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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종교인의 종교심리학①] 당신이 교회에 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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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윤동욱 기자] 대한민국 개신교 인구 1000만명 시대. 수많은 한국인들이 교회에 다니는 이유를 탐구해보고 싶었다. 흔히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과 ‘통합’이 한국 개신교의 주류인데 도대체 한국에서는 언제 개신교가 최초로 들어왔을까. 특히 내 아들 취업 잘 되게 하기 위해 부모가 교회에 가는 ”기복신앙“의 맥락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사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무신론자였다. 주변에 친구, 부모, 지인들은 거의 대부분 교회를 다니고 있었고 나 역시 전도를 숱하게 받았다. 어린 마음에 부모에게 교회를 다니게 해달라고 사정했으나 무슨 까닭인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강경한 태도로 못 가게 막은 것은 아니었지만 딱 시큰둥한 분위기였던 것 같다. 사실 어렸을 때 교회를 다녀보고 싶었던 것도 “신앙심”이라든가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어린 마음에 교회 다니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싶었다.

 

어렸을 때 보았던 동네 목사는 말투나 외형이 굉장히 선한 사람인 것 같았고 종교인은 모두 그런줄로만 알았다. 성인이 된 뒤로는 한국 개신교의 어두운 면들을 직시하게 됐다. 목사직 세습, 성폭행, 횡령, 동성애 혐오, 반공주의 등 한국 개신교의 일탈은 끝이 없었고 상당히 실망했었다. 오히려 내가 크리스천이 되지 않는 데에 영향을 미친 시큰둥한 부모의 반응이 고마울 지경이었다. 어찌됐든 지금까지 나는 “모태 무교”로 살아왔다.

 

교회는 내 고향 시골에서도 여러 곳들이 존재할 만큼 대한민국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먼저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하는 개념 정리부터 하고 가자. 다들 기독교, 개신교, 천주교의 차이를 정확하게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간단하게 말해 기독교는 개신교와 천주교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림으로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예수를 믿는 모든 종교를 ‘기독교’라고 부른다. 예수를 처형하고 기독교를 탄압했던 로마 제국이 테오도시우스 황제 때인 AD 392년 되려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했다. 그 이후 16세기(1500년대~1600년대) 종교 개혁이 일어날 때까지 로마의 교황을 믿고 따르는 종교를 ‘가톨릭(천주교)’이라고 칭한다. ‘개신교(프로테스탄트)’는 면벌부 등 부패의 막장까지 추락한 가톨릭의 대안으로 부상하기 시작했고 종교 개혁 이후 기독교의 중심이 됐다. 개신교 안에는 장로회, 감리교, 침례회 등등 여러 종파가 존재한다. 카톨릭 외에도 그리스·러시아 정교회 등 동방 정교회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개신교보다 천주교가 더 일찍 들어왔다. 서정민 연세대 신과대 교수가 집필한 저서 ‘한국 교회의 역사‘에 따르면 한국에 천주교가 들어온 정확한 시기는 알 수가 없다. 16세기 말 임진왜란 당시 조선인 포로 몇명이 천주교를 신봉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것이 조선 기독교의 원형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본격적으로 한반도에 전파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과 안정복에 의해서다. 특히 1801년 천주교 박해로 목숨을 잃은 이승훈 베드로는 한반도에서 최초로 천주교 세례를 받은 인물이다. 그 이후 천주교는 19세기 내내 병인박해 등 네 차례에 걸친 박해를 받았으며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발전해왔다. 한국 천주교는 명동성당으로 대표되는 민주화운동 역사에도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한국 개신교는 1832년 유대계 독일인 루터교 목사 칼 귀츨라프에 의해 시작됐고 개항 이후 수많은 외국 선교사들이 한반도로 유입됐다. 선교사들은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는 창구 역할을 하기도 했다.

 

개신교도 천주교와 마찬가지로 일제 강점기에 비타협적인 교회들이 많았고 박해를 받았다. 특히 신사 참배 거부로 큰 시련을 겪었다. 광복 이후 개신교는 급속히 성장했다. 북한의 조선노동당은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공산주의적 원칙에 따라 교회를 탄압했다. 

