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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먹을 수 있다’는 국민의힘의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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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국민의힘이 선거제도 개혁 국면에서 여전히 승자독식의 룰을 고수하며 다음 선거에서 ‘다 먹을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2024년 4월 22대 총선까지 1년 남은 시점에서 국회 전원위원회(제3차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선에 관한 결의안 심사를 위한 전원위원회)가 10일부터(13일까지) 진행되고 있는데 국민의힘 의원들은 하나같이 입을 맞췄는지 ‘비례대표 폐지’와 ‘도농복합’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일찌감치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전원위에서 연설할 의원들을 따로 불러모아 “우리가 1당이 되어서만은 안 되고 과반 의석을 차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에게 좋은 조건으로 발언해야 한다”는 걸 전제로 △의원 정수 30석 축소 △소선거구제 고수 등 지침을 하달했다.

 

 

당초 국회 정개특위(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여야 합의로 김진표 국회의장의 자문위원회가 제시한 3가지 모델을 전원위에 올리려고 했다가, 국민의힘 지도부의 강한 반발로 의원 정수를 고정시키는 3가지 모델로 수정했다.

 

①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

②소선거구제+권역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③개방명부식 대선거구제+전국 병립형 비례대표제

 

그나마 전원위에서 연설을 한 국민의힘 의원들이 ①을 주장하는 것(이용호/이양수/김선교/황보승희)은 3가지 모델 중 하나이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고 이해해줄 수 있다. 그러나 비례대표를 폐지 또는 축소하자거나(윤상현/유상범/이달곤), 의석수를 줄이자는 것(이헌승/이태규/김승수/조경태/박수영/송석준)은 3가지 모델 바깥에 있는 무책임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전원위가 열리기도 전에 김 대표와 박수영 여의도연구원장(초선)이 소속 의원들에게 승자독식 선거법을 주장해달라는 가이드라인을 설정했기 때문에 어느정도 예상이 됐던 상황이다.

 

물론 국민의힘에서 이종성·최승재 의원 등은 드물게 비례대표제에 대한 긍정론을 설파했다.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는 인구가 집적된 대도시에서는 1개 선거구당 2~3명 이상을 뽑고, 인구가 부족한 농어촌에서는 1명만 뽑는 제도다. 수도권 의석수가 부족하고 영남 중심의 농어촌 의석수가 많은 국민의힘이 강력하게 선호하는 모델로서, 과거 2018년 자유한국당 김성태 전 원내대표가 추진했다가 좌초된 바 있다.

 

국민의힘 김용판 의원이 전원위에서 “소선거구제의 강점이 훨씬 크기 때문에 전국 모두 현행 소선거구제 유지가 필요하며 그 방향이 맞다고 믿는다”고 발언한 바 있는데, 비례대표 폐지와 의석수 축소 모두 소선거구제 고수론이 향하고 있는 승자독식의 성격과 일맥상통한다.

 

 

소선거구제는 말 그대로 1개 선거구에서 1명만 뽑는 작은 선거구라는 의미인데 1등이 획득한 표 외에 나머지 표들은 전부 죽은 표가 된다. 승자가 될 확률이 높은 거대 양당이 돌아가며 다 먹거나 절반씩 과점할 수 있는 모델이다. 핵심은 1등만 당선되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가 대표적인데 작년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에게 간 1639만4815표 외에 1767만3038표가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1등이 모든 걸 갖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를 공격하고 저주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 정치 전략으로 자리잡는다. 강력한 경쟁자에 대한 혐오 여론을 부추겨야 내가 반사효과를 볼 수 있다. 국회의원 300명을 대통령 뽑듯이 해보자는 게 바로 국민의힘의 노림수인데 자연스럽게 비례대표제를 없애거나 최소화하는 쪽으로 귀결된다. 300석 기준 정당득표율 10%를 얻었다면 30석을 확보해주는 것이 비례대표제인 만큼 사표가 없는 건데, 현행 한국 비례대표제는 300석 중 47석으로만 치러진다. 즉 지역구 253석에서 99% 이상을 거대 양당이 차지하고, 47석의 비례대표제에서도 85% 이상이 양당에게 귀속되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그 47석마저도 축소하거나 없애버리자고 강변하고 있다. 김 대표가 밀고 있는 의석수 축소론은 국민들의 ‘정치 혐오’ 정서를 명분으로 하고 있지만 그 속내에는 전체 의석에서 비례대표의 비중을 현저히 줄여 국민의힘에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만들려는 욕망이 자리잡고 있다.

