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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민주당이 더 비겁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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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이내훈의 아웃사이더] 10번째 칼럼입니다. 이내훈씨는 프리랜서 만화가이자 배달 라이더로 활동하고 있으며, 주로 비양당 제3지대 정당에서 정치 경험을 쌓은 민생당 소속 정당인입니다.

 

[평범한미디어 이내훈 칼럼니스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5일 준연비제(준연동형 캡 비례대표제)를 유지하되 위성정당(통합형 비례정당)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당 안팎에서 비례성을 유지하는 선거제도를 유지하겠다고 약속한 걸 뒤집으면 안 된다는 비판론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면피성 당원 투표로 결정하려고 한 것에 대해 유인태 전 국회사무총장이 “천벌 받을 짓은 전부 당원 투표를 해서 하더라”고 지적한 게 유효했던 것 같다.

 

 

유 전 총장이 민주당 버전의 당원 투표를 비판한 행간이 있다. 정당이 당원의 의사를 묻는 게 왜? 당원 민주주의로 결정하는 건 옳은 일 아닌가? 이게 왜 천벌 받을 짓? 그러나 이런 지점을 생각해봐야 한다. 민주당 지도부는 대국민 약속을 번복할 때마다 당원 투표로 정당성을 부여해왔다. 전례 3개가 있다.

 

먼저 2014년 지방선거에서 기초선거 무공천 약속을 뒤집은 일이다. 중앙정치 뿐만 아니라 지방의회와 지자체장까지 장악하고 있는 양당은 일반적으로 지방선거 공천권을 지역위원장(보통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이 맡음)이 행사하도록 하고 있다. 출마 예정자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검증하기 어렵기도 하고 선거구마다 팀으로 움직이는 게 당선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각도에서 보면 지방선거 출마자는 지역위원장에게 잘 보여야 하며 그만큼 종속되기 마련이다. ‘공천 헌금’이 난무하는 폐단이 끊이질 않고 있다. 당선된 이후에도 공적 임무보단 국회의원 선거 조직원으로 역할이 제한되다 보니, 그동안 정치권에서 기초의회와 기초단체장 선거부터 정당 공천제를 폐지하자는 방안이 대두됐다.

 

그 당시 새누리당과 박근혜 전 대통령도 기초선거 무공천을 공약했던 만큼, 새정치민주연합 역시 기초선거 무공천이 정치 개혁의 바로미터로 여겨지는 흐름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런데 2014년 6.4 지방선거가 다가오자 새누리당은 갑자기 기초선거 무공천 공약을 지키지 않기로 했고, 새정치민주연합도 내부 찬반 여론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됐다. 새누리당 출마자들이 정당 간판을 달고 나오는데, 민주당 출마자들만 갑자기 정당 간판을 내리고 나왔을 때 혹여라도 불리하게 작용할까봐 우려하는 내부 목소리가 거셌다. 정치인 안철수는 그때까지만 해도 ‘새정치’ 이미지를 갖고 있었고 제1야당 민주당을 변화시켜보기 위해 통합을 결단했던 만큼 무공천 원칙을 고수하고 싶었지만 결국 실패했다. 통합의 파트너 김한길 전 대표도 무공천 약속을 지키는 데 진정성이 없었다. 그 당시에도 당원 투표로 확인된 당원들의 의사가 공천을 하자는 쪽이라서 어쩔 수 없이 무공천 약속을 뒤집을 수밖에 없다는 명분이 부각됐다.

 

두 번째는 서두에 밝혔던 준연비제와 관련된 것인데 2020년 총선에서 위성정당을 만든 일이다. 민주당은 2019년 연말 원내 소수정당들과 합심하여 준연비제를 통과시켰다. 민주당은 준연비제를 도입한 이유로 “기존의 선거제도는 사표를 대량 발생시키고 있고 정당득표율과 의석점유율 사이의 불일치를 심화시키며 지역주의 정당체제를 고착화시킨다”고 내세웠다. 그러나 이해찬 전 대표는 정당득표율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의석점유율을 얻기 위해 위성정당을 만들었다. 미래통합당이 앞서서 위성정당을 창당했을 때는 “위헌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으나 곧바로 맞서서 위성정당을 만들기 위해 당원 투표를 강행하기도 했다. 양당의 위성정당이 개입된 준연비제는, 기존의 병립형 선거제도보다 훨씬 더 양당으로의 편향을 심화시켰다. 민주당은 위성정당이 아닌 것처럼 물타기를 하기 위해 참여 정당들을 모집했으며 그 결과 작은 정당들의 극심한 내분을 초래했다.

 

 

세 번째는 2021년 4.7 보궐선거에서 유책 정당은 무공천을 하기로 한 약속을 걷어찬 일이다. 원래 민주당은 자당 소속 선출직 공무원이 잘못해서 보궐선거가 치러지게 됐다면 공천을 하지 않는다는 당헌을 갖고 있었다.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

 

민주당 소속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이 성범죄를 일으켜 열렸던 보궐선거였는데, 그 당시 당권을 잡고 있던 이낙연 전 대표는 답정너 당원 투표를 실시해서 그 결과를 명분삼아 당헌을 바꾸고 공천을 강행했다. 그 결과 두 보궐선거에서 참패했다.

