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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는 심상정에 비해 덜 현실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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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작년 11월초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출마선언을 했을 때 가장 눈이 갔던 대목이 바로 ‘기득권 거대 양당’과의 차별화였다. 자신은 “기득권에 빚진 것이 없기 때문”에 제대로 된 개혁을 해낼 수 있다는 어법이었다. 사실 미심쩍었다. 그래서 안 후보는 거대 양당 중 한 세력과 늘 ‘정권교체 프레임’으로 협력했고 매우 밀접하게 결합했다가 세력 싸움에서 밀려났던 것 뿐이라는 취지로 기사를 썼다.

 

그런데 이번에 출마선언 초반부터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집권하게 되면 적폐 교대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메시지를 쏟아내길래 그래도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믿어보고 싶었다. 양당체제의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정의당 심상정 후보도 안 후보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밀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내세운 것이 양당체제에 대한 비판론이었기 때문에 동지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안 후보는 13일 온라인으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야권 후보 단일화를 제안한다”고 밝혔다. 언론에서 집중 조명했던 대목은 △서두에 김미경 교수가 기저질환이 있음에도 자신의 선거운동을 돕다가 코로나 확진이 돼서 너무 미안하다며 울먹인 모습 △여론조사 국민 경선 방식으로 단일화를 모색하자는 제안 등 2가지다.

 

2가지 말고도 안 후보의 워딩들 중에 주목되는 게 있었는데 먼저 아래와 같은 표현이다.

 

이러한 제안을 하는 이유는 내가 완주한다고 그렇게 얘기해도 정말 집요하게 단일화 꼬리만 붙이려고 하니 그렇다면 차라리 선제적으로 제안해서 국민의 판단과 평가에 모든 것을 맡기고 내 길을 굳건하게 가는 게 안철수 이름으로 정권교체 하는 거라고 판단했다.

 

안 후보는 지난 8일 개최된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단일화에 대한 질문 폭격을 받았다. 대선 일정을 수행하기 위해 전국을 돌더라도 따라붙는 기자들은 맨날 야권 단일화만 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유없이 “집요하게 단일화 꼬리”를 붙인 것이 아니다. 스스로 그런 정치적 이미지를 만든 측면이 있다. 비양당 제3지대 중도 포지션은 가장 큰 야권 세력과 단일화를 모색하는 데에 유리하게 작용했고 실제로 안 후보는 △2012년 대선 문재인 대통령과의 단일화 △2021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단일화 등을 추진한 바 있다. 오 시장이 단일화 협상에 뛰어들도록 국민의힘과의 통합을 선언하기도 했다. 그 이후 7개월만에 대선판에 뛰어든 안 후보에게 기자들이 단일화 여부를 묻지 않는 것이 오히려 어색한 일이다.

 

 

물론 안 후보가 처한 곤궁한 환경에 대해서는 모두가 이해하고 있다.

 

정치학자 안병진 교수(경희대)는 13일 오후 평범한미디어와의 통화에서 “아무래도 안 후보 입장에서 선거제도가 이러니까 양당으로의 구심력이 강해서 고민이 없을 수가 없을 것”이라며 “(한국의 정치 환경에서) 제3당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결국은 2가지 밖에 없는데 만약 안 후보가 그냥 독자로 갔을 경우 지금 지지율 보다 덜 나올 것 아닌가. 특히 지금 문 대통령의 격노 이후로 양당이 결집하니까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이어 “현실적으로 만약 본인의 지지세가 더 축소됐을 때 혹은 이재명 후보가 당선됐을 경우 본인에게 상당한 정치적 후폭풍이 불 것”이라며 “결국은 양당 중에서 한 정당과 정치연합을 통해서 이후에 다당제의 길을 걸어가는 쪽으로 선택하는 것을 유력하게 볼 수밖에 없다. 그러면 누구랑 하느냐의 문제만 남는 거다. 그런 점에서 제3당의 곤혹스러운 딜레마”라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진보와 중도의 만남 등 제3지대론을 주장했던 인물이다. 12월초 그런 취지로 결성된 ‘대선전환추진위원회’ 주최 토론회에 참석해서 안 후보 주변에서 윤 후보와의 단일화에 군불을 지피는 측근들을 향해 “닥쳐야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안 교수는 어찌됐든 안 후보가 양당에 속해 있지 않고 지금까지 생존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높이 평가했다. 그래서 양당체제에 균열을 내는 방향으로 정치적 파괴력을 모색해볼 수 있다고 봤다.

 

안 교수는 “(시장의 공정성 문제나 양당체제의 폐해 비판 등 안 후보와 심 후보가) 접점이 있어서 얼마든지 제3지대에서 둘이 연대해서 그 힘을 가지고 보다 큰 판을 만들어갈 수도 있는데 그 기회를 놓치셨다”면서 “(두 후보의 연대를 주장했던 사람으로서) 지금은 곤혹스러운 입장”이라고 말했다.

