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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일용이 보는 한국의 살인사건 “김밥 때문에 아버지 죽였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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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권일용 겸임교수(동국대 경찰행정학과)는 강연을 다닐 때마다 “유영철이 그렇게 진짜 말을 잘 하는가? 강호순이 잘 생겼는가? 목소리는 어때?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고 말했다. 그런 질문을 받고 권 교수는 “그걸 우리가 왜 궁금해야 하는가.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지금도 끊임없이 고통 받고 있는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이라고 되물었다고 전했다.

 

 

권 교수는 5월24일 15시 전남 함평군 함평읍에 위치한 함평엑스포공원 주제영상관에서 강연을 진행했다.

 

28년간 경찰관으로 근무했던 권 교수는 범죄자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누구냐면 형사가 아니”라고 운을 뗐다. 그 대신 이날 강연장에 사람들이 모인 것처럼 범죄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여서 고민하는 장면을 가장 두려워한다는 게 권 교수의 생각이다.

 

그 자들은 경찰에 잡히면 그냥 운이 없어서, 이번에 실수해서 잡힌 것이라고 생각하지 잘못을 저질러서 당연히 법의 처벌을 받기 위해 잡혔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1명도 없다. 그런데 그 범죄자들은 마석도 같은 형사를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여기에 앉아 있는 선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이 장면을 제일 두려워한다. 억지로 지어낸 말이 아니고 실제로 1000명 넘는 사이코패스들을 만나봤을 때 선한 사람들이 모여 범죄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 시간을 가장 두려워하더라. 왜냐면 자신이 하고 싶은 범죄를 못 하게 되기 때문인데 지역 공동체에서 이렇게 강연이든 토론회든 이런 식으로 고민을 나누는 자리가 그래서 중요하다.

 

사실 <범죄도시> 영화 속 마석도 형사처럼 나쁜놈들을 때려잡으면 시원할 것 같지만 권 교수는 실제로 그렇게 하면 “지금 경찰이 범죄자들을 때리면 바로 다음날 구속된다”면서 “이런 행사들이 열려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하고 서로 서로 보호해주는 걸 두려워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래서 나는 범죄자가 우리를 위협한다. 이런 표현을 굉장히 싫어한다. 우리가 훨씬 더 많은 절대 다수다. 절대 다수가 몇 명의 악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대한민국에서 살인사건은 1년에 1000건 가량 발생하고 있다. 누가 왜 죽이는 걸까? 기본적으로는 가족 살인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두 번째는 직장동료, 세 번째는 친구와 선후배다. 이렇게 대부분 최측근에 의해 살인이 일어난다. 그런데 떠들썩한 살인사건이 벌어지면 수사기관이나 언론에선 “촉발 요인”에만 주목한다.

 

살인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들여다봤더니 우리가 그동안 언론에서 전달해주는 것들 중에 사실 범죄의 동기들을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 되게 많다. 살인사건이 나서 기사가 나오면 대부분 다투다가 기분 나쁘다는 이유 등등 이런 내용들이다. 되게 피상적인 이유들이었다. 그런 이유로 사람을 죽인다는 게 잘 이해가 안 되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그런 것은 동기가 아니고 촉발 요인이라고 한다. 소위 트리거라고 하는데 이렇게 촉발 요인과 범죄 동기를 분리해서 이해를 해야만 범죄를 들여다볼 수 있다.

 

예컨대 2004년 4월 광주 남구에서 당시 고등학교 3학년 아들이 자신의 방에 놔둔 김밥을 아버지가 먹어서 홧김에 살인을 저지른 사건이 발생했다. 실제로 권 교수는 그때 경찰청 본청에서 근무하며 해당 사건을 다룬 보고서가 올라왔을 때 딱 한 줄로 “김밥을 먹었다는 이유로 아버지를 살해한 피의자 검거”라고만 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담당 수사관한테 전화해서 물어봐도 “진짜 김밥 때문”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피의자가 입을 닫고 일체의 진술을 거부했다고 한다. 그래서 권 교수는 직접 광주로 가서 해당 고등학생을 직접 만나봤다.

 

너는 김밥을 좋아하니? 이렇게 먼저 질문했고 도대체 김밥이 너한테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이어서 질문이었는데 이 아이가 비로소 입을 열고 나는 아버지를 죽인 게 아니고 악마를 죽였다고 말하더라. 어렸을 때부터 끝없이 학대를 당하면서 두들겨 맞고 살았는데 중학교 때가 되니까 어머니도 자기만 두고 집을 나가셨다. 그 이후로도 계속 맞고 살았는데 이제 나이가 들어 힘이 생겼지만 어디 갈 데가 없어서 그냥 맞으면서도 지금까지 버텼는데 학교 갔다 와서 먹으려고 놓아뒀던 김밥까지 먹는 아버지가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죽였다.

 

결국 “김밥은 동기가 아니고 그동안 겹겹이 쌓여왔던 어떤 것에 대한 자극이자 촉발 요인”이었다. 그렇다고 패륜을 저지른 행위를 정당화하는 게 결코 아니다. 권 교수는 “그런 서사가 있었기 때문에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것이 가능하고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하는 게 절대 아니”라며 “살인사건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일어나면 안 된다”고 역설했다.

