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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행운인지 불운인지’ 내가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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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비의 비엔나 라이프] 22번째 글입니다.

 

 

[평범한미디어 조은비 디라이트 대표] 1482. 수백대의 중고차가 전시된 드넓은 공터에 이런 번호판이 붙어있는 것은 운명이 내게 보내는 강력한 신호였다. 그와 나의 핸드폰 번호 맨 뒷자리인 14와 82가 나란히 적힌 차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남색이었고 그가 원하던 내비게이션 옵션도 달려있었다.

 

이 차를 만났을 때 나는 한정된 예산과 뭔가 애매한 중고차들 사이를 돌아다니느라 허리가 부러질 것 같았다. 그 순간 나는 이 차를 보았다. 그리고 이 우연의 의미를 해석하려 애썼다. 상상 속으로 써내려가던 그와 내가 천생연분라는 소설에 꼭 필요한 아름다운 사건. 나는 강력하게 이 차를 추천했다. 그리고 우리는 운명의 1482차를 타고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엄청 많은 우연의 일치를 경험했다. 그래서 그가 나를 떠났을 때 신비로운 우연들로 써내려간 내 상상 속 소설이 정말 ‘소설’이 되어버렸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나는 요즘 금속공예 수업을 듣고 있다. 학생들의 연령대는 다양한데 어느날 중년의 동료가 쉬는 시간에 ‘점’을 보고 왔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점쟁이가 그녀의 음력 생일이 남편의 양력 생일과 똑같아서 그녀의 말년운이 좋다고 했다고. 그녀의 눈에서 깊은 안도감과 희열이 느껴졌다. 그건 바로 1482 번호판에서 우리의 핸드폰 번호를 발견했을 때, 그 차가 남색이었고, 내비게이션도 달려있음을 알았을 때, 내가 지었던 표정과 흡사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안도감은 다른 의미로도 나를 안심시켰다. 나를 감격시켰던 수많은 ‘우연한 만남’ 중 대부분이 시간이 지나면 허무하게 인생에서 사라져도 계속 우연에서 필연을 읽어내려는 내 집착을 부끄러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심하고 있는 그녀와, 그런 그녀에게 점쟁이의 정보를 얻어가려는 다른 학생들을 보면서, 숨기고 싶던 나의 멍청함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으로 격상되었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늘 그랬듯 우편함부터 확인했다. 관리비 고지서가 꽂혀 있었다. 열흘 전쯤 다른 우편함에는 다 꽂혀 있던 고지서가 내게만 오지 않던 것을 이상해하던 참이었다. 고지서를 읽어보니 납부기한이 열흘 지나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는 모든 입주자들에게 같은 날 고지서를 보냈으며 다른 집들의 고지서를 보고도 자기에게 바로 연락하지 않은 내 잘못임을 강조했다. 목 아래에서 뜨끈한 것이 느껴졌다. 분노였다. 우편함을 비추는 CCTV 자료를 뒤져 내게 늦게 배달됐다는 걸 증명할까? 그녀의 말투를 지적하며 싸워버릴까? 하지만 나는 알겠다고 연체료를 묻고 전화를 끊었다. 내가 빈에 있는 동안 메일로 와야 할 고지서가 전부 누락되어, 관리사무소가 연체료의 절반을 부담하기로 한 게 떠올랐다. 더 이상 진상이 되기 싫었다.

 

그러고보니 아침부터 징조가 좋지 않았다. 금속공예 수업에서 먹을 점심 도시락을 냉동실에서 꺼내다가 바닥에 떨어뜨린 것이다. 유리로 된 용기는 산산조각 났고, 렌틸, 병아리콩 등으로 공들여 만든 도시락이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유리조각을 치우다 아침 일찍 시작하는 주얼리 수업에 지각할 것이 걱정되었다. 그 우연은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다. 사실 그것은 운명이 내게 보내는 경고가 아니었을까? 드라마나 영화에서 유리가 깨지면 주인공에게 시련이 시작되는 클리셰도 떠올랐다. 나는 또 다시 머릿 속으로 우연들을 엮어 소설을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불운’은 이 소설의 단골 장르다. 이 안에서 내 삶은 ‘운 없는, 혼자 사는, 불쌍한, 어중간한, 32세 한국 여성의 이야기’로 변형되고, 반복되고, 발전되었다. 잠깐 스탑. 나 또 소설 쓰고 있네.

 

우리의 일상에는 우연이 빗발친다. 그 자체로는 중립적인, 아무 것도 담기지 않은 흰 그릇 같은 우연한 사건과 만남들에 우리는 끊임없이 이름표를 붙인다. 어떤 건 불운이고, 행운이며, 신의 계시이고, 신의 저주이거나 경고라고. 이름 붙인 행운이 불행의 씨앗으로 변하고 신의 저주 같던 일도 나중엔 그리 비극적이지 않았던 걸 숱하게 경험했지만 지금도 스쳐 지나가는 우연들에서 필연을 읽어내고 싶은 순간을 억누르기 힘들 때가 있다. 중요한 건 해석은 내 몫이라는 것 아닐까? 나 자신의 점쟁이가 되어 우연한 사건에 행운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권한이 내게 있다는. 그가 떠난 뒤 1482 차는 두 번 다시 보지 못 했다. 하지만 사랑이 끝나는 날까지 내게 엄청난 힘을 주며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한 원천이 사소한 우연들과 아름다운 해석에 있었음을. 그래서 삶이라는 그림이 더 풍성해졌음은 우연과 필연을 넘어선 진실이다. 나를 또 움직일 신비로운 우연들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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