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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54번 버스에서 내리지 못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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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국민혁명당(전광훈 목사) 당원으로 추정되는 중년 여성 A씨는 “사기방역 철회하라”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학동참사 유족이 발언하고 있을 때 “감성팔이 그만하라. 아유 짜증나”라고 폭언을 가했다. 거친 항의를 할까봐 무서워서 사진을 찍지 못 했는데 유족들의 대책위 출범 기자회견 내내 뭔가 뒤틀린 심산으로 주변을 서성였다.

 

A씨가 입으로 배설을 할 때, 학동참사 유족 대변인을 맡고 있는 한성은씨가 발언을 하고 있었다. 한씨는 학동참사로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한씨는 지난 8일 오전 광주광역시청 앞에서 개최된 학동참사시민대책위원회(대책위) 출범 기자회견에 참석해서 유족들의 절절한 심경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다.

 

“2021년 6월9일 16시21분. 여느 때처럼 집으로 돌아오던 내 어머니, 내 아버지, 내 딸, 그리고 내 아들. 시민 누구나 탈 수 있었던 그 평범한 마을버스에서 이웃과 함께 소박한 일상을 나누던 그 작은 공간에서 왜 그 많은 생명들이 비명 한 번 지르지 못 하고 거대한 악마 같은 건물의 잔해에 깔려 고통스럽게 돌아가셔야 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다.”

 

한씨는 “끔찍했던 그날로부터 벌써 석 달 가까이 흘렀지만 사랑하는 가족들과 소중한 이웃들이 아직도 그 54번 버스에서 내리지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단순히 가족을 떠나보낸 슬픔 때문만은 아니었다.

 

한씨는 “마치 쌍둥이와 같은 2년 전 잠원동 건물 붕괴사고 이후 정부는 철저한 수사와 책임자 처벌 나아가 재발방지 대책을 약속했다”면서도 “무려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광주 학동참사를 막아주지 못 했을 뿐만 아니라 참사 초기의 약속과 달리 꼬리자르기식 부실 수사와 솜방망이 처벌로 유가족과 국민들에게 참사의 진실을 감추는 더 큰 비극을 또 다시 되풀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족들은 그나마 수사는 제대로 이뤄졌다고 봤다.

 

대책위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경찰의 1차 수사 발표는, 현대산업개발(현산)이 1차 하도급 기업과 2차 하도급 대표와 철거 공사 전반에 대해 논의하고 참사 당일에는 건물 하중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살수 작업을 지시했다는 점을 적시하고 있다”면서 “이렇게 철거 공사 전반에 걸쳐 현산이 공모한 분명한 사실을 밝혀내는 좋은 수사를 했음에도 과실치사 혐의로 방향을 잡고 수사와 기소를 진행한 것을 납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

 

 

6월9일 광주 동구에서 철거되고 있던 5층짜리 학산빌딩이 무너졌다. ‘학동 주택재개발 4구역’이었는데 재개발 사업을 따낸 원청기업 ‘현산’은 1차로 ‘한솔기업(한솔)’에 하청을 줬고, 한솔은 2차로 ‘백솔건설(백솔)’에 재하청을 줬다. 한솔은 건물 610개를 철거하는 조건으로 현산으로부터 54억원을 받았지만 백솔에 재하청을 주는 과정에서 고작 12억원을 건넸다. 공사 대금의 22%만 쥐어줬는데 부실 철거는 필연적이었다. 조폭도 개입했다. 불법 철거왕으로 악명 높은 조폭 출신 이금열 전 회장의 다원그룹(다원이앤씨)은 석면과 지장물 해체 작업을 수주했는데 한솔과 함께 백솔에 재하청을 주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 다원이앤씨는 현산과도 깊은 커넥션이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상황이다.

