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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명의 목숨 짓밟은 ‘학산빌딩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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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마른 하늘의 날벼락. 이 문장 외에 희생자들의 비극을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다. 그저 시내버스에 탑승해 있었을 뿐인데 밖에 있던 폐건물이 무너졌다. 재개발 지역이라 건물 철거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안전 매뉴얼을 지키지 않고 중간층부터 철거를 한 것이 참사를 불렀다. 시간 절약과 비용만 신경썼던 전형적인 인재(人災)로 보여진다.

 

 

9일 16시22분 즈음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남문로)에 위치한 근린생활시설 철거 현장에서 건물이 무너졌다.

 

5층 규모의 학산빌딩(지상 5층 지하 1층에 총 면적 484평)이 갑자기 붕괴됐는데 그 순간 정류장에 잠시 정차해 있던 54번 시내버스를 그대로 덮쳤다. 뒤따라오던 차량 2대는 붕괴 직전 멈췄고, 54번 버스 앞에 가고 있던 통근버스는 1초 차이로 건물 더미에 깔리지 않았다. 참사 직후 건물 잔해들이 8차선 도로 전체로 퍼져 아수라장이 됐다. 사고 순간은 주변을 지나던 차량 블랙박스에 고스란히 담겼다.

 

빌딩 붕괴로 버스 뒤쪽에 타고 있던 9명(10~20대 남녀 2명/40대 여성 1명/60~70대 남녀 6명)이 목숨을 잃었고, 앞쪽에 타고 있던 버스기사 포함 8명은 크게 다쳤다. 8명도 목숨을 잃을뻔 했으나 인도에 있던 가로수(아름드리나무)가 완충 작용을 해서 생존할 수 있었다. 콘크리트 잔해 속에서 건져진 버스 차체를 보면 후면부가 전면부에 비해 훨씬 많이 손상됐다. 정류장 주변에 보행자나 대기자는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버스는 CNG(압축천연가스) 버스라서 가스 폭발의 위험성이 있었지만 다행히도 폭발하지 않았다.

 

 

부상자 8명은 전남대병원, 광주기독병원, 조선대병원, 동아병원 등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해당 구역은 ‘학동 주택재개발 4구역’으로 노후 주택들이 밀집해 있던 곳이었다. 학산빌딩이 철거되면 신축 아파트 단지가 본격적으로 들어설 예정이었다. 빌딩은 원래 종합상가건물로 한의원 등이 입점해 있었다고 한다. 특히 빌딩 뒷쪽에 2층짜리 별관 건물이 있었다.

 

신고를 받고 긴급 출동한 광주소방본부 특수구조단과 광주 관내 5개 소방서(동부/서부/남부/북부/광산)는 9일 20시15분까지 희생자 구조 및 시신 수습 작업을 마무리했다. 그 직후 깔려있던 버스를 콘크리트 잔해 밖으로 꺼내놨다.

 

 

10일 새벽 2시 즈음 본지 기자는 윤동욱 기자와 함께 현장으로 갔다.

 

광주동부경찰서는 새벽 내내 교통통제구간을 획정하고 사고 지점 양방향 도로를 통제했다. 사고 현장 100미터 지점부터 경찰 인력이 배치돼 보행자와 차량을 다른 곳으로 돌아가도록 안내하고 있었다. 2시반 즈음 도로에 있던 잔해물이 완전히 치워졌고 먼지가 나지 않도록 물이 뿌려졌다.

 

광주시민들은 “평소 자주 가던 곳이었고 그 자리에 내가 있었을 수도 있다”는 마음이다. 그야말로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사고 현장 바로 옆에 광주지하철 ‘학동증심사입구역’이 있고 조선대병원이 한 눈에 보일 정도다. 광주 구도심의 대표 번화가 ‘충장로’와도 가깝다.

 

김석수 재난대응단장(광주동부소방서)에 따르면 노동자 16명이 해당 건물 철거를 맡고 있었고 사고 당시에는 건물 내부에 2명, 외부에 2명 등 총 4명이 작업 중이었다. 굴삭기 또는 다른 중장비를 이용해 철거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붕괴 직전 괴상한 소음과 여러 징후들이 느껴져 황급히 대피했다고 한다.

 

 

10일 14시부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광주시 소방본부, 광주경찰청 등이 합동 정밀감식을 벌이고 있다. 국토교통부도 기술안전정책관, 익산지방국토관리청장, 국토안전관리원 등을 급파했다. 경찰은 전담수사팀을 꾸렸고 법률과 매뉴얼에 따라 철거 작업을 안전하게 진행했는지 등을 살펴보고 있다. 국과수는 굴착기 이동 편의를 위해 건물 뒤쪽에 모아둔 토사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서행남 과학수사계장(광주경찰청)은 “이번 합동 감식은 건물 붕괴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이고 광범위하고 종합적으로 조사해 사고 원인을 밝혀내겠다”고 밝혔다.

 

아직 감식 중이지만 붕괴 원인으로 집히는 것들이 있다.