 

이처럼 민주당은 약속을 번복할 때마다 당원 투표를 명분으로 삼았다. 민주당 당원들은 왜 매번 대국민 약속을 번복하는 결정을 내린 걸까? 이유가 있다. 당권을 쥐고 있는 지도부가 이미 결론을 내리고 당원 투표에 부치기 때문이다. 당원 투표 자체가 사실상 요식행위인 것이다.

 

여기서 대의제 민주주의의 개념을 떠올려보자. 주권자가 선거를 통해 대표자를 선출하면 그들이 정치적 의사결정의 권한을 행사하도록 보장해주는 것이 핵심이다. 정당 민주주의 역시 마찬가지다. 민주당 당원들은 전당대회를 통해 당권자를 뽑았다. 그렇다면 당권자는 주요 의사결정 사안에 대해 욕먹는 것을 두려워 말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 정치 개혁의 대의에 부합하는 것 같아 공약을 했다면 그걸 지키든지, 아니면 옹졸한 명분으로 못 지키겠다면 직접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걸 또 다시 당원 투표에 부쳐 면피하면 안 된다. 애초에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면 당원 투표를 부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민주당 당원들은 지도부 의중에 따라 정당성을 부여해 줬을 뿐, 소신에 따른 옳고 그름은 나중 문제다. 그래서 유 전 총장이 그렇게 비판한 것이다.

 

앞서 거론했듯 국민의힘 계열 보수정당이 △기초선거 무공천 약속을 번복하고 △보궐선거의 원인을 제공하더라도 무공천 한다는 원칙 자체가 없고 △대놓고 위성정당을 만드는 등 이러한 모습을 보이는 데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것은 지지자 특성에 기인한다. 국민의힘 지지층은 통상 개혁보다 안정을 원한다. 대표적으로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국회의원 숫자를 줄이자고 하는 것은 국민의힘 지지층 성향에 부합하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으며 전형적인 집토끼 전략이다. 꼴보기 싫은 국회의원의 숫자를 줄이면 좋을 것 같지만 그들의 특권은 더욱더 비대해질 뿐이다.

 

국민의힘과 달리 권위주의 정부에 맞서는 명분으로 정권을 쟁취했던 민주당은, 흔히 “민주진보진영”으로 불려왔는데 겉으로는 변화와 개혁을 내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3차례나 정권을 거머쥐며 금세 기득권에 익숙해졌다. 기득권 유지를 원하지만 겉으로는 국민의힘과의 차별성을 부각해서 개혁의 모양새를 갖추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약속을 번복하는 데서 오는 데미지를 피하고 싶어 한다. 유 전 총장은 그 지점을 직격했던 것인데, 문재인 정부를 거쳐오면서 민주당은 이미 내로남불 위선의 이미지를 갖게 됐다. 민주당에서 당원 투표는 위선의 다른 이름이다.

 

대선 정국이던 2021년 11월 이재명 대표는 2020년 총선에서 위성정당을 만든 것에 대해 사과 의사를 밝혔으며, 연동형을 유지하고 위성정당 방지법을 만들겠다고 누차 공언했었다. 그러나 2년이 흐른 2023년 11월 총선이 가까워지자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며 병립형이 민주당에 유리한 선거제도임을 당원들에게 피력했다. 이때부터 당원 투표로 약속을 번복할 준비를 했던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이 대표의 머릿 속엔 단순히 민주당의 의석 확보에 유리하다는 생각을 넘어, 다당제 약속으로 중도층을 포섭하고 정권을 창출하려 했던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런 노림수가 실현되기 어렵다는 내부 판단을 했을 것이다. 중도층에서 이재명 비호감 정서가 강해진 만큼 차라리 양당제를 공고히 하는 게 더 낫다는 취지다.

 

 

민주당이 거대 정치 조직으로서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하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지키지 않을 약속을 여러 차례 공언했다가 번복하는 꼼수로 이익을 추구하고 그 과정에서 당원 투표를 동원하는 것은 비겁하다. 국민의힘이 또 위성정당을 만들 것이기 때문에 불가피하다고 강변하기 이전에 아래와 같이 하면 된다.

 

①지역구 출마자와 비례대표 출마자 수를 연동하는 위성정당 방지법 제정

②선관위가 위성정당의 위법성을 구체적으로 판정해서 불허할 수 있도록 법률 개정

③위성정당을 만들지 않고 홀로 위성정당을 만든 국민의힘에 대한 공세 강화

 

물론 ①②을 추진했더라도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을 것이지만 그걸 명분삼아 총공세를 취하는 방식으로 총선 프레임을 가져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눈앞의 의석수라는 커다란 이익 외에 그 어떤 전략도 명분도 보지 못 하는 것이다. 더구나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어서 또 다시 국회 과반 의석을 가져가는 게 국익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③이 더 낫다. 필자는 민주당이 준연비제를 유지하고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겠다는 점을 강하게 어필한다면, 설사 국민의힘에 비례 의석을 내줄지언정 국민의힘과 차별화 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지역구에서 중도표를 흡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이런 바람은 물거품이 됐다. 언론들은 2020년 총선 때와 마찬가지로 양당의 위성정당이 널리 알려지도록 노이즈 마케팅에 부응하느라 여념이 없을 것이다. 우리 민주주의는 갈수록 거꾸로 가고 있다. 두 달 남은 총선은 4년 전보다 더 암울할 것만 같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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