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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훈의 뷰 포인트⑭] 나는 내 의지대로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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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문명훈 칼럼니스트] 최근 MBC 《어쩌다 발견한 하루》라는 드라마를 정주행했습니다. 그동안 제목만 알고 있었는데 드라마의 소재가 독특해서 흥미가 생겼습니다. 하이틴 드라마라 제게는 맞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몰입도가 꽤 높았습니다. 여기서 jtbc 《스카이캐슬》의 김혜윤 배우가 주인공 ‘은단오’ 역을 맡았는데요. 독특하게도 이 드라마의 배경은 만화 속 세상입니다.

 

 

로맨스 만화 속 단오는 엑스트라입니다. 심장병을 갖고 있고, 10년째 짝사랑을 하고 있죠. 만화 속 캐릭터들은 모두 작가의 의도대로 말하고 행동하는데, 어느날 은단오가 자아를 갖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만화 속에서 자아를 갖지 못 한 캐릭터들은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 하는 작가의 꼭두각시인데요. 단오는 부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상황을 보며 그곳이 만화 속 세계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때부터 단오는 만화의 스토리를 바꾸려고 노력합니다. 자신이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는 척해야 하는 것도 싫고, 무엇보다도 심장병으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작가가 만든 이야기를 바꾸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갈수록 병은 악화되고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냥 운명처럼 작가의 의도를 받아들여야 하나 좌절하게 되죠. 그러나 주인공은 절망에서 벗어나 만화를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로 채웁니다.

 

 

저는 드라마의 이런 모습이 삶에 대한 비유처럼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스스로가 자유의지에 따라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내 말과 행동에 오롯이 내 의도만 반영된다고 믿죠. 그런데 이 믿음은 그리 진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작가의 영향을 받는 만화 속 캐릭터처럼 타인의 영향과 상황, 맥락에서 그리 자유롭지 않습니다.

 

가령 제가 수업을 하고 있을 때 어떤 학생에게 발표를 시킨다면 학생은 본인이 별로 말을 하고 싶지 않더라도 어떤 대답이든 끌어낼 겁니다. 그런 행동에는 수업에 집중하고 선생님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학생의 역할이라는 전제가 깔려있죠. 교실에서 암묵적으로 작동하는 규범 때문에 학생은 자의적으로 행동하기 어렵습니다. 강사인 저도 제 마음대로 수업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하는 수업은 전체 커리큘럼과 교육과정의 영향을 받습니다. 학교의 인정을 받지 못 한 내용은 강의 내용으로 다룰 수 없죠. 개인의 의지와 별개로 사회의 규범과 '상황 압력'은 그 자체로 위력적입니다.

 

사회의 논리와 압력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곳이 공장의 컨베이어벨트입니다. 공장에서는 정해진 순서와 시간에 맞춰 제품이 조립되고 계획된 수량에 따라 일정을 조정합니다. 여기서 노동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찰리 채플린은 《모던타임스》에서 스스로가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자본주의 생산체제에서 인간과 기계(생산수단)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공장의 컨베이어벨트가 아니라도 짜여진 순서와 내용에 따라 일하면서 스스로를 하나의 도구가 된 것처럼 느낄 때가 많습니다. 제 주변의 공무원이나 대기업에서 일하는 친구들도 같은 이유로 무의미함과 무기력을 호소합니다.

 

 

철학에서는 이런 상황을 ‘인간 소외’라고 부르는데요. 기술도, 사회 시스템도 결국 인간이 더 잘 살기 위해 발명된 것인데 어느 순간부터 기술과 사회 시스템이 인간을 압도하고 하나의 기계처럼 만들어 무의미하고 하찮은 존재로 느껴지게 합니다. ‘인간 소외’가 생소한 표현이긴 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법이나 행정을 보며 우리가 갖게 되는 감정이나 생각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시스템 자체의 논리가 강해져 인간이 삶의 주도권을 잃고 주변 환경에 끌려다니게 되는 거죠.

 

개인은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역할을 갖고 살아갑니다. 집에서는 가족 구성원으로, 동창들 사이에서는 친구로, 회사에서는 직장인으로 살아가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상황의 여러 역할들이 있을 겁니다. 각각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우리는 사회가 요구하는 행동기준(규범)을 따르게 됩니다.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순간 제약과 불이익이 발생하고 개인에게는 ‘비정상’의 낙인이 찍히게 되죠. 그런 압력 때문에 우리는 종종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행동합니다. 만화 속 캐릭터 단오와 별다를 바 없는 셈이죠. 우리는 단오처럼 짜여진 각본을 바꿀 능력이 있을까요?

 

저는 인문학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야기에 굳건한 사회적 압력을 걷어낼 힘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다음 글에서 그 부분에 대해 더 자세히 써보겠습니다.

 

여러 학자들이 ‘인간 소외’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그중 대표를 뽑으라면 『자본론』의 저자 칼 마르크스(Karl Marx)일 겁니다. 그는 불평등과 소외 문제를 다룬 학자로 산업자본주의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설명하며,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회구조가 당연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사회구조와 규범은 시대마다 변화했습니다. 마르크스와 함께 『공산당 선언』을 쓴 엥겔스의 책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을 보면 19세기 초중반 산업혁명을 선도하던 영국의 상황을 잘 알 수 있는데요. 당시에는 어린이들조차 14시간이 넘는 고강도 노동을 했습니다. 마르크스는 산업혁명이 진행되던 19세기의 착취는 원래부터 그랬던 당연한 것이 아니라 그 시대만의 독특한 현상이기 때문에 그런 착취를 허용하는 구조를 바꿔야만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프로필 사진
문명훈

학생들과 철학, 역사, 사회 분야를 공부하는 인문학 강사입니다. 의미있는 이야기를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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