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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과 잠시 멈춤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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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김철민의 산전수전 山戰水戰] 12번째 글입니다. 김철민씨는 법학과 관광을 전공으로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30대 청년입니다. 무엇 하나 쉽지 않은 인생의 길을 걸어왔고, 파란만장한 경험들을 쌓았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고군분투하고 있는 본인의 삶을 주제로 글을 쓰고자 합니다. 생생한 삶의 기록을 기대해주세요. 아주 디테일한 인생 고백을 만나보세요.

 

[평범한미디어 김철민 칼럼니스트] 어느덧 이중학적(법학 석박사통합과정과 호텔관광경영학 박사과정)으로 맞이한 첫 학기가 반환점을 돌았다. 이제 종강까지 5~6주 밖에 남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암초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중학적의 길에 올라탄지도 10주가 지난 셈이다. 시간 참 빠르다. 난 잘하고 있는 걸까? 의구심이 든다. 요즘 나는 번아웃과 맞닥뜨렸다. 인간관계에 점점 지쳐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산전수전에서는 목표를 위해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왔던 내가 왜 번아웃을 겪고 있는지에 대해 풀어볼 생각이다.

 

 

우선 산전수전 애독자들이라면 알고 있을 나의 인생사 중 군복무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워낙 파란만장했다는 점을 거론하고 싶다. 산전수전 1편부터 7편까지의 내용인데, 내가 갖고 있는 에너지의 100% 이상 초과해서 사용하다보니 안 지칠 수가 없다. 특히 제대 이후 동남아로 가서 스쿠버다이빙에 푹 빠져 다이빙 리조트 사업을 계획했다가 사기를 당해 빚더미에 시달렸던 일련의 폭풍우가 휘몰아친 이후로, 내 인생은 악바리 근성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었다. 빚을 갚기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온갖 무리한 막노동을 감내했던 그때부터 내 몸은 여기저기 종합병원 환자가 됐다. 급한 불을 끄고 대학교로 돌아왔지만 조바심은 가시지 않았다. 늦은 나이에 복학한 만큼 어린 후배들과의 경쟁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마음이 과했으며 학점에 집착했다. 돌이켜보면 후배들과 스터디룸에서 밤새 공부했던 추억 등 좋은 기억도 많았다.

 

사업 실패와 빚 청산으로 고생한 나의 20대를 만회하고 싶었던 건지, 나는 법학 단일 전공으로는 경쟁력이 없다는 판단이 들어 관광학(글로벌관광호텔학)을 복수전공으로 삼았다. 이왕 할 바엔 둘 다 박사학위를 취득해보자! 그래서 대학 강단을 누비는 실력있는 교수가 되보자! 목표를 세웠으면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 그러나 그 길이 너무도 험난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직장생활과 두 전공 학업을 교차해서 병행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결국 탈이 났다.

 

2024년 1학기인 현재 나는 낮엔 세종대 대학원(호텔관광경영학 박사과정), 밤엔 성균관대 대학원(법학 석박사 통합과정)을 이중학적 신분으로 다니고 있다. 학업에 집중하기 위해 직장을 관둔 상태이며 그 대신 세종대 연구소(관광혁신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직전 11편에서 생생히 묘사했듯이 몸이 말썽이라 병원에 불려다니다 연구소 일을 못 하게 됐다.

 

누적된 피로와, 건강으로 발목잡힌 상황이 만나 지금의 번아웃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좋아서 시작했던 법학과 관광학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예전만 못 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논문을 쓰고 연구를 해야 하는데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얼개를 구상하지 못하고 있다. 누구보다 확고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목표와 신념이 살짝 흔들리고 있다. 이 길이 맞는 건가? 자꾸 나약한 마음만 든다. 마침 이상하게도 내 나이 또래 친구들은 다 잘나가고 있다는 소식만 들려오는 것 같다. 벌써 직장에서 자리잡아 대리 이상의 직급으로 승진해서 고연봉을 받고, 집과 자동차를 마련했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까지 낳아 키우고 있는데 난 뭐 하고 있지?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 보이고 작아진다. 남들과 비교하지 말기로 했음에도 쉽지 않다. 오직 과거의 나와 비교하며 하루하루 조금 더 성장하는 삶을 살고 싶었는데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인간관계도 너무 지친다. 사기꾼에게 당하고 PTSD가 생겼는지 인간관계를 기피하게 됐고, 좋은 사람에게도 좀처럼 마음을 내어주지 않았다. 문제점을 인지하고 좀 바꿔보려고 노력했지만 돈이 오가는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어딘지 모르게 가식적이란 인상이 자리잡았다. 오직 비즈니스와 사회생활을 위한 사람들의 접근이, 눈에 보여서 호의를 받으면 의심부터 품었다. 받으면 무조건 돌려주는 것부터 생각했다. 대가 없는 호의는 없고 오직 기브 앤 테이크의 룰이 지배하는 잔인한 세상에 지쳐갔다. 피해의식인지 모르겠지만 거쳐온 직장들에선 하나 같이 날 비난하고 뒷담화하며 앞과 뒤가 다른 사람들을 마주쳤던 것 같았고 그 때문에 된통 마음고생을 했다.

 

비즈니스적이고 가식적인 인간관계에 신물이 났다. 내가 이상한 건가? 오랜 벗들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고향 친구이자 초중고 동창인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를 비롯 대학 친구들에게 톡을 보냈다. 공감과 위로의 힐링을 얻었는데 1992년생 30대 초반의 내 또래들은 모두 사회생활에 지치고 인간관계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며 하소연 모드가 됐다. 수다의 결론은 어렸을 적 시골에서 학교 다니며 철부지로 지냈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로 맺어졌다. 하교 후 축구공 하나로 해가 질 때까지 운동장을 누볐던 그때가 참 순수했던 것 같다. 그때가 그립다. 어느 순간 주변에 계산적인 관계들로만 가득차 숨이 막히지만 그나마 서로 공감하고 위로해줄 수 있는 찐친들이 있어서 위안이 된다.

 

결심했다. 2024년 2학기에는 일단 멈추기로 했다. 두 대학원을 모두 휴학하고 오로지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정체성과 방향성을 다시 탐구해보기로 했다. 나란 사람은 누구인가? 나는 왜 두 전공 박사학위를 취득하고자 하는가? 박사학위를 따서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이런 물음표들에 대한 답을 찾는 시간이 될 것이다. 나아가 건강을 되찾고 싶다. 당장 다음달에 웨딩업체에서 근무하다 파열됐던 왼쪽 발목 관련 수술이 잡혀 있다. 무엇보다 이번 학기를 잘 마무리짓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이야기를 읽어주는 독자들에게 좋은 소식을 들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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