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선거제도개혁연대 김찬휘 대표는 선거법 전문가로서 두 가지 마음을 동시에 갖고 있다. 거대 양당이 지배하고 있는 21대 국회에서 선거제도 개혁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적인 판단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위적으로 비례성을 조금이라도 높이는 방향으로 선거법을 고쳐야 한다. 김찬휘의 선거법 체크 두 번째 시간에는, 현재 돌아가는 상황에 근거해서 김 대표가 가장 유력하게 예측하고 있는 최종 선거법 모델은 과연 무엇일지 짚어볼 것이다.
3월말부터 4월 중순까지 약 2주간 열렸던 국회 전원위원회는 국민의힘의 아무말 대잔치로 막을 내렸다. 국민의힘 지도부의 가이드라인이 소속 의원들의 입에 재갈을 물렸고 이에 따라 비례대표제를 축소 또는 폐지하자는 말과 의원 정수를 줄이자는 말이 난무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속으로 웃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김 대표는 6일 21시 평범한미디어와의 전화통화에서 “민주당 입장에서는 국민의힘이 결국 국민의힘의 이익을 추구하는 게 민주당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까 민주당으로서는 어이없어 하면서도 사실은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전원위도 양당의 요식행위나 다름없었는데 그 이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내년 총선에 적용할 선거제도를 결정하기 위해 공론화(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을 위한 공론화 시민참여단)를 진행했다. 5월6일과 13일 두 차례에 걸쳐 공론 과정을 거쳤고 13일에는 여론조사 방식에 따른 최종 결론을 도출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김 대표는 공론화에도 비관적이었다. 종합적으로 살펴야 할 선거제도 문제를 각각 쪼개서 토론하고 결정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공론화 보니까 주제를 나눠서 토론하더라. 예를 들면 중대선거구제냐 소선거구제냐, 비례대표제와 지역구의 비율, 의원 정수 늘릴지 말지, 그 다음 비례대표제를 어떤 형식(권역 또는 전국)으로 할 것이냐, 비례대표 명부를 개방형으로 할지 폐쇄형으로 할지 등등. 이렇게 딱딱딱 주제를 나눠서 하는데 굉장히 과학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선거제도라는 게 그렇게 이슈를 개별적으로 쪼개서 이슈별 가장 훌륭한 걸 선택해서 모았다고 좋은 안이 아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서 개별 이슈별로 해답은 다 다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 선거구에서 1명 뽑는 소선거구제보단 중대선거구제가 사표를 덜 발생시켜서 선택될 것이고, 도시에 비해 농촌은 인구 규모가 극단적으로 작기 때문에 도농복합으로 귀결되는 것이고, 당연히 위성정당을 방지해야 하기 때문에 지역구 의석수와 비례대표 의석수를 상호 연동(연동형)하지 않고 별도로 뽑게 되는 것(병립형)이고, 꼴보기 싫은 국회의원 숫자 도저히 늘릴 수는 없으니 줄이는 것이 타당해 보이는 거다.
김 대표는 “이걸 다 합쳐보면 결국 1안이 되는 것”이라고 환기했다.
앞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여야 합의로 의원 정수 증원을 포함한 3가지 안을 전원위에 올리기로 했다가 국민의힘 지도부의 강한 반발로 인해 기존의 결의를 철회하고 아래와 같은 3가지 안으로 수정했다.
1안: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와 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의원 정수 300석 유지)
2안: 개방명부식 대선거구제와 전국·병립형 비례대표제(의원 정수 300석 유지)
3안: 소선거구제와 권역별·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원 정수 300석 유지)
거대 정당으로서의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타협(또는 야합)할 수 있는 모델이 바로 1안이다. 결론적으로 김 대표는 내년 총선을 1안으로 치르게 될 것이라 예상했는데 사실상 공론화의 진행 방식 역시 그렇게 설계돼 있는 요식행위와 같다고 주장했다.