 

기본적으로 한국 개신교는 반공주의에 입각해서 발전해왔다. 앞서 거론했듯이 1000만의 한국 개신교는 그 규모만큼 불미스러운 사건사고도 타 종교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최근에는 코로나19 관련 방역에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이는 일부 교회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개신교를 신실하게 믿고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 그러는 걸까? 정말 원초적인 궁금증이지만 오래전부터 머릿 속을 맴돌고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은 헌법상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그 어떤 종교를 믿든 무신론자가 되든 온전히 개인이 자유의지를 갖고 선택할 문제다. 크리스천을 비판하려는 의도는 기필코 없다. 그저 내가 비종교인이기 때문에 과연 신실한 크리스천은 어떤 마음에서, 어떤 이유로 교회를 가는 것인지 알아보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직접 교회에 가봤다.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일대는 일찍이 선교사들이 많이 유입되어 호남 선교의 주축을 형성했다.

 

지난 24일 저녁 양림동에 위치한 모 교회의 수요 예배에 참석했다. 교회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예배 참석자들은 모두 방역 수칙을 제대로 준수하는 모습이었다. 설교를 맡은 목사는 성경 내용을 들어 이단과 신천지를 비판했다. 그나마 긍정적이었던 점은 방역에 비협조적일 것이라고 여겨졌던 선입견과 달리 목사께서 교회가 방역에 협조해야 한다고 설교를 했다는 대목이다.

 

예배가 끝난 뒤 60대 남성 A씨와 만나 교회를 다니는 이유에 대해 들어봤다. 

 

A씨는 “교회를 다니는 문제는 구체적인 것이 아니라 구원의 문제“라며 “그런 이야기는 목사와 해보는 게 맞다“면서 구체적인 답변을 회피했다.

 

A씨는 스스로 왜 교회에 다니는지 그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 했다. 

 

반면 20대 남성 B씨는 “부모님께서 워낙 독실한 신자였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동네에 있는 교회에 주말마다 정기적으로 다니고 있다”면서 정확하게 설명했다. 

 

아래는 B씨와의 일문일답이다.

 

Q: 일요일마다 교회에 다니는 것이 번거롭지는 않은가?

A: 어렸을 때부터 다녔던 것이라 딱히 습관이 돼서 번거롭다거나 부담스럽지는 않다. 친한 사람들도 많다.

 

Q: 부모가 독실한 신자라고 했는데 본인은 신앙을 갖고 싶지 않다거나 그런 생각은 안 해봤나?

A: 딱히 교회를 다니는 것에 거부 반응이 없다. 부모의 생각처럼 하나님에게 항상 감사드리고 있다. 교회를 다니면서 기도를 하면 마음이 정말 편해진다. 부모와 함께 교회에 가고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이 너무 좋고 만족스럽다. 일반적으로 모태 신앙으로 믿게 된 사람들은 나처럼 만족스러워 하는 것 같다.

 

물론 부모나 다른 가족들이 교회에 다닌다고 해도 별로 내키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북구에 살고 있는 30대 여성 C씨의 부모는 아주 독실한 신자다. C씨도 어렸을 때는 곧잘 교회에 다녔지만 지금은 다니고 있지 않다고 했다. 종종 부모와 교회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었다. C씨와의 일문일답이다.

 

Q: 부모께서 독실한 신자인데 지금 교회에 다니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A: 어렸을 때 부모가 독실한 신자였기 때문에 나도 당연히 교회에 갔다.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회의감이 들었다. 나 자신은 신앙심이 없는데 교회에 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됐다. 특히 한국 개신교는 한국사회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교회에 반감을 갖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안 가게 된 것이다. 허나 여전히 부모는 독실한 신자다. 계속 나에게 교회를 다니라고 잔소리를 한다. 압박을 한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교회에 가고 싶지 않다. 교회 문제로 부모와 다투는 일이 많아 관계 자체도 안 좋은 것 같다. 

 

Q: 부모와 이러한 종교적 불일치를 주제로 진솔하게 대화를 해봤는가?

A: 대화는 해봤지만 워낙 독실하고 고집도 있는 편이라 어느새 막혔던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부모도 그냥 설득을 그만두게 되더라. 그래서 지금은 서로 인정을 하면서도 약간 소원하게 지내고 있는 것 같다.

 

C씨 사례처럼 크리스천들 중에는 믿다가 안 믿게 된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안 믿다가 믿게 된 경우도 있다.

 

서구에 살고 있는 30대 남성 D씨는 그다지 교회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어떤 계기를 통해 교회에 나가게 됐다.