 

①건물의 무게를 지탱하는 구조물을 일찍 제거해서 균형을 잃게 만들었을 가능성

②의무적으로 철제 기둥을 설치해서 건물의 하중을 분산시켜야 함에도 그러지 않았을 가능성

③이미 무너뜨린 콘크리트 잔해들을 안전하게 치워놨어야 했는데 건물에 그대로 뒀을 가능성

④건물 뒤편의 토사를 1층으로 내리지 않고 그대로 쌓아놔 붕괴에 하중의 영향을 줬을 가능성

⑤10톤 미만 굴착기가 올라가서 윗층부터 부수면서 철거를 하는 일은 일반적이지만 10톤 이상의 굴착기가 옥상까지 올라가면 위험한데 그걸 올렸을 가능성

 

학동 주택재개발 사업의 시공사 ‘HDC현대산업개발(현산)’은 광주 소재가 아닌 서울 영등포구에 본사를 두고 있는 ‘한솔기업’에 철거 하도급을 맡겼다. 경쟁 입찰 방식으로 선정했다고 한다. 한솔기업은 2006년에 설립됐고 직원수 10여명, 매출액 110억원, 영업이익 8억원 규모의 중소기업이다. 한솔기업은 ‘해체계획서’를 성안했고 현산을 통해 광주 동구청에 제출했으나 그 매뉴얼대로 작업을 하지 않았다. 즉 5층부터 구조물을 해체해야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동구청이 공개한 해체계획서에 따르면 철거 공정은 △측벽(구조물의 측면에 있는 벽체)을 긴 붐대로 압쇄 △크러셔(부수는 장치)로 5층 구조물 작업 △10톤 미만의 굴착기가 5층으로 올라가 외부벽·방벽·슬라브(콘크리트 구조물의 천장이나 바닥 부분) 해체 △이런 방식으로 3층까지 완료되면 굴착기를 지상으로 내린 뒤 1~2층 해체 등의 순으로 진행됐어야 했다. 철거 공법은 인형뽑기와 같이 굴착기에 가위 모양의 장비를 달아 구조물을 부수고 집어내는 ‘무진동 압쇄’였다.

 

 

경찰은 한솔기업이 6월1일부터 후면 별관 등 저층을 제일 먼저 철거하도록 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무엇보다 빨리 작업을 끝내기 위해 맨위부터 차례대로 부수지 않고 정중앙부를 먼저 붕괴시켜 한꺼번에 건물이 접히도록 한 정황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날 경찰은 현산의 광주사무소와 한솔기업 담당 부서 등 5곳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별도의 수사 조직을 구성해서 강도높은 수사에 나설 계획이다.

 

통상 도심과 인접해 있지 않은 철거 구역의 중심부라면 주변에 생활시민들이 없기 때문에 정중앙부를 타격하는 철거법이 양해될 수 있다. 비용 절감을 위해 한꺼번에 건물을 무너뜨리는 것인데 그렇더라도 파편들이 튀어나가기 때문에 작업자들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을 수 있다. 하물며 8차선 도로가 있는 곳에서 보행자들과 시내버스가 다니는데 이런 철거법으로 작업을 했다는 것은 너무나 위험천만한 일이다. 최소한 그렇게 하더라도 도로와 인도 전부를 통제하고 안전 펜스를 확실히 설치해놓았다면 9명의 목숨이 허망하게 산화하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현장책임자가 “이상 징후가 느껴졌을 때 외부 신호수들이 통제를 하고 피했다”고 발언했는데 자신들만 대피하고 급하게 간이로라도 차량 통제를 하지 않았던 점이 도마에 올랐다.

 

 

철거 현장의 안전사항을 감독하는 감리자의 역할도 쟁점이다. 사고 당시에는 현장에 감리자가 없었는데 현산측에서는 ‘비상주감리’ 계약을 했고 핵심 공정이 끝나서 감리자가 상주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상주감리였다면 감리자가 모든 공정에 상주해야 하지만 비상주감리는 핵심 공정만 지켜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사태가 중대한 만큼 동구청은 현산과 해당 감리자에 법적 책임을 묻기로 했다.

 

정몽규 회장(HDC그룹)은 이날 오전 광주시청 브리핑룸을 찾아 “사고 희생자와 유족, 부상자, 시민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유가족 피해 회복과 조속한 사고 수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 전사적 대책을 수립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권순호 현산 대표도 “경찰 등의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원인 규명과 관계없이 피해자와 유가족 지원에 회사 역량을 집중할 생각”이라며 “철거 시행은 한솔기업에서 하고 있으며 재하도급 등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고와 관련해 합동 점검을 통해서 원인 규명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장 작업자들은 원청사 현산이 하청에 재하청을 줬다고 증언하고 있다. 학동 재개발 조합측은 현산과 3개 철거업체만 하도급 계약을 맺었다는 입장이다.

 

동구청도 관할 구역에서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

 

10일 방송된 jtbc <뉴스룸>의 단독 보도에 따르면 지난 2일 동구청에 “큰 돌덩이가 떨어지면서 쿵 하는 소리에 안전장치를 아무것도 안 한 상태에서 위험하겠다. 여기는 사람이 지나가는 인도인데 펜스도 없다. 빨리 조치를 취해라“는 민원이 접수됐다. 그러나 동구청 담당 직원은 “재개발 조합에 연락하겠다”고만 답변을 하고 현장 점검을 나가지 않는 등 민원 내용을 중히 여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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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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