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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동 참사 “반복된 하도급의 진짜 책임자” 다 빠져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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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의 목소리
나경채 전 정의당 대표의 ‘해설’

[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지난 6월9일 광주광역시 동구에서 발생한 ‘학동 붕괴 참사’(동구 학동 주택재개발 4구역 학산빌딩) 이후 두 달이 흘렀다. 철거 중이던 건물이 느닷없이 무너져내려 마침 지나가고 있던 시내버스 승객 9명이 목숨을 잃었다.

 

유가족들은 5일 광주경찰정을 찾아 제대로 수사해달라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미 광주경찰청 수사본부는 사실상 수사를 마무리했는데 유족들 입장에서는 매우 불만족스럽다.

 

기본적으로 유족들은 지금까지 “경찰 수사가 꼬리 자르기”에 불과했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광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나경채 전 정의당 공동대표는 8일 오전 평범한미디어와의 통화에서 “지금 공무원들 중에 구속된 사람이 있는가? 공무원 중에는 구속된 사람이 없다”며 “잠원동 붕괴 사고에서도 공무원 재판만 안 끝났다. 공사를 실시한 업체의 하급 관리자들만 주로 처벌하고, 관리감독권이 있는 공무원들로는 칼날이 무뎌지고, 민간기업도 사장이나 회장으로는 안 가고 이런 과정들이 광주에서도 반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9년 7월4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있는 지상 5층 건물이 철거 도중 붕괴되어 1명이 숨지고 3명이 중상을 입은 바 있다.

 

잠원동 사건의 한 유족은 6월26일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 글을 올리고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철거업체 운영자, 감리인, 공사관계자 등에 대하여는 이미 공소가 제기되어 지난해 9월경 유죄 판결이 확정된 바 있다”면서도 “이들에게 공사를 발주한 건축주, 건축사, 서초구청 공무원 등에 대한 추가 고소고발건”은 3년째 수사 중이라고 비통해했다.

 

 

학동 참사로 돌아와보면 수사본부는 그동안 총 23명을 입건했고 이중 6명을 구속시켰다.

 

법원의 심판을 받게 될 면면들을 보면 원청 ‘현대산업개발’(현산) 현장소장·안전부장·공무부장, 1차 하청 ‘한솔기업’(한솔) 현장소장, 석면과 지장물 해체 작업을 맡은 ‘다원이앤씨’ 현장소장, 2차 하청 ‘백솔건설’(백솔) 소속 굴착기 기사, 감리자, 동구청 건축과 공무원 1명 등이다.

 

아버지를 잃은 한성은씨는 “허위용역사를 인가하고 부정한 방법으로 감리를 선정하면서 민원들을 방치한 공무원들에 대한 수사도 다시 이뤄져야 한다. 광주시와 동구는 현대산업개발의 입장만 전달하면서 참사 흔적 지우기에만 급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철거 공사가 시작된 이후로 주민들은 돌덩이가 떨어지는 것을 목격했다면서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버스 정류장의 위치를 옮겼으면 좋겠다는 식의 민원들을 수 차례 제기했다. 그러나 동구청은 현장 점검을 전혀 하지 않았다.

 

나 전 대표는 그 민원들이 임택 동구청장까지 보고가 됐는지 수사를 통해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 전 대표는 “민원들이 있었다는 것이 확인됐다. 그 민원에 대한 보고가 어디까지 올라갔는지 봐야 하고 내가 봤을 때는 그 민원을 구청장이 보고받아서 접수했는지가 핵심”이라며 “만약 받았다면 구청장도 수사를 해야 한다. (보고받고도 무시했다면 직무유기인데 관내 철거 공사 안전 문제에 대한) 최종 책임이 구청장에게 있는 거고 게다가 동구에서 재건축이 추진되는 정책의 배경에서 구청장을 빼놓고는 설명이 안 된다”고 역설했다.

 

 

10만3000여명으로 광주 5개구 중 가장 인구가 적은 동구는 2012년~2015년까지 재임했던 노희용 전 동구청장 때부터 재개발·재건축 붐이 크게 일었다.

