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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훈의 뷰 포인트⑤] 피터 싱어가 보는 '채식주의'의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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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문명훈 칼럼니스트] 저는 평소 편의점 간편식을 자주 먹습니다. 삼각김밥, 샌드위치, 도시락 등은 가성비 좋은 한끼 식사인데다 식당에 가는 것이 꺼려지는 코시국이라 간편식이 좋습니다. 편의점에 들어가면 음식 종류가 많아 뭘 먹을지 고르는 데 한참 시간이 걸리는데요. 날이 갈수록 편의점 음식 종류가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컵밥, 초밥, 홍어, 치즈케익 같은 제품들이 진열된 것을 보면서 이제 더 이상 과거의 편의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편의점에서 눈에 띄는 제품은 비건 도시락입니다. 비건 간편식이 출시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막상 제가 가는 매장에서 판매되는 것을 보니 신기했습니다. 이제는 채식이 일상에 스며든 트렌드라는 걸 부정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편의점 뿐 아니라 마트에서도 비건 제품이 많습니다. 만두, 떡볶이, 라면, 파스타, 햄버거, 빵, 과자 등 많은 메뉴가 채식 재료로 만들어집니다. 과거에는 맛이 없어도 신념 때문에 채식을 한다는 느낌이 강했는데요. 지금은 전체적으로 채식 제품들의 맛이 좋아졌습니다. 채식주의자가 아닌 저도 방송에 나온 채식 레스토랑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피터 싱어' 채식주의자의 논리를 이야기하다

 

채식주의는 오래전부터 있었던 라이프 스타일입니다. 주로 종교적 이유 때문이었고 동물에 대한동정심으로 소수의 개인이 선택하던 신념이었죠. 그렇지만 지금처럼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 했습니다. 비거니즘이 대중 운동이 된 것은 20세기 후반부터입니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죠. 모든 사회운동이 그렇듯 사회 흐름을 바꾸려면 그 신념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논리가 필요합니다. 마르크스 이론이 사회주의 운동의 바탕이 된 것처럼 말이죠. 채식주의 논리는 현대 공리주의 철학자 ‘피터 싱어(Peter Singer)’가 제공했습니다. 그의 책 『동물해방』은 이 분야의 바이블입니다.

 

​피터 싱어는 채식의 이유를 두고 동물에 대한 애정이 아닌 윤리적 근거에서 찾습니다. 그는 '윤리'를 '행위 방식의 정당화'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개인의 이익에 따라 달라지는 행동은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없는 기준입니다. 모두가 따라야 할 규범으로는 부족하죠. 그는 개인의 좋고 나쁨을 떠나 보편성을 가진 윤리적 기준을 찾았고 그 결과 채식을 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동물도 윤리의 대상이다

 

싱어는 자신의 윤리학을 ‘선호 공리주의(preference utilitarianism)’라고 규정합니다. 쾌락과 고통을 기준으로 삼는 전통적 공리주의와 다르게 싱어는 선호를 윤리의 기준으로 설정합니다. 저는 가끔 밤새 드라마를 몰아보는데요. 몸이 피곤한 것은 당연하고 다음날 일정에도 차질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일이죠. 고통스러운 결과를 예상하지만 다음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아침이 될 때까지 버팁니다.

 

전통적인 공리주의자라면 드라마가 주는 쾌락과 다음날의 고통을 계산할 것입니다. 그런데 싱어는 단순히 쾌락과 고통의 총량을 계산하지 않고 제가 가진 선호를 증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쾌락과 고통과 함께 그에 대한 해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죠. 그렇지만 전통적 공리주의, 특히 밀(John Stuart Mill)의 공리주의는 쾌락과 고통을 포괄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호의적으로 해석하면 전통적 공리주의도 선호 공리주의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싱어는 이 공리주의 윤리를 인간에게 한정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윤리 이론이 인간을 대상으로 합니다. 인간이 고차원적 자의식을 갖고 자유의지를 가진 합리적(이성적) 존재이기에 권리와 존엄성을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칸트의 생각이 대표적인데요. 그는 인간이 자율성을 갖고 도덕적 세계(목적의 왕국)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존엄하고 그런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싱어가 보기에 권리나 존엄성을 인간에게 부여하고, 인간만이 윤리의 대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모호하고 일관성이 없습니다.