 

사실 안 후보가 양당체제 균열론으로 해석될 워딩을 쏟아내고 심 후보의 제안에 소극적인 반응으로 일관했을 때 일각에선 여전히 ‘국민의힘과의 결합’을 염두에 두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곤 했다.

 

작년 11월부터 12월초까지 심 후보와 안 후보의 연대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시기에도 그런 의심 섞인 전망들이 많았는데 안 교수는 “(그때 안 후보가) 마음을 정한 것은 아니었고 국민의당 주변에 있는 분들이나 당내 사람들은 조금 그쪽으로 마음이 가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면서도 “안 후보가 심 후보의 제안에 미적지근했던 것은 어떻게 보면 결국 제3지대가 아니라 양당 중 한 곳과 뭔가를 해보는 걸 유력하게 생각하다 보니까 심 후보와의 어떤 가능성에 크게 비중을 두지 않았다. 심 후보랑 연대를 하는 게 별로 머릿 속에 크게 없었다”고 밝혔다.

 

더구나 거기다가 심 후보가 가진 진보성에 대한 부담감이 컸다. (안 후보는) 노동 분야에서는 굉장히 보수적이다.

 

 

안 후보가 꼭 양당 후보들과의 결합을 일찍부터 염두에 둔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최소한 지지율이 낮은 심 후보와 하나로 묶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파급력이 있는 부동층과 무당층이 결국 자신을 지지할 것이라고 보고 마이너가 아닌 ‘메인 후보’의 이미지를 가져가고 싶었던 것 같은데, 일례로 안 후보는 여론조사 결과 30%대에 갇혀 있는 양당 후보의 지지율 보다 아직 누굴 찍을지 결정하지 못 한 부동층이 40%에 달한다며 “자신은 1지대”라는 화법을 자주 구사했다.

 

안 후보의 이런 구상과 심 후보의 ‘중도 공조론’은 그야말로 동상이몽이었다.

 

안 교수는 “(심 후보는) 기본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다면 안 후보와의 연대에 상당히 적극적인 입장이었으니까 당내에서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는 걸 각오하고 그렇게 제안을 한 것인데 심 후보의 구상과 안 후보의 구상이 달랐다”면서 “안 후보는 심 후보에 비해 덜 현실주의자”라고 평가했다.

 

안 교수는 제3지대 영역에서 양당체제에 균열을 내는 길로 가는 것이 ‘정치인 안철수’에게 훨씬 더 현실적인 전략이 될 것이라고 봤다. 안 후보가 윤 후보를 제치고 야권 단일 후보가 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그게 더 이상적이다. 벌써부터 윤석열 캠프에서는 “역선택” 운운하며 윤 후보에게 불확실성을 줄 수도 있는 여론조사 방식의 단일화에 손사레를 치고 있다.

 

 

안 후보는 단일화를 제안하며 “구체제의 종식만큼 정권교체 또한 이 시대의 명분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고 했다. 구체제는 양당체제를 뜻한다. 양당체제 종식과 정권교체 둘 다 중요한데 윤 후보와의 단일화를 제안하는 것은 사실상 전자를 포기하는 일이다. 안 후보는 2013년 하반기부터 신당 창당(새정치연합) 행보를 밟아오며 여러 인물들을 끌어모아 창당준비위원회를 만들었는데 결국 2014년 초 당시 제1야당이었던 민주당과 합당해버렸다.

 

안 후보는 그때 당시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민주당으로 들어와서 양당 중 하나를 바꾸게 되면 양당체제에 변화를 주는 것 아니냐”라는 식으로 설득했었고 그렇게 하면 “(거대 정당 혁신이) 될줄 알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곧바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근데 그 이후에도 국민의힘과의 합당을 공언했다가 철회한 바 있고, 이번 대선에서도 윤 후보와의 단일화 테이블에 앉게 됐다.

 

안 후보는 “차기 정부의 국정 비전과 혁신 과제를 국민 앞에 공동 발표하고 이행할 것을 약속한 후 여론조사 국민경선을 통해 단일 후보 정하고 누가 후보가 되든 서로의 러닝메이트가 되면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서 “승리 후에 차기 정부가 성공한 정부가 될 수 있도록 서로의 부족한 점 메워주며 함께 노력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심 후보 또는 새로운물결 김동연 후보에 대한 언급은 한 마디도 없이 오직 윤 후보를 콕 집어서 공식 제안을 한 것이다. 구체제 종식을 위한 동지들에게는 한 마디도 없이 구체제 중 한 곳에 구애를 하는 모양새가 됐다.

 

이제 선택은 윤석열 후보님과 국민의힘에 달려있다.