 

그런 가족 내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 우리는 뭘 들여다봐야 되느냐. 그런 범죄의 촉발 요인만 갖고 논할 게 아니고 본질이 무엇인가를 들여다보는 눈을 가져야 된다. 가족 내 성범죄나 학대 사건 역시 어떤 배경에서 일어난 것인지 원인을 밝혀갈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적어도 고등학생이 어떻게 김밥 갖고 아버지를? 이런 감정만 가지고는 범죄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청소년 범죄 문제만 보더라도 자극적인 사건이 터질 때마다 촉법소년 연령 하향과 처벌 강화의 목소리만 높아지는 현실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물론 촉법소년 연령을 만 13세로 하향하자는 주장이 나오게 된 배경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학계든 정부든 청소년들이 왜 흉악 범죄를 저지르고 비행의 길로 빠지게 되는지 체계적으로 연구하지 않고 있다.

 

왜 청소년들이 그러는지를 우리가 모른다. 처벌 강화하고 촉법소년 연령 낮추고 다 좋다. 좋은데 양형 기준에 대한 변화도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여러분들 만 15세를 평균으로 본다면 15년 전 부모들이 갑자기 악마들을 출산했는가? 한국 사회에 무슨 일이 있어서 악마들이 막 태어났을까? 그렇지가 않다. 사실 본질적으로 15년간 한국 사회가 어떤 일을 겪어왔고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같이 보지 않으면 아이들의 문제를 우리가 제대로 알 수 없다.

 

청소년은 한국 사회의 모습과는 차단되어 성장하는 존재가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넷플릭스 <더 글로리> 이후 이슈화가 되고 있는 학교 폭력 문제를 심층적으로 취재한 머니투데이 김지성 기자는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

 

교직에 수 십년 동안 몸담아온 교사들은 요즘 학교 폭력에 이렇다 할 이유가 없는 만큼 마땅한 해결책도 찾기 쉽지 않다고 말한다. 잔인한 학교 폭력 사건이 세상에 알려져 사회적으로 회자될 때마다 교육당국은 이런 저런 해결책을 내놓지만 현장에서는 미봉책에 그칠 뿐이다. 교사들은 경쟁에 매몰돼 있는 학교 분위기를 고쳐나가야 학교 폭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교사들은 입시 경쟁 완화없이는 학교 폭력 해결도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입시에서 시작돼 사회로 이어지는 경쟁 분위기가 완화되고 학생과 학부모가 여유를 되찾아야 학교 폭력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김 기자의 취재에 응한 교사들은 “잘 나가는 부모를 둔 아이들은 부모의 기대감에 스트레스를 더 받고 한계에 다다르면 수업시간에 안 하던 언행을 하는 식으로 폭발하곤 한다. 어릴 때부터 치열하게 길들여지고 먹고 살기 힘드니 공격성이 커지는 것”이라며 “사회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교육 제도도 바뀌지 않을 것이고 학폭의 근본적 해결도 어렵다”고 제언했다.

 

사회 전체 분위기가 개인주의화하다 보니 아이들은 본인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권리를 방해받거나 무시당하는 것을 못 참는다. 학폭은 단지 학생과 학부모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문제로 봐야 한다.

 

 

권 교수는 한국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의 독특한 배경으로 “배려”를 꼽았다. 자신이 생각하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해주고” 그에 따른 적절한 피드백이 오지 않으면 서운해하다 보니 그런 마음이 축적되는 것이다.

 

사랑하고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살인이 왜 일어나는가. 본질을 찾아보고 모든 동기들을 분석해봤더니 여러 가지 원인들이 있겠지만 그중에 여러분들에게 꼭 전달하고 싶은 첫 번째가 바로 배려다. 나도 놀랐다. 배려가 살인의 동기가 된다. 우리는 그동안 배려를 너무 잘못 알고 있었다. 늘 배려해준다고 표현하는데 배려는 해주는 게 아니라 하는 것이다. 그냥 배려하고 그걸로 끝나야 한다. 근데 해주는 것과 하는 것의 차이가 뭐냐면 배려를 해주고 나면 상대방으로부터 좀 부정적인 피드백이 왔을 때 되게 서운하고 화가 난다. 내가 너한테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이렇게 된다.

 

더구나 상대방의 취향과 의사를 제대로 확인하고 배려해야 하는데 뇌피셜 배려를 해주면 안 된다.

 

우리는 상대방 의사를 고려하지 않고 내가 해주고 싶은 걸 내 맘대로 해주고 그게 배려인줄 알고 있다. 그렇게 배려를 오남용한 것이 정말 쌓이고 쌓여서 어느 순간 가족이나 정말 사랑해야 될 사람 사이에 소통이 차단되고 그냥 분노로 바뀌는 이런 심리적 현상들이 나타날 수 있다는 걸 꼭 말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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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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