 

현산은 직접 철거 파트를 동원해서 작업하지 않고 비용을 아끼려고 하청을 줬다. 하청에 재하청이 이뤄지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 방치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6월18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출석한 권순호 현산 대표이사가) 불법하도급 없고 나는 몰랐다. 32년간 건설업계 종사한 분이 그렇게 말했다”며 “얼마나 정치권을 우습게 보고 국민을 우습게 봤으면 그렇게 말했을까. 여기 앉아있는 국회의원들 우리 돕는 사람들이야.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그런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고 성토했다.

 

현산이 재하청을 몰랐다고 변명하는 것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8일과 9일 광주지법에서 백솔 대표(굴착기 기사) 조씨, 한솔 현장소장 강씨, 다원이앤씨 현장소장 김씨 등에 대한 첫 공판이 진행됐는데 여기에서 현산이 원청으로서 “세세한 부분까지 관여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구체적으로 6월4일 현산이 차량 4대를 동원해 엄청난 양의 살수를 압박했고 한솔 관계자들이 위험하다며 만류했음에도 원청의 요구를 거스르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광주지검은 무리한 살수가 붕괴 요인들 중 하나였다고 지목했다.

 

특히 다원이앤씨는 지장물 철거만 맡았음에도 일반 건축물 철거 과정에도 사실상 현산을 대리해서 깊숙이 관여했다는 게 재판 과정에서 나오고 있다. 그래서 대책위는, 현산이 대형 참사가 예견됐음에도 무리한 공사를 강행했다고 보고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을 주장하고 있다.

 

 

원래는 30톤 굴착기가 5층부터 차례차례 철거를 진행했어야 했지만 사정거리가 짧아 중간층으로 바로 진입해서 천장을 뜯었다. 건물이 무너질 수 있는 위험한 철거 방식을 강행했음에도 버스 정류장을 통제하는 등 안전 조치는 전혀 없었다. 이 모든 과정의 총괄 책임을 현산이 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책위는 “현산은 학동 재개발 사업을 위한 조합 건설 시점에서부터 현 조합장측과 이미 구속된 지역 조폭 이모씨, 미국으로 도주한 문흥식 등과 공모 결탁했다는 의심을 받아왔고 관련된 제보도 여러 건 있었다”며 “지금이라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공소장을 변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심 의원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취지를 강조했다. 결국 비용 아끼려고 안전을 팽개치는 것인데 원청 기업의 경영자에게 법적 책임을 제대로 물으면 그런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심 의원은 “산재도 그렇고 시민재해도 그렇고 책임만 분명히 물으면 상당 부분 금방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원청 경영자들에게 단호히 책임을 물으면 지금 발생할 수 있는 터무니없는 후진국형 사고와 재해는 90% 이상 해결할 수 있다. 그걸 위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추진했지만 재계에서 불편해하는 핵심 요구들을 다 뺀채 개혁 코스프레법만 담았다”고 자조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아들을 산재로 떠나보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등이 한달 가까이 단식을 감행해가며 힘들게 추진됐지만 차포가 다 떨어져나간채로 ‘중대재해처벌법’이란 이름으로 겨우 통과(1월8일)됐다.

 

심 의원은 기자회견 종료 직후 유족들의 손을 맞잡고 “국정감사 때 이 문제를 끝까지 제기하겠다”며 “분명하게 단죄하고 책임을 물을 사람을 물어야 재발 방지가 되고 그게 돌아가신 분들을 위한 최소한의 전제라고 생각한다. 중앙정치권에서 이 문제가 다뤄질 수 있도록 다가오는 국감에서 광주 학동 사건의 진실과 책임을 분명히 밝힐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학동참사는 후진국형 인재다.

 

한씨는 “광주 학동참사는 그동안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한땀한땀 쌓아올린 국민의 노력을 처참하게 붕괴시켜버린 후진국형 인재”였음에도 “책임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을 할 수가 없어 또 한 번 우리 사회에게 시민들의 목숨값 보다 불법 재하도급으로 인한 경제적 이익이 더 크다는 인식을 심어줬다”고 역설했다.

