를 벗어난 시민 계급이 그 신념을 바탕으로 시민 혁명을 통해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렸다. 그 신념을 법률화 한 것이 바로 시민법이다. 여기까지 보면 상당히 좋은 법이다. 그러나 지금 실제로 모두 평등한가? 아니다. 현실 속에서 인간들은 여전히 불평등하다. 그래서 실제로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법을 만든다. 그게 사회법이다. 굳이 따지자면 사회법이 시민법보다 더 상위다. 시민법은 후진국, 선진국 다 비슷하다. 그러나 사회법은 차이가 크다. 사회법이 하는 역할은 그거다. 예를 들어 어떤 경기장에 키 큰 사람과 키 작은 사람이 들어갔다. 키가 큰 사람은 경기를 볼 수 있지만, 키가 작은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이 키가 작은 사람에게 받침대를 주는 것이 사회법에서 말하는 평등이다.

 

 

그런데 한국 법조인들은 상당수 노동권에 대해 무지하다. 사회권적으로 노동법을 해석해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해줄 역량이 없다.

 

나는 사법연수원에서 노동법을 강의했다. 첫날 설명하는 것이 시민법, 사회법, 노동법, 근로기준법이다. 거기 있던 연수생이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뭔가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 강의 들은 연수생 중에 90% 이상이 이러한 법들을 처음 보는 사람들이다.“ 왜 이런 말을 할까? 예비 판검사, 변호사가 되어야 할 사람들인데 말이다. 왜냐면 거의 모든 법대에서 노동법은 선택 과목이다. 그마저도 학생들이 선택을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처음부터 노동법을 접하지 못 하고 법조인이 되는 교육과정의 함정이 있다.

 

사법고시 1차 시험은 과목을 선택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다. 왜냐면 분량이 매우 많고 다른 과목과 점수는 똑같다. 합격하는 게 중요한 시험에서 고시생들은 굳이 분량이 많은 과목을 선택하지 않는다. 노동 전문 인권 변호사들도 법조인이 된 이후에 따로 공부한 것이다. 사실상 노동법을 전혀 공부하지 않는 법조인이 매우 많은 것이다. 이건 굉장히 공포스러운 상황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자신들이 무식하다는 생각을 가장 하지 않는 집단이 법조인 집단이다.

 

나아가 하 교수는 한국의 진보와 보수의 구도에 대해서도 첨언했는데 결론적으로 한국 보수는 항상 노동계를 탄압해왔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 세우려는 진보개혁 세력이 모든 분야에서 보수 세력과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정당, 언론, 단체 등 모두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져 있다. 보수 세력에서도 열심히 하는 정치인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한국 보수는 노동 세력을 탄압한다.

 

과거 하 교수는 KBS <역사저널>에 출연해서 故 전태일 열사에 대해 설명하며 울컥한 적이 있다. 하 교수는 1970년대의 노동 현실에 대해 “입에 고구마를 쑤셔넣고 물 한 방울 안 주는 것이다. 그 상태에서 마라톤을 시킨다”고 비유했다. 너무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애초에 노동권이라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인데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면서 자기 몸에 불을 붙였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故 이소선 여사가) 연락 받고 병원에 갔더니 (전태일 열사는) 이미 피부가 다 녹아내려서 바늘 하나 꽂을 수 없이 그런 상태로 누워있었다고 한다. 근데 전태일 열사가 어머니에게 하는 말이 어머니! 내가 5분 뒤에 죽을지 10분 뒤에 죽을지 모르니까. 내 말 잘 들으세요. 근데 숨을 못 쉬니까 의사가 와서 목을 칼로 땄다. 피가 분수처럼 뿜고 기도로 숨을 쉬게 한 것이다. 노동자들은 암흑 세상에서 살고 있다. 내가 죽으면서 그 깜깜한 하늘에 작은 구멍 하나 뚫은 거예요. 어머니가 남은 평생 동안 그 구멍 조금만 넓혀주세요. 어머니 빨리 약속해주세요. 혼자 하지 마시고 꼭 노동자들과 같이, 대학생들과 같이 해주세요. 빨리 약속해주세요. 어머니가 답을 못 하고 있었는데 소리를 막 질렀다. 전태일 열사가 꼭이라고 말할 때마다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그래서 내가 뭐라 그러겠는가. 꼭 그렇게 하마. 약속을 하셨다.

 

 

다음으로 하 교수는 대한민국의 고질적인 ‘무한 경쟁체제’에 대해 논했다.

 

대한민국은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과 그렇지 못 한 사람과의 차별이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국가다. 소위 말하는 좋고 안정적인 직업들을 얻는 것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구멍 안에 들어가지 못 한 사람들의 삶은 지나치게 불안정하다. 회사 규모에 따라 임금 차이도 너무 많이 난다.

 

무한 경쟁 사회가 저출생 기조로 이어진다. 과잉 대접과 푸대접을 받는 게 공정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다 차별이다. 차별을 해소해야 저출생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는 게 하 교수의 제언이다.

 

사회 지배 세력은 서민들끼리 치열한 경쟁을 통해 상층부에 진입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인 것처럼 가르친다. 사회적 약자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기득권의 이익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한국에서 공부를 잘 하면 대접받는 것이 당연하고 공부를 못 하면 불이익을 받는 것을 당연시한다. 공부를 잘 하면 특권을 가지는 것이 진정한 공정이라고 가르친다. 이 시스템이 대한민국을 경제 10위 대국, 출생률 198위의 불행한 국가로 만들었다. 차별을 해소해야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무직과 생산직, 남성과 여성 등의 차별이 없어져야 한다. 그래야 저출생 현상도 해소된다.

 

우리는 말로만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실제로 직업에 귀천이 없는 스웨덴의 상황을 참고해야 한다.

 

스웨덴 같은 곳에서는 직업의 귀천이 없다. 경력 10년 된 일용직 노동자의 급여가 의사보다 많다. 물론 의사는 스웨덴에서도 인기가 많다. 그래도 다른 직업과의 급여 차이가 많지 않다. 여기서는 적성대로 직업을 선택한다. 부부도 한 사람은 대학 교수고 한 사람은 용접공인 경우도 있다. 대학 교수를 하다가 학교 청소 노동자가 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이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이런 것을 보면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할 것이다. 공부 열심히 해서 의사 되었는데 다른 직업과 급여 차이가 크지 않으면 누가 의사해요? 억울할 것 같아요.

 

정말 그런 걸까? 직업의 귀천을 인정하고 그에 맞는 신분과 계급을 부여하는 것이 맞는 걸까? 

 

그 마인드가 잘못된 것이다. 사람을 살리고 싶은 사람이 의사를 해야지 돈을 쫓는 사람이 의사를 해서는 안 된다. 차별이 없어지면 오히려 정말 사명감을 가진 사람이 의사를 할 수 있다. 한국의 명문대 출신들은 UN에 채용이 안 된다. 왜 그럴까? 일단 지금 강의하는 나 자신이 여러분들과 다른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난 강의를 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의사도 마찬가지다. 내가 치료하고 있는 노동자와 나는 다른 인간이라고 생각한다면 의사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냥 사회에서 맡는 역할과 기능이 다른 것이다. 그래서 본인이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UN에서 일할 수 없는 것이다. 경쟁에서 승리하는 방법만 아는 사람이 아프리카의 빈민들을 보면 뭐라고 생각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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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욱

안녕하세요.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입니다. 권력을 바라보는 냉철함과 사회적 약자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겠습니다. 더불어 일상 속 불편함을 탐구하는 자세도 놓지치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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