 

국민의힘은 과거 주요 선거에서 4연패(2016년 총선/2017년 대선/2018년 지방선거/2020년 총선)했지만 근래 4.5 재보궐선거를 제외하고 최근까지 3연승(2021년 4.7 재보궐선거/2022년 대선/2022년 지방선거)을 한 만큼 내년 총선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을 넘어 승자독식을 이뤄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물론 4연패를 했던 기간에도 못 해도 ‘2등 정당’의 지위는 가져갈 수 있었기 때문에 비례대표제 확대론을 밀지는 않았다.

 

하지만 2018년 지방선거의 결과로 국민의힘(당시 자유한국당)이 서울시의회와 경기도의회에서 어떤 피해를 봤는지 그 사실만 상기해봐도 현행 승자독식의 선거제도가 얼마나 불합리한 것인지 얼마든지 알아차릴 수 있다. 그때 국민의힘은 지방선거에서 서울 광역 정당득표율 25.24%를 획득했으나 전체 110석 중 6석(5.4%)을 확보하는 데 그쳤고, 경기 광역 정당득표율 25.47%를 얻었으나 전체 142석 중 단 4석(2.8%)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반대로 민주당은 약 50%의 정당득표율로 94% 이상의 의석을 독점했다. 북한이나 중국도 아닌데 한국에서 매 선거 때마다 이런 황당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지역구 비중을 높이고 비례대표를 축소하면 이런 식으로 승자독식으로의 편향이 강화되는 것이다.

 

 

과거 2019년 3월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은 국회에서 평범한미디어와 만나 현실적인 고충을 털어놨다. 당시 장 의원은 정개특위 간사였는데 나경원 전 원내대표와, 정개특위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장 의원은 국민의힘 대다수 의원들의 여론과는 달리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더라도 수도권에서 가져가는 몫이 있기 때문에 크게 손해보지 않을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는데 나 전 원내대표와 다른 의원들의 반대가 너무 커서 고민스러워했다.

 

솔직히 당내에 연동형을 하든 뭘 하든 간에. 수도권에서 이익 볼 지점이 있다. 우리가 35~40% 얻으면 그 득표율 정도의 서울·경기 의석을 얻으면 TK(대구경북)에서 몇 석 손해보고 하는 것은 커버할 수 있다고 본다. 그것이 이해관계를 버리고 따져봐도 우리가 100% 손해볼 것이냐?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 장 의원은 승자독식 선거제도로 인한 거대 양당의 적대적 대결 정치체제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우리 정치를 좀 오래 한 사람들은 국회의원 한 두 번이 더 중요한 게 아니고 진짜 이거 지긋지긋 하거든. 장제원 맨날 싸움질하는 것도 피곤하고. 그래서 정말 이거(분권형 개헌)는 필요한 거라고 보여지는데 그 고리가 (국회의원) 선거제도다. 이 불씨를 살려나가려고 윽박도 질러보고 힘든데. 나경원 원내대표가 얘기했듯이 (민주당이 분권형 개헌에 대한) 물꼬를 확 틔워주면 당내에서도 한 번 논의해볼 수 있는 동력이 생길 것 같다.

 

 

나 전 원내대표 직전 원내 사령탑을 맡았던 김성태 전 원내대표(2017년 12월~2018년 12월) 역시 장 의원과 마찬가지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의 선거제도 개혁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김 전 원내대표는 기본적으로 분권형 개헌과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는데 2020년 8월 국민의힘 중앙위원회 의장 시절 평범한미디어와 만나 아래와 같이 밝힌 바 있다.

 

작년 연말에 황교안 전 대표가 삭발하고 단식할 게 아니라 협상에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우리는 공수처, 이상한 연동형 비례제 등 다 잃었다. 우리가 모든 것에 다 반대하는 것처럼 돼 버렸다. 그때 나라면 전략적으로 제왕적 대통령제 권력구조 개편(개헌)과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같이 가자고 강력히 요구했을 것이다.

