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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지대 ‘징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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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이내훈의 아웃사이더] 7번째 칼럼입니다. 이내훈씨는 프리랜서 만화가이자 민생당 소속 정당인입니다.

 

[평범한미디어 이내훈 칼럼니스트] 2020년 총선에서 민생당이 처참하게 실패했다. 그러나 제3지대는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잘못한 것은 우리들이지, 국민들은 여전히 대안 정당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당으로의 구심력이 너무 강해서 한동안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22대 총선이 100일도 안 남은 지금 제3지대가 꿈틀대고 있다. 유권자들은 아직도 대안 정당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2012년 대선 때 안철수의 진심캠프에 정책 제안을 하면서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대선 이후 새정치연합 안철수 대표가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합당을 결정하면서 새정치민주연합이 탄생하기도 했는데, 나는 2016년 국민의당이 창당될 때 공식 입당했다. 보통 정치 입문자들은 기존 정당인들과의 인연으로 정무직을 맡거나 인재 영입의 형태로 정당 활동을 시작한다면, 나는 평당원으로서 각종 정당 행사에 열심히 참여하는 방식으로 밑바닥부터 시작했다.

 

 

국민의당 당명은 두 번이나 바뀌었다. 2018년 안철수 대표가 바른정당과 합당하면서 바른미래당으로 바뀌었고, 2020년 손학규 대표가 민주평화당 및 대안신당과 합당하면서 민생당으로 바뀌었다. 나는 2020년 총선에서 민생당 소속 비례대표 2번으로 출마했었다. 원래 선거에 나갈 생각이 없었다. 선거에 나서려면 적어도 두 번 이상 떨어질 각오를 하고 그에 따르는 돈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돈이 없었다. 내세울만한 이력도 없었다. 물론 2018년 지방선거에서 처음으로 출마를 했었다. 이유가 있었다. 그땐 바른미래당이 탄생한지 얼마 안 됐을 때였고, 바른정당 출신과 국민의당 출신이 내부적으로 융합하지 못 하고 알력 싸움이 심했다. 그 당시 나는 출마자들을 돕는 위치였고, 특히 청년 출마자들을 물색하고 있었는데 국민의당 출신 기초의원 후보들은 좀 있는데, 광역의원 후보가 전무했다. 기초의원은 중선거구로 2~3등에 들면 되고, 광역의원은 소선거구로 1등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바른정당 출신은 광역의원 후보들이 꽤 있었다. 지방선거가 끝나고 국민의당 출신 청년들이 소외될 것이 자명해보였다. 그래서 없는 돈을 끌어모아 고향 서울 강북구에 광역의원으로 출사표를 던졌다. 물론 3등으로 낙선했다.

 

그 이후 바른정당 출신들은 끝까지 바른미래당에 정을 붙이지 못 했으며 집단 탈당해서 새로운보수당을 창당했다. 나아가 해외에서 돌아온 안철수 대표와 안철수계 인물들까지 탈당을 했다. 나는 안철수계로 출발했던 정치 경력이었지만 당에 남았다. 그렇게 2020년 총선에서 민생당 비례대표로 출마했다. 그런데 양당이 개정 선거법(준연동형 캡비례대표제)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각각의 위성정당을 만들었다. 더불어민주당은 비례위성정당에 다른 정당들을 포함시키겠다고 밝혔는데, 민생당은 여기에 참여 여부를 놓고 내부 싸움을 벌였다. 다행스럽게도 위성정당에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이미 민생당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바닥이었으며 너무나 차가웠다. 결과적으로 민생당은 0석 원외정당이 됐다.

 

그러나 민생당은 한때 교섭단체였던 만큼 이미 받아놓은 정당보조금이 100억원 규모였다. 2024년 총선까지 분기별 2억 3000만원씩 계속 지급받았다. 지금은 그 많은 돈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민생당 지도부가 선거 때마다 후보를 내지도 않으면서 돈을 탕진해버린 것이다. 현재도 민생당 비대위원회의 효력을 중단시키기 위해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는데, 돌이켜보면 제3지대 정당의 흥망성쇠를 모두 겪었던 만큼 결정적인 장면들이 머릿 속을 스쳐지나가는 것 같다. 나는 자원봉사자로 시작해 최고위원까지 역임했다. 제3지대 산증인으로서 관련 이야기를 할 자격이 있다. 그래서 최근 형성되고 있는 비양당 제3지대 흐름을 목도하며, 실패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징비록을 풀어보려고 한다. 일단 바른미래당의 흑역사부터 되돌아보자.