지금 토론을 그런 식으로 하고 있다. (비례성을 높이고 사표를 줄여야 하는) 맥락 안에서 접근이 돼야 되는데 맥락이라는 게 없이 하나 하나 이슈별로 쪼개서 하게 되면 의원 정수 문제도 뭐 줄이거나 동결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충분한 정보와 충분한 학습 기회를 줘야 하는데 주제를 하나씩 쪼개 갖고 이렇게 논의를 하게 하는 것 자체가 성과가 나오기 어려울 것 같다. 오늘 대낮에 유튜브 생중계 들어가 봤더니 한 3000명 밖에 안 보고 있더라. 이게 무슨 공론화인가. 전국민의 0.01% 이하만 참여하고 있는데.
공론화의 결과는 김 대표의 비관론과는 좀 달랐다. 469명을 대상으로 스마트폰 웹조사로 진행됐는데 그 결과는 아래와 같다.
①소선거구제 56%, 중선거구제 40%, 대선거구제 4%
②비례대표 선출 범위 전국 58%, 권역별 40%
③비례대표 의석 현행 유지 18%, 더 늘려야 한다 70%, 지역구 더 늘려야 한다 10%
④의원 정수 현행 유지 29%, 더 줄여야 한다 37%, 더 늘려야 한다 33%
비례성을 늘리는 방향으로만 결과값이 도출된 것도 아니고, 승자독식을 강화하는 방향으로만 결과값이 나온 것도 아니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전원위도 했고 공론화도 마쳤으니 “금년 상반기 전에는 마무리돼야 한다”며 또 다시 데드라인을 설정했다. 나아가 김 의장은 더 많은 의원들의 목소리가 반영되게 하자는 차원에서 전원위 소위를 꾸려 안을 정리하자고 제안했으나, 국민의힘은 정개특위에서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김 대표는 향후 “단일안이라기보다는 몇 개 안을 갖고 국회에서 표결할 것 같다”며 “어떤 하나의 안으로 표결이 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핵심은 1안이다. 1안을 기준으로 2안의 요소가 섞이게 될 가능성이 있다. 우선 김 대표는 “소선거구제가 바뀔 것 같다”고 말했다.
소선거구제로 가면 두 정당이 나눠먹는 거고 거대 정당한테 유리하고 사표가 많이 생긴다는 것은 일반 시민들도 다 알고 누구에게나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공론화 들어가면서 중대선거구라고 안 하고 중선거구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름이 3~5인 중선거구로 바뀌었다. 그래서 2인 선거구는 또 둘이 나눠먹을 게 너무 보이니까 3~5인 선거구로 해서 정치 다양성을 보장하고 소수정당의 의회 진입을 돕는다는 식으로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면서 이것이 마치 개혁인 것처럼 할 것 같다.
하지만 김 대표는 “비례대표 의석은 못 늘어날 것 같다. 47석 그대로 갈 것 같다”고 예상했다. 동시에 위성정당 문제가 부각되어 연동형이 아닌 병립형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의힘이) 줄이자고 하는 것은 유지하려는 술책이다. 늘리지 못 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면 줄이자는 세력과 늘리자는 세력이 있으니 유지하자. 이렇게 되면서 둘 다 만족하는 그런 길로 갈 것 같다. 그러면 비례대표 47석을 준연동형으로 가느냐 병립형으로 가느냐 이 문제가 남는데. 민주당이 내놓은 대안들에는 위성정당 방지책이 없다. 그래서 위성정당에 대한 우려가 불거지면서 병립형으로 갈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결국 두 정당의 이익의 측면에서 1안 비슷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인데 김 대표는 “만약 1안이 그대로 되면 민주당한테 명분이 없으니 1안을 조금 변경시켜서 (비례대표 의석 배분에) 권역별을 적용하지 않고 (지금처럼) 전국 단위 47석을 병립형으로 해도 되는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렇게 “1안과 2안이 합쳐진 것”처럼 보이게 되고 “그런 쇼를 할 가능성이 좀 높지 않을까”라는 게 바로 김 대표의 예상 시나리오다. 허나 김 대표는 “이게 나의 예측인데 예측이 좀 틀렸으면 좋겠다”고 단서를 달았다. 틀렸으면 좋겠지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1안과 2안의 어느 사이. 이것이 왜 정치개혁이 아닌 걸까. 김 대표는 “최근에 많이 하는 말이 그거 하고 있다. 한겨레에서 나왔던 건데 그 말이 사실 내가 조언한 얘기나 다름없다”고 운을 뗐다.