 

나 전 대표는 “재개발·재건축 많이 해서 아파트 세워서 동구 인구 10만명 이상으로 늘려서 칭찬받는 것도 구청장”이라며 “이 정책의 결과가 잘 됐을 때는 구청장이 칭찬받는데 잘못됐을 때는 왜 하급 관리자만 추궁을 당해야 하는가?”라고 따졌다.

 

무엇보다 나 전 대표는 “(수사본부가 민원 보고 관련) 조사를 해봤는데 구청장까진 보고가 안 된 것 같다는 식의 발표를 했어야 했는데 언급 자체가 없다. 수사가 전혀 안 된 것 같다”고 관측했다.

 

학동 참사 유족들의 법률 대리를 맡고 있는 법무법인 이우스는 공식 입장문을 내고 “유족들은 이 사건이 과실 범죄가 아닌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며 가슴치고 있다”고 전했다.

 

 

여영국 정의당 대표는 참사 하루만에 현장을 찾아 “늘 이런 중대재해 현장의 뒷배경에는 위험을 외주화하는 다단계 하청구조가 도사리고 있다”고 말했다.

 

위험할 수도 있다는 인식을 했을테지만 하청에 재하청을 주면서 떠넘기고 사실상 미필적 고의를 형성할 수도 있다.

 

나 전 대표는 “(유족들의 미필적 고의 주장에 대해) 공감하는 부분이다. 왜냐면 여러 단계를 거쳤는데 최초 계약한 현대산업개발이 있고 또 용역을 주고 도급을 주고 도급을 주면서 이렇게 하면 위험한데? 이런 고의들이 자꾸 단계를 나누면서 고의가 아닌 것처럼 취급되는 게 있다”며 “대부분의 건설 현장에서의 사고는 하도급 단계에서 일어난다. 이걸 고의라고 취급해주지 않으면 죄가 없는 것으로 되는 경우가 많아서 법 논리적으로도 충분히 주장할 수 있다고 본다. 변호사 잘 선임하면 입증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동조했다.

 

이어 “하도급을 한 단계만 허용하는 이유는 자꾸 하도급을 주면 대형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근데 그걸 어기고 재하도급을 줬다”며 “그 인식 속에 일부러 사고를 내야겠다고 하는 것은 없었겠지만 사고가 나도 어쩔 수 없다는 정도는 있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주택재개발 사업을 따낸 원청기업 ‘현산’은 1차로 ‘한솔’에 하청을 줬고, 한솔은 2차로 ‘백솔’에 재하청을 줬다. 한솔은 610개 건물을 철거하는 조건으로 현산으로부터 계약금 54억원을 받았다. 그러나 한솔은 백솔에 재하청을 주면서 12억원을 건넸다. 자신들이 받은 공사 대금의 22%만 쥐어준 것이다.

 

위험하고 번거로운 작업은 모조리 하청에 재하청을 줬고 이 과정에서 공사 단가 후려치기는 상수였다.

 

폭력적인 방법도 동원됐을 것으로 보여진다. 불법 철거왕으로 불린 조폭 출신 이금열 전 회장의 다원그룹이 일부 단계에서 깊숙이 연루됐다는 게 확인됐다. 다원그룹 계열 ‘다원이앤씨’는 이번 재개발 사업에서 석면과 지장물 해체 작업을 수주했고 한솔과 함께 백솔에 재하청을 주는 과정에 개입했다.

 

나 전 대표는 “(미필적 고의에 가까운) 그런 인식을 만약 누군가 가졌다면 논리적으로 누구였을까? 현대산업개발의 실무자? 그렇지 않다. 아마 최종 책임자였을 것이다. 최종 책임자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 경영진들과 사장”이라고 환기했다.

