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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동참사 1주기’ 유족들이 원통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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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6월9일 오후 4시22분 54번 시내버스. 짓눌린 버스 안에 갇혀 난 어디론가 사라졌다. 난 집으로 가야 한다. 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

 

시민 대표로 추모시를 발표한 A씨는 건물 잔해들이 무너져내린 그 순간을 위와 같이 묘사했다.

 

 

9일 16시 광주 동구 학동에 위치한 삼성프라자 학동점 주차장에서 ‘학동참사 1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광주시와 동구가 주최한 추모식이었지만 참사에 중대한 책임이 있는 이용섭 광주시장과 임택 동구청장 의 메시지를 1도 전달하고 싶지 않았다. 현장에 있던 취재진은 두 정치인의 발언이 시작되자 앞으로 몰려가 셔터를 눌러댔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유족들의 이야기였다.

 

임 청장은 “지난 1년간 학동을 잊어본 적이 없다”고 발언했지만 유족들 입장에서는 괘씸할 뿐이다. 사실 유족들은 추모식에 참석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를 떠나 보낸 유족 대표 이진의씨는 “생각하면 할수록 억울하고 괴로울 뿐이지만 또한 고인들의 명예 회복이 이런 추모 행사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란 걸 알고 있지만 이곳에서 잠든 아홉분을 추모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이니 오늘만큼은 저희도 비통하고 서러운 심정을 가라앉히고 고인들의 명복을, 평온한 휴식을 기원하겠다”고 말했다.

 

 

올초 발생한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는 학동참사 유족들의 마음에 불필요한 죄스러움을 짋어지도록 만들었다.

 

우리는 참사 이후 가족을 잃은 슬픔을 추스릴 새도 없이 심지어 생업을 포기하고 일상 회복을 미뤄둔채 참사의 재물로만 고인들을 추억할 수 없다며 더 이상 희생물을 만들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더 이상 이와 같이 어처구니없는 인재 사고는 없어야 한다. 우리 이웃들 사람들을 지켜달라고 외쳤다.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현재 건설 중인 현장의 안전사고에 대한 감시와 경고를 확실히 해달라고 요청하고 읍소하며 열심히 목소리를 내며 싸웠다. 하지만 또다시 여섯분의 무고한 시민이 화정동 참사로 고인이 되었다. 화정동 참사가 발생한 후 저희 유가족은 다시 한 번 극도의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렸다. 죄송했다. 화정동 참사를 막지 못 했다는 죄책감으로 고통스러웠다. 이 자리를 빌려 삼가 여섯분의 명복을 빈다. 그 유가족들께도 감히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2021년 6월9일이었다. 학동 주택 재개발사업 정비 4구역에서 5층 규모의 철거 건물이 갑자기 무너졌고 정류장에 멈춰있는 시내버스를 집어삼켰다. 영문도 모른채 시민 9명이 목숨을 잃었고 8명이 큰 부상을 당했다.

 

이씨는 “차라리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심경”이라고 했다.

 

그래도 나와 가까이 있던 그날 그분들이 재가 되기 전에 허락되었던 짧게나마 주어진 이별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분들은 일말의 저항도 허락하지 않은 거대 건축 쓰레기에 짓눌려 그렇게 눈을 감았음에도 내가 죽은 이유 본인의 사망 원인도 모른채 차가워진 몸을 그보다 더 차가운 부검대 위에 뉘어야 했다. 그래도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그분들을 안아주고 싶고 만지고 싶고 상처난 곳을 언제까지고 어루만져주고 싶다. 그것이 악몽이라 해도 다시 보고싶다.

 

 

시간이 약이라고들 하지만 흐르는 시간은 유족들에게 “잔인하게” 느껴진다.

 

1년이 지났지만 그 원통함은 커져만 간다. 매일밤 눈물로 삭히던 고인들에 대한 그리움과 설움은 처음 생긴 그 자리 그대로 뿌리내려 크게 부풀고 비극적인 사고 이후 몸과 마음 이곳 저곳 생겨난 크고 작은 상처들은 아물틈도 없이 계속 벌어져만 간다. (중략) 지난해 9월21일 참사 이후 처음으로 이 자리에서 첫 번째 추모제를 지냈다. 몇몇 문자와 문장으로 이분들에 대한 그리움을 형용할 수 있겠냐며 부끄럽고 죄인이 된 것 같아, 지키지 못 했다는 죄책감으로 살아있는 것이 고통스럽다고 울부짖었다. 하지만 참사가 발생하고 1년이 지난 지금도 죄인의 마음은 여전히 그대로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대한민국 곳곳에서 세월호가 반복되었다. 가족을 잃은 유족들은 맘껏 슬퍼하지도 못 한 채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투쟁가가 되었다. 슬픔을 숨겨야만 했다.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들의 슬픔이 옮겨가지 않도록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간은 흐른다. 그만큼 숨어서 우는 일도 많아졌다. 시시때때로 부지불식간에 찾아오는 슬픔을 숨겨야했기 때문이다.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 아픔이 부끄러워서가 아니다. 혹여 다른 사람의 평온한 마음에 내 슬픔이 우리의 고통이 스며들까 그래서 그들이 나와 같이 힘들고 불편한 상황에 처하지 않을까 염려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슬픔을 숨기는 게 더 나은 일이라 여기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은 곳에 숨어서 눈물을 흘리게 됐다.