경기 성남을 예로 들면 수정, 중원, 분당갑, 분당을 4곳의 지역구를 4인 선거구 하나로 합치면 김태년(민주당), 윤영찬(민주당), 김병욱(민주당), 안철수(국민의힘) 현역 의원 4명이 그대로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식으로 가게 되면 내 생각에는 지금 지역구 253석 중 251석(정의당 심상정 의원과 진보당 강성희 의원 제외)을 두 정당이 차지하고 있는데 그게 한 250석이나 249석 한 2석 정도로 (비양당 정치인이 당선) 되지 않을까 싶다. 울산에서 1석, 광주전남에서 1석 진보당이나 정의당한테 딱 2석 정도만 양보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뭔가 다양성도 보장한 것 같고, 뭔가 눈에 보이게 바뀌는 것도 있는 것 같은데 (양당이) 손해는 거의 안 본다.
그런데 이러한 흐름을 민주당 이탄희 의원이 주도하는 ‘정치개혁 2050’, 심상정 의원이 깃발을 들고 있는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모임’, 690여개 시민사회단체의 연대체인 ‘정치개혁공동행동(정공) 등 세 주체가 저지하거나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려놓을 순 없는 걸까?
김 대표는 역시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사실 정치개혁 2050은 작년 연말 결성될 때부터 “낡은 정치 소선거구제 폐지하라”를 핵심 구호로 내세웠던 만큼 소선거구제를 물리치는 것에만 화력을 집중해왔다. 초당적 의원모임은 총선이 1년도 안 남은 시점이라 그야말로 “동상 300몽”에 가깝다. 의원들 개개인의 출마 지역구, 경력, 강점과 약점 등등 전부 자신들의 당선 위주로 선거법을 바라보고 있다.
특히 정의당 소속 의원 6명은 어차피 내년 총선에서 전원 지역구로 출마해야 하는 현실에 놓여 있다. 다들 이미 지역구(심상정 경기 고양갑/이은주 서울 노원병/장혜영 서울 마포을/류호정 성남 분당갑/강은미 광주 서구을/배진교 인천 남동)를 잡아놨고 다시 비례대표로 출마할 수가 없다. 비양당 정치인은 1등만 당선되는 소선거구제 하에서 지역구 정치인으로 생존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故 노회찬 의원이나 심상정 의원, 진보당의 선전, 2016년 총선에서 국민의당의 부상, 탈당파의 무소속 당선 등 이례적인 몇몇 경우 외에는 99% 이상 양당 정치인이 지역구를 독식한다. 그래서 이은주 의원이 이미 발의한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 법안이 있음에도 정의당 의원들이 이 안을 밀지 않고 사실상 1안으로 관철되는 현실을 방관만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평범한미디어는 정의당 내부 속사정을 다각도로 취재해봤는데 실제 중선거구제쪽으로 기울었으나 밖으로 표출하지 못 하고 표정관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됐다.
끝으로 김 대표는 그동안 정공 차원에서 모든 노력을 다했음에도 현실적으로 상황이 녹록치 않다면서 “반보 전진”이라도 수호하기 위해 목표를 수정했다고 밝혔다.
정공은 내가 속해있기도 한데(김 대표가 정공 공동대표 겸임) 굉장히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의지도 높고 많은 활동을 했다. 기자회견도 많이 했고, 토론회도 많이 했고, 국회 간담회도 하고,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도 많이 했다. 요새 카드뉴스도 1회 나가고 2회째 나갔다. 노조들 다 돌아다니면서 강연하고 있고 다 하고 있는데 2018~2019년에 비해 실제로 법을 만들어야 될 국회와의 소통이 약하다.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이 존재했던 그때와는 지금 너무나 다르다. 지금 가장 열심히 하고 있는 곳이 이제 참여연대, 민변, 선거제도개혁연대. 이렇게 셋인데 국회로 밀고 들어갈 통로가 없다. 올해는 사실 목표를 많이 잡았으나 현실적으로 하나만 보고 가자면 병립형으로의 회귀 저지. 이것만 보고 있다. 딱 우리가 합의본 것이 이것이다. 다 못 할 것 같으면 병립형 저지라도 하자. 왜냐면 준연동형이 반보 전진이었으니까. 반보 전진이라도 지켜야 하니까. 이런 비장한 각오로 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