 

이어 “시민 여러분 또 다시 돈을 위해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내버렸던 광주 학동참사를 용인한다면 이같은 참사는 변형된 또 다른 모습으로 반드시 찾아올 것”이라며 “저희 유가족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더 안전한 사회를 위해 싸울 수 있도록 부디 함께 해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기자회견 중간에 대책위는 “부실 수사 그만하고 제대로 수사하라! 제대로 수사해서 몸통까지 처벌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현산도 몸통이지만 현산과 비리관계를 구축했을지 모를 정관계 인사들도 몸통이다.

 

심 의원은 “정관계 인사들의 의혹은 지금 열어보지도 않았다. 재개발 조합의 비리는 지금 방치돼 있고 지금 이 사건과 관련해서 해외로 도피한 브로커(문흥식 전 5.18구속부상자회 회장)는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환기했다.

 

문 전 회장은 학동 재개발사업과 관련하여 막대한 돈을 받고 여러 계약 수주에 개입한 인물로 지목됐고 현재 미국 시카고에서 도피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문 전 회장은 인터폴 적색수배를 받고 있음에도 회장직을 유지하기 위해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구속부상자회 신임 회장(조규연)을 선임한 임시총회 개최를 금지하는 가처분신청 소송을 제기했다. 뻔뻔함 그 자체다.

 

문 전 회장도 있지만 “허위용역사를 인가하고 부정한 방법으로 감리를 선정하면서 민원들을 방치한 공무원들에 대한 수사”가 중요하다. 나경채 전 정의당 공동대표는 평범한미디어와의 통화에서 철거 공사가 착수된 이후 지속적으로 돌덩이가 떨어진다는 등 주민 민원이 제기됐음에도 동구청이 현장 점검을 전혀 하지 않은 점을 비판했다. 나 전 대표는 수많은 민원들이 임택 동구청장에게까지 보고가 됐는지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족들은 일부 시민들이 A씨와 같이 돈을 노린다는 식의 악플을 다는 것에 대해 고통을 호소했다.

 

유족 대표를 맡고 있는 이진의씨는 “아직도 나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는다. 하루 하루 견디기 힘든 저희에게 그 어떤 2차 가해도 자제해주길 바란다”고 부탁했다.

 

대책위는 “20억을 받았다드라? 더 받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더라는 것은 완전한 거짓임을 분명히 밝힌다”고 했다.

 

 

대책위는 끝으로 △재개발 사업의 불법적인 비리 구조를 일소하는 사회적 노력 △얼마전 해산된 광주시 TF 대신 새로운 ‘가족지원대책위’ 구성 등을 요구했다.

 

나아가 심 의원은 “이용섭 광주시장도 해야 할 일이 있다. 지금 광주시 여러 개발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현산을 중지시켜야 된다. 단호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나 전 대표는 광주 지역 주요 언론들이 이 문제를 비중있게 다뤄야 함에도 그러기 어려운 구조를 환기한 바 있다.

 

나 전 대표는 “사실 언론이 끈질기게 다뤄야 할 문제인데 유가족들이 얼마나 할 말이 많겠는가. 내가 유가족을 한 번도 안 만나봤지만 안 봐도 비디오인 게 (지역) 기자들 만나기가 힘들 것이다. 연락을 해도 기자들이 회피하고 잘 안 왔을 것”이라며 “광주에 있는 웬만한 언론사들 다 건설회사를 끼고 있다. 건설사의 책임이 강한 이번 참사에 지역 언론들도 문제의식을 느껴야 한다”고 꼬집었다.

 

실제 KBC 광주방송과 광주 KBS는 해당 기자회견 소식을 4줄 짜리 앵커 멘트로 짤막하게 다뤘고, 광주 MBC는 아예 리포트를 내지 않았다.

 

그나마 광주드림(기사), 전남일보(기사), 무등일보(기사) 3곳이 유족들의 목소리를 직접 워딩 형식으로 다뤘다. 광주일보와 광남일보는 다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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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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