 

 

하늘에 있는 가족들이 그립고 또 그립다. 단순히 육신이 사라진 게 아니라 그들이 꿈꿨던 세계가 접혀버렸다.

 

없는 번호라고 나오는 음성이 되풀이 될 뿐이지만 그 기계 소리를 들으며 어머니께 너무 보고 싶다. 우리 아들 오늘 토닥이던 게 생각난다. 아홉분의 전화번호는 모두 주인이 바뀌어 저장된 번호로 전화를 걸어볼 수도 없게 됐고 당연하게 여겼지만 일상의 순간들을 함께 하지 못 하게 됐다. 꿈도 많고 친구도 많던 고등학생은 더 이상 꿈을 꿀 수도 친구를 만날 수도 없게 됐고 세상 그 누구보다 착하고 예쁜 딸이 수의사가 되기 위해 들였던 노력의 시간들은 한 순간에 무의미해졌다.

 

이씨가 표현한 유족들의 원통함은 참사 이후의 상황에서 기인한다. 3차 하청까지 내려가 단가를 후려치고 있는 불법적인 관행은 전혀 변함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학동 주택재개발 4구역의 재개발 사업을 따낸 원청기업 ‘현대산업개발(현산)’은 1차로 ‘한솔기업(한솔)’에 하청을 줬고, 한솔은 2차로 ‘백솔건설(백솔)’에 재하청을 줬다. 한솔은 건물 610개를 철거하는 조건으로 현산으로부터 54억원을 받았지만 백솔에 재하청을 주는 과정에서 고작 12억원을 건넸다. 공사 대금의 22%만 쥐어줬는데 부실 철거는 필연적이었다. 조폭도 개입했다. 불법 철거왕으로 악명 높은 조폭 출신 이금열 전 회장의 다원그룹(다원이앤씨)은 석면과 지장물 해체 작업을 수주했는데 한솔과 함께 백솔에 재하청을 주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 다원이앤씨는 현산과도 깊은 커넥션이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상황이다. 현산은 직접 철거 파트를 동원해서 작업하지 않고 비용을 아끼려고 하청을 줬다. 하청에 재하청이 이뤄지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 방치했다.

 

 

광주에서 중대한 범죄를 두 차례나 저지른 원청 현산은 면허 취소가 거론되던 초반의 국면과는 달리 영업정지 8개월과 과징금 4억원으로 퉁쳐지고 있다. 현산은 이 정도의 패널티에도 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뻔뻔함의 극치다. 관리감독을 부실하게 한 것을 넘어 유착의 그림자를 드리우게 했던 광주시와 동구는 사실상 유족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코스프레만 하고 제대로 된 사후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매번 유체이탈 모드다. 구체적인 혐의를 받고 있는 공무원들에 대한 법적 처벌도 요원하다. 광주 정치권을 장악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뒷짐만 지고 있다. 사태 해결을 위해 한 것이 없다.

 

참사 이후 광주시는 불법 재하도급이 얼마나 심각한지 들여다보기 위해 전담 점검반을 구성했지만 “강제 수사권이 없어서 결국 문제가 되고 나서 수사기관이 수사를 하는 수밖에 없다”는 황당한 입장만 피력하고 있다.

 

 

일련의 상황들은 전형적인 한국형 참사 이후의 루트와 판박이다.

 

이씨는 “학동참사의 진상규명 재판은 아직 1심 판결도 마무리되지 못 했다. 관련 피의자와 증인들은 진술을 번복하는 등 반성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유가족과 시민들이 지목한 가해자들 상당수가 이미 책임과 처벌을 면했다”며 “당연히 주어질 것이라 생각했던 추모공간은 이런저런 이유로 난항에 봉착해 있다”고 환기했다.

 

그래서 원통하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1000여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이후 그 자리 위에 초호화 아파트가 들어선 역사가 우리에게 다시 반복될 것 같아 원통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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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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