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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천NCC 폭발 참사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 이상하다”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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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1월27일)되는 것과는 무관하게 한국 사회에서는 대형 안전사고들이 연달아 터지고 있다. 여느 때와 다를 바가 없다.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1월11일), 양주 채석장 붕괴(1월29일), 판교 신축 건물 승강기 추락(2월8일) 등 끝없이 벌어지고 있는데 안전 문제를 중점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평범한미디어가 따라가는 것이 벅찰 정도다.

 

사실 일주일 전(11일) 전남 여수 국가 산업단지 여천NCC 3공장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는 너무나 중요한 것이라 반드시 다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 했다. 폭발은 아침 9시반 즈음 시작됐는데 당시 현장에는 8명의 노동자가 있었다. 4명이 목숨을 잃었고 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무엇이 폭발했던 걸까? 3공장 안에서 열교환 테스트를 하고 있던 게 터졌다. 협력업체 직원들이 열교환기를 청소하고 시험 가동을 위해 압력을 주입하던 중에 갑자기 폭발해버렸다. 2.5미터의 1톤짜리 열교환기 플로팅 덮개(탄소강 재질)가 20미터나 튕겨나갔고 동시에 쇠철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 협력업체 ‘영진기술’ 소속 직원 3명과 YNCC 소속 감독관 1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구체적인 과정으로 보면 깨끗이 청소를 마친 열교환기 밀폐 작업 뒤에 비눗칠을 통해 공기 누출 여부를 알아보려고 압력을 높이다가 폭발이 일어났다. 해당 열교환기는 석유화학제품을 제조할 때 생성되는 열을 기체 상태로 전환시켜서 증기로 바꿔내서 전달하거나 냉각시키는 장치다. 통상 대기 압력의 10배 수준이 유지되는데 열교환 테스트를 하게 되면 17배나 높아진다. 압력이 너무 높으면 밖으로 새어나오기 마련인데 새어나오는 것이 없는지 제대로 밀폐가 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것이다.

 

덮개는 임시로 덮어놓은 것이었는데 살인 도구로 돌변했다.

 

 

여천NCC 조병만 상무(기술기획팀장)는 11일 언론 브리핑을 통해 “원형 커버 테두리에 볼트들이 둘러져 조여져 있는데 육안으로는 식별되지 않고 (압력이) 소량씩 새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마지막 내부 압력 테스트 과정에서 새는 곳은 없는지 비눗칠을 하는 과정이었다”며 “그 과정에서 내부 압력에 의해서 덮개가 이탈돼 예상 밖으로 큰 인명 손실이 나게 된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 상무는 “덮개가 20미터 이상 튕겨져 나갔는데 30년 이상 현장 근무를 했지만 이게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 이상하다”면서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했다.

 

사실 그런 위험한 일이 왜 일어났는지 궁금해할 게 아니라 올해 들어 해당 장치에 대한 청소 작업을 외주에 맡겨 비용을 절감하다가 그리 된 것은 아닌지 소상히 해명해야 한다. 무엇보다 압력 테스트를 할 때는 주변에 사람이 없도록 안전거리를 확보해놔야 하는데 위험 반경 내에 사람들이 서있었던 이유에 대해서도 밝혀야 한다.

 

 

그러나 수사는 더딘 것 같다.

 

전남경찰청은 61명 규모로 전담 수사팀을 발족시켰고 업무상과실치사 혐의 등으로 현장 안전관리 책임자 1명, 영진기술 관계자 다수를 포함 11명을 입건해서 소환 조사까지 마쳤다. 앞으로도 수십명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할 계획인데 문제는 노동당국과 수사당국의 업무가 분리돼 있어서 상호 협력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고용노동부 여수지청과 산업안전보건공단은 ‘중앙산업재해수습본부’를 구성해서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를 조사하고 있고, 경찰은 업무상 과실치사쪽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한 마디로 산재 조사와, 시민재해 또는 과실 범죄 수사가 분리돼 있는데 유기적으로 업무 협력이 원활해져야 할 것 같다.