 

 

하청을 거듭하며 후려쳐진 공사비의 후과는 너무나 컸다. 소중한 생명 9명이 산화했다. 목숨을 짓밟을 정도의 위험을 만들어냈다. 돈과 목숨값이 맞교환됐다. 최소한 한솔이 동구청에 제시한 계획서대로라면 30톤 굴착기가 5층부터 차례차례 철거를 진행했어야 했다. 그러나 사정거리가 너무 짧았다. 굴착기의 포크가 닿지 않는다면 지지대를 세워 윗층부터 차례대로 부숴야 했다. 하지만 중간층으로 바로 진입해서 천장을 뜯으려고 했고 건물 전체가 한 번에 무너져내렸다. 백솔 소속 굴착기 기사는 왜 평소보다 사정거리가 짧은 작은 굴착기를 사용했는지에 대해 함구했다.

 

유족들은 또 광주시와 동구가 “현산의 입장만 전달하면서 참사 흔적 지우기에만 급급하다”고 지적했다. 나 전 대표는 유족들의 이런 지적을 사후 대책을 제대로 수립하지 않는 관의 문제로 해석했다.

 

나 전 대표는 “구청과 시청 입장에서는 이 사건이 빨리 잊혀지길 바랄 것”이라며 “참사 직후 (광주시와 동구에서) 여러 약속을 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뭐 어쩌고 저쩌고 했는데 사건 당시 초기의 약속은 어디 갔는가. 공무원들이 시장과 구청장의 지시에 의해서 새로운 매뉴얼이 만들어지고 예컨대 재개발 철거 현장에서 감독관청으로서 감독 매뉴얼이라도 손본 게 있을까?”라고 화두를 던졌다.

 

이어 “굳이 조례나 법 개정까지는 안 가더라도. 감리를 그렇게 한 과정도 문제라고 했는데 각종 공사에서 감리 선정 절차의 매뉴얼을 손봤을까?”라며 “현장에 공무원들이 자주 안 갔다는 건데 사실 관심만 갖고 보면 불법 재하도급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걸 충분히 알 수 있다. 불법하도급이 있더라도 행정관청에서 발견되고 시정될 수 있도록 매뉴얼을 변경했느냐 이건데 아마 전혀 안 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나아가 나 전 대표는 광주 지역 주요 언론들이 건설사를 대주주로 두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나 전 대표는 “사실 언론이 끈질기게 다뤄야 할 문제인데 유가족들이 얼마나 할 말이 많겠는가”라며 “내가 유가족을 한 번도 안 만나봤지만 안 봐도 비디오인 게 (지역) 기자들 만나기가 힘들 것이다. 연락을 해도 기자들이 회피하고 잘 안 왔을 것”이라고 가정했다.

 

이어 “광주에 있는 웬만한 언론사들 다 건설회사를 끼고 있다. 건설사의 책임이 강한 이번 참사에 지역 언론들도 문제의식을 느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끝으로 나 전 대표는 1977년 빈민들의 판자촌 강제 철거에 대항하다 4명을 살인하게 된 ‘무등산 타잔 박흥숙 사건’을 거론했다. 당시 무등산 도립공원 지정에 따른 강제 철거가 예정돼 있었는데 여덟 가구들은 갈 곳이 없었기에 그대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나 전 대표는 “역사적으로 동구는 재개발 재건축의 어두운 면을 갖고 있다. 무등산 타잔 사건은 영화로도 나올 정도로 유명한 사건인데 단순 살인 사건이 아니라 빈민들이 판자촌 집 짓고 사는 것을 불태워버려서 일어난 사건”이라며 “동구 뿐만이 아니라 광주 전체로 봐도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교수형을 당한 故 박흥숙이) 5명을 때렸는데 4명이 죽고 1명이 살아남아서 신고를 했다. 5명 모두 동구청 직원”이라며 “당시에도 희생자가 다 말단 직원들이었는데 이들이 다 자기 결정으로 한 것이겠는가? 다 지시받고 한 건데 그런 게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구청장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아울러 “동구청의 역사에서도 재개발 재건축의 과정에서 이런 억울함을 없게 해야 한다는 것은 70년대부터 얻게 된 교훈인데 전혀 바뀐 것이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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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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