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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졸혼’ 가정의 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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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철민의 산전수전 山戰水戰] 21번째 글입니다. 

 

 

[평범한미디어 김철민 칼럼니스트] 산전수전이란 제목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지 어느덧 1년이 지났고 나의 ‘인생록’이나 다름 없는 20개의 글이 나왔다. 직접 겪은 일들을 글로 풀어 쓴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처음에 제안을 받고 시작할 때만 해도 10부까지 쓸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매번 내 인생에는 이슈들이 발생했고 그에 대한 나의 마음가짐을 풀어내다보니 어느덧 여기까지 왔다. 21번째 글은 무슨 주제로 써볼지 고민이 됐는데 결혼 이야기를 꺼내볼까 한다. 마침 30대 중반이 된 만큼 주변 친구들이나 군대 동기들, 사촌 동생의 결혼 소식을 많이 접하게 되면서 나도 결혼 생각을 해보게 됐다.

 

 

사실 내 또래의 결혼 소식에 큰 동요는 없었다. 좋은 사람 만나서 갈 때가 되니 가는가보다 싶었다. 그러나 사촌 동생 몇몇이 결혼을 하니 명절 단골 멘트를 많이 듣게 됐다. 골치 좀 썩었다. 사촌 동생들과 나이 차이도 좀 나고 친가에서는 내가 장손이기에 “언제 결혼할 거냐? 만나는 여자 있냐?”는 말을 너무 많이 듣고 있다. 결혼을 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다. 그동안 연애했던 여자들 중 결혼을 결심할 만큼 진지했던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워낙 완벽주의자라서 그런지 인생 중대사 결혼을 하기에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판단이 앞섰다. 그래서 먼저 이별을 고했던 적이 꽤 있다. 적어도 한국에서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신혼집 전세보증금과 예식장 비용 정도는 갖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편견을 갖고 있다보니 아직 갖춰져 있지 않다는 생각이 나를 짓눌렀다. 이런 결혼관을 고쳐먹으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지만 지금 연애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조심스럽다.

 

오랜 벗이나 나의 멘토 동욱이나 용운이에게도 말하지 못 한 가정사가 있다. 우리 부모님은 법적으로 이혼하지 않았지만 별거 중이다. 자세한 사유를 미주알고주알 말할 수는 없지만 일종의 “졸혼”과 유사하다. 벌써 졸혼생활이 10년 가까이 됐다. 나는 어머니와 살고 있어서 아버지쪽과는 연을 거의 끊은 상황이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연애와 결혼에 트라우마가 있다. 요즘 시대에 이혼과 졸혼은 전혀 흠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만나게 될 연인에게 나의 가정사를 알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실제로 오래 사귄 연인과 결혼 얘기가 나오고 상견례를 할 것 같은 타이밍이 되면 일부러 모질게 굴고 상처를 주면서까지 이별로 치닫곤 했다.

 

나 스스로도 알고 있다. 나의 생각과 언행은 옳지 않다는 사실을. 비겁하다. 치부도 아닌데 치부로 여기며 두려워하는 겁쟁이가 맞다. 그런데 최근 어린 사촌 조카와 만나 놀아주고, 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의 두돌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날 닮은 아이를 갖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근데 뭔가 두렵다. 내가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어머니는 나의 연애관을 어느정도 알고 있는데 안 좋은 영향을 준 것 같아 “늘 미안하다”고 말씀하신다. 그래도 부담 갖지 말고 연애를 해보라고 권하는데 오히려 내가 어머니께 죄송스럽다. 그동안 날 위해 고생을 많이 한 어머니에게 손주라도 안겨드리는 것이 자식 도리에 맞는 일일텐데 아직 나는 학업에 매진하고 있는 처지라 쉽지 않다. 지금으로선 당장 닥친 대학원 석박사 과정을 무사히 마치는 것이 우선이다. 연애와 사랑이라는 것이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니겠지만 나는 준비와 계획을 갖고 하고 싶다. 언제 결혼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해야 한다면 학업을 마치고 후련한 마음으로 해볼 생각이다. 이상형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외모적으로는 보이시한 여성을 선호하지만 다른 면으로는 내가 대학 교수의 꿈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학계에 종사하는 여성이라면 참 좋을 것 같다. 무엇보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 할 고민이 있을 때 들어주고 이해해줄 수 있는 마음씨를 갖고 있다면 금상첨화다.

 

그동안 산전수전에서 주로 건강과 학업 또는 과거의 고난을 풀어냈던 적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이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하소연하며 털어버리고 싶었다. 이제 마치고자 한다. 매서운 한파와 폭설이 지나가고 날씨가 점점 따듯해지고 있다. 금세 봄이 올 것만 같다. 평범한미디어 독자들도 건강 잘 챙기시길 바라고 행복한 겨울나기 되시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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