 

헤럴드경제에 따르면 경찰은 “(폭발 원인 조사 및 수사와 관련하여) 전담수사팀이 취합을 하는데 국과수와 노동부, 소방서 등 다수의 전문가들이 참여해서 감식에 참여해 감정결과는 대개 한 두달이 걸려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는 사안이다. 수사 결과가 뚝딱 나오는 것이 아니라 45일 정도는 소요될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정의당 심상정 대통령 후보는 16일 폭발 희생자들의 빈소를 찾아 “이번 기회에 여수가 더 이상 죽음의 산단이 되지 않는 특단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며 “이 여수산단은 작년 9월에도 사고가 났고 12월에도 사고가 나고 이번까지 6개월도 안 돼서 3차례 사고가 나서 10명의 노동자들의 목숨을 빼앗았다. 이 정도면 여수공단은 중대재해공단이다. 죽음의 산단”이라고 역설했다.

 

실제로 17일 더불어민주당 김회재 의원은 보도자료를 내고 최근 6년간 노후 산단에서 중대 사고로 226명이 죽고 다쳤다고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김 의원은 “(여수 등 여러) 산단 사고는 대부분 설비의 노후화와 위험의 외주화로 인해 발생한다”면서 “다시는 이런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국가산단특별법 제정 등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심 의원은 여천NCC 임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나한테 사과하실 일은 아니고 우리 유가족들한테 정말 석고대죄하는 심정으로 사죄하셔야 한다”면서 “(희생자들 중) 생후 50일 된 신생아 아빠도 계시고 또 지금 결혼 약속해 놓은 예비신랑도 돌아가시고, 또 내일모레 정년퇴직하실 59세 노동자도 돌아가시고 이거 다 어떻게 책임지시겠나”고 추궁했다.

 

죽음의 산단을 방치한 정부도 문제지만 지금 세계 10위 경제 선진국에서 이렇게 사람 목숨 갈아 넣는 기업 더 이상 안 된다.

 

 

심 후보는 정부 차원의 책임 방기를 꼬집었다.

 

50년이 넘은 산단인데 석유화학을 비롯해서 굉장히 위험한 물질을 많이 다루기 때문에 진즉에 정부가 이 노후 산단의 안전을 점검하고 이 산단이 우리 노동자들의 목숨을 빼앗지 않을 만큼 손을 봤어야 했는데 그동안 방치했다. 그런 정부의 무책임과 사람 목숨 돈으로 몇 푼 떼우면 되지. 이런 낡은 생각을 갖고 있는 기업 논리가 같이 합쳐져서 이렇게 참담한 죽음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

 

동시에 국회 차원의 입법, 정의당 차원의 대응 등을 약속했다.

 

여수산단을 비롯해 노후산단안전특별법을 제정하고 특히 건설업계 플랜트 업종의 사고들이 많기 때문에 건설안전특별법을 만들어 국가 차원에서 노후산단의 안전사고에 철저히 대비하는 입법과 제도화를 확실히 하겠다. (중략) 국회로 한번 모셔서 이번 여천 NCC사고에 대한 기자회견이라든지 토론회라든지 그런 거 한번 저희 노동본부에서 준비하면 좋을 것 같다. 만약에 그렇게 해서 안 되면 저희 당이라도 의원단을 구성해서 내려오겠다. 국회 환노위(환경노동위원회)와 산자위(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우리 의원들이 있으니 여수산단 특별보건안전진단과 여수산단 산재병원 추진에 적극 나서겠다.

 

상시 근무자가 1000여명에 이르는 여천NCC는 한화솔루션(케미칼)과 DL케미칼(대림산업 계열)이 절반씩 투자해서 탄생한 합작 법인인데 연 매출 5조원을 내고 있다. 이 정도의 석유화학 기업조차 주요 장치에 대한 청소 업무를 외주에 맡겼다가 4명이 숨지도록 했다는 게 참으로 안타까운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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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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