 

20대 국회를 관통하는 바른미래당의 족적은 항상 평지풍파였다. 안철수 대표가 진보와 보수를 통합했던 대실험은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 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안철수 대표는 스스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으며, 당 전체를 이끌었다. 그러나 대패했다. 지방선거 이후 손학규 대표가 당권을 잡았고 바른정당 출신 인사들을 요직에 안배했지만 내부 갈등의 씨앗은 점점 커져갔다. 결국 터지고 말았다. 2019년 4.3 국회의원 보궐선거(경남 창원 성산)에서 당내 바른정당계는 미래통합당과의 선거 공조를 이유로 후보를 내지 말자고 주장했는데, 손학규 대표가 공천을 결정한 것이다. 패배했던 선거라고 해도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디딤돌이 되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있다. 창원 보궐선거는 바른미래당 망조의 시작점이었다. 제3지대 생존을 위해 잠시 가라앉혀놓았던 이념 갈등과 패권 경쟁에 불이 붙었다. 갈등은 막장스럽게 전개됐으며, 당에서 이탈해 양당으로 흡수되는 정치인들이 점점 늘었다. 한 번 이탈 러시가 시작되자 되돌릴 수 없었다. 제로섬 정치의 특성상 탈당자들은 양당의 지분을 늘려줄 생각으로 바른미래당을 망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손학규 대표는 까마득한 후배 정치인들로부터 온갖 모욕과 수모를 당했다. 선거를 앞두고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이 민생당으로 합쳤지만, 국민은 표를 주지 않았고 그렇게 민생당은 원외정당(국회의원 0명)이 되었다.

 

현재 양당 소속 정치인들이 방송에 나와 제3지대 흐름에 대해 온갖 저주를 퍼붓고 있는 상황들을 보면 어이가 없다. 만약 이낙연당이든, 이준석당이든, 새로운선택이든, 한국의희망이든 탄력을 받아 위협적인 지지율에 도달한다면 양당은 급하게 정신을 차린 듯 연기를 할 것이다.나아가 갖고 있는 힘을 총동원해서 끈질기게 제3지대를 와해시키려 할 것이다. 그래서 당연히 총선에서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 가시밭길이 자명하고 어려운 난관들을 수없이 맞닥뜨릴 것이다. 그래서 어려운 시기를 이겨낼 수 있을 만큼 확고한 가치와 이념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면, 제3지대 실험은 하지 않는 것만 못 하다. 정치적 방향성이든, 대선 주자를 중심으로 모여든 결집력이든, 쉽게 와해되지 않을 결속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후자에 따른 결속은 불안정하기 때문에 전자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국민의당과 바른미래당은 이 점에서 실패했다. 다음 선거에서 생존을 노린다면 제3지대는 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다음 세대를 위한 것이면 제3지대는 아직도 유효하다.

 

이제 3가지를 제시하겠다.

 

첫째, 생즉사. 살고자 하면 죽는다. 과거 국민의당과 바른미래당이 국회 교섭단체가 되었을 때는 제3지대에 캐스팅보트가 있었다. 양당의 대립이 극심해지면, 제3지대 정당(바른미래당과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이 힘을 실어주는 쪽으로 주도권이 넘어가기 마련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양당이 아무리 대립을 하더라도 극한까지 가지 않았고 어느정도 각종 민생 법안들이 여야 합의로 통과될 수 있었다. 현 국회에 비해 일을 꽤 하는 편이었다. 문제는 상황에 따라 양당 중 한 곳의 손을 들어주는 스탠스가 욕먹기 딱 좋다는 점이다. 제3지대 정당들이 편 들어주는 쪽으로 안건이 가결될 때마다 비난하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언론들은 제3지대 정당이 이쪽에 붙었다가 저쪽에 붙었다가 왔다갔다 한다면서 2중대 프레임을 씌웠다. 2중대 프레임은 4년 내내 이어졌다. 제3지대 정당이 국회에 존재했기 때문에 양당 대립이 완화되고 최소한의 일하는 국회가 가능했던 건데, 양당은 매번 자기들이 주도한 성과를 제3지대 정당들이 가로챘다는 반응을 보였다. 염치도 없고 양심도 없다. 이럴 때마다 양당의 논리에 휩쓸리면 안 된다. 처음 시작했던 각오대로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양당의 강변에 제3지대를 버리고 흡수되면 정치 낭인이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다. 명심해야 한다.