 

 

국민의힘이 12월 내내 ‘김건희 리스크’와 ‘이준석·윤석열 2차 갈등’으로 헤매고 있을 때 안 후보는 지지율 10%를 넘겼을 정도로 반사효과를 톡톡히 봤다. 그러나 1월 초중순부터 설 연휴 전후로 윤 후보가 2가지 취약 요소를 봉합하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의 양자 토론 협상 정국으로 진입하자 다시 안 후보의 지지율은 답보 상태가 됐다.

 

다시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단일화로 승부수를 띄운 걸까?

 

국민의당에서 사회정책조정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준원씨는 13일 오후 평범한미디어와의 통화에서 “3지대 후보가 항상 사표론과 당선가능성이라는 틀 안에 갇혀 있기 때문에 그걸 깰려면 뭐든 예상치 못 한 방법으로 예측불가능한 움직임이 있을 때 주목이 확 끌리지 않는가”라며 “그런 전략적인 판단을 한 게 아닐까 싶다. 저희만 잘 한다고 올라갈 수 있는 게 아니라 그쪽도 내려가야 올라갈 수 있는 상승 동력이 있는데 아무래도 그런 한계점이 체감되지 않았을까”라고 설명했다.

 

이어 “(윤 후보는 김건희 리스크와 이준석과의 갈등 등이) 봉합되면서 다시 하락 추세로 갔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최씨는 대선전환추진위원회 최초 제안자들 중 한 명으로서 “(안 후보의 단일화 행보에) 비판 지점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언행일치라고 계속 해왔는데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항상 결정하는 게 정치인이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어디까지로 기준을 잡아야 좋을지 후보 나름대로 고민한 결론일 것”이라고 피력했다.

 

(3지대 후보들은) 당선가능성이라는 한계에 항상 막혀있다. (안 후보에게) 맨날 단일화한다고들 하지만 현 제도 안에서 그걸 돌파하기 위한 방법이, 저희 같은 이념가들의 옳은 주장이 아니라 일반 대중이 생각하는 관점에서 봤을 때는 한계가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최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재보궐 당시 했던 단일화 방법으로만 받겠다고 선언을 했던 부분, 3지대 후보에게 붙는 단일화 꼬리표를 좀 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사실 거부를 좀 미리 예상하고 던진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이어 “윤석열 후보측에서 역선택 얘기가 나오자마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후보) 등록했다고 사진을 올리셨다. 전략적인 움직임도 좀 고려가 된 게 아닐까 싶다”고 해석했다.

 

 

최씨는 예측불가능성의 측면에서 “사실 심 후보가 10%나 5% 정도만 올라왔으면 같이 합치면 파급력이 있었을 것”이라며 양당으로의 구심력에 안 후보가 빨려들어간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안 후보는 단일화 제안 기자회견 영상 말미에 “살아오면서 부끄러운 짓은 하지 않았다. 안철수의 영혼이 있는 승부 제대로 해보일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양당체제로 귀속되어 버리는 것이 “영혼이 있는 승부”일까?

 

심상정 캠프에서 공보단장을 맡고 있는 박원석 전 의원은 13일 페이스북을 통해 “안철수 후보 참 안타깝다”며 “소문 무성했던 양당으로 부터의 단일화 제안 물밑 협상이 어떻게 전개됐는지는 모르겠으나 윤석열이 가망없는 상황에서라면 몰라도 여론조사 단일화 수용 가능성은 0%”라고 밝혔다.

 

이어 “설마 이걸 모르지는 않았을테고 중도보수 지지자들로부터 정권교체 진정성을 인정받아 떨어지고 있는 지지율을 만회해 보겠다는 계산이라면 큰 착오”라며 “선거에서 유권자는 먼저 등을 보인 쪽에 힘을 실어주지 않는다. 결국 힘이 빠진채 완주하거나, 정권교체를 대의로 세우면서 민주당이나 이재명 후보와 손잡는 기이한 그림만 남았는데 도대체 새정치와 양당체제 극복, 시대교체는 어디로 갔는가?”라고 따져물었다.

 

 

마지막으로 심 후보가 안 후보의 단일화 소식을 듣자마자 발표한 입장문을 인용해보려 한다.

 

이번 대선에서 안철수 후보께서는 양당체제 극복 의지를 강하게 말씀해오셨다. 그런데 오늘, 윤석열 후보에게 단일화 제안을 했다. 안타깝고 실망스럽다. 구체제 종식과 정권교체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구체제의 한 축과 손잡고 구체제와의 결별이 가능하겠는가? 양당간 정권교체는 기득권 교대일 뿐이라던 공언은 어디로 갔는가? 단일화는 그동안 국민의 신임을 잃은 무능한 양당체제의 연장 수단으로 악용되어 오지 않았는가? 대전환의 길목에 들어선 대한민국의 최우선 과제는 정치교체다. 이제 국민들에게 덜 나쁜 대통령을 강요하는 지긋지긋한 양당의 적대적 공생정치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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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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