 

아무리 봐도 국민의힘이 정당득표율 만큼 의석수를 배분하는 선거제도로의 개편에 대해 정치 이해관계적으로 아예 접근하지 못 할 정도는 아니다. 허나 김 대표가 선출된 이후 지속적으로 당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음에도, 국민의힘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등에 비춰봤을 때 내년 총선에서 반사이익을 누려 쪽박이 아닌 대박을 거둘 수 있다고 믿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그래서 3년 전 총선에서 적용됐던 ‘준연동형 캡비례대표제’를 원래의 승자독식 선거제도로 되돌려놓거나 자신들에게 더 유리한 선거제도로 개악해야 한다고 대놓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신년 인터뷰에서 중대선거구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것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다만 이제 선거제는 다양한 국민의 이해를 잘 대변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돼야 하는데 소선거구제는 전부 아니면 전무로 가다 보니 선거가 너무 치열해지고 진영이 양극화되고 갈등이 깊어졌다. 그래서 지역 특성에 따라 2명, 3명, 4명을 선출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정치 시작 전부터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해 왔다. 중대선거구제를 통해서 대표성이 좀 더 강화되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선거제도개혁연대를 이끌어가고 있는 녹색당 김찬휘 공동대표는 평범한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도 중대선거구제를 꺼낸 것은 다음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얻기 위해서”라며 “현재의 소선거구제가 갖고 있는 예측불가능성과 불안정성을 경계하는 것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항상 이길 것처럼 보이지만 패배해서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안정적이지 않으니 비례대표제를 확대해서 꼭 친민주당계나 진보쪽만 많이 들어올 것이라고 착각할 필요가 없다. 2020년 총선 때 기독통일당이 1% 넘었다. 우파 계열들도 비례대표로 많이 들어올 수 있으면 국민의힘은 그들과 연합해서 안정적으로 과반을 넘길 수 있다. 사실 유럽 비례대표제 국가들 대부분은 중도우파 연정이다. 네덜란드도 중도좌파가 아니라 중도우파 연정이다. 그래서 그렇게 안정적으로 예측가능한 합리적인 정치를 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꼭 소선거구제에서 압도적으로 이겨야 한다는 집착 말고 오히려 비례대표제 위주로 가는 흐름을 폭넓게 활용했으면 좋겠다.

 

관련해서 김찬휘 대표는 6일 방송된 국회방송 <정관용의 정책토론>에서 “국민이 양당제를 원하면 양당제가 맞다. 인위적인 다당제는 옳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면서 아래와 같이 설파했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3·4·5당(정의당/국민의당/열린민주당)을 찍은 국민이 21.9%, 양당을 찍지 않은 국민의 표는 33%였다. 33% 국민의 지지가 고작 4%의 의석으로 나왔다. 실제로 선거제도 개혁을 할 때 어느 정당한테 유불리하느냐. 소수정당의 진입이 가능하냐? 이건 초점이 벗어났다. 33%의 국민(더불어시민당과 미래한국당이 득표한 67.19%를 제외한 나머지)이 양당이 아닌 다른 선택을 했는데 불합리한 선거제도로 그 선택들을 찍어누르는 게 아닌가. 국민들이 다른 선택을 하더라도 제도가 다시 양당제로 수렴하도록 힘을 행사하는 것만 봐도 지금의 선거제도가 양당제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낸다고 볼 수 있다. 선거제도 개혁의 핵심은 국민의 의사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확대하거나 축소하지 말고 지지율대로 의석에 반영하는 그런 식의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한편, 국회는 13일 오전 10시 마지막 전원위를 열어 여야 20명 의원의 마무리 연설을 진행하고 14시 본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원칙적으로 보면 국회법 63조의2에 따라 전원위에서 정개특위가 제시한 3가지 모델 중 1가지를 최종 의결(38명 이상 동의)하고, 그것을 정개특위로 다시 보내서 추가 의결을 거쳐서 본회의에 올리는 것이다. 그러나 양당 의원들의 입장차가 전혀 좁혀지지 않고 중구난방으로 나오고 있는 것으로 봤을 때 전원위 의결 자체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힘이 보이콧을 한 상태에서 민주당 홀로 의결에 나서는 시나리오가 유력하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지난 이틀 동안의 전원위원회에는 토론도 합의도 없었다”며 “각 의원들 개인의 의견들이 무질서하게 쏟아져 나왔을 뿐”이라고 밝혔다.

 

무질서한 의견들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 제도인데, 지금까지의 전원위원회는 그러한 역할을 하지 못 했다. 의견이 제시됨에 따라 사안의 경중을 뽑아내고 방향을 잡아가는 과정이 없이 국회의원 개인들의 다양한 의견들 제시되기만 하는 회의에 참석률이 점점 저조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총선을 1년 앞둔 시점에 국민들께서 보고 싶어 하는 것은 구체적인 개혁안이다. 이대로 개인 의견들만 제시하다가 전원위원회가 끝난다면 국회는 무능력해 보일 뿐이다. 그리고 다시 정개특위나 양당 지도부에 권한이 이양되면 또 똑같은 쟁점으로 다투기만 하고 시간만 지나갈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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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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