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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에 선 외노자들④] 임금 못 받고 폭력에 노출돼도 직장 못 옮겨 '고용허가제'가 합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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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김미진 기자] 경남 합천군 소재의 한 공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A씨는 최근 여러 부당한 처사를 견디다 못 해 고용노동부에 손길을 내밀었다. 한국인 동료의 언어폭력 및 연장근로수당 미지급 문제 때문이다. A씨는 우즈베키스탄 동료와 함께 노동청으로 찾아가 녹음본 및 진정서를 제출했고 담당 직원으로부터 "연락을 줄테니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말을 들었다. A씨가 원하는 것은 일터를 옮겨달라는 "사업장 변경"이다.

 

그러나 두 달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세 달이 지나고 노동청에 다시 찾아갔지만 A씨는 "사업주의 허락을 받고 오라"는 말만 들었다고 한다. 당연히 사업주는 사업장 변경을 거절했다. 사업주는 A씨에게 폭언을 일삼은 한국인 노동자들에 대해 "그러지 말라"는 충고를 하고 일을 마무리지었다.

 

 

얼마전 헌법재판소는 외국인 노동자의 사업장 변경권을 제한하는 고용허가제에 대해 합헌 판정을 내렸다. 현재 비전문취업(E-9) 체류 자격으로 한국에 들어와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사용자의 허가를 받지 못 하면 사업장 변경이 불가능하다.

 

이들이 사업장을 바꾸려면 ▲사용자가 근로계약을 해지하거나 갱신하지 않으려는 경우 ▲휴업·폐업·사용자의 근로조건 위반 등으로 해당 사업장에서 계속 일을 할 수 없다고 인정돼 고용노동부 장관이 고시한 경우 등 딱 2가지에 들어야 가능하다.

 

A씨는 어느 요건에도 충족되지 않는다는 게 고용노동부의 판단이다.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 하고 있는 데도 사업장을 이동할 수 없는 거다. 

 

고용노동부의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 사유별 신청 및 승인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사업장 변경을 신청한 사례는 총 3만2140건이다. 근로계약 해지 또는 만료로 인한 신청이 전체의 85.6%인 2만7512건에 이르렀다. 나머지 14.4%는 근로조건 위반이나 부당한 처우 등 사용자 책임이 있는 사유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경기도 소재 한 이주노동자인권단체 관계자는 평범한미디어와의 통화에서 "사용자 책임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신청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많다"며 "일단 고용노동부가 요구하는 입증 자료들이 너무 많거나 준비하기 어렵고 처리 기한이 짧아 어쩔 수 없이 사용주의 뜻에 따라 합의하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솔직히 언론에 나거나 정말 일이 크게 벌어지지 않는 이상 직장을 옮기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에 대해 한 마디로 '현대판 노예제'라고 했다.

 

헌재는 "불법 체류자가 급격히 늘어나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효율적 관리가 필요하다"는 명분을 들어 합헌이라고 했는데 그 '효율적 관리'라는 것 때문에 이주 노동자들은 부당한 처사를 당해도 같은 사업장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자기 책임이 전혀 아니라도 이직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A씨는 결국 사용자와 합의했다는 진술서를 작성할 수밖에 없었다. 곧 체류 기간이 끝나는데 작업장을 변경하면 한국으로 다시 돌아올 수 없기 때문이다. 사용자측은 이런 약점을 이용해 "(문제 일으키지 말고) 그냥 넘기면 다시 한국으로 불러주겠다"고 회유했다. 현재 외국인 노동자들은 비자가 만료될 때까지 사업장을 변경하지 않으면 사용자의 동의 하에 재취업 특례로 입국할 수 있다. 

 

그러나 사업주가 진짜 A씨를 한국으로 다시 불러줄지는 확실치 않다. 전에 있던 동료도 비슷한 상황에서 해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A씨는 "한국에서 정말 일 하고 싶다. 일 해야 내 가족들이 고국에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한국에서 더 일할 수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말을 남기고 통화를 마쳤다. 

 

권영국 변호사(해우법률사무소)는 매일노동뉴스 칼럼을 통해 고용허가제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이주 노동자가 사업장을 변경하고 싶으면 (계약 해지에 대해) 사용자의 동의를 얻거나 노동부 고시에 열거된 사용자의 위반 사유를 노동자가 입증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이주 노동자는 사업주의 명백한 불법이나 부도·폐업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업장을 변경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이주 노동자들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 폭언이나 폭행, 성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직장을 옮기지 못 한 채 노동을 강요당하게 된다. 이런 현실은 사업장 이탈을 부추겨 미등록 이주 노동자를 양산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주노동단체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사업장 변경 제한을 강제 노동의 주범으로 지목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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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진

사실만을 포착하고 왜곡없이 전달하겠습니다. 김미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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