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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 꿀잼인데 혹시 고려 말 ‘만주 수복 전쟁’ 들어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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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전상민의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 3번째 칼럼입니다. 전상민씨는 새정치민주연합, 새누리당, 미래당 등 정당 활동 경험이 있는 청년이자 취업준비생입니다.

 

[평범한미디어 전상민 칼럼니스트] KBS 대하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의 인기가 높다. <고려거란전쟁>은 2·3차 여요 전쟁을 승리로 이끈 고려의 명장들을 조명하는 역사 드라마다. 그동안 고려 왕조의 전쟁사는 역사 드라마에서 짤막하게 언급되거나 역사 전문 프로그램에서만 다뤄졌다. 그래서 3번째 칼럼에서는 공민왕(1330년~1374년)의 요동 정벌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때는 중국 원나라와 고려 말기인 1340년대. 공민왕은 12세의 어린 나이에 원나라 인질로 끌려가 11년간 볼모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즈음 원나라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공민왕은 나라 전체가 쇠락해가는 과정을 직접 목격했다. 공민왕은 고려로 돌아와 왕위에 즉위하자마자 고려군의 조직력을 점검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실제 고려사 기록을 보면 공민왕이 즉위 직후 사열을 했다는 부분이 있다. 공민왕은 친원 세력이 버티고 있던 요동을 정리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갖고 있었다. 이처럼 요동 정벌 준비를 착착 해나가던 공민왕은 원나라에 부역하던 ‘부원 세력’ 고려 신하 기철을 숙청하고, 1357년 6월 고려 무신 인당과 강중경을 서북면 병마사로 보내 압록강 일대 원의 파사부(현재 중국 단둥시)와 8참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 원이 함경남도 지역에 설치했던 쌍성총관부도 쳤다.

 

공격 개시가 이뤄졌으나 원은 만만한 나라가 아니었다. 공민왕은 원의 기세에 어쩔 수 없이 인당을 처형하였고, 그 즈음 원을 몽골 초원으로 몰아내고 중원에 들어선 명나라에 저자세로 일관하며 잠시 재정비에 들어갔다. 공민왕은 여전히 칼을 갈고 있었다. 명이 원의 잔존세력을 정벌한다고 요동까지 신경쓸 여력이 되지 않던 1370년, 공민왕은 이성계와 1만5000여명의 병력을 출정시켜 ‘오녀산성’을 쳐들어갔다. 오녀산성은 요동성으로 가는 요충지이자 고구려의 옛 수도였던 곳이다.

 

고려사에 보면 이성계는 화살 70발을 쏴서 모두 적에게 명중시키는 신기에 가까운 활솜씨로 작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 결과 고려 백성의 집 1만채를 다시 확보했으며, 파사부와 오녀산성 등 요동성으로 가는 길목을 확실하게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철의 아들 기사인테무르가 고려인 김바얀과 함께 동녕부를 장악하며 아버지의 원한을 갚고자 고려 북쪽을 침공한다. 공민왕은 필사적으로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곧바로 반격에 돌입해야 하는데 수문하시중(종일품 벼슬) 이인임을 서북면 도통사, 이성계를 동북면 원수로 삼아 요동성을 공격하도록 지휘했다. 1370년 10월에 출발한 고려 군대가 11월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압록강을 건너 요동성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11월4일이었다. 반나절의 치열한 접전 끝에 요동성을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발해 멸망 이후 한민족 국가가 요동성에 발자취를 남길 수 있게 됐는데 무려 444년만이었다.

 

성이 함락되었을 때 아군이 창고에 불을 놓아 거의 다 태워버렸기 때문에 군영 내에 식량이 모자랐다. 《고려사》 ‘지용수 열전’ 中

 

그러나 오일천하였다. 보급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가뜩이나 챙겨간 군량이 모자랐는데 성 안의 군량 창고에 불이 났다. 군량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너무나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그래서 5일만인 11월9일 고려군 전군이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고려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명은, 고려가 잠시 지배했던 요동성 지역을 포함 원나라의 요양행성 일대를 손쉽게 점령했다. 비록 보급 문제로 일시적인 점유에 그치기는 했지만 이때 얻은 값진 교훈과 경험치는 최영과 정도전의 요동 정벌 계획 수립의 밑바탕으로 작용했다.

 

지금까지 풀어낸 공민왕의 요동 정벌 스토리는 한국사 교과서에 실리지 않은 비화다. 간간이 다큐 프로그램이나 언론 보도로 다뤄지긴 했으나 역덕이 아닌 이상 알기 어려운 고려사의 중요한 페이지다. <고려거란전쟁>이 방영되고 있는 지금 시점에, 중앙군 체계가 거의 망가진 고려 말기에도 요동 정벌에 나섰던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환기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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