 

 

자율성, 자의식, 합리성 등을 기준으로 보면 인간 중에서도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 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유아나 식물인간, 지적장애인의 일부는 조건을 채우지 못 합니다. 사실 어른 중에서도 기준을 충족하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싶습니다. 저부터 수동적이고 비합리적인 모습을 자주 보이니까요. 반대로 침팬지나 돌고래 같은 일부 고등동물은 그 기준을 넘어섭니다.

 

​지적능력이나 도덕성을 기준으로 하면 인간 사이에서도 구분이 생기고 차별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인류는 지적능력과 도덕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흑인을 차별한 역사가 있습니다. 싱어는 지성, 도덕성, 합리성 같은 능력 기준을 사용하는 한 차별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싱어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생각이 우리가 정한 '윤리적 원칙(an basic ethical principle)'이지 능력을 평가하는 '사실 주장(an assertion of fact)'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공리주의자답게 싱어는 지적능력이나 윤리성 같은 모호한 개념 대신 고통과 쾌락을 느끼는 능력을 윤리의 기준으로 제시합니다. 채식주의 논리가 여기서 시작되죠. 인간종을 넘어 윤리를 확장하는 것이 당황스러울 수 있지만 고통과 쾌락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명확하고 일관성이 있습니다. 능력에 따라 윤리적 대상을 결정하면 인간 내에서도 불평등이 발생합니다.

 

17세기 철학자 데카르트는 동물을 자동기계라고 생각했지만 현재의 우리는 동물이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동물도 신경계를 갖고 있고 고통을 받으면 괴로움을 표시하니까요. 고통과 쾌락을 느낀다면 동물에게도 나름의 이익이 있고 이익이 있다면 인간인지 아닌지와 상관없이 그 이익은 동등하게 다뤄져야 합니다. 싱어가 ‘이익 평등 고려의 원칙(the principle of equal consideration of interests)’이라고 부르는 것이죠. 공리주의자인 싱어는 모호한 개념인 ‘권리’ 대신 ‘이익’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동물이 느끼는 고통을 무시하는 것은 이익을 침해하는 것입니다. 싱어는 이를 인종차별, 성차별에 빗대어 ‘종차별주의(speciesism)’라고 부릅니다.

 

싱어는 주로 무분별한 동물실험과 공장식 가축 사육을 문제 삼습니다. 과학의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거리낌 없이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동물실험은 많은 경우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내용이거나 동물실험의 결과가 인간에게 적용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공장식 농장에서 동물은 열악한 환경에서 사육되다 잔인하게 도축됩니다. 동물실험에서도, 공장식 농장에서도 동물은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고 죽습니다.

 

​그렇다고 싱어가 동물의 생명과 인간의 생명을 동등하게 보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자의식, 미래를 보는 능력, 희망과 포부 같은 추상적 능력에서 더 뛰어납니다. 추상적 사고와 복잡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인간의 생명이 그렇지 못 한 동물의 생명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공리주의의 논리가 적용됩니다.

 

오늘의 채식주의

 

​많은 사람들이 채식주의라고 하면 동물에 대한 동정과 공감을 생각합니다. 동물도 고통받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이 애완동물에 대한 사랑 때문에 나온 것이라 보는 거죠. 그런 이유로 채식을 하게 된 경우도 있지만 정서적 이유 말고도 채식주의에는 탄탄한 논리적 배경이 있습니다. 채식주의를 뒷받침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지금까지 봤던 공리주의적 윤리입니다. 동물도 고통을 받는 존재이며 고통을 느끼는 존재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가하는 행위는 비윤리적입니다. 다른 하나는 현재의 공장식 축산 시스템이 환경을 파괴한다는 주장입니다. 고기 생산에서 많은 양의 온실가스가 발생하며 채식을 하면 환경 보호에 기여해 기후변화를 완화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 다루지는 않았지만 싱어도 환경 문제를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습니다.

 

 

피터 싱어의 이야기를 이렇게나 길게 한 이유는 이제는 채식주의를 소수의 신념으로 치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서론에서 본 것처럼 식품산업에서 채식은 중요한 시장이 되었습니다. 비공식적이지만 한국채식연합은 한국의 채식 인구를 150만명으로 추정합니다. 동물의 고통에 대한 윤리적 판단과 기후변화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많은 이들을 채식주의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이제 채식주의자가 아니라도 동물 복지 식품을 사고, 동물 실험을 하지 않은 크루얼티 프리(cruelty free) 화장품을 사용합니다. 이런 흐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채식에 대해 고민해볼만 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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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훈

학생들과 철학, 역사, 사회 분야를 공부하는 인문학 강사입니다. 의미있는 이야기를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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