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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노동자의 '안전할 권리' 어디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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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정수현 기자] 신호를 지키지 않고 요란하게 도로를 활보하는 오토바이 운전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의 난폭함 이면에는 배달 노동자의 안전 문제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스마트폰 시대가 된 뒤로 배달앱 시장은 계속 성장해왔지만 작년 초 코로나 시국으로 접어든 이후에는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그만큼 배달 노동자도 급진적으로 늘었다. 하지만 쿠팡과 배달의민족 등 '유통 공룡들'이 라이더들에게 건넨 계약서엔 이들의 '안전할 권리'가 보이지 않는다.

 

 

무더위와 맹추위에도 쉴 수 없는 라이더들의 '30분'은 지켜야만 하는 골든타임이자 그들의 목숨을 건 도박이다. 유통업계의 속도 경쟁이 격해질수록 그 시간의 무게는 더욱 무거워져만 간다. 잇따른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 이후 업무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내용의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라이더들에겐 이마저도 없다. 험난한 매일이 계속된다. 누구보다 빨리 배달을 끝내고 다음 콜을 기다려야 하는 그들의 안전은 음식의 신선도 보다 뒤쳐진다.

 

이같은 시스템으로 인해 라이더들의 교통사고는 점점 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배달 종사자 사고 사망자는 지난 2017년 24명, 2018년 26명, 2019년 30명, 2020년 31명으로 연 평균 9%씩 증가하는 추세다. 그만큼 산업재해 보험금 신청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고용노동부의 '배달 종사자 산재 보험금 신청 현황'을 살펴보면 2018년 618건에 그치던 산재 신청 건수는 지난해 2257건으로 3년 만에 3.7배나 증가했다. 그러나 이중에서 산재가 인정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통상 라이더들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분류돼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 하는데다 근로계약서를 쓰더라도 '교통사고시 모든 책임은 배달 노동자에 있다'는 독소조항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산재보험 적용 문제는 여러 배달대행업체들의 업무를 수행하는 ‘멀티 호밍’을 금지하는 조항과도 연관이 있다. 가령 라이더들은 ‘배달의 민족’을 통한 주문 건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요기요’, ‘쿠팡 이츠’ 등 다수의 플랫폼으로부터 주문 건을 위탁받아 처리하게 되는 구조인데 하나의 사업장만을 위해 근로한 것이 아니므로 ‘종속성’을 인정받지 못 해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는 대형 플랫폼 업체들이 라이더의 '노동자성'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지속적으로 이뤄져왔다. 라이더들의 노동자성이 지워진다는 것은 이들에게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하는 기업 차원의 '사용자성'을 감춘다는 말과 같다.

 

노동 전문가 권오성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는 "기업은 근로자성을 은폐하는 게 아니라 사용자성을 은폐하는 쪽으로 태도를 바꾼다. 사용자성을 지우려는 시도와 관련해서 간접 고용이 대표적으로 문제가 돼왔다"며 "거리를 두고 중간에 엄폐물을 끼워 넣는다. 내가 사용자가 아니라는 것이고 진짜 사용자는 어디로 간지 모르게 된다. 온라인 플랫폼은 더 나간다. 거리를 두는 게 아니라 완전히 은폐해버린다. 사용자가 누군지 식별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플랫폼 업체들은 스마트폰 화면으로 사용자성을 엄폐하고 자영업자 및 라이더와 고객이 직접 접촉하도록 만든다. 라이더는 사실상 표준화된 지휘명령 시스템에 종속되지만 어느 순간 스마트폰 앱의 신호가 오면 빨리 출발해야만 하는 자발적 동의자로 간주된다. 
 

이러한 문제들은 아직까지 해결될 기미가 없다. 학계와 노동조합 위주로 관련 논의가 활발하지만 국회의 문턱을 넘어 제도화로 나아가는 속도는 무척 더디다. 그 사이 안전 사각지대에 놓인 라이더들의 수만 불어나고 있을 뿐이다. 그만큼 불공정한 상황에서 위험한 노동을 반강요당하는 게 일상화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가급적 기본 배달료는 계약서 내에 명시하고, 배달업계의 특성을 고려하여 상황에 따른 추가 금액을 지급할 수 있도록 했으며 계약시 건당 수수료(율)를 명확히 정하고 수수료의 변동이 필요한 경우 그 사유와 금액을 계약서 내에 명시하도록 시정 조치했다. 또한 사고 발생시 귀책 사유와 무관하게 업체의 책임을 완전히 면하는 규정을 손보고 업체와 라이더가 분담할 수 있도록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일선 현장에서 라이더들의 위험한 노동은 여전하다. 아직 제자리 걸음이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지난 28일 개최된 <폭염 속을 달리는 노동자, 온라인 라이더 증언대회>에서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하는 라이더들은 낮은 단가를 받으면서도 돈을 벌기 위해 폭염 속에서 무리하게 일을 해야만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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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현

여전히 '좋은 저널리즘'이라는 이상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정수현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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