 

Q: 어떤 계기로 교회를 열심히 다니게 되었는가?

A: 나는 원래 무교였다. 종교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하던 일이 잘 안 풀리면서 건강에 이상이 왔다. 몸도 마음도 우울해하던 중에 한 친구가 교회에 같이 가보지 않겠냐고 하더라. 그래서 그냥 따라가서 기도를 했는데 뭔가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이후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고 기분 탓인지 모르겠는데 일도 다시 잘 되고 몸도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모르는 어떤 영험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D씨처럼 원래 무신론자였다가 우연한 계기 또는 마음의 안식 때문에 교회를 다니게 되는 경우가 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체험을 했다는 경험담들이 많다. 

 

교회에서 교육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는 30대 남성 E씨를 통해 크리스천의 유형을 정리해볼 수 있었다. E씨와의 일문일답이다.

 

Q: 사람들이 왜 교회에 가서 신앙생활을 하는지 그게 궁금하다. 그것이 나의 취재 목적인데 사람들은 왜 교회에 가는 걸까?

A: 뭐 종류야 다양하다. 어떤 사람들은 전도사인 나보다 더 독실하다. 그 사람들은 새벽 기도를 매일 같이 드린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스스로 죄가 있다고 생각하여 독실한 기도를 통해서 죄를 씻어내려고 한다. 그리고 주변에 베풀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교회를 통해 기부나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경우의 사람들은 예배 그 자체에도 성실하게 임한다. 물론 이렇게 진정성이 있는 사례만 있는 건 아니다. 그냥 인맥 쌓으려고 오는 사람들도 솔직히 많다.

 

Q: 인맥을 쌓는다? 그게 무슨 의미일까?

A: 뭐 젊은 사람들은 새로운 친구나 아니면 연인을 찾으려는 목적도 있고 사업하는 사람들도 인맥 관리 차원에서 교회를 활용하기도 한다. 

 

Q: 전도사의 입장에서 볼 때 그런 세속적인 목적으로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A: 비록 다른 의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면서 행복하고 또 다니다가 정말로 신앙심이 커질 수도 있기 때문에 꼭 나쁘게만 보지는 않는다. 어떤 사업가는 교회가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헌금도 많이 내줘서 정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Q: 대한민국에는 기복신앙이 좀 심한 거 같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하고 있다. 물론 외국에서도 그렇겠지만 한국에서는 유독 입시, 취업, 결혼 등 중대한 인생 과제에서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교회에 다니는 것 같다. 소위 기복신앙이다. 이런 부분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는가?

A: 기복신앙 정말 중요한 문제다. 교회에서 우리 자식 시험 합격하게 해주세요, 대학 잘 가게 해 주세요 등등 이런 것들은 사실 다 기복신앙이니까 신앙의 원칙과는 맞지 않다. 순수하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고 내 것을 베풀 줄 알아야 한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럴려고 교회에 가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기복신앙은 시험 합격, 취직 등 자기 자신과 가족의 이익을 우선으로 한다. 어떤 목적으로 기도를 하는지에 대해서는 개인의 자유이기 때문에 내가 뭐라고 비판할 수 없지만 원칙적으로는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 

 

Q: 한국 개신교는 소위 “개독”이라고 비판을 많이 받는다. 전도사로서 이 대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A: 나는 정말로 이러한 현실에 참담함을 느낀다. 같은 개신교 목사라고 해서 감싸줄 마음이 전혀 없다. 나 자신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형 교회들만의 문제고 우리 교회는 아무 상관없어“라고 입장을 표명하는 것도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스스로 자정 작용을 못 하고 있다. 교회의 각종 일탈 행위들에 대해 시민들께 대신 사과라도 하고 싶다. 진심이다. 심지어 일부 교회들은 성경을 자신들 마음대로 곡해하여 이상한 교리를 전파하는 것 같아 화가 난다. 성경은 거의 2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라 지금 시대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맞지 않는 내용들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하고 새롭게 해석하는 것 자체는 필요하다고 보는데 자기 입맛대로 임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게다가 요즘 코로나 시국에 교회들이 대면 예배를 강행하여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 교회는 온라인 예배를 하고 있지만 그런 무책임한 교회를 대신해서 사과하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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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욱

안녕하세요.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입니다. 권력을 바라보는 냉철함과 사회적 약자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겠습니다. 더불어 일상 속 불편함을 탐구하는 자세도 놓지치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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