 

둘째, 쭉정이는 과감하게 무시해야 한다. 제3지대가 지나치게 빨리 탄력을 받고, 지나치게 빨리 식어버리는 결정적인 배경에는 소홀한 인사 검증이 있다. 양당은 공천 경쟁률이 높다. 인물 검증이 자동으로 이뤄지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제3지대는 당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이기 쉽지 않다. 그래서 제3지대 지도자들은 빠르게 세력을 만들 요량으로 사람을 가리지 않고 받으며 이런 저런 직함을 나눠줬다. 검증 데이터에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제3지대 지도자들은 우선 외형을 갖추고 나중에 내실을 다지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그렇게 모인 사람들은 당을 빠르게 와해시킨다. 이질적인 두 세력이 자리를 나눠먹게 되면 여러 인물들이 얼렁뚱땅 요직에 앉게 되고, 그러면 훌륭한 정치 신인들이 유입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실망해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그런 사람들은 단체행동에 휩쓸리기 쉽고 눈앞의 이익에만 골몰하기 마련인데, 지도부가 중심을 잡지 못 하고 갈팡질팡하니 어느 보트를 타고 떠날지만 고민한다. 그래서 제3지대가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빈자리를 그대로 두고 기다릴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바람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셋째, 이념과 가치를 무시하면 안 된다. 이념에 구애받지 않고 정책에만 매진하는 정당을 꿈꾸고 있지만 이것은 꿈에 불과하다. 바른미래당의 교훈이 말해주고 있다. 바른미래당에서 바른정당 출신들이 탈당하던 때, 정작 가장 서운했던 건 국민의당 출신들이었다. 떠날거라면 깔끔하게 가면 되는데 그들은 탈당의 정당성을 만들려고 남은 사람들을 과도하게 비판하고 모욕했다. 친구이자 동지인줄 알았는데 “김정은 개새끼 해봐”라고 조롱을 하기도 했다. 보수 이념의 전도사로 변신한 것이다. 상대를 악의 축으로 빗대는 행태는 이념 해소를 표방했던 바른미래당에서도 벌어졌다. 본질은 이익이지만 이념이 핑계로 작용한 것이다. 급할 때야 이념을 덮어두자고 할지 모르지만, 주도권 경쟁이 벌어지면 이념은 중요한 갈등의 이유로 작용한다. 이념 해소가 쉽다고 가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물론 한국 정치판에서 가장 꼴불견은 이익에 기반한 이념 경도다. 과거 김용균법을 논의하러 청년 정치인들이 모이는 자리에 갔었는데 퇴짜를 맞았다. 바른미래당 출신이 어떻게 이 자리에 올 수 있냐는 것이었다. 고래고래 소리치는 사람 옆에는 평소라면 나와 안부를 물었을 사람들이 침묵을 지켰다. 노동자 권리 보호를 외치는 청년들 중에는 노동자가 아닌 자신들의 권리 보호를 더 중시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그들은 노동 이슈가 오직 자신들만의 아젠다여야 한다는 고집이 있는데 밥그릇도 가지가지란 생각이 든다.

 

여의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국민들에게 자세히 전달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양당이 위성정당까지 동원해 국회를 장악한 뒤로, 4년간 최악의 정치만 되풀이됐다. 양당 사이에서 국민의 이익을 대변해줄 수 있는 대안 정당은 반드시 필요하다. 국민의 열망을 받아 제3지대의 길을 가고자했던 민생당은 너무나 부족했고 모자랐다. 횡령범들이 난무했다. 암초에 걸려버렸다. 민생당의 비극을 참고삼아 여러 제3지대 정당들이 실패하지 않기를 바란다. 정치는 단순하고 간단하면 안 된다. 민주주의는 여러 세력들의 조화가 핵심이다. 제3지대 정당 구성원들이 사명감을 갖고 임해주길 바라고 응원하며 지켜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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